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7월, 인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바로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것이지요. 계수나무 한 그루 아래 토끼 두 마리가 떡방아를 찧고 있으리라 생각했을 만큼 멀었던 달나라. 인간이 과학의 힘으로 달에 도착한 사실은 전 세계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어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텔레비전이 있는 집마다 옹기종기 모여서 그 순간을 지켜봤답니다. 동네마다 감동의 환호가 울려 퍼졌죠. 하지만 달 착륙 같은 우주 개발은 미국과 러시아(옛 소련) 같은 강대국의 잔치일 뿐, 우리나라 같은 가난한 나라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었답니다. 다른 사람들이 부러움으로 가득한 환호를 하고 있을 무렵, 청년 채연석은 마당으로 나가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쳐다보며 다짐을 합니다.
“지금 내 눈으로는 안 보이지만 저기에 사람이 서 있구나. 언젠가는 내 손으로 저 달에 갈 수 있는 로켓을 만들어야지. 우리나라라고 못 만들 게 뭐가 있을쏘냐!”
■채연석 원장님은
1951년 충북 충주 출생
1975년 경희대 물리학과 졸업
1987년 미국 미시시피주립대 항공우주공학 박사
1988년 천문우주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1997년 한국항공우주연구소 KSR-Ⅲ 사업단장
2002년-현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

유별난‘로켓 소년’채연석
저기 도랑에 있는 녀석, 채씨네 아들 연석이 아냐?”
“물에 다 젖은 신문에 뭐가 있다고 저렇게 열심히 뒤진대?
1960년 초반 충북 청주에는 동네 아저씨들이 신기해하는 로켓에 빠진 특이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신문을 읽을 나이가 아닌 코흘리개 소년인데도 로켓 기사가 나오는 신문은 모조리 스크랩을 했어요. 도랑에 빠진 신문에서도 로켓 기사를 찾을 정도였지요. 어릴 때부터 기계를 다루고 뭔가를 만드는 데 푹 빠져 있었던 소년 채연석에게‘로켓’은 정말 흥미진진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이미 자전거를 분해하고 다시 완벽하게 조립할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었던 그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로켓에 대한 공부를 합니다. 용돈이 생기면 로켓에 관한 책을 몽땅 사는 바람에 정작 참고서나 문제집은 못 살 정도로 말이죠. 그래서 언제나 우등생과는 먼 성적을 자랑(?)했답니다.
고등학교에 가선 급기야 로켓 클럽을 만듭니다. 그의 열정에 감복한 친구들도 많이 참여해서‘화룡 1호’라는 그 이름도 구수한 글라이더용 로켓도 만들었지요. 하지만 그 로켓 때문에 커다란 사고가 터지고 맙니다.

고막이 터져도 로켓 연구는 계속된다
몇 달에 걸쳐 정성껏 만든 그 로켓을 날리던 날, 실험 장소인 청주의 무심천은 무심하다 못해 무참했습니다. 로켓 엔진의 화약이 터지는 사고가 난 것 이지요. 폭발한 화약은 그의 오른쪽 고막을 찢고 왼쪽 고막에는 5㎜나 되는 구멍을 뚫어 버렸답니다.
그 끔찍한 사고 이후 학교에선 클럽 활동을 금지 시키고 부모님 역시 로켓에는 손도 못 대게 했지만 그는 로켓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답니다. 오히려 이런 결심을 했어요.
로켓 때문에 고막을 잃어버렸지만 그 고막을 되찾는 일은 내 손으로 완전한 로켓을 만드는 것뿐이다.
이런 당돌한(?) 결심은 더욱 더 그를 로켓에 빠지게 만들어서 대학 시절엔 교수님이 출석을 부를 때 이름 대신‘로케트’라고 그를 부를 정도였답니다. 대학 진학 이후 미국 유학을 가기까지 청년 채연석은 우리나라의 옛 로켓들을 연구하는 데 몰두합니다. 사실 우리 옛 선조들의 로켓 기술은 놀라운 것이었거든요.
그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화살을 장착한 로켓인 신기전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 내고 1993년 복원까지 하게 됩니다. 우주 개발 역사에 우리나라의 역사도 당당히 한몫을 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었죠.

꿈은 이루어진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미시시피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학박사 학위를 따고 국내에 돌아온 채연석 원장님은 지금의 항공우주연구원의 전신인 천문우주과학연구소에 합류해 로켓 개발에 뛰어 듭니다. 1990년대 초 일찌감치 액체 연료의 중요성을 깨닫고 액체 로켓 연구에 혼신의 힘을 다 기울였어요. 고체 연료는 일단 불이 붙으면 연료 소모량을 조절할 수 없는 반면, 액체 연료는 분사량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 미래의 로켓 연구에 중요하다는 점을 알아차린 것이지요.
그러나 어려움이 많았답니다. 국내에선 고체로켓에 대한 연구만 있었고, 액체 연료 로켓 기술은 선진국들이 국가 기밀을 핑계삼아 절대 가르쳐 주지 않았던 거죠. 하지만 원장님은 어릴 때 고막을 다치고도 꺾지 않았던 소신을 포기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연구를 합니다. 결국 195년에 액체 연료 로켓의 엔진에 대한 실험에 성공하고 마침내 2002년 11월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액체 연료 방식의 첫 국산 과학 로켓인 KSR-Ⅲ를 성공적으로 발사합니다. KSR-Ⅲ의 성공적 발사는 100kg 급의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는 우주발사체 KSLV-1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우리가 개발한 국산 로켓 KSLV-1으로 국산 위성을 쏘아 올리면 월드컵 4강 신화보다 더 널리 한국을 알릴 수 있습니다. 우리도 본격적으로 우주 개발에 뛰어들게 되는 것이죠.”
어린 시절부터 가진 꿈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실현해 가고 있는 채연석 원장님. 마침내 그 꿈 을 로켓에 담아 우주로 쏘아 올리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내 눈으로는 안 보이지만 저기에 사람이 서 있구나. 언젠가는 내 손으로 저 달에 갈 수 있는 로켓을 만들어야지. 우리나라라고 못 만들 게 뭐가 있을쏘냐!”
■채연석 원장님은
1951년 충북 충주 출생
1975년 경희대 물리학과 졸업
1987년 미국 미시시피주립대 항공우주공학 박사
1988년 천문우주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1997년 한국항공우주연구소 KSR-Ⅲ 사업단장
2002년-현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

저기 도랑에 있는 녀석, 채씨네 아들 연석이 아냐?”
“물에 다 젖은 신문에 뭐가 있다고 저렇게 열심히 뒤진대?
1960년 초반 충북 청주에는 동네 아저씨들이 신기해하는 로켓에 빠진 특이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신문을 읽을 나이가 아닌 코흘리개 소년인데도 로켓 기사가 나오는 신문은 모조리 스크랩을 했어요. 도랑에 빠진 신문에서도 로켓 기사를 찾을 정도였지요. 어릴 때부터 기계를 다루고 뭔가를 만드는 데 푹 빠져 있었던 소년 채연석에게‘로켓’은 정말 흥미진진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이미 자전거를 분해하고 다시 완벽하게 조립할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었던 그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로켓에 대한 공부를 합니다. 용돈이 생기면 로켓에 관한 책을 몽땅 사는 바람에 정작 참고서나 문제집은 못 살 정도로 말이죠. 그래서 언제나 우등생과는 먼 성적을 자랑(?)했답니다.
고등학교에 가선 급기야 로켓 클럽을 만듭니다. 그의 열정에 감복한 친구들도 많이 참여해서‘화룡 1호’라는 그 이름도 구수한 글라이더용 로켓도 만들었지요. 하지만 그 로켓 때문에 커다란 사고가 터지고 맙니다.

몇 달에 걸쳐 정성껏 만든 그 로켓을 날리던 날, 실험 장소인 청주의 무심천은 무심하다 못해 무참했습니다. 로켓 엔진의 화약이 터지는 사고가 난 것 이지요. 폭발한 화약은 그의 오른쪽 고막을 찢고 왼쪽 고막에는 5㎜나 되는 구멍을 뚫어 버렸답니다.
그 끔찍한 사고 이후 학교에선 클럽 활동을 금지 시키고 부모님 역시 로켓에는 손도 못 대게 했지만 그는 로켓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답니다. 오히려 이런 결심을 했어요.
로켓 때문에 고막을 잃어버렸지만 그 고막을 되찾는 일은 내 손으로 완전한 로켓을 만드는 것뿐이다.
이런 당돌한(?) 결심은 더욱 더 그를 로켓에 빠지게 만들어서 대학 시절엔 교수님이 출석을 부를 때 이름 대신‘로케트’라고 그를 부를 정도였답니다. 대학 진학 이후 미국 유학을 가기까지 청년 채연석은 우리나라의 옛 로켓들을 연구하는 데 몰두합니다. 사실 우리 옛 선조들의 로켓 기술은 놀라운 것이었거든요.
그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화살을 장착한 로켓인 신기전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 내고 1993년 복원까지 하게 됩니다. 우주 개발 역사에 우리나라의 역사도 당당히 한몫을 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었죠.

꿈은 이루어진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미시시피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학박사 학위를 따고 국내에 돌아온 채연석 원장님은 지금의 항공우주연구원의 전신인 천문우주과학연구소에 합류해 로켓 개발에 뛰어 듭니다. 1990년대 초 일찌감치 액체 연료의 중요성을 깨닫고 액체 로켓 연구에 혼신의 힘을 다 기울였어요. 고체 연료는 일단 불이 붙으면 연료 소모량을 조절할 수 없는 반면, 액체 연료는 분사량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 미래의 로켓 연구에 중요하다는 점을 알아차린 것이지요.
그러나 어려움이 많았답니다. 국내에선 고체로켓에 대한 연구만 있었고, 액체 연료 로켓 기술은 선진국들이 국가 기밀을 핑계삼아 절대 가르쳐 주지 않았던 거죠. 하지만 원장님은 어릴 때 고막을 다치고도 꺾지 않았던 소신을 포기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연구를 합니다. 결국 195년에 액체 연료 로켓의 엔진에 대한 실험에 성공하고 마침내 2002년 11월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액체 연료 방식의 첫 국산 과학 로켓인 KSR-Ⅲ를 성공적으로 발사합니다. KSR-Ⅲ의 성공적 발사는 100kg 급의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는 우주발사체 KSLV-1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우리가 개발한 국산 로켓 KSLV-1으로 국산 위성을 쏘아 올리면 월드컵 4강 신화보다 더 널리 한국을 알릴 수 있습니다. 우리도 본격적으로 우주 개발에 뛰어들게 되는 것이죠.”
어린 시절부터 가진 꿈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실현해 가고 있는 채연석 원장님. 마침내 그 꿈 을 로켓에 담아 우주로 쏘아 올리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