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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이론

  • Epilogue. 상대성이론 가지고 놀기 ‘슈바르츠실트의 해’ 또는 ‘중력을 받아 완전히 수축한 천체’ 믿기 어렵겠지만 이 말들은 1967년 전까지 블랙홀의 공식이름이었다. 1915년 처음 발견된 블랙홀은 50년이 넘게 저토록 복잡한 이름으로 불렸다. 존 아치볼드 휠러는 “이름을 열 번쯤 부르고 나면 더 나은 이름을 절실히 찾게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듣는 사람도 지쳤는지, 휠러의 대중강연을 듣던 한 참가자가 그에게 제안을 한다. “그냥 블랙홀이라고 부릅시다.” 그 이후로 우리는 입에 착착 붙는 블랙홀이라는 이름을 유용하게 쓰고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어! 저게 슈바르츠실트의 해구나”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웜홀도 마찬가지다. 원래 이름은 ‘아인슈타인-로젠 다리’였다. 아인슈타인과 로젠이 1935년...
  • PART6. 일반상대성이론 뒤집히나 100년 동안 세상을 바꾸고 과학동아가 특집까지 다룬 이론이 혹시 틀렸다는 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일반상대론을 검증하려는 시도는 단추 크기(수mm)에서 태양계 크기(수십 억 km) 수준까지만 이뤄졌다. 이 정도 세계에서 아인슈타인이 틀렸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 그런데 태양계보다 훨씬 더 큰 우주에서는 상대론이 강한 도전을 받고 있다. 21세기로 넘어온 우주의 수수께끼,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우주에는 암흑물질(우주의 23%)과 암흑에너지(우주의 72%)가 다량 포함돼 있다. 암흑물질은 중력을 더 무겁게 보이게 하며, 암흑에너지는 반대로 중력을 더 가볍게 보이게 만든다.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상대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발견하자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도입했지만 혹시 우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게 아닐까. 과거 수성의...
  • 일반상대성이론 100 1915년 11월 25일, 36세의 젊은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다. 중력과 가속도의 효과가 같고, 질량을 가진 물체가 시공간을 휘게 만든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3쪽짜리 짧은 논문이었지만, 곧 20세기 과학혁명을 불러일으키는 도화선이 된다. 빅뱅부터 가속팽창하는 우주, 블랙홀, 시간여행, 중력파 등 우주에 대한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는 변화가 시작된다. 탄생 100주년을 맞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무대 위로 모셨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일반상대성이론 100 INTRO. 상대성이론 vs 양자역학 PART1. 일반상대성이론 낳은 ‘기적의 10년’ PART2. 상대성이론 이해하기 PART3. 우주를 뒤바꾼 일반상대성이론 PART4. 일반상대성이론 완성한 집단지성의 힘 INTERVIEW. “21세기는 일반상대성이론의 시대&rdqu...
  • INTRO. 상대성이론 vs 양자역학 빅2의 치열한 1위 싸움 투표 초반부터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치열한 1위 다툼이 시작됐다. 20세기 과학사를 뒤흔든 ‘빅 2’다웠다. 두 이론이 탄생하기 전까지 200년 넘게 세상을 지배했던 뉴턴역학이 그 뒤를 바짝 쫓았다. 일반인과 물리학자 집단에서 투표결과가 엇갈렸다. 일반인에서는 상대성이론이 압도적인 표(82%)를 얻은 반면, 물리학자에서는 양자역학이 가장 많은 표(83%)를 받았다. 결과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아인슈타인의 대중성 vs 양자역학의 영향력’이다.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는 “시공간의 근본을 뒤흔든 상대론도 중요하지만, 20세기 전 학문분야에 실질적인 영향을 준것은 양자역학”이라고 해석했다. 1위는 달랐지만, 일반인과 물리학자 집단의 전체 투표결과는 비슷했다. 국형태 가천대 나노물리학과 교수는 &ldq...
  • PART1. 일반상대성이론 낳은 ‘기적의 10년’ 1905년 가을, 위대한 발견 후 다시 일상으로 아인슈타인은 1905년 논문 세 편을 연달아 발표했다. ‘광양자 가설(3월)’ ‘브라운 운동 설명(5월)’ ‘특수상대성이론(6월)’ 모두 놀라운 논문이었다. 특히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을 밝힌 특수상대성이론은 물리학계를 발칵 뒤흔들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대학이나 연구소에 자리 잡지 못했기에 1908년까지 스위스 베른의 특허청에서 하루 8시간씩 근무해야 했다. 책상 둘째 서랍의 ‘이론물리학’ 따로 실험실이 없었던 아인슈타인은 특허청에서 일을 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머릿속으로 사고실험(그는 독일어로 ‘게당켄 엑스페리멘트’라고 불렀다)을 했다. 그의 책상 둘째 서랍에는 늘 메모와 계산 기록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