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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 퇴치법을 배웠는데도 에어컨 없이는 잠들기 쉽지 않은 나날을 보내는 닥터 그랜마예요. 온몸이 흐물흐물 녹아버릴 것 같은 방안에서 괴로워하다가, 얼음을 꺼내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연 순간 빛이 번쩍! 정신을 차려 보니 찬바람이 쌩쌩 불어대는 추운 세상이었어요. 왜 이렇게 극단적이야!
갑자기 내려간 기온에 온몸을 웅크린 채 헤매다가 갈색의 털뭉치들을 발견했어요!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순하게 생긴 작은 동물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는 거 아니겠어요? 저 녀석들을 잘 꼬드겨서 담요 역할 좀 해달라고 해야겠어요.

얘들아~. 잠깐 날 둘러싸 주지 않을래? 갑자기 여기로 왔는데 너무 춥구나.

너구리 모임에 어서 오세요~. 저희도 마침 이곳 ‘한반도’로 피난 온 참이었어요. 역시 빙하기는 힘드네요. 위도가 높은 대륙 쪽은 이미 두꺼운 얼음으로 덮였답니다.

응? 빙하기? 지금이 2만 년 전이라고? 게다가 너구리? 책에서 본 너구리는 너희와 다르게 생겼는데…?

우리는 한국에 사는 너구리로 동아시아 원산의 개과 동물이에요. 눈 주변이 둥글게 검고 회색을 띤 ‘미국너구리’는 북미 원산의 미국너구리과 동물이고요.
빙하기인 지금, 이곳 한반도에는 더 많은 너구리가 모여 있어요. 서울대학교 수의대와 일본, 베트남 공동 연구팀은 우리 너구리들이 빙하기 때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아시아 국가에서 모은 너구리 147마리의 유전자를 분석했지요. 그 결과 한국과 일본 너구리 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2.4%로 매우 컸어요. 마찬가지로 러시아, 중국 너구리와 일본 너구리 사이의 유전적 차이도 2% 이상으로 큰 편이었지요. 반면 한국과 러시아, 한국과 중국 너구리는 각각 0.4%, 0.6%로 차이가 적었어요. 이건 한국을 포함한 대륙 쪽 너구리와 일본 너구리 사이의 교류가 매우 힘들었다는 사실을 의미해요.

그게 어떻게 한반도가 피난처였다는 이야기가 되지?

빙하기 때 한반도 주변의 환경은 닥터 그랜마가 살고 있는 2만 년 뒤와 매우 달라요. 대륙은 빙하로 덮였지만 한반도는 그렇지 않았지요. 하지만 해수면이 낮아져, 황해는 육지였고 한반도와 일본 사이도 연결돼 있었어요.
한반도와 대륙의 너구리 사이에 유전적 차이가 적다는 이야기는, 한 때 섞여 있었거나 계속 만난다는 사실을 의미해요. 그런데 닥터 그랜마가 사는 2만 년 뒤 세계의 너구리들은 서식지는 서로 갈라져서 만나기 힘들거든요. 다시 말해 빙하로 덮여 있는 대륙에서 한반도로 피난을 온 너구리들이 빙하기가 끝난 뒤 다시 대륙으로 퍼졌다는 의미지요. 반면 일본과 한반도 사이가 연결돼 있었다고 해도 몸집이 작고 이동하는 거리도 좁은 너구리들이 두 땅 사이를 오가기는 힘들었지요. 그래서 일본 너구리는 지리적, 유전적으로 홀로 뚝 떨어져서 진화한 거랍니다.

음, 어쨌든 ‘지금’ 한반도는 얼음도 없고 시원한 상태라는 거지? 나 계속 여기서 살래.

얼음이 없어도 평균 기온이 낮아서 버티기 힘들 거예요. 지금도 벌벌 떨면서 어떻게 버티려고 하세요? 조만간 시원한 가을이 올 테니 어서 냉장고를 통해 2013년도로 돌아가요. 그럼 빙하기가 끝난 미래에 다시 만나요, 바이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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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6호 어린이과학동아 정보

  • 김은영 기자
  • 기타

    조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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