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물리학상> 빅뱅 이후 우주의 설계도를 그리다

 

현대 우주론을 뒷받침하는 빅뱅(Big Bang·대폭발)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특이점에서 폭발적으로 생성됐다. 이때 발생한 빛은 너무 높은 온도와 밀도로 인해 갇혀 있었다. 태초에 어두웠던 우주를 밝힌 빛은 빛 분리시기(또는 재결합시기)라고 부르는 빅뱅 후 38만 년 뒤, 우주 온도가 3000K(절대온도) 정도로 낮아지면서 퍼져나갔다.

 

편집자 주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우주론과 행성 연구 등 두 분야의 연구자가 공동으로 수상했다. 이에 따라 해설 기사도 두 분야로 나눠 싣는다.

 

‘태초의 빛’을
설명해 내다

 

천문학계에서는 빅뱅 후 38만 년 뒤 분리돼 온 우주에 깔린 태초의 빛을 우주배경복사(CMB)라고 부른다. 우주론과 천체생성 분야의 거의 모든 이론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친 제임스 피블스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의 대표적인 학문적 업적 역시 1960년대에 진행했던 우주배경복사에 관한 이론 연구다. 


1960년대 초 당시 밥 디키 프린스턴대 물리학과 교수는 빅뱅에서 출발한 우주의 진화를 검증하려면 흑체복사의 스펙트럼을 지닌 우주배경복사가 우주에 고르게 퍼져 있는지 관측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 박사과정 연구원이었던 피블스에게 이런 빛이 관측될 경우와 안 될 경우에 대한 우주론적 의미를 연구하게 했다. 


한편 그 시기 프린스턴대에서 불과 5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벨연구소의 아르노 펜지아스와 로버트 윌슨 박사(이들은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한 공로로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는 전파망원경에 이해할 수 없는 큰 잡음이 꾸준히 들어와서 고심하고 있었다. 


피블스 연구원을 포함한 디키 교수팀은 이들과 잡음의 정체를 살폈고, 결국 이 잡음은 지구 내부가 아닌 외계에서 온 빛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피블스 연구원은 이 빛이 우주의 전파원이나 누적된 별빛의 흔적이 아니며 우주흑체복사로 설명해야 한다는 내용을 이론적으로 정리해 1965년 미국천문학회가 발행하는 ‘천체물리학저널(Astrophysical Journal)’ 에 발표했다. doi: 10.1086/148306 같은 호에는 7cm 파장에서 절대온도가 3.5±1K인 빛이 발견됐다는 펜지아스와 윌슨의 관측 결과를 다룬 논문도 수록됐다. 


이로써 이 빛이 파장에 무관하게 온도가 같은 흑체복사임이 증명됐다. 우주가 빅뱅 이후 급속히 팽창해 현재와 같은 차갑고 밀도가 낮은 우주로 진화해 왔다는 이론이 성립된 것이다. 


피블스 연구원은 1966년 빅뱅 직후 1초부터 3분까지 우주에서 일어난 핵 합성 과정을 연구해 원소의 양을 정확히 계산했다. 또 1970년에는 빛 분리시기에 벌어진 빛과 물질 간의 상호작용을 분석해 우주배경복사의 온도 요동을 이론적으로 정교하게 계산했다. 그의 계산값은 1992년 발견된 온도 요동으로 옳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암흑물질은 
차가워

 

그의 업적은 하나 더 있다. 바로 ‘계층적 구조생성론(Hierar-chical Structure Formation)’이라는 이론이다. 작은 천체들이 먼저 만들어진 다음 그들이 중력에 의해 결합해 큰 천체가 생성되고, 큰 천체들이 다시 모여 은하가 되는 식으로 점차 우주의 거대 구조가 형성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빛 분리시기 이후 처음으로 붕괴해서 생성되는 천체는 구상성단처럼 질량이 태양의 수십만 배 정도 다. 이런 천체들이 결합해 작은 은하가 만들어졌고, 이들이 다시 결합해 무거운 은하가 생성됐다. 은하들은 서로 모여 은하군과 은하단을 이뤘고, 결국 현재와 같은 우주 거대 구조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의 계층적 구조생성론이 성립하려면 우주의 물질에는 차가운 암흑물질이 있어야 한다. 암흑물질은 빛을 내지 않아 관측할 수는 없지만, 인력(끌어당기는 힘)을 갖고 있어 그로부터 존재를 추정한다. 차가운 암흑물질은 물질의 운동속도가 빛의 속도에 비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린 암흑물질이며 압력이 없다. 


1960년대에는 그의 이론과 반대되는 이론도 존재했다. 옛 소련의 천문학자 야코브 젤도비치 학파가 주창한 ‘팬케이크 구조생성론(Pancake Scenario)’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먼 과거에 질량이 태양의 1000조 배 정도 되는 초은하단들이 먼저 생성됐고, 이들이 곳곳에서 쪼개지며 붕괴해서 더 작은 천체들이 만들어졌다. 이를 위해서는 운동속도가 빛과 같고 높은 압력을 지닌 뜨거운 암흑물질이 존재해야 한다. 


수십 년간 은하 공간분포 연구를 통해 현재는 피블스 명예교수의 주장대로 우주가 계층적으로 형성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는 우주론 연구자들에게 바이블처럼 내려오는 ‘물리 우주론(Physical Cosmology·1971년)’ ‘우주 거대구조론(The Large-Scale Structure of the Universe·1980년)’ ‘물리 우주론의 원리(Principles of Physical Cosmology·1993년)’ 등도 집필했다. 


그는 10월 8일 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직후 프린스턴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후배 연구자들에게 “자연현상에 대한 매혹과 그에 관한 연구의 즐거움을 토대로 나아가라”며 “남과 비교하지 말고 스스로 평가하라”고 조언했다. 

 

▲ PDF에서 고화질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진호기자 기자
  • 도움

    박창범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

🎓️ 진로 추천

  • 물리학
  • 천문학
  • 기상학·대기과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