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재’와 ‘실험’은 어쩐지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습니다. 하지만 이 연재를 꾸준히 읽은 분들은 두 단어가 결코 먼 단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문화재의 훼손을 조사할 때에도, 보존처리를 할 때에도 최적의 조건을 찾기 위해 실험을 동반한 연구를 하기 때문입니다. 고고학 분야에서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에게 고고학은 발굴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땅을 파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유적과 유물을 발굴하며, 이를 바탕으로 과거의 삶과 문화를 되살립니다. 그런데 이 때도 실험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기록이 불충분한 고대 유적은 유적의 본래 형태나 기능을 알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철광석에서 철을 뽑아내는 기술 즉, 제철 기술이 대표적입니다.
백제시대 제철기술의 중심, 중원
제철기술은 고대 문명의 꽃입니다. 철은 무기를 발달시키고 농업생산력을 증가시킨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철을 얻기란 쉽지 않습니다. 1100~1500℃나 되는 높은 온도를 다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높은 온도를 얻는다고 끝이 아닙니다. 온도를 제철로 안에서 일정하게 유지시키거나 시간에 따라 적절히 조정해 가며 원료인 철광석을 녹이고, 불순물을 제거해야 원하는 철 성분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문명이 발달한 오늘날은 이 과정이 꽤 잘 연구돼 있고, 덕분에 우리는 철의 혜택을 풍부하게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혜택을 1500년 전 백제 시대에도 누렸다면 어땠을까요. 실제로 당시 백제는 상당한 수준의 철기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지금의 충주를 중심으로 한 충북 일대는 그 당시에 백제의 땅이었는데, 백제는 이곳에 철광산을 개발하고 대규모 제철 시설을 건설했습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제철 유적만 20곳, 철을 만드는 데 필요한 숯을 만들던 탄요(숯가마) 유적도 72곳이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충주 부근에는 그 중 11곳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유적은 많은데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많은 제철 유적이 하단 부분만 겨우 남아 있어 당시의 제철로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던 것입니다. 당시에 어떻게 철을 만들었는지 방법은 더더욱 알 수 없었고요. 그래서 학자들은 손수 제철로를 만들어 고대시대에 철을 만들던 과정을 실험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의 일입니다.
변변한 자료도,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실험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더구나 띄엄띄엄 실험을 하니 결과를 체계적으로 종합하는 데 어려움이 컸습니다. 이에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2014년부터 총 6년에 걸쳐 좀더 체계적으로 고대의 제철로를 실험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먼저 여섯 차례에 걸쳐 규모가 작은 제철로를 만들어 예비 실험을 했습니다. 작다고는 하지만, 보통 작업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올해 7월 실시한 충주 대화리 2호 복원 예비실험의 경우, 지름이 의자 바닥 정도인 60cm에 높이가 210cm인 원통 기둥을 점토로 세워 제철로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165kg의 숯을 넣어 태운 뒤 국내 3대 철 생산지 중 한 곳인 강원도 양양에서 난 철광석과 목탄을 1:2의 비율로 나눠서 투입합니다. 기계를 이용해 바람을 공급했고요. 11시간 넘게 걸린 실험을 통해 연구팀은 제철로에서 배출물인 슬래그(일종의 부산물로, 슬래그의 배출 형태를 유적 속 슬래그와 비교하면 제철로가 제대로 복원됐는지 등을 알 수 있기에 중요합니다)의 배출 형태와 성분을 알 수 있었고, 만들어진 철의 탄소 함량이 노 내부 위치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다양한 예비실험을 통해 경험과 자료를 축적한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올해 5월 27~28일과 9월 15~16일, 규모를 키워서 대형 실험로에서 복원실험을 했습니다. 9월 실험에서는 제철로의 지름을 120cm, 높이는 300cm까지 확대했습니다. 보다 실제 크기에 가까운 형태입니다. 한지선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예비실험에서는 마치 자연과학이나 공학에서처럼 온도 등 세부 조건을 바꿔가며 비교 실험을 한다”며 “그 뒤 규모가 큰 본실험에서 고대의 제철 기술을 종합적으로 복원해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흔히 공학에서는 소규모로 실험을 해 자료를 얻으면 조금씩 규모를 키워가며 연구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똑같은 실험을 두 배 큰 실험 시설에서 하면, 결과는 두 배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고대 제철 실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연구사는 “제철로의 규모가 커지면 여러 통제 조건을 조절하기가 무척 까다로워진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실험은 까다롭지만, 실험을 통해 얻은 실증 자료가 쌓이면 고대 제철기술 복원은 그만큼 가까워질 것입니다. 한 연구사는 “2019년까지 중원지역 제철로를 중심으로 실험하고, 그 뒤 한국 전체로 넓혀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