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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뜨거운 건 무거워야 안다

상수의 탄생 ➍





온도의 기준점에 대해서 흥미로운 제안이 많았다. 버터가 녹는점이나, 가장 더운 여름날의 기온, 프랑스 파리의 관측소 지하실의 온도 등이 있었다. 심지어 손을 넣고 견딜 수 있는 가장 뜨거운 물의 온도를 기준으로 하자는 엽기적인 주장도 있었다.

위대한 뉴턴조차 시시각각 달라지는 사람의 혈액 온도를 기준으로 삼자고 제안했다. 체온은 하루 동안에도 조금씩 계속 변한다. 사람의 혈액 온도를 기준으로 삼는 건 밤낮으로 길이가 달라지는 막대로 1m의 길이를 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수많은 실험과 토론을 거쳐 두 가지 기준이 세워졌다. 오늘날 널리 쓰이고 있는 온도단위인 섭씨온도(℃)와 국제 표준 단위인 절대온도 켈빈(K)이다.

섭씨온도는 물의 어는점보다 낮은 온도를 음수로 표시한다. 우리말로는 영(0) 아래라는 뜻으로 ‘영하 몇 도’ 라고 읽는다. 섭씨 온도를 생각한 스웨덴의 물리학자 안데르스 셀시우스가 처음 제안했던 눈금은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눈금과는 반대였다. 물의 끓는점이 0℃로, 어는점이 100℃였다. 이 방식에선 어는점보다 차가운 온도는 100보다 큰 수로 표시돼, 음수가 필요 없게 된다. 오늘날 영하 10℃는 셀시우스에게는 110℃였다.

 



산꼭대기처럼 높은 곳에서 밥을 지으면 설익는다. 기압과 함께 물의 끓는점도 낮아져, 100℃보다 낮은 온도에서 쌀이 익으니 밥이 잘 될 리 없다. 집에서 쓰는 압력밥솥은 거꾸로 높은 압력과 온도에서 쌀을 익혀, 짧은 시간 안에 밥을 맛있게 짓는다. 이처럼 물의 끓는 점은 압력에 따라 달라진다. 먼저 압력의 단위부터 정해져야 물을 이용해 표준 섭씨온도를 정하는 방법이 의미가 있다.

지구를 둘러싼 공기층은 우리에게 생각보다 큰 압력을 가한다. 손바닥 위에 가로 세로가 각각 1cm가 되는 작은 정사각형을 그려보자. 대기권이 우리 몸을 누르는 힘은 이 작은 면적(1cm2)에 무려 질량 1kg인 물체가 하나 올라 있는 것과 같다. 성인 몸의 전체 표면적은 보통 1.5m2 이상이다. 공기가 우리 몸을 누르는 힘이 무려 15t 짜리 덤프트럭이 우리 위에 올라 있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별 탈 없이 살아가는 이유는, 몸도 같은 크기의 힘으로 공기에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 진공상태의 우주 공간에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나간다면, 몸 안팎의 압력차로 잠깐이라도 살아있기 어렵다. 영화 ‘토탈리콜’의 끝 부분, 대기가 희박한 화성에 나동그라진 사람의 얼굴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떠올려보자!

모든 생명체는 오랫동안 주어진 환경에서 적응하며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됐다. 덤프트럭만큼 공기가 짓눌러도 아무렇지 않다. 그렇다보니 인류는 공기에 무게가 있고 이 때문에 상당한 크기의 압력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다. 처음 대기압의 존재를 증명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다.

토리첼리는 수은이 가득 담긴 큰 용기 위에 유리관을 거꾸로 세우면, 수은 기둥이 생긴다는 걸 보였다. 마치 누가 손으로 힘을 줘 용기 속의 수은을 아래로 누르고 있듯이 말이다. 토리첼리는 이것이 지표면을 누르고 있는 대기압 때문이란 걸 알아차렸다(PLUS 참고).

‘진공의 존재’도 토리첼리의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유리관에는 수은 기둥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 있다. 유리관을 세우기 전에는 수은으로 채워져 있던 부분이다. 공기나 다른 물질이 들어갈 수가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수은으로 채워지지 않은 이 공간은 말 그대로 ‘빈공간’, 즉 진공이다.

당시만 해도 진공의 존재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의문이었다. ‘진공’은 곧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 비존재(非存在)를 뜻했다. “진공이 존재한다”는 말에서 ‘진공’을 같은 뜻의 ‘비존재’로 바꾸면 “비존재가 존재한다”는 모순된 결과가 나온다.

사람들은 이 모순을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진공을 철학적인 개념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토리첼리는 ‘진공’이 모순이 아님을 바로 눈앞에서 보여준 셈이다. 이렇게 압력이 도입된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1기압에서 물의 어는점과 끓는점 사이를 100등분한 것을 1℃로 하자는 국제적인 약속이 이뤄질 수 있었다.




19세기 들어 물리학자들은 일정한 압력에서, 기체의 부피는 온도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양한 기체를 이용해 실험을 한 뒤, 그래프를 더 낮은 온도까지 늘려보니, 모든 기체의 부피가 특정한 온도에서 하나같이 0이 된다는 점도 알게 됐다. 그 온도는 영하 273.15℃였다.

이 성질을 이용해 만든 온도가 바로 오늘날 국제적 표준 온도로 쓰이는 절대온도 켈빈(K)이다. 절대온도눈금으로 1K은 섭씨온도 눈금 1℃와 간격이 같다. 섭씨온도에 273.15만 더하면 정확히 절대온도가 된다. 즉, 1기압에서 물의 어는점은 273.15K이고, 물의 끓는점은 373.15K이다.

온도를 정하는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확한 어는점과 끓는점을 구하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물은 어떤 경우에는 0℃ 아래에서도 얼지 않는다. 100℃가 넘어도 한참 끓지 않을 때도 있다. 심지어 냉동실에서 얼지 않은 물병이, 뚜껑을 여는 순간 꽁꽁 얼어버리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1기압에서 물이 고체에서 액체로, 혹은 액체에서 기체로 변하는 현상이 불연속 상전이에 속하기 때문이다. 불연속 상전이는 액체와 기체, 고체 사이의 변화가 갑자기 불연속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불연속 상전이 예로는, 문방구에서 파는 액체형 손난로가 있다. 손난로 안의 액체는 평소에는 그 상태를 유지하며 안정적이다. 그러다 안에 들어있는 금속판을 손가락으로 딸깍하고 누르면 액체는 열을 내면서 고체 상태로 변한다. 일단 변하고 나면 계속 고체 상태로 남는다.


 

[토리첼리는 ‘대기압’과 ‘진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겨울철의 압력과 온도에서 손난로 안의 물질은 액체와 고체 두 상태로 모두 안정적이라는 뜻이다. 물론 고체상태가 액체상태보다 ‘더’ 안정적이긴 하다. 고체는 쉽게 액체로 돌아가지 않지만, 액체는 딸깍하고 금속판을 누르면 쉽게 고체로 변하니 말이다. 이런 상태를 물리학자들은 ‘준안정(metastable)’ 상태라고 부른다. 같은 압력과 온도에서 두 가지 상태 모두 안정적이니, 이런 물질의 어는 점을 정하기란 당연히 어렵다.

온도와 압력을 바꿀 때 물질이 어떤 상태에 있는 지 보여주는 그림을 물리학자들은 상 그림(phase diagram)이라 부른다. 그림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세 선이 만나는 삼중점(triple point)이다. 압력과 온도를 조절해서 물을 삼중점 위에 놓으면 물, 얼음, 그리고 수증기의 세 가지 상이 함께 공존한다.

물의 삼중점의 압력은 611.73Pa, 온도는 273.16K다. 1967년 이후로 국제 표준 온도 단위는 물의 어는점, 끓는점이 아닌, 물의 삼중점을 이용해 정의한다. 물의 삼중점의 절대 온도를 273.16로 나눈 것을 1K으로 하자고 약속했다. 이렇게까지 해도 문제는 남는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물이 증류수인지, 바닷물인지, 한강물인지가 확실하지 않다. 2005년 비엔나에 있는 국제 표준 해수의 삼중점을 기준으로 한다는 약속이 맺어졌다. 그런데 비엔나는 바다와 접하지 않은 도시고, 당연히 바닷물도 없다. 표준 해수를 약속한 다음에 비엔나까지 가져다 놓은 거다. 재밌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비엔나에 있는 표준 해수에는 소금이 없다. 표준 해수는 물을 이루는 수소와 산소의 동위원소 비율을 약속한, 순수하게 수소와 산소만으로 이루어진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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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한기
  •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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