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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이론

  • 멋모르고 상대성이론 동경, 미분 기하학 공부 광복 직후 서울 청량리에 있던 경성대학(현 서울대) 도서관 서고에서의 일이다. 지금은 북녘의 대학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는, 옛 중학교 선배 유충호씨가 불쑥 말을 건네온 적이 있다. "뭣을 전공하겠소?" "글쎄요, 상대성 이론을 공부하고 싶지만…." "그러면 미분기하학을 먼저 공부하시오. 순서가 있지 않소." 50년 전의 일이다. 나는 그 뒤 미분기하학의 방법에 눈을 뜨고 지금까지 긴 외길을 걸어왔다. 다만 이 외길은 어릴 때 멋모르고 동경했던 상대론에서는 벗어나 다양체이론으로 바뀐 것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리이만기하학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종류의 다양체론이다. 가지가지 가능한 공간의 상을 다양체의 구조와 이에 대응하는 표현과 형식으로 맛보는 즐거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말들은 모두 매우 추상적인...
  • 새로 밝혀진 '아인슈타인의 사생활'"상대성이론 창안 1등공신은 부인 밀레바" 과학의 새 지평을 연 아인슈타인 박사. 모든 과학자의 우상이며 20세기의 대표적인 위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도 두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지는 못했다. 사적으로는 평균이하(?)였던 아인슈타인의 삶이 집요한 추적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공개됐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인슈타인의 사생활' (동아일보사 출판부 간)이라는 책에 실려 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 평화운동과 인권운동에 헌신한 세속화 시대의 성자! 이것이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초상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여 과학의 기초를 뒤흔들었던 1905년 당시 아인슈타인의 나이는 25세였다. 그러나 그를 상징하는 전형적인 모습은 그로부터 반세기 이후의 얼굴이다. 너무나 자주 등장하여 달리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모습으로, 헝...
  • 상대성이론은 왜 노벨상 못받았나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는 매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추천 의뢰서에 대한 답장을 받아서 5인의 스웨덴 아카데미 회원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연구 검토 후에 다수결로 심사위원회의 추천자를 정한다. 그런 다음 아카데미 물리학 분과의 투표와 전체 아카데미의 투표를 거치는데, 이 3차례의 투표결과가 꼭 일치할 필요는 없다. 단골 후보 아인슈타인 최종 수상자는 전체 아카데미의 투표로 결정된다. 따라서 수상자 선정에는 스웨덴 학계의 분위기가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노벨 자신이 유언에서 '발명', '발견', '개선'을 강조하기도 했지만 20세기 초 스웨덴 물리학계는 실험을 강조했기 때문에 한동안 이론 물리학의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아인슈타인은 1910년부터 1922년까지 1911년과 1915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노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