‘부패의 왕’ 하면 시체를 빼놓을 수 없지. 동물의 시체는 파리들이 먹이를 먹고, 알을 낳아 기르는 터전이 되거든. 그런데 파리말고도 부패한 시체를 먹는 곤충, 동물들이 많다고!
동물 생태계의 중요한 먹이!
지난해 5월, 독일 통합생물다양성연구센터 로엘 반 클링크 박사가 이끈 공동연구팀은 동물의 시체가 생물다양성 보존 및 생태계 다양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어요. 연구팀은 네덜란드 오스트파르더르스플라선 국립공원 한 곳에 붉은사슴 시체를 놓고, 시체가 주변의 생물다양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했어요. 시체가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에 존재하는 곤충과 식물을 관찰해 기록했지요. 그 결과, 시체 주변은 다른 지역보다 지느러미엉겅퀴 같은 식물이 5배 이상 더 크게 자랐고, 곤충과 이를 먹이로 하는 동물의 개체수가 4배 이상 많아졌어요.
자연에서 동물이 죽어 부패하기 시작하면, 많은 곤충과 동물들이 모여 시체를 먹어요. 특히 먹이가 부족한 심해에서는 유기물질 덩어리인 고래 시체가 중요한 영양소가 됩니다. 죽은 고래를 직접 바다 밑바닥으로 떨어뜨린 미국 하와이대학교 해양학과 크레이그 스미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고래 시체 하나에 홍합과 조개, 지렁이, 장어 등 해양생물 3만 마리가 모여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고 알려졌답니다.
시체 먹는 동물들, 멀쩡한 이유?
[독수리] 독성물질을 이겨내는 강한 위산!
울산과학기술원 게놈연구소 공동연구팀은 독수리가 부패한 동물의 시체를 먹고도, 병원균에 감염되지 않는 이유는 유전적 변이 때문이라는 사실을 2015년 밝혀냈다. 연구팀이 독수리 유전자 20만 개를 분석한 결과, 8천만 년 전 유전적 변이가 생기면서 위산의 산도가 아주 강한 산성인 pH1이 됐다. 이는 사람보다 10배나 강한 위산으로, 독수리는 시체를 먹고도 식중독균이나 독소를 이겨내 탈이 나지 않는다.
[송장벌레] 장내 미생물로 독성물질 없애!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공동연구팀은 2018년 송장벌레가 자신의 장내세균을 시체에 분비해 시체가 부패하는 것을 막고, 독성물질을 없애 안전하게 먹을 수 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인터뷰
박성환(고려대학교 법의학연구소 교수)
“시체에 모인 곤충을 보면, 살인 사건을 해결할 수 있어요!”
동물은 죽는 순간부터 부패가 시작됩니다. 기본적으로 부패는 세균에 의해 일어나지만, 시체를 먹이로 하는 곤충과 동물들이 모여드는 순간 시체는 더 빨리 망가지게 됩니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건 역시 파리입니다. 그중에서도 검정파리가 가장 먼저 시체를 찾아오고, 심지어 알까지 낳습니다. 보통 시체가 생긴 지 하루가 지나면 구더기가 부화하고, 보름 정도면 성체 파리가 됩니다.
또 부패 시기별로 모이는 곤충도 다릅니다. 부패 초반에는 검정파리가 찾아오고, 뒤이어 쉬파리와 집파리가 나타납니다. 부패가 어느 정도 지난 부패 후기에는 치즈파리가 등장합니다. 딱정벌레는 사망 후 14일을 전후로 발견되고요. 이 정보는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데 사용됩니다. 시신에 어떤 곤충이 있는지, 가장 나이가 많은 곤충은 무엇인지 보면 시신의 주인공이 언제 죽었는지 역으로 계산해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법곤충학’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