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치가 우리 생활과 가까운 새가 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까치 까치 설날은…” 이라며 명절을 노래할 때도 등장할까.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볼 수 있는 가장 친근한 새지만,
똑똑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조류계의 영장류’라는 사실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너무 친숙해 오히려 잊고 지낸 까치의 인지 능력과 기억력, 생태를 알아보자.
필자는 1998년부터 까치를 연구하고 있다. 처음에는 밖에서 야생 까치를 관찰하는 방법으로 연구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거리에서 오랫동안 바라만 보고 있어도 까치는 휘릭 도망가버리곤 했다. 반면 쳐다보고 있지 않을 때에는 1m도 안 되는 거리에 있어도 사람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까치가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지 아닌지를 멀리서도 알아채고 그에 따라 반응을 보인다는 뜻이다. 이렇게 ‘수줍은’ 까치를 야생 상태에서 관찰만 해서는 그들의 일상을 면밀히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다 2007년 까치를 직접 기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까치의 진면목이 보이기 시작했다. 까치는 필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흥미진진한 행동 역시 서슴지 않고 보여주게 됐다. 어떤 동물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은, 역시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같이 지낸 뒤에야 가능한 것이다.

까치는 당신이 1시간 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까치를 관찰해 봤다면 누구나 한번쯤 봤을 행동이 있다. 먹이를 감추는 행동이다. 숨길만 한 먹이를 발견하면, 까치는 먹이를 입에 물거나 턱 밑 주머니에 넣고 자기의 영역 중 특정한 장소에 간다. 그런 뒤 부리로 구멍을 파 먹이를 숨기고(아래 사진), 나뭇가지나 나뭇잎, 돌멩이 등으로 덮는다. 물론 나중에 찾아먹으려고 하는 행동이다.
과학자들은 이 과정에서 까치가 과연 자신이 숨긴 장소를 기억하는지 의심했다. 그저 자기 영역을 주기적으로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숨겨둔 먹이를 찾아 먹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야외에서는 까치가 잔디밭을 걸어 다니며 여기저기 쪼아보다가 먹이를 발견하는 일이 자주 있다. 더구나 까치가 숨긴 자리는 사람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쪽같다. 야외에서 먹이 숨기는 모습을 뻔히 관찰하던 필자가 곧바로 달려갔는데도, 숨긴 자리를 찾지 못하고 포기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람도 찾지 못하는데 과연 까치가 기억하고 찾을 수 있을까.

놀랍게도, 까치는 자기가 먹이를 숨겨둔 장소를 정확하게 기억한다. 한번은 기르던 까치에게 알루미늄 호일로 작은 공을 만들어 준 적이 있다. 까치는 먹을 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신기해 보이는 물건도 숨기는 습성이 있는데, 아니나다를까 이 녀석은 호일 공을 물고 가서는 창가에 있던 신문지 밑에 숨겼다. 그리고는 호일공에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15분쯤 지났을까. 아까와 똑같은 재질과 크기의 호일공을 다시 만들어서 줘봤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호일공을 물지 않고, 아까 호일공을 숨겨뒀던 창가로 가서 신문지 밑에 숨겨둔 호일공을 입에 물고는 날아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까치가 공을 숨긴 장소를 기억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필자의 이런 경험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뉴캐슬대 연구팀은 2008년, 까치에게 경험이나 사건에 관한 기억력인 에피소드 기억력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새장에서 사육중인 까치에게 삶은 계란을 으깬 뒤 뭉쳐 만든 작은 공을 줬다. 공은 모두 30개였는데, 절반씩 붉은색 또는 파란색의 염료를 입혔다. 공을 받은 까치는 역시 계란 공을 모두 숨겼다. 연구팀은 까치를 실험공간에서 내보낸 뒤, 둘 중 하나의 색을 띤 계란 공만 같은 색의 나무구슬로 바꿨다. 한 시간 뒤, 연구팀은 까치를 다시 실험공간에 넣고 30분 이내에 먹이(혹은 구슬)를 얼마나 회수하는지 조사했다.
결과가 어땠을까. 실험을 몇 번 반복하지 않아 까치는 먹을 수 없는 구슬은 무시하고 계란공만 골라서 회수하게 됐다. 처음 공을 숨긴 장소는 물론 바뀐 공의 종류와 그 장소도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다. 무엇을 언제 어디에 숨겼는지 까치는 기억하고 있었다.

까치는 뛰어난 목격자
까치는 사람의 ‘얼굴’도 알아본다. 2010년 늦은 봄 어느 날이었다. 당시 까치연구팀은 까치의 번식기간을 맞아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번식성공도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구원 중 유일한 남학생이었던 박사과정 이원영 연구원이 필자에게 와서 “까치들이 자신을 공격한다”며 고충을 털어 놓았다. 까치의 번식성공도 조사는 일주일에 두 번, 고가 사다리차를 임대해 했다. 교내 곳곳의 까치 둥지에 올라가 알과 새끼의 발달상황을 체크하는데, 2010년에는 이원영 연구원이 유일한 남학생이기도 했고 자신의 연구 자료를 모으던 중이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둥지에 올라가 알이나 새끼를 꺼내는 일을 했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었다.
“식당에 저녁 먹으러 가는데 까치들이 저를 따라오면서 깍깍대고, 심지어는 뒤에서 날개로 머리를 치고 지나가기도 해요. 까치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사태는 점점 심해졌다. 교내 곳곳에 둥지를 튼 많은 까치들이 이 연구원이 지나가기만 해도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멀리서 쌍안경으로 둥지 활동을 관찰하는 것도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이 연구원처럼 까치 둥지에 여러 번 올라가 알이나 새끼를 꺼냈던 일을 한 사람과, 한 번도 까치의 번식성공도 조사에 참여한 적이 없는 학생을 짝 지은 뒤 둘에게 똑같은 옷을 입혔다. 그리고는 둘을 까치가 앉아있는 건물 근처로 보내 까치가 주목할 때까지 기다렸다. 까치가 주목하면 그 때부터 둘은 갈라져 서로 반대방향으로 일정한 보폭으로 걸어갔다. 제3의 학생이 까치의 행동을 기록했는데, 만약 까치가 둥지에 여러 번 올라갔던 사람을 알아본다면 그 사람 쪽으로 고개를 돌리거나(1점), 몸을 돌리거나(2점), 아니면 따라가면서(3점) 깍깍대는 공격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가정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모든 까치들이 알이나 새끼를 꺼냈던 사람을 알아보고 그들에게만 공격반응을 보였다. 그것도 따라가면서 시끄럽게 깍깍대는 심한(3점) 반응이었다. 까치가 이들을 어떻게 알아보는지 단정할 수 없지만, 똑같은 옷을 입히고 걸음걸이도 비슷했기 때문에 결국 얼굴로 알아본 것이라는 결론을 내게 됐다.
서울대 캠퍼스 내에서, 까치 둥지 근처를 지나다니는 사람의 수는 하루 수십 명 이상이며, 특히 학생회관 근처의 둥지를 지나는 사람은 족히 백 명이 된다. 까치는 그 중 특정한 사람을 알아볼 정도로 인지 능력이 우수하고, 심지어 새끼가 둥지를 떠난 이후에도 따라다니며 깍깍댈 정도로 기억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2011년 ‘동물인지’ 지에 발표한 이 연구를 통해, 까치는 야생상태에서 사람을 구별하는 능력이 입증된 세 번째 조류가 됐다(나머지 둘은 까마귀와 지빠귀 류다).

거울 보고 몸 단장한다
까치는 거울에 비친 자신도 인식한다. 영장류 등 극히 일부 포유류에게서만 밝혀진 능력이며 조류 중에는 유일하게 까치만 밝혀져 있다.
독일 괴테대 연구팀은 2008년, 까치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는 장소인 부리 바로 아래에 스티커를 붙인 뒤 거울을 보여주고, 까치의 반응을 기록해 그 결과를 ‘플로스 생물학’지에 발표했다. 거울을 보여주자 까치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거울 뒤를 보려고 했다. 또 부리나 다리를 이용해 스티커를 떼려는 행동도 했다. 스티커를 떼려고 하는 행동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거울에 비친 존재가 자신임을 알아보고 부리 아래에 스티커가 붙어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경우다. 두 번째는 스티커가 붙은 부분의 깃털이 뭉쳐 있어 불편한 경우다.
두 경우를 구별하기 위해 연구진은 눈에 띄는 색과 띄지 않는 색으로 각각 스티커를 만들어 붙여준 뒤 스티커를 떼려는 행동의 비율을 조사했다. 만약 스티커가 불편해서 떼는 것이라면, 스티커를 떼려는 행동의 비율이 색과 관계없이 일정해야 한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다. 눈에 띄는 색일 때 스티커를 떼려는 행동의 비율이 현저히 높았다. 뿐만 아니라 거울을 보여줬을 때가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눈에 띄는 색의 스티커를 떼려는 행동이 훨씬 많았다. 연구팀은 이것이 까치가 거울에 비친 존재가 자신임을 확실히 인지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까치, 안녕들 하십니까?
뛰어난 인지능력과 기억력을 지닌 까치. 과연 도시화된 환경에서 별 문제 없이 살고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렇지 않다.
필자의 연구팀은 환경부 주관 장기생태모니터링 사업의 일환으로 1998년부터 현재까지 매해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까치 개체군의 번식성공도를 조사하고 있다. 그런데 연구초반기에는 번식을 시도하는 횟수가 해마다 60회 이상으로 관찰됐지만, 현재는 많이 줄어 50회가 채 되지 않는다. 번식을 시도한 까치 중에서 새끼를 한 마리라도 성공적으로 키운 비율도 평균 40%를 밑돈다.

까치는 둥지를 짓는 데 평균 한달 남짓이 걸리고, 알을 낳고 품는 데 평균 22일, 알에서 부화한 새끼를 길러 새끼가 둥지를 떠나기까지 평균 35일이 걸린다. 또 새끼가 둥지를 떠난 뒤에도 최소 1개월 가량은 부모가 새끼와 같이 다니며 먹이 먹는 기술 등을 가르친다. 따라서 까치 부모가 번식에 투자하는 기간은 적어도 4개월 가량이 된다. 이렇게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기 때문에 까치는 번식 도중 실패하지 않으면 좀처럼 2차 번식을 하지 않는다. (즉 1년에 1번만 번식한다). 까치 한 마리의 평균 수명은 야생조건에서 4~6년 이내고, 2살 이상이 돼야 번식을 시작한다. 까치 한마리가 평생 동안 가질 수 있는 번식기는 3~5번이라는 뜻이다. 어미가 낳는 알은 평균 6개고 이 중 4개 정도가 부화하며, 기껏해야 2~3마리가 둥지를 떠날 때까지 살아남는다. 까치연구팀에서는 해마다 새끼들이 둥지를 떠나기 직전 개체인식표를 붙이는데, 서울대 전체를 통틀어도 40마리를 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둥지를 떠난 뒤 첫 겨울이 까치에게는 굉장히 혹독한 기간이다. 이들 중 나중에 생존한 것으로 확인되는 개체는 서울대에서 한 해에 두세 마리 이하다. 물론 새끼들이 둥지를 떠난 뒤에 먼 곳까지 이동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가 발견된 것은 1998년 이래 딱 두 번 있었을 뿐이다.
이렇게 보면, 까치는 번식이 굉장히 어려운 새다. 개체군 전반적으로 봐도 번식성공도는 일정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새끼의 건강 상태도 해마다 큰 변동폭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환경요인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의 증거를 보면, 까치의 번식 성공에는 겨울 기후가 특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 까치의 번식은 ‘장기전’이기 때문에 번식 전에 얼마나 먹이를 잘 먹어두느냐가 중요하다. 겨울 동안 기후가 온화하고 강수량이 적당하면 좀더 많은 수의 알을 낳고 좀더 많은 새끼를 길러낸다. 이는 다른 소형 조류와는 대비되는 결과다. 다른 소형조류는 대부분 산란전 장기적인 기후보다는 새끼를 먹이는 동안 먹이가 얼마나 풍부한가에 따라 번식성공도가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1998년부터 현재까지 까치를 연구해오면서 알게 된 것은 우리가 까치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서 많이 보인다고 해서 그 수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인지능력이나 적응력이 뛰어나도 다른 야생동물과 마찬가지로 기후 등 환경 조건에 취약하다. 우리는 편하다고 하는 도시환경은 야생동물인 까치에게는 생존능력의 시험장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