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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용의 자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것 같다. 처음이라고 확실히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전에도 내가 용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들은 적은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살 때인가, 세 살 때인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부싸움을 약 40분 연속으로 하시고 어머니께서 열 받아서 확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울고 있으니까, 아버지께서 나를 업어서 달래시면서, “에휴, 내가 어쩌다가 저런 용 반 인간 반인 사람이랑 결혼을 했을까”라고 혼자 중얼중얼하시며 신세 한탄을 하신 적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그 말을 알아 듣지 못할 줄 알고 무심코 중얼거린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기억이 난다. 그 말도 기억이 나고, 문득 소나기가 내리던 그날 날씨도 기억이 난다. 주위가 어두컴컴해지도록 큰 소리로 비가 내렸고, 내가 울고, 아버지께서는 중얼중얼하시던 그날의 장면은 내가 갖고 있는 거의 최초의 기억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 말을 믿지는 않았다. 정말로 내가 용의 자손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용 반 인간 반인 사람’이라는 말이 말 그대로의 뜻이 아니라 일종의 관용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반 짐승 같은 놈’과 비슷한 어감의 표현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용’이 뭔지도 잘 몰랐고 시간이 흘러 용이 뭔지 알게 된 후에는 그냥 사납고 무서운 동물의 상징으로 아버지께서 고르신 비유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있을 때는 확실히 조금 얼빵한 데가 있어서, 유난히 말을 더듬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면 말이 꼬여서 엉뚱한 말을 잘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부부싸움 중에 자기의 억울함을 따진답시고, “그건 네가 그때 그거 할 때 그 저거니까 그렇지!”라고 말하는데, 그런 말이 도대체 무슨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겠는가? 그러니, 그날 한숨을 쉬며 “용 반 인간 반”이라고 했던 것도 그 비슷한 무의미한 말이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이상한 일들을 몇 가지 발견했다. 일단 내가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에 나온 용을 보다가 생각이 나서, 아버지께, “아빠, 용 반 인간 반이 뭐야?”라고 물었을 때, 아버지께서는 지나치게 놀라셨다.
“야, 너 그 말 어디서 들었어?”
“아빠가 옛날에 그런 말 했잖아.”
“옛날? 옛날에 언제? 얼마나 옛날에? 옛날이면, 현대가 아니라는 건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아버지는 매우 허둥거리며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내가 잘못 들은 것이라고 부정하셨다. 그날 하루 종일 안절부절 못하시며 “용 같은 거에 관심 갖지 마”라는 내용을 나에게 주입해 주시려 하셨는데, 자기 전에는 이런 말씀까지 하셨다.
“만약에 혹시라도 정말로 누가 용의 자손이라고 해 봐라. - 물론 그런 게 세상에 없지만. 과학적으로 불가능하잖아. - 하여간 그래도 정말로 누가 용의 자손이라고 해도, 그래도 절대로 그렇다고 남들에게 말하면 안 돼. 그러면 신기한 동물 발견했다면서 사람들이 잡아가서 실험실에 가둬 놓고 실험한단 말이야. 우리 아기 누가 잡아 가면 아빠는 슬퍼서 어떻게 살아.”
그렇게 말하면서 몇 번 나한테 “다시는 용 그런 거 이야기하지마 알았지?”하고 몇 번 다짐을 받으시더니, 아빠가 눈물까지 글썽글썽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그날 어머니와 부부싸움에서 완전히 망하셨을 때 이상으로 불쌍해 보여서, 나는 더 묻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나서, 다섯 살 때인가 처음 바닷가로 아버지와 같이 놀러 갔을 때, 나는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내가 수영을 굉장히 잘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잠수도 굉장히 잘 했다. 물속에서 눈을 뜨는 것 역시 조금의 어려움도 없었다. 게다가 나는 어지간한 어른들만큼 물 속에서 숨을 깊게 참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몇 십 년 경력의 해녀만큼이나 숨을 잘 참으셨다.
한참 물 속에서 놀다가 나오면서, 나는 어머니의 등쪽에 이상한 모양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손톱 만한 크기였는데 자세히 보니 그 모양은 파충류의 비늘과 비슷해 보였다. 이상해서 쳐다보며 잠깐 궁리해 보니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 용의 비늘과 비슷해 보였다.
나는 아버지에게 뛰어 갔다. 아버지는 어머니나 나와는 달리 전혀 수영을 못하셔서 해변에 누워 물에서 노는 우리를 구경하다가 꾸벅꾸벅 조는 중이었다.
“아빠, 엄마 등에 이상한 거 뭐야?”
내가 묻자, 아버지는 갑자기 잠에서 번쩍 깨어났다. 그리고는 다시 그 얼간이 같은 모습으로 얼토당토 않은 말로 이리저리 말을 둘러대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답답해서 어머니께 직접 물어 보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일단 약간 흘러내린 수영복을 끌어 올려 그 비늘 모양을 감추었다. 그리고는, “이거 어릴 때 수술자국이야. 켈로이드 흉터라는 게 생겨서 모양이 좀 이상하게 된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서 두 분은 내가 다시 물 속으로 들어 갈 때, “애한테, 왜 그런 걸 보여주고 그래?” “내가 일부러 그랬어?”라며 또 물말다툼을 했는데,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것 같았다.
얼마 후, 나는 내 등에도 비슷한 비늘 같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등을 거울에 비추며 고개를 최대한 돌리면 겨우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그런 거 없다고 부정하려 했는데, 내가 전화기 카메라로 정확히 그것을 촬영해 들이밀자, 아버지는 또 횡설수설하며 둘러대려고만 했다.
“너 태어날 때, 엄마 수술하다가 잘못해서 너 등에도 칼이 스쳤어. 그래서 그때 너도 흉터가 생긴거야.”
나중에 어머니께서 나타나셔서 그렇게 설명하고 나서야, 나는 수긍하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아버지께서 곤혹스러워하셨던 모습은 분명히 정상이 아니었다.
내가 용손임을 확신한 날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소풍 날이 지나고 얼마 안 되어서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소풍 날이 되어 설레기만 하면 그날 비가 왔다.
“나는 꼭 소풍날만 되면 비 오더라.”
“야, 다들 그런 소리 해. 그거 그냥 심리적인거야.”
아버지는 아버지께 물은 것도 아닌데 굳이 그렇게 대답했다.
“심리적이 뭔데?”
“그냥 마음이 그렇게 느껴지는 거라고. 이게 과학적으로 따져 보면, 소풍 날 비가 올 때도 있고 비가 안 올 때도 있단 말이야. 그런데, 소풍 날 비가 안 오면 그냥 평범한 소풍이라서 별 기억에 안 남잖아. 그런데 소풍 날 비가 와봐, 그러면 너무 안타깝고 싫잖아. 그래서 그날 기억은 강하게 머릿속에 남는다고. 그러면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머릿속에 강하게 남은 것만 주로 기억나서 꼭 소풍날은 다 비 온 거 같다니까. 그게 다 그런 효과야. 이런 게 확증편향이라는 건데 말이야….”
그리고 나서, 아버지께서는 꿈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 같다든가, 오늘의 운세가 잘 맞는 느낌이 든다든가 하는 게 다 같은 원리라고 이야기했는데, 애초에 이해하기도 어려웠지만 지나치게 장황해지는 아버지의 태도 때문에 적당히 이해한 듯 연기해 드리고 나는 대화를 그만두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때 소풍은 장기자랑으로 연습한 춤 때문에 유난히 설렜다. 그리고 그때도 비가 왔다.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분 때문에 생긴 착각일 수도 있다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기억 났다. 그래서 나는 정말 그런지 따져 보기로 했다.
학교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지난 6년간의 소풍에 관한 공지 기록을 다 찾았다. 그리고 기상청 사이트에 들어가서, 그날 날씨를 다 찾아 내려고 했다. 2년 전보다 더 오래된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기상청에 직접 찾아가서 날씨 통계 보고서를 찾아보았다. 결과는 아버지의 패배였다. 전부 다 비가 왔다. 내가 소풍 가는 날에는 정말로 매번 꼬박꼬박 비가 온 것이 맞았다.
얼마 후 학교 수업 시간에 나는 실마리를 얻었다. 그날은 옛날에는 비가 안 올 때 용에게 기우제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고 배웠다. 용은 비를 내리게 하는 힘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조선 시대 때는 용과 호랑이가 서로 다툰다는 생각이 있어서, 용에게 비를 빌면서 호랑이 머리를 구해서 용이 산다는 물속에 던졌다고 합니다.”
그날 한 아이가 그렇게 발표했다. 쉬는 시간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문제집을 펴서 푸는 척만 하지만 실제로 풀 줄은 모르던 이상한 놈이었는데, 그날만은 그 얼토당토않은 아이의 말이 가슴을 헤집었다.
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용의 자손이고 그래서 내가 감정이 크게 흔들리면, 그때 비가 오는 것이다. 그래서 소풍 날이 되어 내가 설레는 이상한 감정에 빠지면, 그날 비가 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조선시대 사람들도 참 골치 아픈 인간들이었다. 생각해 보라. 누구 앞에 호랑이 머리를 갑자기 확 던지면 얼마나 놀라고 감정이 요동치겠는가.
나는 그제서야 아버지께서 왜 이 사실을 나에게 있는 그대로 말해주지 않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케이블TV ‘고전명작’ 시간에 ‘여고괴담 1편’을 해줘서 본 적이 있는데, 그 중에 범인이 화면 앞쪽으로 콩콩콩 튀어 나오는 장면에서 나는 기절할 만큼 놀란 적이 있었다. 그러자, 순간 아파트 옥상으로 벼락이 내려치면서 돌풍과 함께 비가 쏟아졌다. ‘게릴라성 호우’가 왔다고 그날 저녁 뉴스에도 나온 사건이었다.
그러니 만약 나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을 알면, 정부에서는 나를 붙잡아 다가 가뭄이 들 때마다 공포영화를 보여 줄 것이다. 익숙해지면 더 무서운 영화를 보여줄지도 모른다. 한국 정부에만 그렇게 이용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한국 정부는 나를 다른 나라 정부에 팔아 먹을 것이다. 나를 어디에 묶어 놓고 끝없이 감정을 헤집어 놓게 하면서, 사하라 사막을 농장으로 바꾸는 사업에 이용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나는 아버지 몰래 좀 더 내 자신에 대해 추적해 보았다. 나는 지금 어머니의 외할머니의 외할머니가 용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몇 대를 거치며 보통 사람 남자들과 엮이며 이어져 내려온 자손이 나라고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아버지 쪽 족보에서는 주욱 조상이 확인되지만, 어머니 쪽 족보는 증조 할머니 이상으로는 더 이상 아무리 찾아 봐도 기록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증조 할머니가 교회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때부터 제사를 안 지냈더니, 족보 이런 것도 제대로 관리 안 해서 그래.”
어머니는 그냥 그렇게 설명하셨지만, 나는 그것은 적당히 둘러댄 말임을 간파하고 있다. 왜냐하면 어머니나 어머니 쪽 친척 중에 교회에 관심 있는 사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증조 할머니부터 족보 관리를 안 하기 시작했다면 그 이전의 족보는 오히려 더 명확히 남아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게다가 그쪽 친척들은 다들 대중 목욕탕을 안 가는 취향을 갖고 있는데, 나는 그것이 몸에 난 용 비늘을 숨기기 위함이라고 의심했다.
그러니, 아버지께서 예전에 “용 반 인간 반”이라고 푸념하셨던 것도 정확한 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어머니에게는 그보다 용의 유전자가 훨씬 적다. 나는 더욱 적다. 만약 내가 정말로 절반이 용의 자식이었다면, 나는 용으로 변신해서 날아갈 수도 있고, 물 속에서도 얼마든지 머물 수 있어서 용궁까지도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이 흔들릴 때마다 비 바람이나 천둥 번개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자유롭게 비와 번개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기 때문에, 가끔 감정이 이상해지면 비가 오고, 남들보다 수영을 조금 잘 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라고 나는 짐작하고 있다.
“아빠, 그런데 정말 옛날에는 용이 있었을까?”
“용이 세상에 어딨어. 그리고 너, 용 이야기 이런 거 하지 말라고 했잖아.”
“아니, 이거 폰 게임인데, 여기서 드래곤을 잡아야 되는데 말이야. 이거 하다 보니까 생각이 나서.”
내가 그렇게 핑계를 대자, 아버지는 흥분하셨다.
“무슨, 용 나오는 게임, 이런 거 왜 해? 용 나오는 게임 하지 마.”
“용 안 나오는 게임이 어딨어. 웬만한 게임에는 다 용 나오잖아.”
“팩맨. 블럭깨기 이런 거 해. 그런 게임에 용 안 나오잖아.”
“팩맨블럭깨기가 뭔데?”
아버지는 팩맨블럭깨기가 아니라 팩맨, 블럭깨기 두 가지 게임이라면서 그 둘을 보여 주셨다.
“이거 너무 단순하잖아. 진짜 쫄하다.”
“쪼라다가 뭐야?”
“쫄해. 쫄해.”
“좀 복잡한 거 하고 싶으면, 제비우스하던가. 왜 용 나오는 게임을 하려고 하냐. 욕 나오게.”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제비우스 게임을 보여 주시다가 문득 어쩌다 보니 본인이 빠져 들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용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나마 최대한 과학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런 거 아닐까. 사실 용이란 게 외계인인 거야. 약간 파충류 모양의 외계인. 그런데 어떻게 해서 지구에 정착해서 살기로 한 거지. 그래서 자기들 우주선은 바다 속 깊숙한 곳에 숨겨 뒀어. 그게 용궁이지.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살기 위해서, 인간과 같이 몸을 개량한 거야. 뭐 유전자 조작 이런 것도 좀 하고. 그래서 용의 자손들은 용 반, 사람 반 그런 거 아닐까.”
한참 제비우스에 심취해 있던 아버지께서는 내 말을 듣고 갑자기 나를 쳐다 보았다. 게임 하던 것을 중단해서 화면 속을 날아가던 우주선이 그대로 폭파되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용궁이 바다 속에 숨겨 놓은 우주선이라고? 그거 그럴듯한데. 그 생각은 못했는데 말이지.”
아버지께서는 문득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셨다. 골똘히 한동안 생각하시더니, 갑자기 나를 껴안았다.
“야, 용, 용궁 이런 거에 관심 갖지 마. 재미난 책 보고 싶으면 그냥 사람들끼리 싸우는 거 보면 안 돼? 우리 아기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나야지.”
그리고 그날 저녁 아버지께서는 밤을 새도록 인터넷을 뒤져서,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이 재미있어 할 만한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이지만 용은 안 나오는 것의 목록을 만들어 주셨다. 그렇게 해서 나는 흘러간 TV 사극을 볼 때에도 ‘용의 눈물’은 보지 않고 ‘대장금’을 보았고, 중국 작가 김용의 소설을 읽을 때에도 ‘의천도룡기’는 보지 않고 ‘사조영웅전’만 보았고, 옛날 일본 만화를 보아도 ‘드래곤 볼’은 보지 않고 ‘슬램덩크’만 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조용 조용히 중학교 시절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냥 노력했다는 말로는 좀 부족하다. 흥분하고 감정이 휘몰아칠 일이 많은 것이 그 시절 아닌가. 나는 그러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했다.
괜히 부모들 앞에서 소리 지르며 반항하느라 가출을 하네 어쩌네 한 번 하고 나면, 일대는 집중호우로 커다란 재난을 입었다. 내가 홍수를 일으켜 사람들 집을 부수고 논밭을 망치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나라는 사람의 감정이 움직인 덕분에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방에 물이 들어차서 살림을 모조리 날린 사람의 뉴스를 심각하게 울적한 표정으로 보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 “네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 아니야?”라고 아무리 말씀하셔도 착잡한 느낌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 나에게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여러 방법을 익히는 것이 삶의 절반이었다. 정신없이 자라나는 아이들이 서로 엉망으로 엉기는 이 사회의 학교를 다니면서 마음을 가라앉힌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나는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다. 감정이 물결칠 때마다 불경의 한 구절을 계속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외우기도 했고, 주기도문을 속으로 외우기도 했다.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았다. 옆 반의 껄렁한 놈이 나와 싸우자고 끌어냈을 때는 좀 심각했다. 그 놈과 그 패거리에게 두들겨 맞고 비굴하게 엎어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곧 비가 쏟아졌다. 빗 속에서 그 놈은 “비 오는데 먼지나게 맞아 볼래”라며 족히 제3공화국으로는 거슬러 올라갈 법한 농담을 읊조리면서 그게 웃기다고 생각하는지 실실 웃었다. 비는 더 거세게 내렸고, 번개도 치기 시작했다. 나는 두 대쯤 맞았을 때, 번개가 그 놈과 그 패거리의 머리통에 내리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내가 참고 있던 것을 조금만 그만두면 실제로 그렇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모조리 없애 버린다면 누가 내가 그랬는지 알겠는가? 벼락을 맞아 죽은 놈들인데?
그러나 결국 그날 벼락 맞아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식으로 참고 사는 법을 익히는 게 내 사춘기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날, 15년 만의 큰비가 왔다는 정도로 기상청 기록만 갱신되었을 뿐이었다.
나는 결국 나만의 방법을 찾아냈다. 몇 가지 방정식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계산하는 좀 특이한 방법이었는데, 상당히 잘 먹혔다. 그 후로는 여러 벼락 맞을 만한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그냥 좀 찌푸린 하늘의 가랑비 정도로 끝낼 수 있었다.
모든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과학을 조금씩 배우면서 나는 정말로 도대체 어떻게 해서 갑자기 비가 오는 것인지 진지하게 궁금해졌다. 구름이 생기는 것은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움직이면서 생기는 일이고, 그것이 어떻게 응축되어 덩어리로 커지느냐에 따라 비가 내리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 즉, 구름이 생기고 비가 내리는 것은 기압과 열을 조종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이상한 일이었다. 내 마음 속의 감정이란 것은 내 머릿속, 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뇌 속에 있는 신경세포 중 어떤 것은 전기 신호를 내고 어떤 것은 내지 않고 있다는 조합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 내 감정이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기에 멀리 멀리 몇 천 미터는 떨어져 있는 하늘 위의 압력과 열을 조종할 수 있는가? 현대의 과학으로 그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원리를 이해한다면 훨씬 더 성능이 좋은 통신 장치를 만들 수도 있는 것도 아닐까? 사람의 감정을 전기나 열로 측정해서 읽어 내고 기록하는 장치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좀 더 깊은 단계의 문제도 있었다. 내가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그 많은 공기의 압력과 열을 조종한다는 뜻이었고, 그것은 아주 큰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세부적인 원리를 떠나서 내가 비를 한 번 내리게 할 때마다 그것은 아주 큰 에너지를 쓰는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걸까? 내가 먹는 밥이나 빵에 든 에너지로는 어림도 없다. 원자력을 이용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내 머릿속에는 내 감정에 따라 에너지를 내뿜는 핵반응을 일으키는 세포가 들어있는 걸까? 어떻게 그런 게 있으면서 방사능을 견딜 수 있을까? 원자력이 아닌 아예 혁명적인 다른 에너지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내 마음이 비로 바뀌는 것은 암흑에너지나 진공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근본적인 열역학 법칙을 위배하는 것 아닌가?
인류의 세계관을 바꿀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의 해답이 내 머리속에 들어 있다는 생각을 중학교 2학년 때에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중학생에게 그런 것은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참고 살고, 잊고 지나가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단련하며 살던 청소년이었다. 그 정도야, 나중에 나중에 정 먹고 살 길이 막막해져서 노벨상 상금이라도 필요하게 되면 그때 고민해 보자고, 덮고 넘어갈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전혀 엉뚱한 곳에서 생겼다. 내가 사랑에 빠진 것이다.
2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전기가 통했다. 조금의 과장도 아닌 것이, 진짜 번개가 치면서 하늘과 땅 사이에 8500만 볼트의 전기가 통했기 때문이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옆 반 교실로 건너왔고, 수업 시작을 기다리며 자리에 앉았고, 옆에 있던 여학생이 고개를 돌렸던 것뿐이었다. 3년간 단련하고 단련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방법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나에게 인사했다. 세상에 몰려드는 먹구름조차 단번에 환하게 밝힐 수 있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너도 이 수업 듣는 거야?”라고 물었다. 비가 내렸다. 멈출 수 없이 비가 계속 내리기 시작했다.
‘창조 학습 시간’이었다. 우리 학교에는 뭔가 창의적인 것처럼 들리는 것을 하라고 여기저기 나랏돈을 막 퍼주던 시절의 망령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약간 괴상한 수업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대부분은 적당히 우스꽝스러운, 낯간지럽게 창조적인 척 흉내 내기 놀이를 하는 수업이었다. 그렇지만, 우리 학교는 과학 특성화 고교로 지정되어 있었기에 과학 연구실 수업은 꽤 돈이 들어가는 일을 이것저것 잘 벌이는 편이었다.
입학식 날 학교에 온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학교에서 과학 연구실에서 하는 괴상한 짓을 선전하시는 것을 보고 무척 그럴듯하다고 생각하신 듯 했다. 특히 아버지께서는 완전히 감동하셨는지, “학교 화학 실험하는 장비가 거의 대학 수준이네! 어지간한 대학보다도 나아 보인다! 야! 이 정도면 진짜 히로뽕도 만들 수 있겠다!”면서 좋아하셨다.
그런 말을 많이 듣다 보니까, 나도 과학 연구실에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반대로 뭔가 학교가 얕은 수로 학부모를 속이고 있다는 반감도 생겨서 정말 과학 연구실 수업을 들을 생각까지는 없었다. 나는 차라리 ‘고전문학 교실’ 수업을 들을 생각이었다. 옛날 기우제에 읽던 제문을 쓴 선비들의 글들을 보면서, 누가 정말 심금을 울리는 기우제 제문을 썼는지 한번 느껴 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첫 번째, 두 번째 시간에는 가고 싶은 곳을 택해서 아무 곳이나 골라서 갈 수 있었기에, 잠깐 구경이나 해볼까 하고 시작 전에 과학 연구실에 한 번 들른 것뿐이었다.
“어, 나도…, 나도, 이거 하고 싶어. 이거. 어.”
나는 어디 아픈 사람처럼 보일 만큼 얼간이 같이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과학 연구실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서 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세상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과학 연구실 수업이 있는 날마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비가 왔다. 한 달이 지나자 홍수 위험이 있을 정도로 비가 내린 양이 많아졌다. 나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마음 속으로 중얼중얼 방정식을 읊고 그 숫자를 열심히 계산하면서 모든 잡념을 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를 볼 때마다 그것은 실패했다. 잊겠다던 잡념은 잡념이 아니라,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생각이었다. 그냥 보고 있기만 해도, 그녀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물결처럼 계속 밀려 왔다. 다른 사람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는 그 옆모습은 그윽했고, 그러다가 잠깐씩 웃을 때면 그녀의 눈은 행복의 정수와도 같아 보였다. 세상이 울적하고 암담하며 비극으로 가득 차 있다고 설파하는 철학자에게 그것이 아니라고 보여줄 수 있는 증거가 바로 여기에 내 옆에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가끔 고개를 돌려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나에게 거부감 없이 편안하게 말을 걸었다. 나는 인상이 편안하고 침착해 보이는 모습이어서 잘 모를 때에도 말을 걸기 좋게 생긴 편이기는 했다. 그것은 3년간 부단히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단련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날 나는 처음 그 일에 감사했다. 덕분에 나는 얼간이 같은 말투로나마 그녀에게 뭐라고 대답했고, 그녀는 다시 또 나에게 물어 봤다. 그리고 비가 내리고 또 내렸다.
그녀는 언제나 나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자신감 있고 여유있는 모습은 존경스러워 보였고, 당황하고 허둥거리는 모습은 친근하고 재미있는 성격처럼 보였다. 안경을 쓰고 책을 읽을 때에는 진지하고 성실해 보였고, 안경을 벗고 졸려 하는 모습은 느긋하고 어른스러워 보였다. 신고 있는 구두도 우아해 보였고, 듣고 있는 음악은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노래였다. 어떻게 저렇게 세상의 좋은 것들을 잘 알고 있을까 싶었다.
서글펐던 것은 나는 반대로 그녀에게 전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등짝에 있는 비늘 모양을 빼면 나는 주변 누구와도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남학생일 뿐이었다. 그 비늘조차 수업 시간에 보여 줄 수 있는 게 아니었고, 그걸 보여 준다고 해봐야, “야, 너 비늘 되게 멋있다”라면서 좋아할 여자도 없을 것 같았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한 시간 수업에서 옆에 앉는다는 것을 빼면 내가 그녀의 눈에 들 만한 장점은 조그마한 것조차도 없는 것 같았다.
인상을 남길 만한 것을 굳이 찾아 본다면 일전에 코모도 도마뱀이 우리에서 풀려 나온 일 정도였다. 창의성에 대한 의욕이 좀 지나쳐서 들떠 있는 교사는 동물에 대해 관찰 수업을 하는 시간을 가지자는 제안을 하면서 좀 특이한 걸 해 보자고 바람을 넣었고, 나와 그녀와 같은 조였던 금희가 거기에 잘 맞았던 것이다. 금희는 대단한 재력가 집안의 딸이라는 소문이 나 있는 학생이었는데, 누구에게 어떻게 부탁을 했는지, 관찰 대상 동물이라고 사람 덩치만 한 코모도도마뱀을 학교에 데려온 것이다.
기껏해야 횟집에서 복어를 사와서 관찰하자거나, 한약방에서 지네를 구해와서 관찰한다는 정도의 옆 조에 비해, 확실히 코모도도마뱀이 있는 우리 조가 관심을 크게 끌기는 했다. 교사 역시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면서 “나도 이거 처음 봐!”라면서 도마뱀 곁에 계속 머물고 있었다. 금희는 관심을 부끄러워하면서, 도마뱀의 발가락에 지문이 있는지 없는지 관찰한다면서 도마뱀을 넣어 놓은 철창을 움직였다. 그런데, 그러다가 코모도도마뱀이 그만 철창 밖으로 나와 버린 것이다.
코모도도마뱀은 위협적으로 날뛰었다. 그 짐승은 자기를 쳐다 보는 수많은 학생들과 그 학생들이 데려온 여러 동물들에 흥분한 상태였다. 같이 온 사육사는 마침 학교 안전 규정이 이상하게 꼬여 있는 것 때문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잠깐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학생들은 소리를 질렀다. 도마뱀의 뒤쪽에 있는 학생들은 물러서며 도망쳤고, 도마뱀 앞 쪽에 있는 우리들은 구석으로 몰렸다.
겁에 질린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나는 도마뱀 앞으로 나섰다.
나는 도마뱀의 정면을 쳐다 보았다. 위엄 있는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한편으로 도마뱀에게 진정하라는 뜻을 보냈다. 코모도도마뱀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겁을 먹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것의 두 눈은 내 눈의 이곳 저곳을 한 동안 관찰했다. 나는 강한 눈빛을 보이려고 했다. 실제 용의 눈빛을 본 적은 없었으니, 그것과 가장 가까운 표정을 지으려고 했다. 나는 아버지를 타박하는 화난 어머니의 눈빛을 따라 했다. 이내 코모도도마뱀은 고분고분하게 바닥에 엎드려 온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사육사가 다시 나타날 때까지, 내가 쳐다보고 있는 동안에는 그대로 돌이 된 것처럼 깍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게 그날 일의 전부였다. 금희는 내가 어떤 묘한 방법으로 코모도도마뱀을 진정시켰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그 다음 주에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일을 그다지 큰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하기야, 파충류 동물을 눈빛으로 제압하는 기술 따위가 현대 사회에 무슨 큰 쓸모가 있겠는가? 길바닥에 뱀들이 널려 있어서 남녀가 같이 길을 걸을 때에는 남자가 뱀을 한쪽으로 잘 치워 주는 것이 ‘매너 있다’는 소리를 듣는 사회가 아니지 않냔 말이다. 내가 용의 자손입네 하고 정체를 밝히고 본격적으로 그 원리를 연구하지 않는다면, 땅꾼을 직업으로 삼는다면 모를까, 무의미한 재능이었다. 어릴 때, 수족관에 들어 섰을 때, 어항 속에 들어 있는 거북이들이 일제히 내 쪽을 바라보는 것을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소방서에서 파충류 전문 포획꾼을 고용한다는 공고도 못 봤고, 파충류 학자가 되자니 동물의 생태를 있는 그대로 연구하는 데는 방해만 되는 재주였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에게 불쾌감을 주는 인간은 되지 말자는 것 정도였다. 적당히 친근해 보이되 너무 추근대지는 않기로 했고, 편안하면서도 너무 따분하지는 않은 사람이 되려고 했다. 그것만 해도 쉽지 않았다. 그러니, 결코 그녀와 내가 잘 될 리는 없다는 절망에 점차 빠져 들었다.
“지난번 우리 보고서 너무 쫄했어.”
“쫄한 게 뭔데?”
“너도 쫄한 거 뭔지 알잖아. 너도 많이 쓰는 말인데.”
“내가 언제?”
그녀는 내가 쓰는 말을 따라 쓰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렇게 같이 키들거리고 웃었다. 그러는 동안에는 만사 다른 생각 없이 그저 재미있기만 했다. 그렇게 웃고 있다가 갑자기 문득 머릿속에서 확 타올랐다. 나는 얘를 사랑해. 그러다 보면, 그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 생각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이끌 수 있을까, 점점 심각하게 고심하게 되었다. 방법이 달리 없었으니, 그녀가 한 번 미소 지을 때마다 괜히 갖게 되는 희망은, 집에 와서 돌이켜 보면 결국 오해로 발전해서 못나게 달라 붙는 불편한 인간이 되는 길이라는 것만 자명해 보였다.
애달픈 마음은 나날이 깊어졌지만, 또한 그녀를 만나는 그 시간이 매번 얼마나 기쁜 것인지 돌아 보는 것도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속절없이 평균 강수량만 계속 늘어나는 세월이었다.
그 무렵부터 나는 기상청에 익명으로 게시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몇 월 며칠, 몇 시부터 비가 올 것입니다. 나는 내가 그녀를 만나게 되는 시간이 정해지면 그보다 이틀, 사흘 앞서서 기상청에 알렸다. 홍수 피해가 지나치게 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낸 것이었다. 나는 아마추어 구름 관측 동호회 회원인 듯이 위장하면서 그런 익명 게시물을 보냈는데, 적중률이 완벽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 해 가을 무렵이 되자, 기상청 직원들 일부는 내 게시물을 신비로운 수수께끼로 여기기 시작했다.
기상청 일기예보에서 비 올 확률이 0%로 나왔을 때, 내가 비가 올 거라는 게시물을 올리면 기상청 직원들 사이에서는 내기를 하며 돈을 거는 사람들도 생겨났다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기상청의 슈퍼 컴퓨터를 믿었고, 어떤 사람들은 내 사랑을 믿었다.
나를 믿은 사람들은 항상 이겼고, 두 번, 세 번 그런 일이 거듭될수록, 판돈은 더 높아졌다. 그러는 가운데, 기상청에서 우리 동네의 강수량과 강수 빈도가 극히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주목하기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떤 직원 한 사람은 정상적인 대기 순환 모델로는 그 정도가 도저히 설명이 안 될 정도라는 것을 계산해 냈고, 그래서 인공 강우를 일으키는 아주 인위적인 특수한 조건이 형성되었을 수도 있다고 상상할 정도였다.
“인공적으로 날씨를 바꿀 수 있는 비밀무기를 개발해 내서 바로 여기서 실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진실에 좀 더 가까운 것을 눈치챈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도 처음에는 오판했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는 것을 알고, 처음에는 어머니에게 따졌던 것이다.
“너, 나 몰래 또 주식하는 거 아니야? 주식에 마음 다 뺐긴 거 아니야?”
“뭔 주식은 주식이야. 이제 주식 절대 안 한다고 했잖아.”
“지난 번에도 절대 안 한다고 해 놓고 했잖아.”
“그때는 ‘절대’ 안 한다고 한 건 아니지. 그냥 안 한다고 했지. 그리고 이제 진짜 절대 안 한다니까.”
“정말 주식 안 하는 거 맞아? 지난 번에도 몰래 하다가 엄청 까먹어서 안절부절 못했잖아.”
“그래서 안 한다니까. 야, 너 피곤하게 정말 왜 그래. 통장 거래내역 다 까서 보여줘?”
대화를 하는 중에 짙은 먹구름이 금방이라도 천둥을 울릴 것처럼 모여 들었다. 아버지는 그러고 나서도 한동안 어머니를 의심하셨지만, 몇 번 더 욕을 먹고 나서 결국 어머니는 주식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버지는 그리고 나서 쓸데없이 이모라든가, 외할머니 같이 어머니 쪽 친척들을 조금 캐고 다녔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내가 TV보는 모습을 보고 한 가지 단서를 얻었다. 작년까지 전혀 듣지 않던 노래를 내가 유독 관심을 갖고 듣는 것을 관찰한 것이다.
그날 밤 아버지는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라는 옛날 흑백 영화를 보셨다. 나하고 같이 보자고 하셨는데 나는 거절했지만 거실에 앉아 있기는 했다. 영화의 시작은 아들에게 별로 보여 줄 필요는 없지 않나 싶은 내용인 듯 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사실은 바람 피우고 사기 치고 산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용이 진행될수록 나는, 곁눈질로 보던 그 영화에 빠져 들었다. 비정하고 각박한 도시와 순박한 소시민의 모습이 대조되었고, 얄팍하고 치졸한 욕심과 애틋한 동경이 대조되었다. 두 가지 서로 다른 면모는 대조되지만 한 사람, 한 가지 이야기 속에 엮여서 펼쳐지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농담을 주워 섬기는 코미디였지만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였고, 내용은 애절했다. 주인공 잭 레몬이 약속 있다고 하면서 건물을 나서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화면을 향해 탄식하기까지 했다.
이 모든 장면을 옆에서 지켜 본 아버지는 결론을 내리신 듯 보였다. 아버지는 다음 날 아침 식사로 우유를 마시다 말고 갑자기 나에게 말했다.
“좋아하는 여자 있으면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야. 어릴 때 그런 소리 해야 그래도 좋은 거지. 하다 못해 망해도 피해도 적고. 야, 첫사랑은 다 안 된다고 하잖아. 그러니까 좋아한다고 해 놓고 거절 당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된다니까. 다들 그런 거니까. 그런 걸로 놀리는 사람도 없고. 설령 거절 당했다고 놀리는 사람 있다고 해 봐야, 걔가 얼간이지.”
나는 아버지께 소리치고 집에서 나왔다.
“무슨 헛소리를 하세요? 뭘 첫사랑이에요.”
아닌 척 하고 나왔지만, 한 번 아버지에게 그 생각을 듣자, 그 생각은 머릿속 깊은 곳까지 바로 파고 들어 왔다. 그녀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절 당해도 괜찮다. 등굣길 내내 그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 생각조차 달콤하게 들렸다.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계획한 것이 아닌데도 막연한 그 말만으로 가슴이 뛰었다.
그날 수업 시간표는 문학, 수학, 영어, 화학 등이었지만 나는 ‘관동별곡’이나 2차 도함수의 그래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그녀에게 말한다는 그 생각만 했다. 생각할수록 생각은 커져서 떨치기 힘들었다. 지금 정확히 설명하려면 마땅히 잘 설명할 방법도 없지만, 그때는 ‘말하고 거절 당해도 그게 정말 좋은 것이다’라는 말이 뭔가 구름 사이로 비치는 한 줄기 빛과 같았다. 결국 언젠가 그 빛을 향해 뚫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결심을 하고 나는 뭐라고 어떻게 그녀에게 말할지 생각했다. 풍선과 촛불을 사서 어쩌고저쩌고 잔치를 한다는 방법에서부터, 멋있어 보일 글씨체를 연습해서 편지를 쓴다는 계획까지 다양한 방법을 궁리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다른 문제도 같이 생각해야 했다. 거절을 당하는 그 순간, 몰아닥칠 폭우에 대해서도 대책을 세워야 했던 것이다.
나는 기상청과 시청에 글을 올렸다. 국지성 폭우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으므로, 갑자기 비가 많이 내릴 때를 대비해서 하천에 만들어 놓은 홍수 방지용 둑을 더 높고 튼튼하게 긴급 보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나는 내가 올해 내내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비를 완벽하게 예측한 사람임을 밝혔다. 처음에는 기상청에서도 시청에서도 아무 반응이 없었지만, 1주일, 2주일이 지나는 동안 내가 또다시 비가 내리는 것을 정확히 맞히자, 형식적인 내용의 알맹이 없는 답변이라도 답변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나는 꾸준히 글을 올려서 둑을 쌓아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심각한 폭우가 내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드시 둑을 보수해야 합니다.”
얼마 후에는 “선생님, 시청 방재팀 직원하고 기상청 담당자하고 다 모이는 자리를 주선할 테니, 한번 만나서 이야기하시죠”라는 대답도 돌아 왔고, “최대한 빨리 진행하겠습니다만, 금년은 예산 부족으로 어렵습니다”라는 대답도 나왔다. 결국 우리 시의 이상한 기후를 전국 TV 방송에서 특집으로 한 번 다루면서, 이것이 무슨 정권 때의 무리한 토목 공사와 관련이 있다느니, 무슨 정권 때의 지구 온난화 대응 전략과 관련이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부터는 시에서도 움직이게 되었다.
나는 공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저 둑이 완성되면, 나는 그녀에게 말할 것이다. 거절 당했을 때 휘몰아칠 비를 견뎌 내려면 둑이 완성될 때까지는 기다려야 했다. 그날이 오면, 그냥 담백하게, 그렇지만 존경과 존중의 태도를 최대한 담아 말할 것이다. 나는 등교할 때마다 길을 돌아 하천 가로 가서 둑 공사하는 것을 보았고, 공사 완료일 예정 간판이 붙고, 공사 진척률이 표시되는 것을 살펴 보았다.
마침내 둑의 보수가 끝났을 때, 나는 그 다음날을 그녀에게 말하는 날로 정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기상청에는 전날 미리 연락했다. 마음은 비장했다. 얼굴이 빨갛게 변하는 것을 참으면서 세상 우스울 꼴로 겨우 그녀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그리고 그녀의 상큼하고 예의 바른 거절을 듣는다. 후련하지만 무너지는 마음을 상상해 보았다. 나는 기상청에 내일 폭우가 내릴 수 있으니, 단단히 주의하라고 말해 두었다.
* * *
다음날 오후 기상청으로 한 통의 긴급 전화가 걸려 왔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감정으로 흔들리고 있었지만, 기분은 대단히 좋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얼른 주민들을 대피시키십시오. 당장 대피 해야 합니다. 비가 많이 올 겁니다. 엄청나게 많이 올 겁니다. 걔도 나를 좋아하고 있었대요. 걔도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니까요. 둑이라고 쌓은 시멘트 덩어리 정도로는 상대도 안 될 거란 말입니다.”
나는 그 학생이 비가 오는 것을 최대한 분산시키기 위해 버스와 기차를 타고 가능한 한 먼 거리를 이동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그 들뜬 마음이 가라 앉을 때까지, 잠시 학교를 쉬며 한동안 가뭄으로 고생하고 있는 나라들을 여행하고 다닌 듯 하다.
- 2017년, 한강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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