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TF는 5개월 동안 뭐한 겁니까? 괜히 시간 끄는 거 아니에요?” 5월 29일 세종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세월호 선체 인양용역’ 사업설명회장은 시끌시끌했다. 정부가 세월호 사고 진상규명을 가로막으려 인양을 미적거린다는 의심을 품고 있던 사람이 던진 질문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TF가 인양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세월호가 처한 조건에서 인양을 한 사례가 세계적으로 한 건도 없었기 때문이다. 각기 만만치 않은 세 조건이 결합돼 초고난이도가 됐다.


세월호 가 침몰한 맹골 수도는 우 리나 라 에서 조류가 가장 빠른 곳 중 하나다. 유속이 초속 0.19~1.27m에 이른다. 순간적으로 초속2m(시속 7.2km)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초속 0.5m만 넘어도 잠수사가 제대로 작업하기 힘들다. 유속이 느려지는 전류 때만 잠수할 수 있는데, 하루에 3~4회 돌아오는 전류 때를 모두 합쳐도 2~8시간에 불과하다. 특히 태양과 달, 지구가 일직선으로 위치한 보름·그믐(대조기)으로 다가갈수록 작업하기가 어렵다. 7~8월에는 태풍을 피해 철수해야 하고, 12~2월에는 높은 파도를 피해야 한다.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작업 가능시간이 1년에 고작 41일 정도다. 그마저도 시야가 20~100cm로 짧아 작업하기가 쉽지 않다.

세월호의 중량은 화물 등을 합쳐 1만200t으로 추정된다. 선체 길이만 145m에 이른다. 40층짜리 건물 높이다. 이렇게 큰 배를 수심 44m에서 온전히 인양한 사례는 없다. 해외 인양사례를 보면 수심이 낮거나, 깊더라도 배가 작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월호처럼 큰 배는 보통 인양을 포기하거나 잘라서 들어올린다. 자르면 일단 가벼워져 들기가 쉽다. 잠수사가 선내에 들어가기도 쉽고, 들어 올릴 때 물이 잘 빠져 작업이 편해진다. 하지만 세월호 유가족들은 사고원인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 손상 없는 인양을 요구하고 있다. 세월호 TF에서 기술검토팀장을 맡은 이규열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도 “절단 인양은 TF에서 가장 먼저 배제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세 월호 실종자304명 중 295명이 확인됐다. 남아있는 미수습자는 9명이다. 객실에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을 수습하기 위해 세월호를 인양하는 것이다. 인양하는 과정에서 사체가 배 바깥으로 빠져나가거나 손상되면 목적을 잃고 만다. 세월호는 현재 좌현을 바닥에 대고 누워있는데,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깨진 유리창으로 사체가 나올 위험이 있다. 이걸 막기 위해 그물을 쳤다간 되려 잠수사가 위험해질 수 있다. 구난업체인 코리아 쌀베지의 류찬열 대표는 “좌현쪽 유리창을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배를 들어 올린 다음 아래쪽(좌현)으
로 접근하긴 너무 위험하다.

사업설명회에서 세월호 TF가 권고한 인양방식이 있다(이 방식을 꼭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선체 우현에 와이어를 연결해 해상크레인으로 3m가량 들어 올린 다음, 플로팅 도크에 얹어 인양하는 방식이다. 가장 첫 단계로 와이어를 연결하기 위해 잠수사가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전문가들은 “전체 인양작업 중 잠수가 가장 위험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세월호 구조작업을 하다 잠수사 2명이 죽고 89명이 다쳤다. 인양과정에서도 배 안에 쌓인 뻘이 날려서 시야를 가리거나, 선체에 남아있는 기름이 유출되면 잠수사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기계로 대체하는 방법은 없을까. 무인잠수정(ROV)을 투입해서 말이다. 일단 맹골수도의 조류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무인잠수정 대부분은 프로펠러를 돌려 움직이는데, 아쉽게도 조류가 센 곳에서는 위치를 정확히 잡기 어렵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최근 개발된 해저 탐사용 게 로봇 ‘크랩스터 CR200’이다(왼쪽 위 사진, 과학동아 6월호 참조). 크랩스터는 다리 여섯 개로 몸을 지지해 초속 1m의 빠른 유속에도 버티면서 작업할 수 있다.
세월호 인양에 크랩스터를 참여시킬 수 있을까. 유승열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수중로봇연구실 박사는 “불가능하진 않지만 제약이 많다”고 말한다. 크랩스터는 바닥에 발을 디뎌야 힘을 받는 구조다. 배 옆면에 매달려서 작업하기 힘들다. 그리고 구멍을 뚫거나 용접을 하거나, 밧줄을 연
결해 본 경험이 없다. 집게로 물건을 집어 올리는 등 아직 간단한 작업만 가능하다.
결국 사람이 들어가야 한다. 잠수사 피해를 막으려면 전류 시간대와 유속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해양과학기술원은 작년 12월부터 3개월간 세월호 침몰지역에서 해저지형과 유속을 면밀히 조사했다. 현장조사를 총괄한 이용국 해양과학기술원 해양방위연구센터장은 “세월호가 해저에서 바닷물의 흐름을 방해해 수심 20~40m 사이에서는 유속을 예측하기가 어려웠다”면서도 “현재 전체 층의 80%를 예측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배는 옆면보다 바닥이 강하다. 사람의 척추처럼 몸 전체를 지탱하는 부재인 ‘용골’이 바닥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워있는 배는 일단 바로 세운 뒤 용골에 체인을 걸고 들어 올리기 마련이다. 천안함도 이런 방법으로 아래를 들어서 인양했다(아래 사진). 세월호에서도 가능할까.
박승균 서울대 해양시스템공학연구소 교수가 6월 9일 특허출원한 방식을 살펴보자. 세월호 직립인양방식은 현재로서는 박 교수의 아이디어가 유일하다. 크레인을 뒤로 이동하면서 우현에 연결한 줄을 잡아당기면 세월호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 곧이어 반잠수식 인양선 두 대를 세월호 옆면에 붙여 결합시킨다. 그 상태에서 인양선의 평형수를 배출하면 부력으로 세월호를 띄워 올릴 수 있다. 박 교수는 “가장 손쉽고 안전한 방식”이라면서 “비용도 다른 방식보다 훨씬 저렴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디어만큼 배를 바로 세우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국내의 대표적인 인양업체인 코리아쌀베지(Korea Salvage)의 류찬열 대표는 “크레인은 힘이 수직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옆으로 당기는 건 가능하지 않다”면서 “억지로 잡아당기면 줄을 설치한 부위만 뜯겨나간다”고 말했다. 이규열 교수는 “배를 바로 세우는 과정에서 미수습자의 사체가 훼손되거나 유실될 수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가장 우려스런 부분이다. 세월호를 들어 올리는 와중에 우현에 설치한 인양점(줄을 결속한 부위) 중 일부가 뜯어지거나, 줄이 끊어지면 대형사고다. 무거운 짐을 여러 명이 함께 옮기다가 한 명이 손을 놓는 것과 같다.
다른 쪽으로 중량이 실리면서 연쇄적으로 인양점이 뜯겨나갈 수 있다. 내부에 화물이 고정돼 있지 않아서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릴 수 있다는 점도 골치다. 세월호가 바닥에 도로 떨어져 부서질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크레인이 중량을 못 버티고 넘어질 수도 있다.
세월호 TF에서 가장 걱정하고 있는 부분도 이런 상황이다. 기술검토보고서 325쪽 중 절반가량을 여기에 할애했을 정도다. 노명일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팀은 인양점을 어디에 설치하면 중량이 가장 고르게 분산될지 4차례에 걸쳐 시뮬레이션했다. 첫 시뮬레이션에선 57개였던 인양점이 나중엔 93개까지 늘어났다. 보고서에선 배가 조류에 부딪혀 흔들리거나 화물이 쏠리는 경우를 대비해 실제보다 25% 더 무거운 1만 2750t을 기준으로 계산했다. 여기에 크레인 줄의 중량인 700t을 더하고도 총 인양가능 중량에 20% 이상 여유를 남기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크레인 두 대(1만t급과 8000t급)를 동시에 사용하기를 권고했다.
세월호 TF의 권고를 따를 경우, 중량에 충분히 여유가 있는 만큼 과도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해상에서 크레인 두 대가 1m 이상 높이 차이가 날 경우, 또는 안전계수를 넘는 강한 조류에 세월호가 노출될 경우 등 위험요소가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TF는 바닥에서 배를 3m가량 들어 올린 상태에서 유속이 느린 동거차도쪽으로 이동해 인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제자리에서 인양하지 않고 왜 번거롭게 이동하는 걸까. 그 편이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용국 센터장은 “세월호 침몰 지역에 거대한 와류가 있어, 인양 시 순간적으로 조류의 속도와 방향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북서쪽으로 2.5km 이동한 동거차도쪽 해역은 유속이 침몰지역의 절반이라 인양하기에 좋다. 일단 움직일 수 있을 만큼만 배를 살짝 들어 올린 다음, 얕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크레인을 초속 0.5m로 이동시키면서 동시에 줄을 분당 1m 속도로 천천히 감아올리면 바닥에서 3m 높이를 유지할 수 있다. 바닥에 가까울수록 마찰력으로 유속이 느리고, 표면에 가까울수록 유속이 빠르다.


크레인은 이번 인양의 주인공이자 위험요소다. 두 초대형 크레인이 한 몸처럼 움직이지 않으면 배가 찢어지는 사고가 날 수 있다. 크레인을 아예 안 쓰는 방법은 없을까. 세계적인 인양업체 스미트(SMIT)는 2001년 북극해에서 침몰한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를 크레인 없이 인양한 적이 있다. 쿠르스크호는 중량 1만8000t, 길이 154m으로 세월호와 비슷하다(인양 전에 앞부분을 일부 잘라내서 무게와 길이가 줄긴 했다). 침몰한 곳의 수심이 108m로 깊고, 조류가 초속 1.25m로 빠른 점도 세월호가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
당시 스미트는 크레인을 쓰지 않았다. 대신 길이가 140m에 이르는 대형 바지선(➋)에 도르래 역할을 하는 유압 인양잭(➊) 26개를 2열로 설치했다. 인양잭의한쪽 끝은 바지선 아래로 늘어뜨려 쿠르스크호에 고정시켰다.
이 상태에서 잠수함을 수직으로 끌어올려 불과 4개월 만에 인양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도 똑같은 방식이 가능할까. 스미트와 컨소시엄을 맺고 공동으로 입찰에 참여한 코리아쌀베지의 류 대표는 “크레인과 플로팅도크를 쓰는 대신 바지선 세 척을 이용해 인양하는 방법을 제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쿠르스크호를 인양할 때와 비슷한 방법을 제안하겠다는 말이다. 인양업체는 7월 중순에 최종선정된다. 어떤 업체가 뽑힐지는 알 수 없지만, 크레인 사용여부를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작년 12월부터 3개월간 50명이 넘는 연구자들을 투입해 맹골수도 일대를 현장조사했다. 조사를 총괄한 이용국 센터장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원래 겨울에는 바다날씨가 험해 조사를 하지 않습니다. 이번엔 인양을 해야 하니까 무리해서 들어갔죠.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연구원들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천만다행히도 세 달 내내 바다가 잠잠했습니다. 아무 사고 없이 잘 끝났죠. 이 이야기를 유가족들한테 했더니, ‘애들 빨리 꺼내달라고 하늘도 도와준 모양’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세월호 안에는 아직 9명의 미수습자가 있다. 이들을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수많은 기술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치열하게 연구 중이다. 세계역사에 남을 인양작업이 곧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