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야생담배의 매력에 빠지다 ➊ 사막에서는 방울뱀처럼 독 있는 동물을 모르고 밟는 불상사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선글라스나 이어폰을 끼고 걷는 건 금지다.



미국 중서부의 건조한 사막, 그레이트 베이신. 해마다 이곳에는 다양한 전공을 가진 과학자들이 모여 정성껏 밭을 일군다. 20여 년 전부터 사람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야생담배의 생존비결을 밝히기 위해서다. 혹한 환경을 견디며 연구에 전념하는 과학자들의 여정을 현장 연구자가 직접 소개한다.


➋ 야생담배로 불리는 니코티아나 아테뉴아타와 필자의 모습.

➊ 사막에서는 방울뱀처럼 독 있는 동물을 모르고 밟는 불상사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선글라스나 이어폰을 끼고 걷는 건 금지다.
➋ 야생담배로 불리는 니코티아나 아테뉴아타와 필자의 모습.




‘휴…, 내년에 다시 와서 실험해야겠구나….’


마지막 주였다. 다음 실험을 위해 바구미 애벌레를 찾아야 했다. 밭에서 잘 자라고 있는 1000여 개의 식물줄기를 다 조사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애벌레는 찾을 수 없었다. 다들 포기했다. 그런데 독일로 떠나기 전 마지막 날 오후, 누군가가 남겨놓은 야생담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서 살펴보니, 키가 굉장히 작았다. 실망감이 밀려 들었다. 바구미 엄마(암컷)는 자식을 위해 가장 크고 좋은 식물을 택해 알을 낳기 때문이다. 아무 기대 없이 삽질을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두 번째로 판 식물에서 바구미 애벌레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피곤함이 묻어나던 삽질소리가 경쾌한 리듬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5월 8일, 필자는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그레이트 베이신 사막에 가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필자가 속한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 연구팀은 매년, 건조한 사막기후에서 자생하는 니코티아나 아테뉴아타(Nicotiana attenuata)라는 식물을 연구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야생담배로 불리는 이 식물은 가지과에 속하는 일년생 풀이다. 약초도 아니고 맛있는 열매가 달리는 식물도 아니라서 그냥 잡초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약 20년 전 옛 동독 지역인 예나라는 작은 도시에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for Chemical Ecology)가 세워지면서 이 식물에 대한 현장연구가 시작됐다. 이 식물이 여러 곤충들과 맺고 있는 관계가 과학자들의 관심을 끈 것이다. 야생담배와 곤충의 상호관계는 식물의 진화와 생태에 대해 우리가 몰랐던 많은 정보를 줄 수 있다. 더구나 오랫동안 사람의 관심을 받지 못한 덕분에 오히려 본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사막의 경계 1호는 방울뱀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미국 라스베가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한낮이었다. 5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화려한 조명 빛을 잃고 민낯을 드러낸 라스베가스는 거대한 플라스틱 도시였다. 우리는 이 인공적인 도시를 통과해서 사막으로 향했다. 차로 이동하는 두 시간 동안 주변 풍경은 인공에서 자연으로 바뀌고, 우리도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준비한다.


사막에 도착하면 우선 텐트에서 야영할 준비를 한다. 컨테이너에서 잘 수도 있지만, 낮에 데워진 컨테이너 속 공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야영지에서 사용하는 전기의 대부분은 캠프 근처 언덕에 설치된 세 개의 태양전지판에서 얻는다. 용량이 작아 생각 없이 전기를 쓰면 밤에 불을 켤 수 없게 된다. 전기를 많이 먹는 전자레인지는 태양이 하늘 높이 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다. 인공위성을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하는데, 큰 파일 하나만 주고 받아도 2~3일 내내 인터넷 접속에 문제가 생긴다. 기본적인 차량 점검도 배워야 한다. 올해는 구멍 난 타이어를 혼자서 바꿔 끼우는 법을 배웠다.


당연히 음식 사 먹을 곳도 없다. 아침과 점심은 각자 해결하지만, 저녁은 당번이 정해져 있다. 자기 순서가 돌아오면 열 명 정도 되는 대식구를 먹일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다양한 국적의 연구원이 섞여 있기 때문에,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맛보고 배우는 것은 현장 연구의 작은 즐거움이다. 올해는 영국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인도 친구로부터 피자 만드는 법을 배웠다.


조심해야 할 것도 많다. 선글라스를 끼거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걷는 건 금지다. 방울뱀과 같이 독이 있는 동물을 모르고 밟고 지나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다. 특히 풀이 많거나 길이 아닌 곳을 걸어 갈 때는 온몸의 감각에 집중해야 한다. 이동할 때는 반드시 물
병을 들고 다니면서 수시로 물을 먹어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현기증을 일으키며 쓰러질 수 있다. 일기예보에 비소식이 있거나 타는 냄새가 나면 주변을 열심히 살펴야 한다. 마른 번개가 산불을 잘 일으키기 때문이다. 여권 등 중요 귀중품은 언제든지 손에 들고 있다가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 본격적인 연구는 농사부터 시작이다. 밭을 일궈 수시로 야생담배가 어떻게 자라는지 관찰한다.

▲ 본격적인 연구는 농사부터 시작이다. 밭을 일궈 수시로 야생담배가 어떻게 자라는지 관찰한다.


야생담배의 비밀은 ‘적과의 동침’


본격적인 현장연구는 농사부터 시작이다. 밭을 만들고 물을 주면서 수시로 야생담배가 어떻게 자라는지 관찰한다. 이렇게 정성을 모아도 결과는 하늘의 뜻에 달려있다. 어느 해에는 연구하려는 곤충이 우리 밭에 날아오지 않아 준비한 실험을 못하기도 했고, 심한 바람이 불거나 전염병이 돌아 키우던 식물이 죽기도 했다. 길게는 몇 년 동안 준비한 실험이 물거품이 되는 셈이다. 현장 연구를 할 때는 이처럼 자연이 주는 시련(?)을 빨리 파악하고 차선책을 찾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뜨거운 낮과 영하의 밤에서 살아가는 식물의 일생을 몸소 체험한다는 짜릿함에 매년 사막으로 향한다.올해도 이곳에서는 여러 가지 연구가 동시에 진행됐다. 대부분의 연구는 야생담배가 어떻게 사막의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지 좀 더 깊이 알고자 하는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뜨거운 온도가 괴로운 건 식물도 마찬가지다. 광합성의 에너지인 햇빛은 넘치도록 많지만, 뿌리가 흡수할 수 있는 물의 양을 조금이라도 잘못 계산하면 쉽게 말라 죽는다. 사막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 드물어 보이지만, 사실 몸을 낮추고 이 식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잎을 갉아먹고 있는 초식곤충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이런 곤충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것도 생존에 무척 중요한 문제다.


이곳에서 밝혀진 재미있는 연구를 하나 소개하자. 야생담배가 만들어 내는 니코틴은 원래 사람에게 중독을 일으키기 위한 게 아니라 메뚜기를 포함해 풀을 먹는 곤충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하지만 만두카 섹스타(Manduca sexta, 이하 만두카)라는 야생담배의 천적은 흡연가들이 흠모할 만한 탁월한 니코틴 해독 능력을 갖고 있어, 야생담배를 아주 잘 먹는다. 그렇다고 그냥 먹히고만 있을 식물이 아니다. 야생담배는 만두카의 침에 있는 특별한 물질(지방산-아미노산결합체)을 인식해서 자신을 먹고 있는 곤충이 메뚜기가 아니라 만두카임을 알아낸다. 그래서 니코틴 합성을 줄이고 다른 방어기작을 작동시킨다. 대표적인 것이 만두카를 먹는 곤충, 즉 만두카의 천적을 부르는 일이다. 바로 큰 눈을 가진 노린재과의 곤충(Big-eyed bugs)이다.



▲야영지에서 쓰는 전기 대부분은 세 개의 태양전지판에서 얻는다. 용량이 넉넉치 않기 때문에, 전기를 많이 먹는 전자레인지는 태양이 높이 떴을 때만 쓸 수 있다.

▲야영지에서 쓰는 전기 대부분은 세 개의 태양전지판에서 얻는다. 용량이 넉넉치 않기 때문에, 전기를 많이 먹는 전자레인지는 태양이 높이 떴을 때만 쓸 수 있다.


 
▲야생담배 잎을 먹는 만두카 애벌레. 천적이지만, 나방이 되고 나면 야생담배의 수분을 돕는 조력자다. 자연은 이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야생담배 잎을 먹는 만두카 애벌레. 천적이지만, 나방이 되고 나면 야생담배의 수분을 돕는 조력자다. 자연은 이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적의 적은 친구라 했던가. 만두카가 야생담배의 잎을 갉아먹기 시작하면 초록잎휘발성물질(Green leaf volatiles)이 나와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이 냄새를 맡은 노린재가 야생담배를 찾아와 만두카를 잡아먹는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노린재가 늦게 날아와 만두카가 성장해버리면, 작은 노린재가 만두카를 잡아먹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야생담배는 단백질분해 방해효소를 만들어 최대한 만두카의 성장을 늦추는 일도 동시에 하고 있다. 다른 친구도 있다. 야생담배가 만들어내는, 표면을 뒤덮은 투명한 방울처럼 생긴 조직을 먹은 만두카는 몸과 배설물에서 이상한 냄새를 풍기게 된다. 이 냄새를 맡은 개미는 어느새 식물의 줄기를 타고 올라와 만두카를 잡아간다. 만일 끝까지 만두카가 살아남으면, 최후의 수단을 쓴다. 잎에서 만든 영양분을 뿌리로 내려 보내는 것이다. 만두카가 잎을 다 먹고 사라지면, 뿌리로 보냈던 영양분을 이용해 새로운 잎을 만들고 꽃을 만들어 자신의 자손(씨앗)을 남기기 위한 활동을 다시 시작한다.


재미있는 것은 애벌레일 때 천적이었던 만두카가 다 자라 나방이 되면 야생담배의 꽃가루를 멀리 있는 다른 꽃에 묻혀 수정을 도와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주로 밤에 날아다니는 만두카 나방을 유인하기 위해, 야생담배의 꽃은 벤질아세톤(Benzylacetone)을 포함한 다양한 향기 물질을 밤에 내뿜고 영양분이 듬뿍 담긴 꿀을 만들어 둔다. 또 나방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낮에는 꽃의 입구를 땅으로 향하게 했다가 밤에는 하늘을 향하게 한다.


어떻게 야생담배는 시간에 맞춰 이런 준비를 하는 것일까? 이런 시간대를 인위적으로 바꾸면 수정에 어떤 문제가 생길까? 필자는 지난 3년간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사막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하지만 올해도 우리밭으로 나방이 많이 날아오지 않아서 내년을 기약해야 했다. 한 해 농사를 끝내면 좋은 열매를 얻기도 하지만, 여전히 확실한 답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야생담배는 낮에는 꽃의 입구를 땅으로 향하게 했다가(위) 밤에는 하늘을 향하게 한다(아래). 밤에 주로 날아다니는 나방을 유혹하기 위해서다. ▶해질 무렵에 찍은 그레이트 베이신 사막. 사막의 밤 풍경은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야생담배는 낮에는 꽃의 입구를 땅으로 향하게 했다가(위) 밤에는 하늘을 향하게 한다(아래). 밤에 주로 날아다니는 나방을 유혹하기 위해서다.
▶해질 무렵에 찍은 그레이트 베이신 사막. 사막의 밤 풍경은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좀처럼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동물인 길라몬스터. 2년 전 만난 사막의 신비다.

▲좀처럼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동물인 길라몬스터. 2년 전 만난 사막의 신비다.



 
▲헤드램프 불빛에 의존해 밤샘 실험을 하다보면, 크리스털 보석처럼 반짝이는 거미 눈과 도깨비불 같은 사슴의 눈빛을 만나게 된다.
헤드램프 불빛에 의존해 밤샘 실험을 하다보면, 크리스털 보석처럼 반짝이는 거미 눈과 도깨비불 같은 사슴의 눈빛을 만나게 된다.


사막의 밤엔 도깨비불이 둥둥 떠 있다


요즘 과학계는 마치 유행처럼 융합을 말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분야의 과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하나의 질문을 놓고 연구할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드물다. 그런데 이곳 그레이트 베이신 사막에서만큼은 생태학자, 분자생물학자, 분석화학자 등 다양한 전공의 과학자들이 매년 함께 어울리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


필자는 자연 그 자체가 주는 매력에 답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유독 밤샘 실험이 많아, 밤에 숙소에서 야생담배를 키우는 밭까지 걸어갈 일이 많았다. 오로지 헤드램프 불빛에 의존해 걷는데, 사막의 밤 풍경은 낮과는 전혀 달랐다. 땅을 보면서 걸었더니 반짝거리며 움직이는 크리스탈 보석을 볼 수 있었다. 거미 눈에 불빛이 반사돼 나온 것이었다. 먼 곳을 바라보자 사람 키 높이에서 둥둥 떠다니는 도깨비불도 눈에 띄었다. 밤을 틈타 숙소 근처에 있는 풀을 먹으러 내려온 사슴의 눈빛이었다. 보름달이 떠 있으면 달빛 때문에 사람과 나무의 그림자가 생길 정도로 환하고 달빛이 사라지면 은하수라고 불리는 별들의 강을 보면서 걸을 수 있다.


2012년에 왔을 때도 신비로운 자연에 감탄한 적이 있다.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다급하게 사람들을 불렀다. 가서 보니, 길라몬스터라고 불리는 커다란 도마뱀이었다. 20년 넘게 그곳에서 연구한 교수도 본 적이 없다는, 좀처럼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동물이었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데다 독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지만, 한낮에 나타난 길라몬스터는 귀여운 인형처럼 사진기를 든 우리들에게 멋진 모델이 돼주었다. 그날 이후로 길라몬스터는 필자의 단골 이야깃거리가 됐다.


숨쉬기도 힘들 정도의 뜨거운 낮과 가끔 영하로 떨어지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식물의 일생을 몸소 체험한다는 것, 예상할 수 없는 곤충의 공격에서 자신을 방어하고 살아가는 식물을 본다는 것,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수십, 수백km를 날아와 식물의 수정을 도와주는 나방을 직접 만난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전공에 상관없이 야생 담배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사막에서의 생활은 자연을 알고 싶어하고 준비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필자와 동료들은 내년에도 야생담배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4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우아영 기자
  • 김상규
  • 사진

    김상규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환경학·환경공학
  • 화학·화학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