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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 Fun]‘착한 패딩’을 찾아서

패딩 점퍼의 계절이 돌아왔다. 두툼한 구스 다운 패딩은 든든하고 따뜻하지만, 동물 학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패딩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동물과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겨울을 책임져 줄 ‘착한 패딩’은 없을까?


이맘때
불티나게 팔리는 구스나 덕 다운 패딩은 거위나 오리의 솜털을 채운 점퍼다(다운(down)은 영어로 솜털이라는 뜻이다). 솜털은 새의 체온을 유지해주는 가슴팍의 부드러운 털로, 가슴이 아닌 다른 부위에 나는 길쭉한 깃털과 구분된다. 패딩점퍼 안에는 보통 솜털과 깃털이 섞여 들어가는데, 솜털 함량이 75% 이상인 것만 다운 제품이라고 표시할 수 있다.

천연 다운이 가볍고도 따뜻한 이유는 솜털의 구조에 있다. 홍수옥 한국의류시험연구원 연구원은 “거위나 오리의 가슴에 나는 솜털은 중심 핵으로부터 수많은 보푸라기가 뻗어 나와 마치 민들레 씨처럼 동그란 모양을 이룬다”며 “이 보푸라기들이 공기를 머금어서 체열이 빠져나가는 걸 막는다”고 말했다. 패딩의 보온 성능은 털이 부풀어 오른 정도인 ‘충전도(한국산업표준·KS)’로 판단한다. 충전도가 높을수록 솜털 사이에 형성된 공기 층이 많아 보온 효과가 크다. 특히 각 보푸라기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와 있는 삼각형의 구조물이, 솜털이 항상 부푼 상태로 있도록 지지한다.

문제는 이들 다운의 상당수가 살아있는 거위와 오리를 학대하는 방식으로 채취된다는 사실이다. 도살되기 전까지 수 차례 털이 뽑힌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오래 전부터 밍크, 모피 코트와 함께 다운 패딩도 입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추운 겨울에 일면식(?)도 없는 거위와 오리의 안위를 걱정하기엔 자신의 삶이 너무 팍팍하고 몸은 너무 춥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뜻이 있다면, 걱정은 이르다. 천연 다운 못잖게 따뜻(하다고 광고)한, 폴리에스터(PE)같은 화학섬유로 만든 인공충전재가 이미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1 인공충전재의 이상과 현실

미국의 화학회사 듀폰은 북극곰의 털을 모방한 충전재를 개발했다. 내부에 공기 층이 생기도록 속이 빈 원통 형태의 원사를 엮어 만들었다. 공기 층은 열전도도가 낮아 내부 온도를 계속 유지시킨다. 솜털 모양이 아닌 3~4층 구조의 충전재와, 태양에너지를 흡수해 열에너지로 활용하는 충전재도 개발됐다. 박윤철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특히 섬유소재에 금속입자를 코팅해 보온효과를 주는 새로운 충전재가 각광받을 것”이라며 “인체에 영향이 없도록 금속을 아주 미세하게 만들어 섬유에 처리한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불쌍한 거위와 오리를 그만 괴롭혀도 되지 않을까. 천연 다운과 비교해 얼마나 따뜻한지 알아보기 위해 떨리는 마음으로 11월 30일, 서울 용두동에 위치한 한국의류시험연구원을 찾았다.

“현재 기술로는 인공충전재가 천연 다운을 절대 따라갈 수 없습니다.”

정성원 섬유시험본부 연구원이 잘라 말했다. 도착한 지 10분도 안돼 던진, 첫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A4 크기 용지 한 장에 빼곡히 적어 갔던 질문들이, 시험실 허공을 떠도는 거위 털들과 함께 날아가는 것 같았다. “무게 대비 보온 성능은 천연 다운이 훨씬 좋습니다. 디자인이나 길이에 따라 패딩의 보온 성능을 비슷하게 만들 수 있지만, 인공충전재가 훨씬 무겁다는 얘기입니다.”

홍수옥 연구원이 투명한 유리 그릇 하나를 기자에게 내밀었다. 새끼 손톱보다 작게 말린, 동글동글한 솜 뭉치들이 들어 있었다. “한 업체가 개발한 인공충전재예요. 거위 털을 모방하려고 동그랗게 말아 놓은 거죠. 그런데 보세요, 풀어보면 그냥 한가닥이죠? 이건 한번 눌리면 복원이 잘 안 돼요. 천연 솜털만큼 공기를 많이 머금지 못하죠.”

이 때문에 현재 나오고 있는 인공충전재 패딩은 구스 다운 패딩보다 다소 얇다. 충전도를 높이기 어렵고, 보온 성능을 올리기 위해 충전재를 너무 많이 넣으면 무게 때문에 소비자에게 외면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고도 인공충전재 패딩을 입겠다고 마음먹어도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아웃도어 의류 시장을 선도하는 몇몇 브랜드에서는 인공충전재 패딩을 찾기가 오히려 어렵다. 한 취재원은 “유명 브랜드들은 패딩에 인공충전재를 넣으면 브랜드 이미지가 하락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업체들이 인공충전재를 개발하는 건, 윤리적인 이유도 있지만 상업적인 이유가 더 큽니다. 몇 년 전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한 국가의 통관이 불허되면서 다운 가격이 치솟았거든요. 그러자 업체들이 다운을 줄이고 인공충전재를 섞었어요. 하지만 다운 가격이 안정되면서 인공충전재 패딩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죠.”


2 윤리적으로 모은 털만 쓰는 ‘착한 다운’

마음에 드는 인공충전재 패딩을 찾을 수 없다면, ‘착한 다운’에 눈을 돌려보자. 미국의 비영리 유기농 섬유 전문 협회인 TE(Textile exchange·섬유거래)는 2014년 RDS(Responsible Down Standards, 책임 다운 표준) 제도를 발표했다. 점퍼에 쓰인 다운의 주인, 그러니까 털을 제공한 거위나 오리가 인도적이고 윤리적인 방법으로 사육됐다는 것을 증명하는 표준이다. 예컨대, 푸아그라를 위해 강제로 사료를 먹이지 않았고 살아있는 상태에서 강제로 털을 뽑지 않았음을 인증한다. RDS 인증 심사를 하는 유일곤 컨트롤유니온코리아 심사원은 “거위가 알에서부터 사육되는 농장과 도살장, 운송장, 전처리 시설, 봉제공장, 최종제품 생산 공장까지 다운이 거쳐간 전 범위가 인증 대상”이라며 “최종 제품이 RDS 인증을 받으면 그 전 단계도 전부 RDS 인증을 받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국에는 다운을 직접 생산하는 농장은 거의 없다(일부 농장에서 오리 털을 생산한다). 대신 RDS 인증을 받은 다운을 수입해 넣은 패딩이 판매되고 있다. 브랜드 홈페이지에서 인증 마크를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착한 패딩을 드디어 발견한 걸까. 아직 안심은 이르다. 한 가지 더 살펴봐야 할 게 있다. 바로 모자다. 패딩에 달린 모자에는 보통 머리와 얼굴 부위의 보온 기능을 위해 털을 붙인다. 제품의 라벨을 살펴보면, 라쿤 털인 경우가 많다. 라쿤은 거위나 오리와 달리 사람이 먹지 않는다. 오로지 털을 위해 라쿤을 죽인다고 유추할 수 있다. 착한 패딩을 찾는다면, 모자의 털도 확인하는 습관을 갖자.
 

 

3 건강에 좋은 친환경 패딩

건강과 환경을 생각한다면, 착한 패딩을 찾는 데 한 가지 관문이 더 남아 있다. 패딩을 포함한 아웃도어 의류에 흔히 쓰이는 환경호르몬 ‘PFC(PerFluorinated Compounds, 과불화화합물)’다. PFC는 물과 기름에 저항성이 있어서 흔히 아웃도어 의류(특히 고어텍스, 테플론 등 유명 원단)의 방수, 방한 기능을 위한 코팅 재료로 쓰인다. 그런데 이 물질 중 일부는 2009년 ‘잔류성 유기 오염물질에 관한 스톡홀름협약’에서 규제 대상으로 규정됐다.

많은 과학자들이 PFC가 건강과 환경에 주는 악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양재호 대구가톨릭대 의대 약리학교실 교수팀이 대구와 경북 포항에 사는 여성 70명과 이들의 아기 70명의 제대혈에서 PFC 농도를 측정했는데, 환경호르몬에 많이 노출된 임신부일수록 저체중 아이가 태어날 확률이 높았다(학술지 ‘케모스피어’ 온라인판 2012년 9월 16일자). PFC 유해성에 대한 이 같은 지적에 고어텍스 사는 2013년 7월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가 사용하는 짧은 사슬 PFC는 유해성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디톡스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하보미 캠페이너는 “짧은 사슬 PFC는 공기 중에서 산화되면서 긴사슬을 갖는 해로운 PFC인 PFOA로 변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의류가 제조, 유통되는 과정과 소비자 가정에서 세탁되는 과정에서 PFC가 떨어져 나와 공기 중으로 증발하는데, 화학적 안정성이 높아 자연에서 분해되지 않고 축적된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경규림 그린피스 홍보 담당자는 “왁스와 실리콘 계열의 대체 물질이 이미 있지만, 고어텍스의 이미지가 워낙 좋아 아웃도어 업체들이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린피스 탐사대가 PFC를 이용하지 않은 옷을 입고 해발 5000m를 탐사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PFC에 관련된 규제가 없다. 현재로서는 어떤 브랜드가 PFC를 쓰고 있는지 소비자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세계적 친환경 섬유시스템 인증 제도인 ‘블루사인’을 받았더라도 PFC가 있을 수 있다. 현재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판매 매장과 제조사에 반복적으로 문의하는 방법뿐이다. 윤리적인 패딩을 요구할 권리미국의 언론인이자 작가인 헤더 로저스는 ‘사라진 내일: 쓰레기는 어디로 갔을까’라는 책에서 ‘일회용 포장재 생산기업이 제시한 재활용 방안은 기업의 생산책임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단순히 기업이 일회용 포장재를 생산하지 않으면 될 문제라는 것이다. 동물과 환경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패딩 제조 업체의 문제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소비자는 내 몸과 동물, 그리고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패딩을 요구하고 입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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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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