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동이
쌤! 우리 과학실험해요. 해부실험해요. 쥐, 아니면 토끼 같은 걸로요. 예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어요. 중학교 때 개구리 실험을 했는데 엄청 재밌었어요. 애들이 살아있는 개구리를 보고 무섭다고 소리 지르고 난리였죠. 용감한 제가 개구리를 마취시키고 배를 갈랐어요. 쌤, 저 대단하죠?
정훈쌤
과동이처럼 많은 친구들이 해부실험을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이선경 신관중 선생님이 서울 중학교 2학년 422명에게 ‘해부실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더니, 학생의 61.7%가 해부실험이 ‘매우 재밌다’나 ‘재밌다’고 했어요. 문제는 동물을 해부하면서 죄책감이나 부담감을 느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괴로웠다’ (35.1%), ‘아무렇지도 않았다’(30.2%)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과동이
학교에서 해부실험으로 죽는 동물이 뭐 얼마나 많겠어요.
정훈쌤
생각보다 많아요. 김언진 경희대 생물교육전공 연구원이 석사학위논문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서울 11개 과학중심학교에서만 해부한 동물의 수가 755마리나 된답니다. 이것도 사실 정규수업시간이 아닌 탐구실험 시간에 일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것이에요. 전국적으로 많은 과학동아리가 해부하는 것을 생각하면 더 많은 동물이 죽어간 것이죠.
대부분의 실험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알고 있는 지식을 확인하는 것이에요. 이렇게 많은 동물이 희생돼야 하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더구나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해야하는 시기에 동물을 학습도구로 다루는 건 교육적으로도 문제가 있어요. 영국 초·중·고등학교는 척추동물에게 통증이나 고통을 줄 수 있는 학습행위를 아예 금지하고 있어요. 대만도 중학교 이하에서는 금지하고 있고요.
과동이
대체실험에 대해 알고는 있어요. 그래도 그냥 책으로 보는 것보다는 직접 경험하면 생물공부를 더 잘할 수 있잖아요. 생명존엄에 대해서도 따로 배우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 문제없을 것 같은데요.
정훈쌤
동물행동학과 동물보고와 관련해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조나단 발콤 박사가 모형 쥐로 공부한 학생과 직접 쥐를 해부한 학생들의 성적과 외과적 기술을 비교했는데, 두 집단의 성적이 차이가 없다는 결과를 확인했답니다. 미국 고등학교에는 이미 컴퓨터에서 가상으로 해부실험을 하는 프로그램(www.digitalfrog.com)이 보급되고 있어요.
과동이
그러고 보니 동물윤리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 데카르트는 동물은 고통을 못 느낀다고 했다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실험동물도 그렇지만 옴짝달싹할 수 없는 좁은 우리에 갇혀 고기가 될 날만 기다리는 가축도 불쌍해요. 그래서 찾아봤는데, 한우나 돼지 같은 가축을 쾌적한 환경에서 행복하게 키우는 ‘동물복지형 축산’이 있더라고요.
정훈쌤
맞아요. 사육 가축수를 줄이고, 깨끗하고 넓은 공간에서 좋은 사료를 먹여 건강한 가축을 키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동물복지 축산인증제’를 실시하고 있어요.
과동이
동물복지형 축산이 인간에게도 좋더라고요. 좁은 곳에 많은 가축이 모여 있는 일반형 축산은 비위생적이라 전염병이 잘 생기고, 피해도 커요. 그래서 항생제를 엄청 쓰는데 이런 가축으로 만든 고기는 사람에게도 그리 좋지 않아요.
정훈쌤
윤창호 전남도축산위생사업소 소장이 전남 22개 시, 군의 축산농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한우와 돼지를 키우는 농가의 50% 이상이 동물복지형 축산을 할 생각이 있는 것으로 나왔어요. 문제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에요. 동물복지형 축산을 하려면 시설이나 사료에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거든요.
과동이
꼭 그렇진 않아요. 동물복지형 축산을 하고 있는 나주시의 한 농가에서는 가축수가 줄고 초기 시설비와 경영비가 많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고기의 품질이 높아지면서 프리미엄 상품으로 인식돼 수익이 발생했답니다.
정훈쌤
과동아. 사실 쌤은 고기를 싸게 많이 먹고 싶어요. 동물복지형 축산이 퍼지면, 고기 가격이 올라가지 않을까요?
과동이
한우를 예로 들어볼께요. 통계청 축산물 생산비 자료를 보면 동물복지형 축산을 하면 한우 1마리당 생산비는 8.6% 증가한대요. 그리고 농림수산식품부가 2012년에 발표한 자료를 보니, 소고기 소비자가격에서 생산비 비중이 71.4%에요. 그러니 소고기 소비자가격은 6.1%만 비싸지는 거죠. 유통과정을 합리화하면 가격을 더 낮출 수도 있잖아요. 무엇보다 더 안전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으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