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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 물로 만드는 친환경 반도체

에너지공학전공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친환경적인 용매는 물입니다. 이 물로 반도체를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신문처럼 둘둘 말리는 디스플레이. 차세대 디스플레이가 이토록 매력적인 문구로 표현되기 시작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딱딱한 무기 반도체는 둘둘 말기가 쉽지 않고, 유기 반도체 제작에는 유독성 용매가 쓰인다. 방법이 없을까. 정대성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에너지공학전공 교수는 자유자재로 휘어지는 유기 반도체를 물로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계면활성제로 독성 down 친환경 up


유기 반도체의 장점은 저렴한 가격이다. 하지만 대표적인 유기 반도체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제작한 디스플레이의 가격은 비싸다. 이런 불일치는 현재 유기 반도체 제작 공정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탄소로 구성된 유기 반도체 재료는 탄소가 이중, 삼중으로 단단하게 결합한 불포화탄소의 형태를 띤다. 결합이 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쉽게 녹지 않는다는 의미다. 유기 반도체 재료를 용액 형태로 만들어야 3D 프린팅이나 롤투롤(roll to roll) 연속공정 등 대량 생산에 적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재는 고온 공정으로 유기 반도체 재료를 녹이거나 유기 용매로 녹이는 방법을 쓰고 있다. 문제는 고온 공정을 거치면 제조비용이 높아지고, 유기 용매를 쓸 경우에는 독성을 띤다는 점이다.

 

정 교수는 “유기 용매의 성분인 염소(Cl), 불소(F) 등 할로겐 원소는 생식계 교란, 갑상선 장애 등을 일으킬 수 있어 인체에 유해한 성분으로 분류된다”며 “체내에 오래 머무를 뿐만 아니라 전자기기의 부식을 유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비누에 사용하는 계면활성제에서 해법을 찾았다. 계면활성제는 친수성 물질과 소수성 물질이 공존한다. 물에 잘 씻기지 않는 오염물질을 소수성 물질이 감싸 닦아내듯이, 계면활성제를 투입해 소수성인 고분자 재료를 물에 녹이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과정을 이용해 일종의 ‘반도체 잉크’를 만들었다. 반도체 잉크를 바르고 인쇄하면 태양전지, 트랜지스터 등 반도체 소자를 제작할 수 있다.

 

다음 단계는 반도체의 성능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계면활성제를 다시 제거하는 일이다. 정 교수팀은 2015년 세계 최초로 에탄올을 이용해 유기 반도체 제작에 사용한 계면활성제를 제거하는 데 성공하고,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에 발표했다.

 

지난해 11월에는 p형, n형, 양극형 등 현존하는 모든 형태의 유기 반도체를 물로 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에너지 및 환경과학’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두께 100nm, 초박형 유기 태양전지


정 교수가 이끄는 ‘친환경 에너지 소자 연구실’은 친환경 반도체 제작은 물론, 이 반도체의 활용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친환경 반도체로 제작한 초박형 유기 태양전지가 대표적이다.

 

유기 반도체는 현재 상용화된 실리콘 기반 무기 반도체보다 흡광계수(빛을 흡수하는 정도)가 10배가량 높다. 이는 부피가 동일할 때 태양광 흡수량이 10배 많다는 뜻이다. 가령 실리콘 태양광 전지의 두께가 3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 분의 1m)라면, 유기 반도체는 10분의 1 수준인 300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면 충분하다. 현재 정 교수팀은 두께가 100nm인초박형유기태양전지를개발했다.

 

두께가 얇은 만큼 쓰임새도 다양하다. 건물 외벽을 태양전지로 입힐 때 태양전지의 두께가 두꺼울수록 표면 부착력이 떨어진다. 초박형 태양전지는 표면에 요철이 있어도 들뜨지않고 잘 붙는다.

 

초고화질(UHD) TV용 고성능 이미지 센서 제작에도 활용할 수 있다. 무기 반도체는 자연광을 통째로 흡수하는 만큼 카메라에 컬러 필터를 별도로 장착해 RGB(적·녹·청) 색상을 구분해야 한다. 하지만 유기 반도체는 파장에 따라 RGB를 각각 흡수하는 방식이다. 카메라 렌즈가 얇아져 신호 처리가 빨라지는 것은 물론, 실제 상황을 그대로 옮긴 것 같은 색감을 구현할 수 있다.

 

정 교수는 “유기 반도체는 자율주행자동차, 드론 등 무인 이동체가 더 정밀한 눈을 갖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존의 전자기기가 유기 반도체로 세대교체가 이뤄진다면, 환경과 인체에 치명적인 유기 용매의 사용을 배제하는 방식이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 : 대구=권예슬 기자
사진 : 이서연

과학동아 2018년 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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