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오들오들 떨리는 남극의 펭귄마을 연구 현장에 턱끈펭귄 한 마리가 도착했습니다. 재빨리 마취 호흡기를 코에 대자, 펭귄은 이내 잠이 들었지요. 이때부터 저는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웬 펭귄이냐고요? 지금부터 2019년 남극 출장 진료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40분 정도 걸어가면 ‘펭귄 마을’이라고 불리는 남극특별보호구역(ASPA)이 있습니다. 남극에 여름이 찾아오면, 펭귄 마을에는 턱끈펭귄과 젠투펭귄 수천 마리가 작은 돌을 물어와 둥지를 짓고 번식을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펭귄들이 번식 철이 되면 1주일 가량 쉬지 않고 생활한다는 거예요. 부부(번식짝)가 번갈아 알을 품고, 교대를 한 뒤엔 곧바로 바다로 나가 먹이를 사냥해 먹거나 헤엄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알을 품는 동안 밥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교대한 동안 최대한 먹이를 섭취하는 거예요. 이를 연구하기 위해서 지난 2019년 11월, 극지연구소의 펭귄행동연구자 이원영 박사, 프랑스국립연구소 뇌파연구자 폴 앙투앙 리부렐 박사와 함께 남극 펭귄 마을로 떠났습니다. 저는 연구 과정에서 펭귄의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진찰하는 역할이지요.
연구 목적은 펭귄의 몸에 장치를 달아 뇌파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었습니다. 해양동물 뇌파 연구는 남미 갈라파고스섬에 사는 군함조를 연구하는 데 이용되었어요. 군함조는 상승 기류를 타고 최대 180일 동안 연속해서 바다 위를 비행해요. 독일 막스플랑크 조류연구소의 닐스 로텐보그 박사는 군함조가 오랫동안 잠을 자지 않고 장거리를 비행하는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지난 2019년 군함조의 머리에 수면파 측정기를 달아 관찰하였어요. 그 결과 비행하는 동안 뇌의 절반은 잠을 자는 ‘반구 수면’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연구팀은 번식 철 남극 펭귄들의 생태가 군함조의 전략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봤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뇌파를 관찰하기로 한 거랍니다.
# 2019년 12월 3일 눈보라가 휘날리는 왕진 길
남극에서 펭귄을 진찰하려면 동물원에서처럼 동물병원으로 동물을 데려오는 게 아니라, 서식지로 직접 찾아가야 해요. 남극은 날씨가 급변하기 때문에, 일기예보를 잘 듣고 현장에 나가야 하지요. 제가 있었던 12월은 남극의 여름이라, 기온이 영하 1~2℃ 정도로 많이 춥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초속 10m가 넘는 눈보라가 칠 때면 체감온도가 영하 10℃ 밑으로 내려가기도 했고, 앞을 분간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펭귄의 안전한 마취를 위해 챙긴 마취기와 산소통을 멘 상태라 왕진 길은 더더욱 힘이 들었어요. 마취기는 무게가 40kg 정도 되는 금속 장치인데, 눈 속에 발이 푹푹 빠지는 산오르막을 매일 오르내리니 꽤나 힘들었지요. 펭귄 마취를 할 장소는 세종과학기지 대원들이 악천우를 피하는 대피소예요. 눈보라를 헤치며 펭귄의 번식지가 있는 산봉우리를 넘어 40분 정도를 더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 2019년 12월 5일 펭귄, 잠들게 하다
펭귄의 뇌파를 연구하려면 펭귄 몸의 신호를 기록하는 장치를 달아야 해요.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펭귄을 포획해야 합니다. 이원영 박사는 둥지에 앉아 있는 턱끈펭귄에게 슬며시 다가가 머리 위쪽으로 고깔 모양의 천을 떨어뜨렸어요. 천 때문에 눈이 가려진 턱끈펭귄은 옴짝달싹하지 못했지요. 이원영 박사는 펭귄을 그대로 대피소로 데려왔습니다.
펭귄은 귀엽게 생겼지만 혹독한 남극 환경을 살아가는 엄연한 야생동물입니다. 이런 야생성이 강한 펭귄에게 기록 장치들을 부착하는 일은 마취를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펭귄은 폐와 기낭(공기주머니)을 이용해 깊은 호흡을 하는데, 약물 주사로 마취를 하면 호흡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매우 위험해요. 대신 호흡 가스를 흡입시키는 방법을 써야 하지요.
포획된 펭귄이 대피소로 도착하면, 제가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펭귄의 입에 얼른 수면 호흡 마스크를 대었어요. 펭귄은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날개를 퍼덕거렸지요. 날갯짓에 얼굴을 얻어맞으면 한참 동안 얼얼할 정도로 힘이 셌어요.
이내 잠이 든 펭귄의 몸에 수심계, 위치추적기, 뇌파기록 장치를 달았어요. 마취 중에는 펭귄의 심박수와 호흡수, 혈압, 체온 등의 생체신호를 모니터링 했어요. 마취 중에 생길 수 있는 위험을 줄이고,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마취를 중단하기 위해서지요.
정확한 연구를 위해 2주일에 걸쳐 20여 마리의 펭귄의 몸에 기록 장치를 달았어요. 물론 기록 장치들은 펭귄이 바다에 나가 수영하는 데 부담을 주지 않는 크기와 무게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2019년 12월 9일 : 펭귄의 일주일을 훔쳐 보다
펭귄은 암수가 일주일 정도씩 교대로 알을 품는다고 해요. 교대한 펭귄은 잠도 안 자고 바다에 나가 크릴새우로 배를 가득 채우고 다시 둥지로 돌아오지요. 이때 펭귄의 몸에 있는 기록 장치를 떼어내 데이터를 분석하면 펭귄의 생활을 알 수 있는 거예요.
일주일이 지난 후 연구팀은 바다에서 돌아온 펭귄의 몸에 있는 기록 장치를 떼어냈어요.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펭귄이 얼마나 깊이 잠수하는지, 어느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는지 등에 대해 알기 위해 계속 분석 하고 있답니다.
※필자소개
김정호 수의사
충북대학교에서 멸종위기종 삵의 마취와 보전에 관한 주제로 수의학박사를 받았다. 청주동물원과는 학생실습생으로 인연이 되어
일을 시작했고, 현재는 진료사육팀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