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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역사 흔들 대발견을 꿈꾸다

오지로 간 과학자들 ➋ 그들이 고비사막으로 간 까닭은


지난 8월 11일부터 17일까지 몽골 남동부 고비사막에서 이뤄진 공룡 발굴 현장에 동행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과 일본 홋카이도대, 몽골학술원 등이 주축이 된 한일몽골 국제공룡탐사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공룡뼈라고는 평생 얇은 뼛조각 한 번 발견해본 적 없었지만, 연구자들과 함께 9000만 년 전의 땅을 밟고 파내다 보니 땅 속에 웅크린 공룡의 모습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가슴 뛰었던 여정을 소개한다.


처음엔 잘 눈에 띄지 않았다. 손가락 마디 두 개 정도 되는 크기에 짙은 갈색을 띤 얇은 돌 하나가, 주위에 흩어진 다른 사암 조각처럼 땅에 비죽 솟아 있었다. 하지만 주워보니 단면이 달랐다. 스펀지를 자른 것 같이 무늬가 가득했다. 뼈 화석이 확실했다. 전율이 일었다. 가져온 송곳으로 조심스럽게 주변을 파기 시작했다. 주운 것과 연결되는 다른 뼛조각이 나왔다. 이어 손톱만한 다른 조각. 그렇게 모두 네 조각의 뼛조각을 파냈다. 지난 8월 13일, 몽골 고비사막에서 기자가 생전 처음으로 공룡의 화석을 발굴한 순간이었다.

마침 옆을 지나던 이융남 지질박물관장에게 보여주니 조각류 공룡의 얼굴, 그 중에서도 뺨을 이루는 뼈의 조각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얼굴뼈는 얇아 화석이 되기 힘들기 때문에 귀합니다.” 장한 발견을 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뿌듯했다. 하지만 이융남 관장은 “지표에 얕게 묻혀 있던 화석이라 학술적 가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확한 발굴 지층을 알 수 없고, 물에 쓸려 내려왔을 가능성도 있어 출처도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근본 없는’ 뼛조각은 그대로 버려진다. 한국이었다면 대서특필됐을 텐데.... 화석을 두고 돌아오면서, 고비사막이 얼마나 ‘공룡 연구의 천국’인지 실감했다.

공룡은 쉽사리 몸을 보여주지 않았다. 여러 명이 달려들어 곡괭이질과 삽질을 한 뒤에야 서서히 몸을 드러냈다.
사막 아래의 구슬땀도 연구 과정의 일부다.


화장실? 그게 뭐야?

한국일본몽골 국제공룡탐사 프로젝트에는 한국에서는 이융남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장과 이항재 지질박물관 연구원, 그리고 자비를 들여 참가한 일반인 7명(고비 공룡 서포터스) 등 모두 12명이 참여했다. 일본은 타조공룡 전문가인 홋카이도대 종합박물관의 고바야시 요시쓰구 교수와 대학원생, 일반인 탐사자 등 9명이 참여했고, 몽골은 몽골학술원 고생물학센터의 연구원과 현장 지원인력 등 10명이 참여했다.

처음 해보는 화석 발굴은 꽤 힘들었다. 먼저 발굴지가 상상 이상의 오지였다. 이미 관광지로 개발된 화석지에 가서 화석 캐는 시늉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우리가 간 발굴지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차로 여덟 시간을 간 뒤 다시 사막의 비포장도로로 두 시간을 더 가야 하는 곳이었다. 짧은 풀만 듬성듬성 난 사막에, 인공물이라고는 우리 발굴팀이 친 텐트뿐이었다. 차로 어느 사방을 가도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가 베이스캠프를 차린 동고비사막은 그나마 덜 오지였다. 이항재 연구원은 “(더 많은 발굴 작업이 이뤄졌던) 남서부 고비사막은 가는 데만 최소 2박 3일이 걸린다”며 “차가 고장나 5박 6일 동안 꼬박 이동만 한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문명이 머니, 생활도 불편해졌다. 화장실은 사막을 조금 판 뒤 천으로 뒤와 옆을 대충 가린 것 하나가 전부였다. 문도 없이 대자연을 향해 활짝 열려 있었다. 끝도 없이 먼 지평선이 엿보는 기분이 들었다. 당연히 이용률은 높지 않았고, 모두들 때가 되면 삽을 들고 언덕 너머로 슬그머니 사라졌다가 나타나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일주일을 참았다. 물은 아침저녁으로 제공되는 물탱크의 몇 바가지로 30여 명이 나눠 써야 했다. 사막의 열기에서 노동을 하고 돌아와도 제대로 씻을 수 없었다. 상당수는 5일 동안 한번도 머리를 감지 않았고, 샤워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불가능했다). 이 박사는 “그나마 지금은 많이 좋아진 것”이라며 “처음 고비사막에 온 1996년만 해도 말똥을 모아 태워 밥을 지어먹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런 사막에서도 삶은 계속됐고, 발굴은 꾸준히 이어졌다. 아침 여덟시 반이면 어김없이 발굴지로 ‘출근’했고, 저녁 일곱 시면 텐트로 ‘퇴근’했다. 발굴은 낭만적인 작업이지만, 작업 하나하나는 낭만과는 거리가 먼 고된 노동이었다. 열사의 언덕을 오르내리며 눈이 빠져라 뼛조각을 찾거나, 이미 찾은 화석을 곡괭이와 삽, 전동 굴착기를 이용해 발굴했다. 무른 곳도 있었지만 망치로 여러 번 내려쳐야 겨우 홈이 파일 만큼 단단한 곳도 있었다.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채 오전 네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점심시간이었는데, 이미 군대에서 유격훈련을 했을 때보다 더 지쳤다.

“그래도 여긴 발굴이 손쉬운 편이에요. 보세요. 땅이 이렇게 부드럽잖아요?” 이융남 박사가 말했다. 이곳의 지층은 약 9000만 년 전인 후기 백악기의 전기 지층이다. 누런 이암이 주로 있고 중간중간 짙은 갈색의 사암층이 박혀 있다. 우리가 주목한 부분은 이암층이었다. 송곳을 꽂으면 몇 cm 정도는 쉽게 들어갔고, 망치나 곡괭이로 내리치면 달걀만한 조각으로 쉽게 부서졌다. 이 지역은 대륙의 한가운데에 있어서 지층이 안정적으로 보존돼 있었고, 구불구불 휘거나 기울어진 곳도 없었다. 화석 역시 잘 남아 있었다. 그런 지층이 비바람에 닳아 여기저기 드러나 있는 데다 식물마저 없다. 부드럽기까지 하니, 이보다 더 좋은 발굴지가 또 있을까 싶었다. 물론 단지 발굴하기 좋아서 몽골에 간 것은 아니다. 학술적으로 의미가 크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마지막 날 울란바타르의 고생물학센터에서 우연히 만난 세계적인 공룡학자, 캐나다 앨버타대 생명과학과의 필립 커리 교수는 고비사막과 북미 공룡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에 주목하고 있다. 이융남 박사도 “북미 공룡 대부분이 아시아 대륙에 기원을 두고 있다”며 “진화 과정을 연구하기에 고비사막은 최적의 발굴지”라고 말했다.
 

 베이스캠프에서의 아침. 각자 발굴 도구를 챙겨 들고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주변 반경 수십km 안에 인공물이라고는 우리의 캠프뿐이었다.

 


군대 작전 같은 석고재킷 만들기

기자는 첫째 날과 셋째 날에, 발굴단이 작년에 발굴하다 만 용각류(목긴공룡)의 골반뼈와 허벅지뼈, 척추뼈 발굴 현장에서 일했다. 지난해 비죽 나온 뼛조각을 보고 아래로 파 들어가니 온전한 용각류 화석이 나왔다고 했다. 일부는 작년에 발굴해 몽골고생물학센터에 가져갔고, 남은 부분을 올해 발굴하는 중이었다. 허벅지뼈는 길이가 1.5m로 몸 전체 길이는 약 15~20m로 추정됐다. 이 관장은 “이 지역에서 용각류 공룡이 나온 적이 없어 신종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중간중간 질문하고 사진 찍는 시간을 제외하곤 모조리 삽과 망치, 송곳으로 발굴을 했다. 삽은 부순 돌조각을 퍼나르는 데 썼고, 망치와 송곳은 화석이 있는 뼈 주위를 살살 부수는 데 썼다. 삽질은 숨가빴고 송곳질은 세심했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전혀 알 수 없이 뒤엉켜 있던 뼈들이 점차 본래의 형태를 찾아갔다. 조각가와는 또다른 보람이 느껴졌다. 뼈가 점차 본래의 형태를 찾을 때의 신비로움이란!

골반뼈와 척추 화석이 뒤섞인 돌은 꽤 거대했다. 가정에서 쓰는 4인용 식탁보다 조금 작은 크기였다. 발굴팀은 골반뼈 일부를 분리해 따로 석고재킷을 만들었다. 석고재킷은, 석고 붕대(깁스)처럼 화석을 석고로 감싼 것이다. 먼저 화석을 깨끗이 정리한 뒤 종이나 은박지로 감싼다. 이어 석고가 발라져 있는 붕대에 물을 부은 뒤 화석을 감아 굳힌다. 큰 화석은 직접 물에 석고가루를 넣어 갠 뒤 마로 만든 성긴 천에 적셔 화석에 감는다. 발굴팀이 석고 개는 법을 배워 직접 제작을 시도했는데, 석고가 금세 굳어 쓰지도 못하고 버렸다. 건조한 날씨 때문에 석고는 정말 순식간에 굳었다. 그래서 이 작업은 특히 촌각을 다투며 이뤄졌다. 마치 군대 작전 같았다. 발굴팀은 이틀에 걸쳐 크고 작은 석고재킷 다섯 개를 만들고, 장골(엉덩뼈) 등 가장 덩어리가 큰 부위는 석고재킷을 만들기 직전단계까지 처리할 수 있었다.
 

발굴한 화석을 이융남 지질박물관장이 살펴보고 있다.
화석은 상태가 매우 좋았지만, 그래도 몇 군데 갈라진 곳이 있어 접착제로 붙였다.


발굴의 즐거움이 고생을 압도해

발굴 작업의 또다른 묘미는 새로운 화석을 찾는 일명 ‘화석 사냥’이다. 눈썰미가 좋은 고생물학 연구자들은 답사를 통해 화석이 많이 나올 지역을 고른 뒤 그곳을 샅샅이 뒤진다. 이 과정에는 아마추어 발굴팀의 활약도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몇 년 전에는 일본 아마추어 팀에서 중요한 공룡 알 화석을 처음 발굴하기도 했다. “언덕을 기어올라 고개를 드니 바로 아래에 둥근 원이 여러 개 보였어요. 마침 전날, 동행한 고바야시 교수에게 공룡 알에 대해 설명을 들은 참이었죠. 얼른 고바야시 교수를 불렀어요.”

일본 히로시마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키요시 토모미 씨는 2011년, 올해의 베이스캠프에서 약 6km 북쪽에 위치한 지층에서 공룡의 둥지와 알 화석을 발견했다. 붉은 이암이 가득한, 일명 ‘레드베드(red bed)’라는 지층이었다. 이후 발굴팀은 21개의 알 둥지를 확인했다. 고바야시 교수는 “이곳에 약 60개 정도의 알 산란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의 공룡알 집단산란지다. 키요시 씨는 고생물학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과학에 관심이 많아 평소에는 지역 화석 연구회에서 고래에 대해 연구하고, 여름이면 고비사막에 와 화석을 발굴한다. 이곳에 온 것만 벌써 여섯 번째다. “정말 짜릿했어요. 박물관에서 보는 복원된 알은 길쭉한 공 모양인데(수각류 공룡의 알은 대개 길쭉하다), 제가 본 건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냥 바닥에 원이 여러 개 그려진 듯한 모습이었어요. 아닐까 맞을까 고민했는데, 맞다고 밝혀지니 정말 기뻤죠.”

키요시 씨의 발견은 이융남 관장과 고바야시 교수팀이 2년여에 걸쳐 연구한 끝에 작년 말 미국척추동물학회지에 발표됐다. 이 알은 수각류지만 육식을 포기한 ‘테리지노사우루스’ 류의 알로 추정됐다. 알 껍질 단면을 세밀하게 확대해 비교해 본 끝에 내린 결론이다. 연구가 이뤄지는 동안 키요시 씨는 발견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했다. 논문에도 발견자로서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 화석을 소유할 수도 없고(몽골에서는 화석 반출이 금지돼 있다), 돈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마냥 즐겁고 신이 나 있다. 왜일까. 화석 발견의 즐거움과 기쁨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여름휴가를 뜨거운 사막에서 보내는 사람이 일본에는 꽤 있다. 고바야시 교수는 “1996년부터 일반인 참가자가 탐사에 함께 해 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발굴단의 카미무라 히데오 씨는 올해로 17년째 발굴에 참여하고 있었다. 카메라 업체에 근무하는 회사원 테라타 쓰토무 씨 역시 6번째로 참가했다. 전문 업체도 있다. 몽골 탐사 전문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다카하시 이사오 일본 고비서포터스 대표는 “20년째 약 10명의 일반인 화석 탐사객을 몽골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점심시간에도 교수와 모여 앉아 토론 하거나 발굴을 중단하지 않을 정도로 진지한 학구열을 보여줘 인상적이었다.

베이스캠프에서 약 6km 북쪽에 위치한 발굴지. 2011년 이곳에서 일본 발굴팀은 테리지노사우루스류의 알 집단산란지를 발굴했다. 원시 각룡류 야마케라톱스가 위석을 지닌 화석도 작년에 발견했다.


각양각색 공룡 애호가의 사연

한국은 작년에 처음 이런 기회가 열렸다. 지질박물관에서 작년부터 모집을 시작한 ‘고비 공룡 서포터스’ 프로그램이다. 작년 6명에 이어 올해 뽑힌 7명의 참가자는 이 관장과 이항재 연구원, 그리고 일본 및 몽골 연구자들과 함께 4일간 발굴, 화석 사냥 등 실제 발굴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물론 자비로 온 것이다.

기자는 평소 스스로를 과학을 몹시 좋아하는 과학 애호가로 자부한다. 그런데 이번에 참여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과학과 과학문화에 대한 ‘내공’이 엄청난 사람들이 모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고 있는 일이나 배경은 다 달랐다. 하지만 공룡에 대한 관심과 애정만은 공통이었다. 2년째 참여한 박진영 전남대 한국공룡연구센터 연구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공룡 애호가다. 주전공은 도마뱀 화석이지만, 최신 공룡 연구에 소상하다. 일본에서 공룡 전시가 열린다는 말에 전시 사진을 찍으러 당일치기로 다녀올 정도로 열성적이다.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하는 이규현 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고향인 경남 진주 일대에서 화석을 찾아다닌 화석 영재다. 이 씨는 올해도 가장 먼저 수각류 공룡의 이빨 화석을 찾는 등 빼어난 화석 사냥 실력을 선보였다. 이 씨는 과학동아와도 인연이 깊다. 2년 전 고등학생 시절, 과학동아에서 주최한 캐나다 공룡화석지 탐방 프로그램에 선발돼 화석을 보러 간 적이 있다.
 
탐험가 문경수 씨가 베이스캠프 남서쪽 12km 지점의 지층에서 화석 파편을 발굴하고 있다. 지표에 드러난 공룡 화석 파편은 쓸려왔을 가능성이 커 학술적 가치가 적다. 발굴 며칠만에 어지간한 공룡뼈 화석은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됐다.

➊ 이융남 관장이 발견한 거대한 발자국 화석을 몽골학술원 고생물학센터 이뜨레쌔홍 연구원이 차량까지 옮기고 있다.
➋ 발굴팀 송정현 씨가 용각류 골반뼈 화석을 발굴도구로 세심하게 발굴하고 있다.
➌ 울란바타르의 고생물학센터에서 우연히 만난 공룡연구의 대가 캐나다 앨버타대 필립 커리 교수. 그도 고비사막 화석의 중요성 때문에 거의 매년 몽골에 온다. 미니인터뷰는 과학동아 디지털매거진에 있다.


 
이강영 경상대 물리교육과 교수는 이론물리학자지만 “어려서 공룡에 대해 읽고 상상하면서 과학에 대한 꿈을 키웠다”며 “그 꿈을 좇아 탐사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지질학과 물리학은 달라도 너무나 다르지 않느냐는 우문에 이 교수는 “모든 과학의 분야는 한 곳에 모인다”는 현답으로 응했다. 이정모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은 과학계의 마당발이자 과학 예찬론자다. 주변에 사람을 모으는 재주로 이번 발굴팀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몸을 사리지 않는 발굴도 인상적이었다. 기업가 정신 강연이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송정현 씨는 이번 발굴에서 가장 큰 성과를 올렸다. 경사 지층에서 거대한 공룡의 다리와 발바닥 뼈를 발굴했다. 잘 하면 내부에 온전한 몸이나 두개골이 나올 수도 있는 화석이었다. 이융남 박사는 “화석 발굴의 정석”이라고 평했다. 직장인인 조범기 씨는 먼 고비사막에 오면서도 천체망원경을 챙겼을 정도로 과학에 관심이 많다. 발굴팀은 덕분에 별빛이 쏟아지는 몽골의 밤하늘에서 달의 크레이터를 감상할 수 있었다. 서호주 및 과학 전문 탐험가인 문경수 씨 역시 세계의 천문학자 및 고생물학자와 교류하는 과학 애호가다. 역시 고비사막의 황량한 아름다움에 매혹돼 2년째 발굴에 참여했다.

어쩌면 이들보다도 더한 애호가는 이융남 관장과 이항재 연구원일 것이다. 이 관장은 국내에 공룡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던 시절 미국 유학을 단행했다. 그저 고생물학이 좋다는 게 이유였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했지만, 좋아하는 일을 찾아 과감하게 달려들었고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공룡학자가 됐다. 언제나 차분하고 세심한 이항재 연구원 역시 공룡 외길 인생을 사는 중이다. 기자는 넷째 날, 위석을 지닌 원시 각룡류 공룡인 야마케라톱스(몸 크기가 개 정도로 작다)의 화석을 함께 발굴하며 그의 발굴용 망치를 빌려 썼다. 그런데 망치가 무디고 불편했다. 알고 보니 대학 1학년 때 산 망치를 24년째 쓰고 있었다. 24년 동안 남들이 가지 않은 외길을 간 뚝심이 망치에서 묻어났다.

고생물학자에게 뚝심과 끈기는 기본 덕목일 것이다. 9000만 년을 한결같이 유지해 온 화석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게 임무니까. 오지의 화석 연구자들은, 어느덧 화석의 덕성을 닮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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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고비사막=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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