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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 년 전 어느 날, 한 구석기인이 계곡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얼마 후, 냇가의 돌더미 속에서 주변과는 다른 뽀얀 돌을 집어 든 그는 여기저기 힘껏 두들겨 봤다. 쉽게 깨지는 다른 돌과 달리 그 돌은 멀쩡했다. 그 돌을 수렵채집에 이용했더니, 전에 비해 훨씬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 최초의 쓸모 있는 돌은 이산화규소(석영)가 70~80% 함유된 준 광물인 ‘플린트’였다.
왜 플린트였을까. 원시 도구의 조건을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수렵채집을 위해서는 단단하면서 날카로운 날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내구성도 있어야 한다. 크기가 적당하면서도 쥐기 편해야 한다. 무뎌져도 조금 수리해서 재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구하기 쉬워야 한다.
플린트는 이 모든 조건을 다 갖춘 광물이다. 상대굳기가 7로 매우 단단하고, 입자가 고우면서도 다공성이라 벽개성(충격을 주면 일정 형태로 쪼개짐)이 없고 튼튼하다. 크기도 큰 자갈 만해서 쥐기에 좋다. 숙련이 필요하지만 가장자리에 충격을 주면 날카롭고 긴 곡면 날을 가진 형태(패각상)로 쪼갤 수 있다. 내구성이 좋지만, 날이 무뎌지면 다시 가장 자리를 충격으로 쪼개 다듬어 사용할 수 있다. 조상들은 이 재료를 이용해 칼과 화살촉, 창날, 돌도끼, 송곳, 못, 긁개 등을 만들었고, 수렵채집 활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도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소재 거래가 시작됐다. 폴란드와 벨기에 등 북서유럽과 영국 등에는 기원전 2000년~4000년 사이에 체계적으로 플린트가 채굴된 광산의 흔적이 발견됐다. 이 플린트 광산들은 인류 최초의 광산이었고, 그곳에서 산출된 플린트가 인류 최초의 무역상품이었다는 견해가 많다.
부싯돌과 건축자재, 보석까지 다양한 쓰임새
플린트보다 우리에게 더 친숙한 이름은 부싯돌이다. 플린트를 황철석 또는 강철에 때려서 불을 피우는 도구로 사용하면서 부싯돌이라고 불렀다. 19세기까지 사용된 화승총의 격발 장치에도 이 부싯돌을 썼다.
플린트가 많이 산출되는 곳에서는 고급 건축자재로도 썼다. 필자는 지난해 말 프랑스 남부의 엑상 프로방스에 있는 화가 폴 세잔의 공방을 방문했는데, 별채의 담벽에 보기 드문 플린트가 박혀 있었다. 이 지역에 플린트가 풍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잔이 즐겨 그린 빅토르 산은 플린트가 생성되는 환경인 바다 속 석회암이 융기해 만들어진 산이다. 특히 퇴적 과정에서 내포된 불순물이 아름답게 줄무늬를 이룬 플린트는 장신구로도 사용된다.
다양한 모습만큼 다양한 생성 환경
석영은 지각에 가장 풍부한 원소인 산소와 두 번째로 많은 규소가 만난 것이기 때문에 생성 환경에 따라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땅속 깊숙한 곳에서 마그마나 열수용액이 천천히 냉각되면서 질서 있게 원자가 배열되면 수정과 자수정, 황수정, 연수정 등이 만들어진다. 지표면에서 비교적 가까운 화강암이나 퇴적암의 빈 공간에 열수용액이 흐르면서 규소를 퇴적시킨 칼세도니와 마노, 오닉스 등도 있다. 그 과정에서 물 분자와 결합한 것이 오팔이다.
석회암이나 그보다 입자가 더 부드러운 백악의 빈 공간이나 틈새에 지하수가 계속 스며들면 단단히 굳은 초미정질의 석영이 생긴다. 퇴적암 속에 들어 있던 해면이나 방산충, 규조류의 화석(골격이 규소로 이뤄져 있다)이 용해되고 다시 굳어지면 플린트와 벽옥 등이 형성된다. 그밖에도 분출된 용암이 급속하게 냉각되는 환경에서 미처 결정을 이루지 못하고 굳어진 흑요석, 소행성이나 초대형 운석이 지상에 충돌할 때 그 영향으로 생겨난 텍타이트 등이 있다. 이들 준 광물들은 주성분이 동일함에도 생김새나 물리적 특성은 생성 환경만큼이나 다양하다. 필자가 이산화규소를 인류 최고의 소재로 꼽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도구였던 플린트는 시작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