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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서열 사라진 사회에서 태어난 지상 낙원

허재원의 영장류 이야기 7 침팬지와 보노보 下






싸움이 끊이지 않는 침팬지와 달리, 보노보침팬지(이하 보노보)는 평화로운 ‘에덴동산’을 구축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필자가 찾은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다 윤택한 자연환경, 알아차리기 어려운 발정기, 암컷 위 주의 사회, 성(性)적 놀이 문화, 그리고 콩고 강이 제공한 자연 장벽 등이다.


먹이 풍족하고 언제든 교미 가능…수컷 서열 사라져

보노보의 서식지는 침팬지의 서식지보다 훨씬 윤택하다. 사실 보노보가 사는 환경 전반은 아직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침팬지와 보노보의 생태를 비교하면 환경 차이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먹이와 사냥 방식이 대표적이다.

침팬지는 보노보보다 훨씬 다양한 먹이를 먹는다. 사냥으로 잡아 먹는 포유류만 최소 32종이다. 원숭이도 17종이나 잡아 먹는다. 이를 위해 수컷들이 무리를 이뤄 체계적으로 사냥한다. 반면 보노보는 이렇게 많은 종을 잡아 먹지 않는다. 체계적인 사냥법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보노보의 무리사냥이 보고된 적이 있지만, 침팬지처럼 수컷들만의 무리사냥은 아니었다.

이를 통해 과학자들은 보노보가 사는 곳에 먹이가 훨씬 풍족할 거라고 추정한다. 집단사냥은 고도로 훈련해 기술을 축적해야만 효과적인 행위다. 에너지가 많이 든다. 주변에 먹을 것이 충분하면 구태여 밀림을 위험하게 뛰어 다니며 여러 가지 사냥법과 노하우를 동원해 동물을 잡아 먹을 필요가 없다. 또, 먹이의 배분 순위를 두고 싸울 필요가 없어 수컷 사이의 서열이 사라진다.

과학자들은 보노보 사회가 얼마나 평화로운지를 실험으로도 검증했다. 외부에서 먹이를 던져 개체들 사이의 갈등을 인위적으로 조장하는 실험을 했을 때 침팬지들에서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아진 반면 (지난 화 참조) 보노보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불리는 코티솔의 수치가 높아졌다. 보노보는 스스로를 흥분시켜 싸움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를 제어하는 데에 더 집중한다는 의미다. 그 결과 이들은 다른 개체에게 먹이를 쉽게 양보한다.
 


 
 
주목할 것은, 이 때 보노보가 교미 행동으로 긴장된 분위기를 누그러트린다는 점이다. 보노보는 인간을 제외하면 외부에서 암컷의 발정기를 알아차릴 수 없는 유일한 동물이다. 암컷의 몸 안에에서는 생리와 배란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지만 교미는 1년 365일 가능하다. 임신기와 수유기에도 교미가 가능하다(교미만 가능하고 실제 임신은 되지 않는다). 이는 보노보가 평화를 이룰 수 있었던 두 번째 요인이다. 침팬지와 달리 보노보는 수컷들간의 치열하고 때론 폭력적인 번식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됐다. 누구든 언제든 암컷과 교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컷 침팬지는 종종 젖먹이 새끼를 죽여 암컷 개체의 생리주기를 임신 가능한 상태로 바꿔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려는 행동을 한다. 반면 보노보 무리에서는 이 같은 ‘새끼 죽이기’ 행동도 관찰되지 않는다. 서열이 낮은 수컷이 대장 수컷의 눈을 피해 암컷을 데리고 무리 주변으로 나가 몰래 교미하는 ‘사랑의 도피 여행’도 보노보에서는 관찰되지 않는다.


수컷의 본능적 폭력 저지하려 암컷 집단 발달

암컷 중심의 사회 구조도 보노보만의 비결이다. 늙은 암컷을 중심으로 형성된 암컷 무리가 수컷들보다 지위가 훨씬 높다. 아마 이 사회도 처음에는 침팬지와 같은 수컷 중심의 서열 사회였을 것이다. 그러나 풍족한 환경 덕에 모두가 쉽게 먹이를 구해 먹고 어떤 이유에선지 발정기가 숨겨져 항상 교미가 가능해지서, 수컷 사이의 경쟁이 불필요해졌다. 다시 말해 생존과 번식을 위해 수컷들이 서열을 유지할 필요가 사라졌다.

그럼 왜 암컷 무리 체제가 발달했을까. 수컷 사이에 서열은 사라졌지만, 일부 수컷은 종종 본능적으로 폭력적인 과시행동을 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막는 시스템이 바로 암컷 무리다. 예를 들어 어떤 수컷이 암컷에게 과시행동을 하면 모든 암컷들이 나서서 이를 막는다. 암컷들은 체력적 열세를 극복하고자 그들만의 연대를 강화시켜 왔는데, 아마도 이것이 새로운 사회 체제로 정착했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보노보 암컷들의 집단 체제는 특히 폭력적인 행동을 제어해야 할 때 재빠르게 가동한다.
 




 
보노보 사회가 평화로운 네 번째 이유는, 성(性)적놀이 문화다. 보노보는 성적 행동에 집착한다. 실제 암수간의 교미뿐만 아니라 수컷들끼리 혹은 암컷들끼리 교미 행동을 흉내 내거나 생식기를 비비는 등 온갖 종류의 성적 행위를 악수나 포옹만큼 일상적으로한다. 독특한 건, 암컷들간의 성적 행동이 암수 사이의 행위보다 훨씬 잦다는 점이다. 보노보 사회가 암컷 위주의 사회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행동 자체가 서로를 알아가고 관계를 만들어 가는 방법이자, 신뢰를 표현하는 의사소통의 방식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암컷의 클리토리스는 침팬지보다 크다.

게다가 보노보의 생식기는 침팬지보다 배쪽에 치우쳐 있다. 다른 동물과 달리 보노보는 서로 마주본 채로 교미할 수 있는데, 네발 동물처럼 엉덩이 위에 올라타는 자세보다 마주본 자세가 서로 교감하기에 더좋다. 개체 간에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실제로 보노보는 마주본 채 교미하는 행위를 매우 즐긴다.

보노보가 에덴동산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앞서 살펴본 모든 요인을 보전할 수 있게 해준고립된 환경이다. 보노보의 서식지는 콩고 강으로 에워싸여 있다. 콩고 강 자체가 만리장성 같은 거대한 성벽 역할을 한 셈이다.

무엇보다, 침팬지로부터 분리돼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침팬지의 행동방식을 바탕으로 추정컨대, 만약 콩고 강에 문제가 생겨 주변 침팬지가 보노보 서식지까지 진출한다면 엄청난 문화적 충격과 후폭풍이 생길것이다. 과거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이나 아프리카 대륙에 처음 진출해 저질렀던 잔혹한 만행이 되풀이될지도 모른다.


침팬지도 보노보도 관계 형성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

침팬지와 보노보를 알게 된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엔 침팬지는 악하고 보노보는 착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도 처음에는 강연 등에서 침팬지와 보노보가 인간의 선악을 대변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의 관점이다. 요즘 필자의 눈에는 테스토스테론에까지 의존해 자신의 정체성을지키기 위해 싸우는 수컷 침팬지의 치열한 삶이 오히려 애처로워 보인다.

인간 중심적인 시선을 거두면, 침팬지와 보노보의 사회는 다른 듯 같다. 보노보 암컷들은 다른 암컷과의 성적 행동을 포함해 관계를 다지는 행동을 하는 데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침팬지 수컷들 역시 자신의 서열과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수컷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즉 단순히 눈앞의 이익을 좇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투자를 통해 구성원들과 신뢰할 수 있는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인간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보노보 사회에서는 암컷들간의 성(性)적 행동이 암수간 행위보다 잦다. 신뢰를 표현하는 그들만의 방식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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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허재원 선임연구원
  • 에디터

    우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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