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모태솔로인 김주황 양. ‘혼자서도 잘해요’ + ‘내 아이돌만큼 멋진 남자는 없어!’라는 철학으로 무장한 만큼 단풍 구경도 혼자 떠났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가는 장소마다 쌍쌍이 붙어 있는 것이 아주 눈꼴이 시리다. 사람만이 아니다.
커플 사이에서 혼자 멀뚱하게 서 있는 김주황을 비웃는 듯, 눈 앞의 기린마저도 긴 목으로 배우자와 사랑을 표현하며 염장질이다.
‘날이 추워지면 옆구리가 시리니까….’
애써 자신을 합리화한 김주황은 지인을 채근해 소개팅을 잡았다. 100전 100패를 자랑하는 화려한 경력이지만 이번만큼은 영원한 1승을 만들고 말리라. 소개팅 성공을 위해, 김주황은 다른 ‘이’들은 어떻게 짝을 만드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김주황은 가장 먼저 포털 검색창에 ‘소개팅 성공’이라고 쳐봤다. 놀랍게도 수많은 검색 결과가 나왔다. 물론모든 정보가 김주황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재미있는 대화를 이끌어가기, 상대에게 공감해주기, 기본에티켓 지키기…. 누가 이런 걸 몰라서 소개팅에서 실패할까.
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데…
그 와중에 가장 납득할 만한 것은 ‘첫인상이 중요하다’였다. 하긴, 김주황의 아이돌도 그녀의 까다로운 취향을만족시킬 정도로 잘 생겼다. 사람뿐이랴. 동물도 마찬가지다. 남녀가 좀 바뀌긴 했지만 공작이나 꿩은 수컷의 깃털이 화려할수록 암컷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역시 아름다운 무늬를 가진 공작거미도 암컷과 짝을 짓기 위해 목숨을 걸고 춤을 춘다고….
하다 못해 1억 5000만 년 전인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중에서도 멋진 깃털을 이용해 구애를 했다는 연구도 있다. 캐나다 앨버타대 스콧 퍼슨 교수팀이 두 발로 걷는 공룡인 ‘오비랍토르’의 화석을 분석한 결과다. 이 공룡은 몸쪽 꼬리 근육은 부드럽고 유연했지만 바깥쪽 근육이 빳빳하게 자랐다. 연구팀은 이런 구조에서는 부채꼴모양의 깃털이 자랄 수 있기 때문에 깃털로 장식된 꼬리를 흔들어 상대를 유혹했을 것이라고 추리했다.
1억 5000만 년 전부터 미인을 좋아했다는 연구에 자신감을 얻은 김주황은 자신의 외모를 점검해봤다. 얼굴은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이며, 들어갈 곳이 나오고 나올 곳이 들어간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보기에 썩 나쁘진 않다. 그렇다면 옷은 어떻게 입는 것이 좋을지 고민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청순하게? 엘리트 직장인 마냥 지적으로? 그것도 아니면…, 금방이라도 눈이 풀릴 만큼 섹시하게? 옷장을 헤집어 보았지만 답이 나올리 만무했다. 상대가 어떤 취향일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래도 어디서 본 것은 많은 김주황이다. 사육사들이 짝짓기를 거부하는 동물에게 다른 동물이 짝짓기하는영상을 보여줘 교미를 성공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 봄, 중국 쓰촨성에 있는 판다 번식센터에서 고작 3일밖에 안되는 암컷 판다의 가임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쓴방법이다. 우리나라 동물원에서도 고릴라에게 짝짓기 비디오를 보여주기도 하고…. 옷차림으로 야릇한 분위기를 내면 소개팅 자리에서도 괜찮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것이라고 자신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짝을 잡는다
약속 장소에는 언제쯤 나가는 것이 좋을까. 너무 일찍 가면 기다리다 지칠 수도 있고, 괜히 혼자 들뜬 것처럼 보이고, 조금 늦게 나가는 것은 애교☆로 어필할 수도 있지만 자칫 역효과도 낼 수 있다. 너무 시간 딱 맞춰 가는 것은 왠지 틈이 없어 보이고…. 고민하는 김주황에게 과학기자 친구가 논문 하나를 소개했다. 아메리카메추라기도요(Calidris melanotos)에 대해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이었다.
아메리카메추라기도요는 몸길이 22cm에 갈색 깃털을 가진 새다. 우리나라에서 아주 드물게 발견되는데, 수컷한 마리가 여러 암컷을 거느리는 일부다처 새다. 독일 막스플랑크 조류학연구소의 바트 켐페네어스 박사팀이 이새를 7년간 관찰한 결과, 잠을 덜 자는 수컷일수록 짝짓기를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잠을 덜 자면서 암컷을 감시해 다른 수컷이 다가올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김주황은 마음을 굳혔다. 약속 시간보다 ‘반드시’ 일찍 나가서 혹시나 자신의 소개팅 남에게 접근하는 여자가 없는지 감시해야겠다고 말이다.
일찍 나가는 김에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하나 준비하는 것도 좋겠다. 선물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화려한 불빛으로 암컷을 유혹하는 반딧불이조차 선물 공세를 펼친다니 말이다.
반딧불이 수컷은 배에 있는 발광 기관으로 암컷을 유혹한다. 매력적인 패턴을 가진 수컷에게 암컷이 날아들면 짝짓기를 한다. 이 때 짝짓기에 완전히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컷이 암컷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커야 한다. 선물의 정체는 ‘양분’이 들어있는 정포다. 정자가 들어 있는 정포가 작을 경우 암컷은 짝짓기를 거부하고 떠나기도 한다. ‘다다익선’이라고 반딧불이 같은 미물도 선물을 좋아하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작은 선물이 아니라 큰 선물이어야 무사히 소개팅을 성공적으로 이끌지 모르겠다.
악천후가 사랑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대망의 디데이는 언제여야 할까. 주선자를 통해 연락을 주고 받은 소개팅남은 김주황의 선택에 날짜를 맡기겠다고 했다. 성공을 위해 날짜도 과학적으로 잡으려는 김주황은 고민에 빠졌다. 주중이 좋을지, 주말이 좋을지. 가을이라 날씨도 좋은데 가볍게 산책이라도 할수 있도록 맑은 날을 골라야 할지, 아니면 어차피 옆구리가 시려서 소개팅을 하는 건데 추워서 붙어있는 기회라도 만들도록 추운 날을 고르는 것은 어떨지. 아니면, 어차피 붙어있을 기회를 노릴 거면 비가 올 날을 골라 우산이 없는 척을 하는 것은 어떨까.
그런 김주황을 위한 과학적인 연구도 ‘당연히’ 있다. 심지어 매우 최신 연구다. 10월 초에 갓 발표된 연구인데, 브라질 상파울루대 안나 펠레그리노 교수가 미국공공 도서관학회지인 ‘플로스원’에 발표했다. 연구진이 관찰한 것은 남아메리카 대륙에 서식하는 딱정벌레였다.
이 딱정벌레는 암컷이 남긴 페로몬을 쫓아가 짝짓기를 하는데, 기압이 낮아지면 암컷을 잘 찾지 않는다. 실험에서도 이 사실은 분명히 드러났다. 수컷과 암컷을 같은 공간에 두고 기압을 떨어뜨리자 수컷이 암컷을 찾지 않았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이었다. 수컷을 암컷 가까이 두자, 다짜고짜 달려들어 짝짓기를 시도한 것이다.
이럴 수가. 생존에 위기감을 느끼면 종족 번식에 대한 본능이 가장 강해진다더니, 딱정벌레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기압이 낮아진다는 것은 곧 비가 온다는 의미다. 6mm밖에 안되는 딱정벌레 입장에서는 가벼운 비라도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런 혹독한 환경에서 대를 이어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 발휘된 것이다.
김주황은 소개팅은 역시 햇볕이 따뜻한 날보다는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날을 골라야겠다고 다짐했다. 비바람에 힘겨워 하는 모습을 보여 보호 본능도 좀 일으켜 보고 말이다.
온갖 동물들이 짝짓기에 성공하는 방법을 숙지한 김주황. 열심히 공부한 대로 성공률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김주황은 가장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소개팅 당일, 눈앞에 나타난 소개팅남과 자신의 뇌 내 지분율 99%를 차지하는 자신의 아이돌을 비교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공부까지 열심히 한 보람도 없이 소개팅에 대한 흥미가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눈앞의 남자가 불에 구운 마른 오징어로 보이기 시작했다. 성의없는 김주황의 대화에 소개팅남은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101전 101패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