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에는 없는 독특한 과학책! 과학출판사를 만나다 6 - 북스힐&이치사이언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10/464800716544f25b871d5f.jpg)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과정은 벼를 길러서 쌀밥을 짓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편집부 과장은 책 만드는 수고로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일러스트와 그림이 중요한 과학책은 더 많은 손이 간다는 얘기도 빼먹지 않았다. 옆에서 차를 우려내던 조 대표는 “지금은 많이 편해졌지만 그래도 책 하나 만드는 데 70번 이상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북스힐&이치사이언스가 걸어온 길도 비슷하다. 모내기와 추수를 거쳐 도정을 하고 밥을 짓는 것처럼, 과학전문출판사로 16년 동안 깎고 거두면서 책 한 권 한 권을 만들어 왔다. 출판사 이름을 가장 먼저 알린 것은 ‘대학교재 시리즈’였다. 기자도 학부시절 공부한 ‘써웨이(Serway) 일반물리학’이 바로 출판사의 개국공신이다. 수학이나 다른 과학 분야 교재도 꾸준히 효자 노릇을 했다. 한국물리학회와 함께 제작한 ‘물리학 용어사전’처럼 당장의 이익보다는 긴 호흡으로 의미를 찾는 책도 만들어 왔다.
![북스힐&이치사이언스의 스테디셀러](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10/1822604051544f25eb9f7f7.jpg)
누구나 쉽게 과학과 친해지게 해보자
나름 자신감이 생기자 새로운 밥을 지어보기로 했다. 일반 대중을 위한 과학 입문서였다. 이 과장이 기자에게 제일 먼저 보여준 책도 ‘영화 속에 과학이 쏙쏙’이었다. 빛, 힘, 유전 같은 과학 개념을 영화를 통해 설명한 이 책은 처음 나온 2003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독자의 관심을 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중국과 대만으로 수출까지 했다. 하지만 야심차게 준비한 후속 시리즈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대중이 과학책에 갖는 관심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조 대표는 과학문화가 발달한 미국은 어떤지 살펴봤다.
미국 교사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한다는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이 눈에 들어왔다. 기존 박물관과는 달리, 현재 가장 활발한 과학 연구를 다루는 것이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의 특징이다. ‘과학책도 생생한 연구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시리즈가 ‘사이언스 101’이다. 물리, 화학 같은 기존 주제는 물론이고 기상학이나 법과학처럼 생소한 분야도 기초부터 탄탄히 다루고 있다는 것이 이 시리즈의 특징이다. 대중교양서이지만 대학교재로도 쓰이는 이유다. 특히 법과학은 마니아가 생길 정도로 인기가 많다.
가짜 동물에게 들인 정성
표지가 특이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코걸음쟁이의 생김새와 생활상’(이하 코걸음쟁이)이라는 책이었다. 표지에는 코끼리와 쥐를 섞어 놓은 듯 한 동물이 코로 서 있었다. 어떤책인지 묻자 조 대표가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말 아쉬운 책이에요.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책이 통할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코걸음쟁이’는 핵실험으로 생긴 ‘코쟁이류’라는 동물을 소개한 책이다. 재밌게도 10여 종에 달하는 이 동물은 모두 ‘가짜’다. 하지만 책 어디서도 이 사실을 눈치 채기 힘들 만큼 설명과 그림이 논리적이다. 이 책의 저자는 시와 그림에 조예가 깊은 독일의 동물 학자로, 자신의 전공과 취미를 살려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냈다. 번역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참고할 서적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번역자가 독일로 가서 직접 저자를 만나야 했다. 이렇게 정성을 들였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캐릭터로 배우는 재미있는 원소생활’도 그런 책 중 하나다. 이 책의 저자는 아예 비전문가인 일러스트레이터다. 주기율표의 원소를 하나의 캐릭
터로 표현해 한 눈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반도체에 쓰이는 규소의 경우 ‘사막에서 온 디지털 일꾼’이라는 이름과 함께 학사모와 청바지를 입은 사람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역시 생각만큼 반향은 없었다.
실패를 무릅쓰고 이런 책들을 왜 계속 만드는지 물었다. 이 과장은 “재밌지 않나요”라며 수줍게 답했다. 조 대표는 다양한 시각을 강조했다. 이
제는 과학책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과학 잡지를 만드는 기자에게도 생각해볼 점이 있는 이야기였다.
![북스힐&이치사이언스의 문제작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10/487888847544f25f32d3e5.jpg)
단풍이 들 듯 출판사도 달라진다
“처음에는 ‘수직한다’라는 말 자체가 이해가 안됐어요.” 대학시절 국문학을 전공한 이진경 과장은 신입사원 시절을 떠올리며 웃었다. ‘수직한다’
는 보통 ‘두 직선이 직각으로 만나다’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생소한 단어와 표현이 가득한 글을 가지고 저자와 부딪힌 적도 여러 번이었다. “이상한 애 하나가 들어왔다고 생각하셨을 거예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모난 돌이 둥글어지듯 이 과장도 달라졌다. 이제는 ‘브라운 운동’ 같은 단어도 자연스레 쓰는 사람이 됐다.
북스힐&이치사이언스는 요즘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달라진 시대의 파도는 출판사에 가장 먼저 찾아 왔다.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면 사람들이
책부터 안사고 그 중에서도 과학책이 먼저”라는 조 대표의 말이 기자에게도 아프게 다가왔다. 중국 진출도 이런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한 방편이다. 당장 성과는 없다. 책은 보냈는데 얼마나 팔렸는지 소식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저작권 개념이 희미한 것도 문제다.
조 대표는 과거 우리나라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는 외국에서 문화상품을 공짜로 우리에게 많이 줬어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니까 이게 다 저작권이 되더군요.” 문화가 한 번 스며들면 그 뒤에는 알아서 찾게 된다. 번역판이 잘 팔리지 않는 미국에 과학만화 시리즈를 출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화상품은 계속 퍼트려야 한다.
취재를 끝내고 나서는 기자의 눈에 불그레 변해가는 도봉산의 모습이 들어왔다. 새 잎이 나고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듯이 인생도 출판사도 변화는 피할 수 없다. 긴 호흡과 독특한 안목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북스힐&이치사이언스의 내일이 궁금하다.
![이진경 편집부 과장 추천도서](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10/123847497544f25fa2b72d.jpg)
![어떤 과한 책부터 읽을까?](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10/174015424544f26009833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