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질문
남자는 하나, 여자는 둘?
세포 수준에서 남성과 여성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성염색체입니다. 남성은 XY, 여성은 XX를 갖고 있는데요.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X염색체를 하나 더 갖고 있기 때문에, X염색체에 있는 유전자가 여성에게서 두 배로 발현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X염색체 불균형을 해결하는 방법은 개체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의 경우 여성세포의 X염색체 중 하나를 비활성화해 유전자의 발현 정도를 남성세포와 같은 수준으로 만듭니다. 현미경으로 자세히 보면 비활성화된 한 개의 X염색체가 실타래처럼 뭉쳐져 세포핵 변두리에 위치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꽁꽁 묶인 X염색체의 비밀
염색체의 일부가 아닌 전체가, 마치 전등불이 꺼지듯 완전히 비활성화되는 이런 현상은 지금도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분야입니다. X염색체가 비활성화되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 인자들이 관여하지만 특히 ‘Xist’라는 긴 비암호화 RNA(long noncoding RNA)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많은 RNA는 DNA가 단백질을 만들 때 유전 정보를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Xist는 특이하게도 단백질을 만들지 않고 RNA 그 자체로 일합니다. 실제로 여자 배아의 발달 초기를 보면, 두 X염색체 중 무작위로 선택된 하나의 염색체에서 Xist RNA가 만들어집니다(위 사진).
Xist는 X염색체가 유전자를 발현하지 못하도록 꽁꽁 묶을 수 있는 여러 인자들을 X염색체로 데려오고, X염색체를 세포핵 변두리로 옮기는 역할도 합니다(doi:10.1126/science.aae0047). 이로써 여성세포도 남성세포처럼 유전자를 발현하는 X염색체를 하나만 갖게 되는 겁니다.
염색체 하나를 통째로 비활성화시키는 Xist의 놀라운 능력을 본 과학자들은 이것을 어떻게 의학에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2013년에 나온 미국 매사추세츠대 의대 등 공동연구팀의 다운증후군 연구입니다. 다운증후군은 정상적으로 두 개 존재해야 하는 21번 염색체가 세 개 존재해서 발생합니다. 연구팀은 세 개의 21번 염색체 중 하나에 Xist를 삽입하면 염색체가 비활성화되면서 21번 염색체가 마치 두 개인 것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doi:10.1038/nature12394). 아직 개체 수준에서의 실험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세포에서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을 의학에 접목한 과학자들의 상상력과 노력이 대단합니다.
두 번째 질문
튜브가 자라 뇌와 척수로?
수정된 지 약 한 달이 지난 배아를 들여다보면 기다란 튜브 하나가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훗날 머리를 형성할 부분에서 엉덩이까지 길게 이어져 있죠. 예상한 분들도 있겠지만 이 튜브는 우리가 생각하고 움직이고 느끼는 데에 아주 중요한 중추 신경계로 발달합니다. 엄마가 미처 임신 사실을 알기도 전에, 배아가 뇌와 척수를 만들 준비를 해놓은 셈이죠.
수정 후 3주째 정도가 되면 배아는 세 겹의 세포층을 형성해 우리 몸의 모든 세포를 만들 준비를 합니다. 가장 위쪽에 위치한 세포층인 외배엽은 피부세포나 신경세포, 머리카락 등으로 분화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조금 독특합니다. 수정 후 4주째가 되면 외배엽은 U자 모양으로 휘어지기 시작합니다(아래 그림). 외배엽의 중간에 있는 세포들이 아래로 당겨지고 바깥쪽 세포들이 가운데로 움직이기 때문인데요. 아래쪽으로 내려간 부분을 ‘신경고랑(neural groove)’이라고 하고, 위쪽의 세포들을 ‘신경주름(neural fold)’이라고 합니다. 외배엽 세포들이 분열을 거듭하면서 신경고랑은 점점 깊어지고, 신경주름 부분은 점점 봉긋하게 솟아오릅니다. 이 과정이 지속되면 U자 모양의 외배엽이 빨대와 같은 관모양이 됩니다. 관은 이내 외배엽에서 떨어져 나와 신경관으로 발달하는데요. 이것이 결국 뇌와 척수가 됩니다.

신경관 발달… 엽산 섭취가 중요?
U자 모양의 신경고랑이 동그란 관의 형태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신경주름 세포들 사이에서 벨크로(찍찍이) 또는 지퍼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아주 중요합니다. 지퍼로 옷을 여미는 것처럼 단백질로 신경관의 벌어진 부분을 닫기 때문입니다. 신경주름의 양쪽에 서로 다른 종류의 단백질을 발현시키면 신경관이 닫히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신경관이 닫히는 시기는 배아가 급격하게 자라는 시기와 겹칩니다. 따라서 신경주름이 붙는 시기를 놓치면 배아는 신경관이 열린 채 발달을 계속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를 신경관 결손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척추갈림증(이분척추)인데 선천적으로 신경관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신경손상이 일어나고, 심한 경우 신경마비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신경관 결손이 왜 일어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유전에 의한 것인지, 환경의 영향인지도 확실하지 않죠. 그래도 다행히 미국의 경우 1998년 이후 신경관 결손 발병률이 이전보다 20%나 감소했는데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가임여성에게 하루에 0.4mg의 엽산을 섭취할 것을 강력하게 추천하면서부터입니다. 엽산이 어떻게 신경관 결손을 예방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공공의료의 성공사례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최영은_yc709@georgetown.edu
미국 바드대에서 생물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발생학 및 재생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외우는 과학이 아닌 질문하는 과학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과학교육에 발을 담그게 됐다. 현재 미국 조지타운대 생물학부에서 유전학, 발생학 등을 가르치며 새로운 대학 과학교육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