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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이론

  • 새로 밝혀진 '아인슈타인의 사생활'"상대성이론 창안 1등공신은 부인 밀레바" 과학의 새 지평을 연 아인슈타인 박사. 모든 과학자의 우상이며 20세기의 대표적인 위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도 두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지는 못했다. 사적으로는 평균이하(?)였던 아인슈타인의 삶이 집요한 추적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공개됐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인슈타인의 사생활' (동아일보사 출판부 간)이라는 책에 실려 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 평화운동과 인권운동에 헌신한 세속화 시대의 성자! 이것이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초상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여 과학의 기초를 뒤흔들었던 1905년 당시 아인슈타인의 나이는 25세였다. 그러나 그를 상징하는 전형적인 모습은 그로부터 반세기 이후의 얼굴이다. 너무나 자주 등장하여 달리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모습으로, 헝...
  • 상대성이론은 왜 노벨상 못받았나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는 매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추천 의뢰서에 대한 답장을 받아서 5인의 스웨덴 아카데미 회원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연구 검토 후에 다수결로 심사위원회의 추천자를 정한다. 그런 다음 아카데미 물리학 분과의 투표와 전체 아카데미의 투표를 거치는데, 이 3차례의 투표결과가 꼭 일치할 필요는 없다. 단골 후보 아인슈타인 최종 수상자는 전체 아카데미의 투표로 결정된다. 따라서 수상자 선정에는 스웨덴 학계의 분위기가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노벨 자신이 유언에서 '발명', '발견', '개선'을 강조하기도 했지만 20세기 초 스웨덴 물리학계는 실험을 강조했기 때문에 한동안 이론 물리학의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아인슈타인은 1910년부터 1922년까지 1911년과 1915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노벨상...
  • 진공에서보다 빠른 빛, 상대성이론에 어긋날까 ?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에서 어떤 것도 진공에서의 빛보다 빠를 수 없다고 얘기했다. 이는 물리학의 대표적인 불문율에 해당한다. 그런데 2000년 7월 이 불문율에 도전장을 던지는 듯한 연구가 네이처에 소개됐다. 미국 프린스턴에 위치한 NEC 연구소의 리준 왕 박사 연구팀이 진공에서보다 빠른 빛을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이제 틀린 것일까. 사실 느린 빛 연구와 진공에서보다 빠른 빛의 연구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다. 진공에서보다 빠른 빛이라고 하면 느림보 빛과 마찬가지로 사인파가 아니라 펄스다. 두 연구 모두 원자가 공명을 일으키는 빛을 대상으로 속도를 늘리고, 줄였다. 이 빛의 영역에서 진동수에 따라 물질의 굴절률이 급격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점은 이 변화값, 진동수에 대한 물질의 굴절률의 미분값 부호가 서...
  • 빛도 공간에 따라 휜다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1905년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 광양자가설, 브라운운동가설 등 3편의 논문을 발표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덕분에 궁색했던 그의 생활도 폈다. 1902년 스위스 베른의 연방특허국에 들어갈 때만 해도 3급 견습에다 연봉은 3천8백 프랑에 불과했다. 그런데 1906년 그는 2급 전문관으로 승진했고 연봉도 4천5백 프랑으로 올랐다. 더욱 아인슈타인을 기쁘게 했던 것은 그토록 바라던 대학에 자리가 생긴 것이다. 1908년 독일 물리학계의 거물이었던 막스 플랑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베를린대학에서 강사생활을 했으며, 1909년에는 특허국 생활을 청산하고 취리히공과대학 교수가 됐다. 이후 세계적인 과학자의 자격으로 1911년에는 제1회 솔베이회의에 참석했다. 1913년에는 프러시아 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뽑혔으며, 같은 해 베를린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그의 마음엔 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