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아침사용설명서

생각해보면 등교 시간이 조금 빠르긴 하다. 대학교에서도 어지간한 수업은 9시, 혹은 9시 30분에 시작하고, 회사는 ‘9 to 6’,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한다. 오직 학교만 9시 이전에 가야하는 셈이다. 8시 반까지 등교하던 수많은 학생들이 아침에 최소 30분 여유가 생겼다. 이 여유가 얼마나 큰지 경험해 본 사람은 다 안다.


9시 등교가 시작된 뒤 오전 8시30분 쯤의 교실, 학생들의 아침 시간이 여유로워졌다.


아침이 여유로우면 하루가 편안하다


9시 등교가 시작된 지 약 한 달, 찬성하는 사람들은 아침 시간이 여유로워졌다고 말한다. 학부모들은 침대에서 꾸물거리며 나오지 않던 자녀가 스스로 일어나고, 알아서 가방을 챙겨 학교에 간다고 말한다. 학생들도 제대로 차린 아침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는 의견이다.


보건복지부가 매년 발표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남학생은 4명 중 1명이, 여학생은 3명 중 1명이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다. 아침 식사가 중요하다는 것은 굳이 최신 연구 결과를 들고 오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다. 점심, 저녁의 폭식을 막아 비만 예방에 도움을 준다는 점은 성공적인 다이어트를 위한 기본상식이다. 밤새 에너지를 소비하고 굶은 뇌에 포도당을 공급해서 머리를 맑게 한다는, 오전 수업에 도움되는 이유도 있다. 올해 1월 미국 아칸소주립대 테라 피빅 교수팀이 아침 식사를 할 경우 뇌를 조금만 써도 수학 문제를 쉽게 풀었다는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쉴새없이 꼬르륵거리는 배고픔을 참지 않아도 돼 위염을 예방하거나, 아침과 점심 사이에 간식 먹는 것을 막는 것은 덤이다. 수명이 더 길어진다는 연구는 식상하니 넘어가자.


무엇보다 아침 시간이 여유로울 경우 가장 달라지는 것은 ‘장이 편안한 하루’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밤새 음식을 소화시키고 몸에 쌓인 노폐물을 내보내는 ‘대장’ 말이다. 음식물을 소화하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린다. 밥과 같은 탄수화물은 2~3시간, 콩과 고기로 대표되는 단백질은 4~5시간이다. 지방은 무려 7~8시간이 걸린다. 당연히 전날 저녁 식사는 자기 전까지 모두 소화되지 않는다. 이를 아침에 빼내야(?) 하는데, 상쾌한 배변을 위해서는 위장에서부터 시작하는 배변반사가 필요하다.


배변반사는 몸이 음식물을 감지해 장을 운동시키는 작용이다. 위에 음식이 들어간 뒤 약 15분 뒤부터 소장, 대장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식후 30분은 쾌변을 위한 골든타임’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잠시 쉰 뒤 이 ‘골든타임’에 쾌변을 보고 학교에 간다고 생각해보자. 속이 편안해야 하루가 편안하다는 말이 실감된다.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학교 화장실에서 냄새나 소리가 날까봐,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배변을 시도하다 실패하거나 중간에 끊길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9시 시대, 틈새 시간에 무엇을 하면 좋을까



쾌변형, 목용형



스포츠맨형, 학구형


올바른 수면을 위해 9시 등교는 중요하다


9시 등교가 시작된 뒤, 많은 학생들이 ‘아침에 억지로 안 일어나니 학교에서 졸지 않아서 좋다’는 의견을 남겼다. 아침에 30분 더 자는 것이 얼마나 꿀맛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기자만 해도 휴대폰 알람이 15분 간격으로 4개쯤 맞춰져 있으니까. 그러나 어른들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아이가 일어나기도 전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회사 갈 준비를 하는 아빠와 엄마는 아이에게 ‘아침잠이 너무 많다’라든가 ‘부지런하지 못하다’고 핀잔을 주기 일쑤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정 피곤하면 점심시간에 잠깐 자라고 조언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 억울하다. 청소년 때 아침잠이 많아지는 이유는 30년 전에 밝혀졌기 때문이다.


밤에 잠이 오는 것은 빛과 관련된 호르몬인 ‘멜라토닌’ 때문이다. 주변이 어두워지면 이 호르몬이 나와 잠을 유도한다. 처음 태어난 아기가 시도 때도 없이 자는 것은 이 호르몬 때문이다. 멜라토닌은 성장할수록 낮에는 잘 분비되지 않는다. 청소년기가 되면 멜라토닌 분비가 일시적으로 바뀐다. 2차 성징과 함께 각종 호르몬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멜라토닌은 다른 나이대보다 2시간가량 늦게 분비된다. 당연히 잠도 2시간 늦게 온다. 2시간 늦게 자면 2시간 늦게 일어나는 수밖에. 이 패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점점 수면주기가 어그러진다. 낮에 졸고, 거꾸로 밤에 잠이 달아나는 것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낮에 잠깐 눈을 붙이는 것은 어떨까. 기자가 학교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고, 졸리면 점심시간에 잠깐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라’였다. 독자 여러분은 알 것이다. 저게 얼마나 불가능한 말인지. 미국 국립수면재단에서 권장하는 낮잠은 30분에서 1시간 이하다. 시간적으로 점심시간은 낮잠을 자기에 좋은 때이긴 하다. 총알같이 점심을 먹고(20분), 양치질을 하거나 잠시 소화를 시킨 다음(10분), 한숨 자는 것(30분)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 학교의 점심시간은 제대로 잘 수 있는 환경인가. 아이들이 자유를 만끽하는 소리로 가득한 시간이 아니었던가. 자세는 어떤가. 점심을 먹고 난 직후, 책상에 엎드리면 위가 압박 되면서 속이 더부룩하고 계속 트림만 나온다. 운좋게 잠들었다고 하더라도 깊은 잠을 자긴 어렵다.


어설프게 자다가 수업시간이 되어서 깨어난다고 해도 비몽사몽, 다시 졸기 마련이다. 마치 4시간 일하고 15분씩 잤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수업은 제대로 못 듣고, 잠도 제대로 못 잔다. 잠의 질이 떨어지면 뇌도 수축한다. 영국 옥스퍼드대 클레어 섹스턴 교수는 신경학회지 올해 9월호에 ‘수면 질이 좋지 않으면 뇌 부피가 빠르게 줄어든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잠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수면 유지가 안 되는 사람일수록, 나이를 먹으면서 뇌의 전두엽과 측두엽, 두정엽의 회색질이 빠르게 위축된다는 연구다. 수면 부족으로 생기는 우울증이나 비만 유발 같은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9시 등교가 과연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가능성은 높다.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올해 3월 9000여 명의 학생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등교 시간을 늦추는 것은 학교생활에 꽤나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청소년 권장 수면 시간인 8시간을 자는 학생이 16.4%에서 54.7%로 뛰어올랐다. 수업 시간을 좀먹으며 쪽잠을 반복해서 잘 이유가 없어졌다. 이 때문에 학업 성취도가 올라갔고, 우울증 증상과 카페인 섭취가 줄었다. 우리나라와는 크게 연관이 없지만 알코올 섭취량과 교통사고 발생률도 낮아졌다.


아침 운동과 목욕이 동시에 가능하다


숙면이 중요하다는 연구가 나와서 말인데, 샤워 시간대도 숙면에 중요하다. 더운 물로 샤워하며 몸을 덥히면 혈액 순환이 원활해져 뇌가 각성된다. 뇌가 각성하면 당연하게도 잠이 달아난다. 이 때문에 더운 물 샤워는 잠들기 두 시간 전에 하라는 조언이 나왔다.


아침 샤워와 저녁 샤워 중 어느 쪽이 몸에 좋은지는 아직도 논란이다. 밤에 하루 동안 외부에서 쌓인 먼지와 안 좋은 물질을 씻어 낸 뒤 기분 좋게 자야 한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아침에 샤워를 해서 빠르게 잠을 깨는 게 좋다는 것도 사실이다. 밤새 부스스하게 변한 머리를 정리할 수도 있고.


여기서는 아침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을 제안하는 만큼 아침 샤워를 제안한다(둘 다 해도 전혀 문제없다). 아침에 가볍게 운동을 한 뒤 샤워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하는 방법이다. 운동 직후에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되고, 운동하면서 흘린 땀도 씻어낼 수 있다.


잠깐, 아침 운동은 몸에 좋지 않다고? 아침 운동이 몸에 좋지 않다는 속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밤새 차갑게 식어 안정된 공기가 지표 가까이 가라앉기 때문에 해가 뜬 직후에는 오염된 공기를 마시며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폐와 기관지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아침에 운동을 해도 크게 상관없다.


다이어트를 위해서라면 30분가량 무산소 근력 운동을 한 뒤 달리기나 줄넘기 같은 유산소 운동을 해야 하지만 아침엔 시간이 짧다. 하루를 즐겁고 편안하게 보내기 위해서 15~30분 정도 가벼운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뇌 혈류량을 올려 휴식에 빠졌던 뇌를 깨울 수 있다. 올해 4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연구팀은 유산소 운동이 언어 능력과 기억력, 학습 능력과 관계가 깊은 뇌 부위인 ‘해마’의 부피를 늘린다는 연구를 스포츠 관련 학술지에 발표했다. 잠든 뇌도 깨우고, 학습 능력도 발달시킬 수 있는 1석 2조 활동인 셈이다.


숙면-운동-샤워-식사-쾌변으로 시작하는 하루, 사람에겐 당연히 필요한 조건이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도 학업이 중요한 우리나라 학생들은 그동안 보장받지 못했다. 이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전북 교육청은 10월부터 9시 등교를 시행할 예정이며 서울과 광주, 제주 교육청도 9시 등교에 대한 의견 수렴에 나섰다. 미국에서는 등교 시간을 바꾸는 것이 학생을 얼마나 드라마처럼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줬다. 이제 우리가 보여줄 차례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4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오가희 기자

🎓️ 진로 추천

  • 교육학
  • 심리학
  • 의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