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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 야츠시마 시구마강 하구 갯벌. 한국과 일본 시민들이 직접 갯벌생물 조사를 하고 있다. 10분만 교육 받으면 누구나 생태조사에 참여할 수 있다.]
바다 생태계를 보전하는 데 지역 주민의 참여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선진 사례를 살펴보기 위해 7월 12일부터 16일, 일본 규슈 지역의 갯벌생태마을을 둘러봤다. 일본 야생동물보호기금(WWF JAPAN)과 한국해양연구원이 주관하고 일본 파나소닉이 후원하는 해양 보전 프로젝트 '황해생태지역지원사업(YSESP)'의 일환이다. 전남발전연구원과 무안군청, 국내 최초의 생태갯벌센터가 있는 무안 용산마을 주민들도 함께했다.
“찾았다!”
마에카와 사토시 일본야생동물보호기금(WWF JAPAN) 해양프로그램담당관이 벌떡 일어나 손을 번쩍 들었다. 손에 들린 투명한 비닐봉투에는 엄지손가락만한 게 한 마리가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었다. 모종삽으로 갯벌을 파헤친 지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일본 4대 섬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한 규슈. 이곳 서해안에 위치한 인구 13만 명의 도시 야츠시로 시의 갯벌에서 생태조사를 하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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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미 야스히사 구마모토대 생명과학과 교수가 조사한 게들을 보여 주고 있다. 게 외에도 개맛, 꽃개소겡 등 갯벌생물이 많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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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츠시로 시와는 내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카시마 시 신고모리 해안에는 혹부리오리와 물떼새류, 해오라기 등 80여 종의 새들이 찾아온다. 카시마 야생조류연구회 회원들이 주기적으로 수를 조사하고 있다.]
시민이 함께 하는 생태조사
“칠게(Macrophthalmus japonicas)네요. 보세요. 아까 잡은 게와는 다르지요? 그건 방게(Helice tridens)였어요.”
동행한 헨미 야스히사 구마모토대 생명과학과 교수가 말했다. 헨미 교수는 8년째 규슈 전 해안의 갯벌 생물을 조사하고 있는 일본의 갯벌생태 전문가. 56곳의 갯벌을 샅샅이 조사해 생태계의 변화를 추적 중이다. 그런데 그 넓은 갯벌을 다 조사하기엔 인력이 부족했다. 사시사철 조사할 수 없다는 점도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시민조사. 다행히 일본은 갯벌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이 생물을 조사하고 결과를 모으는 문화가 야생조류동호회 등을 중심으로 발달해 있었다. 실력도 전문가 못지 않았다.
“자료를 믿을 수 있냐고요? 저도 대학생 때 후쿠오카 시에 있는 갯벌을 조사한 뒤 그 결과를 WWF 공식보고서에 실은 적이 있는 걸요.”
조사는 크게 두 단계로 이뤄졌다. 먼저 장화를 신고 15분 동안 걸으며 갯벌 위에 나와 있는 생물을 조사했다. 발견한 생물은 투명한 비닐봉투에 담았다. 이번에는 같은 지역을 걸으며 생물이 있을 만한 곳을 삽이나 곡괭이로 10cm 정도씩 팠다. 이 방법도 15분 동안 계속하며, 발견한 생물은 다른 봉투에 담았다. 이때 아무 땅이나 파는 것이 아니다. 갯지렁이같은 갯벌생물은 갯벌을 파고 흙이나 모래를 먹은 뒤 찌꺼기를 몸 밖으로 배설하면서 작은 경단이나 화산 분출구를 닮은 다양한 모양의 흔적을 남긴다.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판다.
기자도 방게와 꽃개소겡 등 네 가지 생물을 찾아냈다. 직접 해 보니 별로 어렵지 않게 다양한 생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방법은 일본습지네트워크가 만든 것으로, 주민들이 쉽게 따라 하면서도 다른 지역의 갯벌과 비교하기 좋아 일본에서 널리 쓰인다. 대중적인 ‘매뉴얼’인 셈이다. 조사에 동행한 다카노 시게키 야생조류동호회 구마모토현 지부장은 “35년째 월 1회씩 새와 갯벌 저서생물을 조사하고 있다”며 “전국적인 시민 조사 네트워크를 결성해 갯벌생물을 자료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카시마 시 야생조류동호회 회원인 미야자키 하슈오 씨(카시마시청 환경하수도과 공무원)는 “조사한 결과를 엮어 지역의 새를 소개하는 소책자도 만들었다”며 “이런 자발적인 조사가 환경을 보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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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시 북쪽 나지마 갯벌에 만든 휴식섬에서 왜가리 한 마리가 앉아 쉬고 있다. 인근 논이 사라져 철새들이 쉴 곳이 부족해지자 2007년 후쿠오카습지보전연구회와 일본야생동물보호기금이 주도해 만들었다.]
도시 갯벌 보전의 주체는 시민
도시 갯벌 보전 역시 시민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인구 146만 명의 규슈 제1의 도시 후쿠오카를 찾았다. 대도시답게 해안 역시 개발이 많이 진행돼 남아 있는 갯벌은 6개에 불과했고 크기도 1km2가 채 안 될 정도로 작았다. 100km2를 가뿐히 넘는 갯벌이 수두룩한 우리나라와는 천지차이였다. 통역과 안내를 맡은 이응철 사가대 지역사회개발학과 교수는 “큰 갯벌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 눈에는 너무 작아서 갯벌로 보이지도 않을 것”이라고 미리 귀띔해 줬다.
도시 북서쪽에 자리한 하카타 만의 와지로 갯벌을 찾았다. 뻘과 모래가 섞인 0.6km2 크기의 해안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갯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무척 작았다. 그나마 이곳은 6개 남은 갯벌 가운데 두 번째로 큰 곳이다. 나머지 갯벌들 중에는 0.02km2로 학교 운동장 수준인 곳도 있다.
하지만 이런 갯벌에도 도요새와 물떼새가 찾아온다. 와지로 갯벌도 검은머리 물떼새가 쉬었다 가는 곳이다. 이 지역 새를 연구하는 토미다 히로시 씨(규슈대 생물학과 박사과정)는 “한국에서 다리에 인식표를 붙인 저어새나 물떼새가 이 곳에서 발견된다”며 “철새의 이동에 중요한 지역”이라고 말했다.
이 갯벌들을 지키는 활동에 앞장서는 것도 학생과 주부, 직장인 등 평범한 후 쿠오카 시민 25명으로 이뤄진 비영리기구(NPO) ‘후쿠오카습지보전연구회’. 이들은 쉬는 날을 이용해 도요새와 물떼새, 저서생물의 수를 조사하고 행태를 관찰한다. 시민들에게 보전 방법을 홍보할 책자와 간판을 만들기도 한다. 토미다씨는 “철새를 보호하고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연구와 조사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조사 활동은 생물 보전에 바로 활용할 수 있다. 연구회가 2007년 일본야생동물보호기금과 함께 만든 ‘나지마 새 휴식섬’이 그 예다. 후쿠오카 북쪽에 위치한 나지마 갯벌이 개발되면서 인근 논이 사라졌다. 그러자 밀물 때 새가 쉴 곳이 사라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조사 과정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연구회는 갯벌 앞에 지름 5m 정도의 작은 돌무더기 인공섬을 만들어 주자고 후쿠오카시에 건의했다. 마침 후쿠오카 시도 필요성을 느끼던 차여서 선뜻 예산을 냈다.
그렇다면 왜 시민들이 보전에 나설까. 하토리 타쿠로 이사장은 “하카타 만에서 소년 시절을 보낼 때 투구게 등 생물이 풍부했지만 1970년대
갯벌이 사라지면서 모두 멸종했다”며 “남은 갯벌을 보호하지 않으면 갯벌생물이 모두 멸종할 것이라고 생각해 보전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이 놀면서 지키는 갯벌
끝도 없이 펼쳐진 회색 갯벌. 어른도 허벅지까지 빠지는 깊이다. 이곳을 수영복을 입은 180명의 어린이들이 천천히 걸어 건너고 있다. 진흙이 발목을 잡는 듯 거푸 넘어지면서도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는 해안을 향해 부지런히 걷는다.
이미 머리 끝까지 진흙투성이지만 무척 즐거운 표정이다. 이 어린이들은 갯벌을 몸으로 느끼는 ‘갯벌체험’을 하는 중이다. 아리아케 해 안쪽에 자리한 인구 3만 1000명의 전원 도시 카시마 시의 대표적인 관광 코스다.
카시마 시는 갯벌을 관광지로 활용해 도시를 홍보하고 천혜의 갯벌도 보전하는 ‘발상의 전환’을 이룬 것으로 유명하다. 갯벌 가운데 일부를 갯벌체험터로 지정하고 이 안에서 갯썰매를 타거나 진흙수영을 할 수 있도록 개방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처음 시작은 이벤트였다. 27년 전, 갯벌 스포츠를 겨루며 논다는 뜻에서 ‘갯벌올림픽(가타림픽)’을 개최했다. 이후 연례행사로 자리잡아 올해로 27년째를 맞았다(올해는 태풍으로 열리지 못했다). 국제적으로도 유명해져 우리나라 전남 고흥군이 매년 선수단을 파견하고 있다. 순수 관광객만 시 인구보다 많은 3만 5000~4만 명에 이른다. 바닷가를 매립하거나 대규모 시설을 세우지 않아도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서 카시마 시는 평소에도 갯벌체험을 할 수 있도록 상시체험관을 만들었다. 환경교육도 하고 수족관에서 생물 교육도 한다. 후쿠오카나 나가사키 등 열차로 1시간 이상 걸리는 대도시에서 매년 1만 5000명 정도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이날도 후쿠오카 구루메초등학교 4학년 여섯 학급 학생들이 방문했다. 이 학교 학생 고메히토 군은 “체험학습을 왔다”며 “종일 갯벌에서 놀 수 있어 신났다”고 대답했다.
15년 전부터 갯벌체험을 담당하고 있는 오카모토 타다요시 씨는 “처음에는 갯벌에서 사람을 놀게 해서 돈을 번다는 사실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며 “하지만 갯벌올림픽 덕분에 인식이 바뀌어서 체험 내용만 좋다면 가격과 상관없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생태와 문화가 어우러진 체험도 추가되고 있다. 이 지역의 명물 중 하나인 길이 17cm 정도의 물고기 짱뚱어를 전통 낚시로 잡는 것. 짱뚱어는 이 지역 식당에서 반찬으로 나올 정도로 흔한 식재료지만, 지금은 소비가 줄면서 전통 낚시마저 대가 끊길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일본에서 이름난 ‘짱뚱어 낚시 명인’인 오카모토 씨가 올해 4월 전통낚시 체험 관광을 개발했고, 덕분에 대를 이을 후계자도 생겼다.
이 지역 주민들은 갯벌체험이 갯벌을 파괴하기보다는 보전하는 데 직접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기타무라 카즈히라 카시마 시 부시장은 “습지인 갯벌을 장기적으로 보전하면서 지역도 활성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며 “어업과 농업을 함께 체험하는 새로운 체험 관광 정책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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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시민 생태보전 시작해야
한국도 지역 주민이 주인공이 되는 생태 보전 사업에 눈을 떴다. 이번 YSESP 사업지로 선정된 전남 무안 용산 갯벌마을이 대표적이다. 올해 5월 문을 연 무안 생태갯벌센터를 중심으로 갯벌 관광과 체험을 준비 중이다.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생태지평연구소의 장지영 연구원은 “생태계는 스스로 자신을 보전할 수 없다”며 “지역 주민이 스스로 생태계의 가치를 알고 지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 연구원은 “카시마 시 주민들이 갯벌체험행사를 열어서 갯벌도 보존하고 생활도 풍요롭게 한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며 “무안 주민들에게 사회, 경제적 동기를 주는 방법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