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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지켜줘

Y의 비극 속에서 희망 찾기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린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는 이들은 갈수록 살기가 팍팍해진다고 투덜대는 이 시대의 남자들이다. 아, 여기엔 힘들게 살아가는 아들이 안쓰러운 엄마들도 조금 섞여 있을지 모르겠다.

과거의 남성적인 문화는 이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추세다. 이상적인 남성상도 변했다. 거칠고 배짱 두둑한 남자보다는 배려심이 많고 자상한 남자가 더 인기가 좋다. 터프가이 흉내도 잘생긴 연예인이 해야 멋있다고 하지, 평범하고 볼 것 없는 남자가 그랬다가는 ‘○마초’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TV에서도 터프가이보다는 남자들이 보기엔 왠지 기생오라비 같은 ‘꽃미남’ 스타일이 더 인기다.

예전의 권력은 잃어가고 있지만, 좋아지는 건 별로 없다. 여전히 위험한 짓 하기를 좋아해서 평균 수명은 여자보다 짧고, 범죄가 터졌다 하면 십중팔구 범인은 남자다. 시대가 변했는데 아직도 이런 못된 습관을 못 버리다니 어찌 된 일일까. 그건 남자의 본성이 유전자에 깊숙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남자를 남자로 만드는 얼마 안 되는 유전자는 Y염색체에 있다. 남자에 대해 알고 싶은 과학자들이 Y염색체를 관심 있게 들여다본 건 당연하다.

문화적인 요소를 빼면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대부분 염색체 때문에 생긴다. 사람의 염색체는 23쌍, 46개다. 이 중 성별을 결정하는 염색체는 X염색체와 Y염색체 2개다. 여자는 X염색체만 2개고, 남자는 X와 Y 염색체가 하나씩 있다. 사람은 부모에게서 성염색체를 각각 하나씩 물려받는데, 어머니에게서는 무조건 X만 오므로 아버지에게서 어떤 성염색체를 물려받느냐에 따라 성별이 정해진다.

아버지의 정자를 통해 물려받은 Y염색체는 아버지의 Y염색체와 똑같다. 같은 이유로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Y염색체가 똑같다. 증조할아버지도, 고조할아버지도 그들의 남자 후손과 Y염색체가 똑같다. 같은 Y염색체가 대대손손 이어지며 남자를 남자로 만들어 준 것이다. 조금씩 다른 Y염색체도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 하나로 모일 것이다. 세상의 Y염색체가 모두 같은 조상에서 유래했다면, Y염색체는 세계의 남자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끈인 셈이다.
 

 
 
Y염색체로 돌아보는 화려한 과거

이 세상 남자들에게 Y염색체를 물려 준 시조를 찾는 연구는 이미 몇 가지 결과를 내놨다. ‘미토콘드리아 이브’에 대응하는 ‘Y염색체 아담’이다. 먼저 미토콘드리아 이브에 대해 간략히 짚고 넘어가자.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에 있는 소기관으로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자체적인 DNA를 갖고 있다. 이는 미토콘드리아가 한때 독립적인 생물이었다가 다른 생물의 세포 안에 공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자에 들어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수정된 이후에 파괴되므로 난자에 들어 있던 미토콘드리아만 유전된다. 어머니에게서 딸로만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다. 미토콘드리아의 DNA를 역추적해서 세대를 거슬러 올라간 결과 찾아낸 공통의 어머니가 미토콘드리아 이브다. 미토콘드리아 이브는 약 20만 년 전에 동부 아프리카에서 살았다.

같은 방법으로 Y염색체의 계보를 역추적하면 아담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아담은 이브보다 찾기 어려워 결과가 늦게 나왔다. 미토콘드리아와 Y염색체의 차이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나 Y염색체가 한쪽 성으로만 그대로 이어진다고 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돌연변이가 생긴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쌓인 돌연변이를 이용해 계보를 역추적한다. 그런데 Y염색체는 염기쌍이 6000만 개 정도로 1만 6000개에 불과한 미토콘드리아보다 훨씬 많다.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는 비율도 더 낮아서 유전자가 바뀐 정도를 정확하게 측정하기가 어렵다.

2000년 1월 미국 UC버클리 통합생물학과의 러셀 톰슨 교수팀이 ‘PNAS(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아담은 지금으로부터 약 6만 년 전에 살았다. 이 수치는 아직 정확하지 않다. 2011년 6월에는 이탈리아 로마 라 사피엔자대 생명공학과 풀비오 크루시아니 교수팀이 아담이 대략 14만 2000년 전에 살았다는 내용의 논문을 ‘미국 인간 유전학 저널’에 발표했다.

Y염색체의 계보는 흥미로운 사실을 많이 알려준다. ‘아담의 저주’라는 책을 쓴 브라이언 사이키스 영국 옥스퍼드대 인류유전학과 교수는 남태평양 섬에 사는 남자들을 조사한 결과 상당수의 Y염색체가 유럽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혔다. 유럽인이 세계로 팽창해 나가던 시기가 반영된 결과였다. 반면 미토콘드리아DNA에서는 유럽 여자의 흔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거칠고 오래 걸리는 항해에 나서는 건 대부분 남자였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Y염색체만 세상에 퍼뜨린 건 아니었다. ‘사이언스’ 2011년 9월 9일자에는 Y염색체와 언어의 변화에 대한 연구를 종합해 설명한 글이 실렸다. 이에 따르면 언어는 주로 Y염색체와 함께 퍼진다. 예를 들어 보자. 뉴기니의 원래 주민은 멜라네시아인이다. 여기에 말라요-폴리네시아인이 이주해왔고, 현재는 이들이 고유의 언어를 쓰는 지역이 일부 있다. 뉴기니 주민을 조사한 결과 말라요-폴리네시아인의 미토콘드리아DNA는 언어와 상관없이 분포가 비슷했다. 그러나 말라요-폴리네시아인의 Y염색체는 그들의 고유 언어를 쓰는 지역에서 많이 찾을 수 있었다. 남자는 후손에게 Y염색체뿐만 아니라 언어까지 함께 남긴 것이다.

유럽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아이슬란드는 서기 9세기에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과 그들이 영국에서 납치해 온 여자들이 개척했다. 현재 아이슬란드인을 조사하면 미토콘드리아DNA는 주로 영국에서 왔지만, Y염색체는 스칸디나비아에서 왔다. 아이슬란드의 언어도 Y염색체와 마찬가지로 스칸디나비아가 기원이다. 이렇게 된 데는 사회·문화적인 영향이 크다.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사람은 주로 농부나 군인인데, 이런 집단은 남자가 대다수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남자가 권력을 지닌 만큼 부부의 언어가 서로 달랐을 때는 자식에게 남편의 언어를 물려줬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알고 보면 연약한 Y염색체

이렇게 Y염색체로 과거 남자들이 어떻게 이동했고 무엇을 남겼는지 연구할 수 있지만, 사실 Y염색체 자체는 그렇게 눈에 띄는 존재가 아니다. 남자답게 건장하고 우람하기는커녕 왜소하고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그래서 짝궁이면서 훨씬 더 큰 X염색체가 먼저 발견됐다. 역설적이게도 X염색체는 남자인 헤르만 헨킹이, Y염색체는 여성 과학자인 미국의 네티 스티븐스가 발견했다.

처음 발견됐을 때는 Y염색체가 성별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게 확실하지도 않았다. 다른 동물 실험에서는 Y염색체가 성별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끼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초파리는 성별이 X염색체의 개수에 따라 정해진다. 염색체 분리가 일어나지 않아 XXY를 갖게 된 초파리는 암컷이 된다. 반대로 난자에 X염색체가 들어가지 않아 정자에서 받은 X염색체 하나만 있는 초파리는 Y염색체가 없어도 수컷이다. Y염색체의 유무에 상관없이 X염색체가 하나면 수컷, 두 개면 암컷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도 비슷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초파리처럼 성염색체 수가 비정상적인 사람을 조사한 결과는 달랐다. 사람의 성별을 결정하는 데는 Y염색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클라인펠터 증후군인 사람은 성염색체가 XXY다. 초파리였다면 암컷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속하는 사람은 남자다. 여자처럼 가슴이 나오거나 고환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 생식 능력은 없지만, 겉모습은 분명히 남자다. Y염색체 없이 X염색체를 하나만 갖고 태어나는 터너 증후군도 있다. 이 경우에도 생식능력은 없지만 겉모습은 여자가 된다. 사람은 초파리와 달리 Y염색체의 존재가 남자냐 여자냐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이후 성별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Y염색체에서도 아주 작은 조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SRY(Sex-determining Region on the Y chromosome)라는 유전자가 주인공이다. 영국 인간분자유전학연구소의 피터 굿펠로우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SRY만 따로 떼어내 생쥐의 수정란에 넣었다. 그렇게 태어난 쥐 중 X염색체 2개와 SRY를 가진 쥐를 골라내 조사했다. 그 결과 SRY가 들어가면 성염색체가 XX더라도 수컷으로 자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여자임에도 X염색체에 SRY유전자가 붙어 있으면 겉모습이 남자가 된다. 반대로 염색체상으로는 남자라도 Y염색체에 SRY유전자가 없으면 여자로 자란다. 성염색체가 XX나 XY로 정상이지만 겉모습으로 본 성별이 달라지는 원인을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Y의 비극, 남자가 사라질까

여자와 달리 서로 다른 성염색체를 하나씩 갖고 있다는 점은 남자에게 약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X염색체를 통해 전달되는 유전병이다. 피가 잘 굳지 않는 병인 혈우병은 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X염색체에 있다. 여자는 X염색체가 2개이므로 한쪽에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어도 다른 염색체로 방어할 수 있다. 두 군데 모두 혈우병 유전자가 있어야만 발병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X염색체가 하나다. 어머니에게서 혈우병 유전자가 있는 X염색체를 물려받으면 빼도 박도 못한다. 색맹도 마찬가지다. 색맹을 일으키는 유전자도 X염색체에 있어서 색맹은 남자에게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

쌍으로 다니는 다른 염색체와 달리 남자답게(?) 평생을 홀로 다니는 Y염색체가 숙명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도 있다. 염색체는 각자 둘씩 쌍을 이루고 있어 생식세포를 만들 때 짝궁 염색체와 유전자를 뒤섞는다. 이를 재조합이라고 한다. 재조합 과정에서 손상된 유전자는 상대방 유전자를 받아들여 치료한다.

그런데 Y염색체는 재조합을 할 상대가 없다. 예전에는 X염색체와 짝을 이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제는 뽀뽀하듯 끄트머리만 살짝 닿았다 떨어질 뿐이다. Y염색체는 유전자 손상을 재조합으로 치료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현재 Y염색체에 있는 유전자 중에서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 유전자는 일부에 불과하다. 사람의 성염색체는 원래 한 쌍의 상동염색체였다가 2~3억 년 전에 갈라졌는데, 현재 Y염색체는 당시 유전자의 3%만 갖고 있다.

어떤 과학자들은 Y염색체의 손상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아예 사라지고 말 거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사라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존 애트킨 호주 뉴캐슬대 환경및생활과학과 교수와 제니퍼 그레이브 호주 라 트로브대 분자과학과 교수는 ‘네이처’ 2002년 2월 28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Y염색체의 유전자가 모두 손상되는 시기를 계산했다. 그 결과 현재 속도로 유전자가 계속 손상되면 앞으로 1000만 년 뒤에 Y염색체가 사라진다고 추정했다. 진화의 역사에서 보면 짧은 시간이다.



남자들이여, 가슴을 펴자

Y염색체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인류가 오래 살아남는다면 Y염색체는 사라지고 다른 염색체가 성염색체를 대신할지도 모른다. 혹은 그보다 전에 모든 남성이 건강한 정자를 만드는 능력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면 인류는 말썽 많은 Y염색체를 없애 버리고 X염색체만 가지고 인공적으로 아이를 만들 가능성도 있다. 남자가 굳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좌절하기에는 이르다. Y염색체가 그보다 더 오래 버틸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 MIT 화이트헤드생화학연구소의 제니퍼 휴즈 박사와 데이비드 페이지 박사 연구팀은 네이처 2005년 9월 1일자에 사람의 Y염색체가 생각보다 오래 보존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600만 년 전쯤 갈라진 사람과 침팬지의 Y염색체를 비교했다. 그 결과 사람보다 침팬지의 Y염색체 변화가 더 컸다. 페이지 박사는 그 이유로 정자의 경쟁을 들었다. 침팬지는 암컷 한 마리가 수컷 다수와 짝짓기를 하므로 정자 경쟁이 훨씬 심하다. 더 왕성하게 정자를 생산할 수 있도록 Y염색체의 진화가 가속됐다는 것. 반면 사람은 일부일처제를 도입하면서 이런 진화 압력을 덜 받는다.

이들은 올해 3월 1일 네이처를 통해 새로운 연구 결과도 발표했다. 이번에는 침팬지가 아니라 붉은털원숭이와 사람의 Y염색체를 비교했다. 붉은털원숭이는 2500만 년 전에 사람과 갈라져 진화했다. 결과는 희망적이었다. 사람이 잃어버린 유전자 중에서 붉은털원숭이가 아직 지니고 있는 유전자는 하나에 불과했다. 2500만 년 동안의 변화가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비율을 유지한다면 1000만 년 동안 Y염색체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당분간 Y염색체는 안전하다. 남자들이여, 의기소침할 필요 없다.

어쩌면 요즘 남자들은 발달한 문명 속에서 점점 잃어가는 남성성을 더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한 강한 육체와 거친 성격은 예전보다 덜 환영받을지 몰라도, 현대 사회에 걸맞은 남성성의 또 다른 활용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외치자. 난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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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과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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