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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전 국민을 ‘마스크 공포증’에 떨게 했던 연쇄살인마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총 21명(본인은 26명으로 주장)을 살해한 혐의로 2005년 6월 사형 선고를 받았다. CCTV에 찍힌 그는 항상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유영철은 체포될 당시에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서는 마스크로 가린 범인이 유영철임을 밝혀냈다. 3차원 얼굴스캐너 덕분이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다음 범행을 했던 유영철도 과학수사망을 벗어나지 못했다. 3차원스캐너로 얼굴을 찍은 다음 2차원(CCTV) 영상과 비교했을 때 동일 인물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CCTV 영상은 대부분 정면이 아닌 옆모습,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모습이기 때문에 촬영된 사람이 용의자가 맞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유영철의 경우는 더욱 어려웠다. 국과수 문서영상과에서는 유영철의 얼굴을 3차원으로 촬영한 뒤 CCTV에 찍힌 마스크를 쓴 얼굴(2차원 사진)과 비교해 동일 인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두 얼굴을 같은 각도로 놓았을 때 코의 각도와 높이, 귀의 위치와 모양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2008년 2월, 떠들썩했던 아파트 모녀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은 일등공신도 3차원 얼굴스캐너였다. 대부분의 CCTV는 해상도가 낮다. 메모리가 적어 압축률이 높은 탓이다. CCTV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부분은 과거에 촬영된 영상을 가져오고 움직이는 부분만 새롭게 촬영한다. 국과수 문서영상과 나기현 연구사는 “중요한 영상은 프레임 별로 복원해 뚜렷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프레임은 영상을 이루는 장면 하나하나를 말하는데, 일반 영상에서는 1초 동안 30프레임이 찍힌다.
 
 
[➊ 한 연구사가 3차원스캐너에 머리를 고정하고 3차원 사진을 찍고 있다.

➋ 찍은 사진은 모니터에 나타나는데 고개를 왼쪽, 오른쪽, 위, 아래로 돌릴 수 있다.

➌ ➍ 3차원스캐너는 피해자를 때린 둔기도 알아낼 수 있다. 예를 들면 두개골에 난 상처의 함몰정도와 크기 등을 마이크로 3차원 스캐너로 분석해 둔기가 벽돌 모서리임을 밝혔다.]
 


3차원 스캐너를 이용하면 피해자를 때린 둔기를 알아내거나 교통사고도 재구성할 수 있다. 마이크로 3차원 스캐너는 상처의 특징을 분석한다. 즉 근육이나 뼈가 함몰된 정도와 크기, 모양에 대한 데이터를 이용해 어떤 재질의 둔기가 어떤 방향에서 어느 정도의 힘으로 공격했는지 계산한다. 김준석 연구사는 “서울 서남부지역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2004~2006년 당시 피해자 두개골에 난 상처를 마이크로 3차원 스캐너로 분석해 흉기가 멍키스패너였음을 밝히기도 했다”고 말했다. 교통공학과에서는 광대역 3차원 계측기로 차량의 파손 형태, 주변 환경과 스키드마크(타이어 마모 자국) 등을 촬영해 교통사고 시뮬레이션을 만들기도 한다.



가보지 못한 현장도 3차원으로 훑는다



전문가들은 사건현장을 고스란히 3차원으로 저장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아무리 강력범죄가 일어났던 현장이더라도 일반 상점이나 학교라면 빨리 증거물을 채취하고 깨끗이 청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정적인 증거물을 놓칠 수 있을뿐더러 직접 방문했던 수사관들만 현장을 이해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지난 3월 7일, 국과수에서는 독일의 카메라 제조사 신웍스가 개발한 ‘신센터 포렌식’에 대한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 카메라는 어안렌즈가 달려 있어 현장 전체를 고해상도(5000만 화소)로 촬영할 수 있다. 현장에 있는 사물간의 거리와 각도 등을 측정할 수 있으며 GPS를 이용해 위치를 좌표로 알려준다. 고해상도 덕분에 영상을 확대하면 멀리 떨어져 있는 자동차 번호를 확인할 수도 있다. 영상을 2차원 도면과 연결해 도면에서 안방을 누르면 안방의 3차원 영상이, 도면의 화장실을 누르면 3차원 화장실이 나타난다.



컨퍼런스에 참여했던 국과수 연구원들은 “중요한 증거물인데도 사건과 관련이 없어 보여 지나치는 것들이 많다”며 “증거물을 채취하기 전에 찍어둔 3차원 현장 사진은 수사 실마리를 푸는 데 큰 해결사가 될 것”이라고 감탄했다. 부검의들은 “정확한 사인을 밝히려면 현장에 가봐야 하는데 시신은 많고 부검의의 수는 적은탓에 쉽지 않다”면서 “부검을 하기 전, 현장을 3차원으로 살핀다면 사건 정황을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해질것”으로 기대했다.







지난 2007년 인천 강화군에서 경계근무를 마치고 귀대하던 해병대 2명을 코란도 승용차로 들이받고 총기를 탈취한 범인 조 모 씨는 사건이 발생한 지 6일 만에 검거됐다. 전남 장성군 백양사휴게소에 총기를 숨겨두고 부산에서 거짓 편지를 부칠 만큼 치밀했던 그가 꼬리를 잡힌 것은 어이없게도 편지지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지문 때문이었다.



국과수 유전자감식센터 최동호 박사는 “많은 범인이 장갑을 끼거나 매니큐어를 손끝에 발라 지문이 남지 않게 한다”며 “강화 총기탈취사건의 범인은 아마 편지지를 사거나 갖고 있을 때 지문이 묻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문의 모양과 패턴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며 평생 변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사람끼리 지문이 똑같을 확률은 640억 분의 1. 거의 불가능하단 얘기다. 지문은 혈액이나 잉크, 페인트처럼 색을 띠는 물질을 만진 뒤 다른 사물을 만지거나(현재지문) 비누, 먼지처럼 부드러운 물체를 만질 때(압착지문)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손가락에 있는 땀이나 기름이 묻어나오는 것만으로도 찍힌다(잠재지문). 현재지문이나 압착지문과 달리 잠재지문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과거 수사관들은 지문이 남았을 만한 곳에 알루미늄이나 숯을 갈아 만든 분말을 뿌려 찾았다. 지문을 찾는 동안 증거물이 더럽혀지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강화 총기탈취사건의 증거물. 총과 달리 범인이 보내온 편지지에는 지문이 잔뜩 남아 있었다. 지문이나 DNA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놓으면 범인이 흘리고 간 물건에 남은 증거로 범인을 잡아낼 수 있다.]



최근에는 증거물에 빛을 쏴 지문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을 구별하는 장비가 개발됐다. 모든 사물은 자기가 좋아하는 파장의 빛만 흡수한 뒤 특정 파장의 형광을 발산한다. 이를 이용하면 원하는 물질만 선택적으로 형광을 내게 할 수 있다. 반사자외선영상장치(RUVIS)로 ‘파장이 짧은’ 자외선(180~254nm, 1nm는 10억분의 1m)을 쬐면 증거물을 훼손하지 않고도 지문의 모양을 볼 수 있다.



지문보다 더 정확하게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증거는 DNA다. 사건 현장에서 용의자의 DNA를 찾아낼 만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흔히 알려진 모근(털에서는 DNA를 추출하기 어렵다)과 혈흔, 정액 외에도 침과 땀, 각질, 비듬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증거물도 중요한 DNA 샘플이 될 수 있다. 모자나 마스크에서는 땀과 비듬이, 편지봉투와 우표 뒷면에서는 침이 나올 수 있으므로 용의자가 사용했던 물건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시신의 손톱 아래에 각질이나 혈흔이 남아 있지 않은지도 봐야 한다. 피해자가 몸부림치면서 손톱으로 범인을 긁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DNA는 ‘파장이 긴’ 자외선(365~415nm)을 받으면 강한 형광을 낸다. 보라색 빛(415~485nm)은 발자국과 맨눈에 보이지 않는 피부 상처, 혈흔 등을 찾아낸다. 혈액은 페놀프탈레인과 과산화수소를 만나면 진한 분홍색을 띤다. 헤모글로빈이 과산화물을 산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를 이용해 혈흔이 있을 만한 곳에 과산화물인 루미놀 시약을 뿌리면 약 30만 배 희석된 혈액까지도 검출할 수 있다.


 

[옷과 신발은 표면뿐 아니라 안쪽에도 많은 증거가 남을 수 있다. 옷 안쪽(위)과 신발 안쪽(아래)에 남은 타이어 흔적.]
 

[추락사건 피해자의 바지 안쪽에 남은 범인의 손자국. 섬유 등에 닌하이드린을 뿌리면 지문(땀 속 아미노산)이 파랗게 나타난다. 흑갈색 표면에 묻은 혈흔은 자연광(왼쪽)보다 자외선(오른쪽)을 쪼일 때 잘 드러난다.]


 

[사건현장에 있던 여자 민소매 옷. 맨눈에는 깨끗해 보이지만(위) 자외선을 쪼이자 정액이 나타났다(아래).]



‘DNA 은행’으로 성폭력 사건 막는다



증거물에서 확보한 DNA로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이유는 ‘단연쇄 반복(STR) 마커’가 나타나는 횟수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 짧은 염기서열은 총 길이가 염기 400개 이하로 매우 짧아 잘 훼손되지 않는다. 그래서 부패한 시신이나 미세한 혈흔에서도 추출할 수 있다.



STR마커의 특정 염기배열을 식별하는 효소(제한효소)로 DNA 이중사슬을 자르면 사람에 따라 상대적으로 긴 조각 또는 짧은 조각이 생긴다. 조각들을 운동장(한천 젤)에 일렬로 세운 다음 단거리 경주를 시키는 방식으로 각각을 구분한다(전기영동). 사람 유전자에는 수백 가지의 STR 마커가 존재해 여러 개를 확인할수록 개인 식별 확률이 높아진다. 부모와 자식 간의 혈연관계를 밝힐 수 있고 현장 증거물이 용의자의 것이 맞는지 비교할 수 있다. 1995년에 일어났던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나 2003년 대구에서 일어났던 지하철방화사건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에도 DNA가 일등공신이었다.



최동호 박사는 “국과수에서는 지난해 7월부터 구속된 범인들의 DNA 정보를 수집하는 ‘DNA 자료은행’을 운영하고 있다”며 “범인을 빨리 잡고, 피해자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2005년 어린이 7명을 성폭행한 범인이 알고 보니 1987년에 연쇄 성폭력사건으로 구속됐다가 출소한 전과자였다”며 “DNA 정보만 정리돼 있었다면 그가 출소 후 첫 범죄를 저질렀을 때 검거해 다른 피해를 예방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DNA 자료은행은 시작한 지 9개월 정도밖에 안됐기 때문에 아직까지 5000~1만 명의 DNA 정보만 수집된 상태다.







지난해 12월, 인터넷은 일명 ‘쥐식빵’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한 게시판에 김 모 씨가 집 앞에 있는 P 빵집에서 밤식빵을 샀는데 그 안에서 쥐 한 마리가 통째로 나왔다며 글과 사진을 올린 것이다. 하지만 국과수의 조사 결과 김 모 씨의 자작극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시중에 팔리는 식빵은 모두 맛이 비슷하다. 재료가 밀가루와 설탕, 소금, 이스트 등으로 간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과수의 감정 결과 문제의 쥐식빵은 P 빵집이 아닌, 김씨가 운영하는 T 빵집에서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국과수 화학분석과 민지숙 박사는 “빵에 들어 있었던 ‘화학적 지문’덕분에 밝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화학적 지문은 탄소동위원소(C12, C13, C14)의 비율이다. 다 같은 밀가루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탄소동위원소의 비율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동일한 빵집에서 만든 빵이라도 그제 만든 것과 어제 만든 것, 오늘 만든 것이 서로 다르다. 화학분석과 홍성욱 박사는 “재배한 지역에 따라 밀의 탄소동위원소 함량 비율이 달라진다”며 “사람도 어떤 환경에서 어떤 물과 음식을 먹고 살았는가에 따라 머리카락 속 탄소동위원소 비율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쥐가 들어 있던 식빵(➊)이 사실은 김 모 씨의 자작극임이 드러났다. 빵(➋)마다 어떤 밀가루를 썼느냐에 따라 탄소동위원소의 함량 비율이 달라지기 때문에 알아낼 수 있었다.]



국과수에서는 누가 쥐식빵의 주인인지 밝히기 위해, 김 씨가 빵을 샀다고 주장하는 날에 두 빵집에서 만들었던 모든 빵을 수거했다. 가게에 진열돼 있던 빵은 물론, 그날 소비자에게 팔았던 빵까지 모았다. 그리고 빵의 속살과 겉에 붙어 있는 소보루, 빵에 들어 있던 밤과 땅콩을 모두 시료로 채취했다. 시료는 μg(마이크로그램, 100만분의 1g) 단위로 포장해 원소분석기에 넣어 기체로 만든다(기화). 이 기체를 질량분석기에서 동위원소대로 분류한다. 시료가 액체면 원소분석기에서 기화시킨 뒤 기체크로마토그래피를 거쳐 동위원소대로 분류한다. 실험 결과 쥐식빵의 탄소동위원소 비율은 T 빵집에서 만든 빵과 딱 들어맞았다.



민 박사는 “탄소뿐 아니라 수소(H1, H2, H3)와 산소(O16,O17, O18), 질소(N14, N15), 황(S32, S34)으로도 동위원소 분석이 가능하다”며 “이를 바탕으로 원산지를 추적하거나 진위를 판별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한국, 호주, 뉴질랜드에서 키우는 소들은 나라마다 먹이가 다르기 때문에 함유하고 있는 동위원소의 비율도 다르다. 그래서 외관으로 원산지를 알 수 없는 쇠고기도 동위원소 비율을 측정하면 어느 나라 산인지 알 수 있다.



탄소와 수소, 산소, 질소, 황이 들어 있지 않은 증거물은 어떻게 분석할까. 규소(Si)와 산소(O)로 이뤄진 유리(SiO2)는 주성분이 모래인데, 나라와 지역에 따라 모래에 들어 있는 불순물(미세원소)의 종류와 양이 다른 것을 이용한다.



 

[크로마토그래피와 질량분석기로 얻은 스펙트럼을 보면 마약을 복용했는지 알 수 있다. 사진은 모르핀과 코데인의 재료인 양귀비의 꽃과 열매(왼쪽)와 마약인 엑스터시.]



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기로 약독극물 찾아

현장이나 시신에서 채취한 증거물(위 내용물, 혈액 등)에 약물이나 독극물이 들어 있는지 알아볼 때도 ‘화학적 지문’을 활용한다. 이 지문은 크로마토그래피와 질량분석기로 얻은 스펙트럼 꼭대기에 나타난다. 동일한 조건에서 액체 또는 기체 시료를 크로마토그래피에 흘려주면 물질에 따라 이동하는 속도가 다르다.



동일한 물질은 항상 동일한 속도로 이동한다. 문제는 서로 다른 물질이 같은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는 물질에 전기충격을 줘 여러 조각으로 쪼개지는 패턴으로 구별할 수 있다. 마치 사람의 지문처럼 물질마다 패턴이 일정하게 나타난다. 국과수에서는 2008년 4월 중부고속도로에서 의문사한 남성 2명이 복어 독(테트로도톡신)에 중독됐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약독물과 김은미 박사는 “천연독은 화합 물질과 달리 아주 적은 양만 섭취해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며 “양이 적은데다 천연물질이기 때문에 검출하기가 쉽

지 않다”고 밝혔다. 국과수에서 사용하는 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기로는 독물을 pg(피코그램, 1조분의 1g) 단위까지 분석할 수 있다.



마약에 대한 혐의를 밝힐 때에도 크로마토그래피-질량 분석기를 활용한다. 시료는 보통 소변이나 혈액, 머리카락이다. 15일이 지나면 증거가 사라지는 소변과 달리 머리카락 속 약물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아 대략 몇 개월 전에 어떤 약물을 복용했는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필로폰은 시료 1mg당 0.5ng(나노그램, 10억분의 1g) 만큼 정밀하게 분석한다.







지난 3월 3일 인천 남동구에 있는 한 아파트 계단에서 우체국 집배원인 3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처음엔 실족사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국과수의 부검 결과 그의 사인은 ‘머리 등을 둔기로 여러 번 얻어맞아 생긴 과다출혈’이었다. 경찰은 그가 당일 이동한 경로의 CCTV를 입수해 분석했다. 약 8일 만에 잡힌 범인은 집배원 동료였다. 그는 범행 전부를 자백했다. 부검하지 않았다면 타살을 사고사로 결론 내렸을 것이다.



얼마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한 미종결 사건에서도 부검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일명 ‘만삭 의사부인 질식사 사건’이다. 용의자인 남편은 “아내가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목이 꺾인 탓”이라고 주장했다. 시신에 목을 조른 흔적이 없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국과수의 소견은 달랐다. 부검을 한 서중석 법의관은 “피해자의 목 피부를 벗겨낸 결과 드러나지 않았던 손자국과, 외부 압력이 있을 때만 나타날 수 있는 기도 내 점막손상, 경부(목) 점막의 출혈, 근육 간 출혈 등을 찾아냈다”고 언론에 공개했다.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며 재판이 진행 중이다(3월 22일 현재).



부검은 시신을 해부해 몸 안팎의 외상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을 비롯해 생체조직을 잘라 현미경 같은 장비로 검사하는 일을 모두 포함한다. 그래서 부검을 하면 자살로 꾸민 타살이나 보험금을 노린 자살 등을 판별할 수 있다. 자살과 타살을 포함해 외부의 힘으로 죽은 경우, 지병이 있었더라도 명확한 사인을 알 수 없는 경우 수사기관이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한다. 국과수 최병하 법의관은 “부검 전 담당수사관과 사건 정황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야 하며, 가능하면 현장을 직접 살피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재연한 만삭 의사부인 질식사 사건. 발견 당시 목이 옆으로 기울지 않고 바로 놓여 있고, 머리에 상처가 5곳 이상나 있어 경찰은 단순 질식사로 보지 않고 있다.]



사람은 죽은 뒤 24~36시간이 지나면 근육이 이완돼 뻣뻣하게 굳는다(사후강직). 심장박동이 멈추기 때문에 온몸의 피가 중력에 의해 땅으로 쏠린다. 즉 지면과 가장 가까운 부분의 피부가 짙은 청색으로 변한다(시반).

 

만약 의복 같은 물건에 눌리면 시반이 생기지 않는다. 시반의 형태와 유무를 살피면 시신이 사망 이후 옮겨진 적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부검의는 시신의 몸에 외상이 어디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크고 얼마나 심각한지 살펴 사인이 될 가능성이 높은 곳을 찾는다. 부검을 할 때 어디를 주의 깊게 살필지 미리 훑는 것이다. 외상이 있거나 사인의 증거가 될 만한 부위는 피부를 한 꺼풀씩 벗겨 관찰한다.





[인체부검도 턱 아래에서 배꼽까지 1자로 절개한 뒤 특별한 상처가 없는지 곳곳을 관찰한다. 주요 장기를 떼어 내 무게를 재고 조직을 잘라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게 샘플로 만든다.]


 

[SBS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싸인’. 주인공인 법의학자 (위, 박신양 분)는 인기스타를 부검한 뒤 청산가리 중독이 아닌 질식사로 죽었음을 알아냈다.]



가죽 잘라 내장 확인하고 조직 관찰하고



부검은 목에서 배꼽아래까지 수술칼(메스)로 그어 갈비뼈가 드러나도록 가죽을 자르는 것에서 시작한다. 양쪽 갈비뼈를 세로로 절개해 바깥으로 빼내면 안쪽으로 여러 기관이 드러난다. 장기들이 정상적인 위치에 있는지 기형은 없는지 살핀 뒤 주요기관들을 떼어내 무게를 재고 내용물을 채취한다.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곳은 심장과 좌우 폐, 간, 위, 비장(지라), 좌우 신장(콩팥)이다. 생식기관이나 대장, 소장을 잘라 내거나 내용물을 채취하기도 한다. 조직을 잘라 슬라이드(샘플)로 만들어 현미경으로 관찰한다. 예를 들어 심장은 정상치보다 무거우면 질환이 있을 가능성이 높고, 심근조직을 잘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심근경색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위는 내용물을 꺼내 필름 통처럼 생긴 시험관에 담는다. 위 내용물이 소화된 정도를 보면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과, 식사한 지 몇 시간만에 죽었는지 추정할 수 있다. 위 내용물에서는 약물이나 독극물을 확인한다.



시신의 머리를 살필 때는 먼저 삭발을 한다. 두피에 어떤 외상이 남지 않았는지 살피기 위해서다. 한쪽 귀에서 다른 귀 방향으로 메스로 칼집을 낸 뒤 가장 바깥 피부를 벗겨 젖히면 바깥에서 보이지 않았던 외상을 살필 수 있다. 그 뒤 톱으로 두개골을 자르고 열어 뇌를 꺼낸다. 두개골 밑바닥과 뇌에도 외상이 없는지 살피고 뇌 조직은 현미경 샘플로 만든다. 피가 많이 몰려 있는 허벅지 윗쪽에서 혈액(말출혈액)을 채취하면 일산화탄소와 혈중알코올 농도뿐 아니라 약물과 독극물이 포함돼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보는 곳은 목이다. 역시 외상이 있는지 살피고 피부를 벗겨 안쪽에 남은 자국을 찾는다. 턱 밑부터 목까지 절개해 기관지를 살핀다. 부검이 끝나면 장기를 원래 자리에 넣고 근육과 피부를 덮어 봉합한다. 부검하는 동안에는 사진담당 연구관이 모든 장기와 외상을 촬영한다. 부검을 하는 데는 총 40분에서 길게는 3시간이 걸린다. 국과수 김유훈 법의관은 “부검만으로 100% 완벽한 사인을 알아내기는 어렵다”며 “현장 상황과 사건의 정황도 함께 고려해야 종합적인 사인을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부검의는 냉철한 판단뿐 아니라 담당 수사관과 충분히 대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범죄자들이 똑똑해졌다. 지문을 지우고 머리카락을 치우는 것은 물론, 혈흔과 정액을 닦아내기도 한다. 사전 계획한 범인은 아예 장갑을 끼고 범죄를 실행하거나, 시신의 지문을 훼손한다. 시신을 토막 내 신원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고, 성범죄 때는 DNA가 남지 않도록 콘돔(라텍스 고무로 만든 피임도구)을 사용하기도 한다. 국과수 화학분석과 홍성욱 박사는 “범인의 DNA 증거물을 채취할 수 있는 사건은 전체 사건에서 10%도 안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뛰는 ‘범죄’ 위에 날아다니는 ‘수사’가 있는 법. 국과수 연구원들은 “과학 앞에 완전범죄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보이지 않는 티끌에 꼬리 잡혀



국과수 연구원들이 최근 범죄 현장에서 주목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증거물’이다. 피해자를 둘둘 말아 옮겼던 카펫에서 나온 섬유, 신발 밑창에 묻은 흙먼지, 성폭력 당시 범인이 벽에 잠깐 기댔을 때 옮겨진 옷 섬유, 대문을 부술 때 사용했던 도구에 묻은 페인트나 쇳가루 등이다.



범인이 피해자를 옮길 때 각자의 옷 섬유가 서로에게 달라붙기도 한다. 범인은 자기가 무엇을 흘리는지, 피해자와 서로 무엇을 주고받는지 깨닫지 못하고 범행을 저지른다. 수사관 입장에서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이런 흔적들을 전문가들은 ‘미세증거물’이라고 부른다. 국내에는 2006년 홍성욱 박사가 미국에서 최초로 미세증거물을 이용한 수사기법을 도입했다. 미세증거물은 양이 아주 적기 때문에 자외선이나 적외선 등 빛을 쏘아 찾는다. 수사관들은 투명테이프나 진공청소기 등으로 사건현장에 남아 있는 미세증거물을 확보한다.



위 사례와 같은 뺑소니 사건에서도 미세증거물을 확보하면 범인을 검거하기가 쉬워진다. 피해자와 범인 사이에 옷 섬유가 교환되는 것은 물론, 깨진 유리창 파편이 범인의 신발 밑창에 박혀 있거나 피해자의 머리카락, 옷 섬유 등이 자동차에 남기도 한다. 달리던 차에 사람이 부딪치면 순간적으로 뜨거운 열이 가해지면서 차체나 범퍼에 있던 페인트가 녹아 피해자의 옷이나 살에 묻기도 한다. 차량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페인트가 사람에게, 사람의 피부나 섬유가 차에 묻을 확률이 높다.



피해자에게 남은 페인트 증거물을 찾으면 그 페인트와 의심 차량의 페인트가 같은지 구별해야 한다. 비교현미경 등으로 페인트 층을 관찰할 수 있다. 눈에는 은색으로 보이는 페인트일지라도 현미경으로 보면 녹색-적색-은색 순으로 전혀 다른 색깔 층인 경우가 많다. 페인트 층을 이루는 색깔과 그 순서가 서로 같다면, 동일한 페인트 증거물로 봐도 된다. 즉 지문처럼 완벽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2008년 숭례문 방화사건의 용의자를 검거할 때에도 페인트 증거물이 큰 힘을 발휘했다. 경찰은 CCTV에 찍힌 용의자 채 모 씨의 집에서 의복과 신발, 모자 등을 수거했고 화재현장의 누각에 칠해져 있던 페인트와 목재, 콘크리트를 수거했다. 국과수에서 이것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운동화의 코 부위에서 붉은 물질을 발견했다. 적외선을 쪼아 스펙트럼을 얻어 비교해보니 이 물질은 숭례문 서측 기둥에 칠해져 있던 페인트와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다.



신발 밑창이나 옷에 붙어 있는 흙(토양)과 먼지도 증거가 된다. 재미있게도 토양을 이용해 범죄를 해결할 수 있다고 최초로 주장한 사람은 ‘셜록 홈즈’를 지은 영국 소설가 코난 도일이다. 토양은 대개 한 곳에서 약30cm 깊이까지 성분이 동일하기 때문에 이를 과학수사에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범인 차량에서 발견된 흙과 피해자 옷에 묻은 흙이 같은지 비교할 수 있다. 피해자의 옷에 묻은 흙과 현장의 흙을 비교해 피해자가 죽은 뒤에 옮겨졌는지 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



콘돔을 이용한 교활한 성범죄자도 미세증거물로 잡을 수 있다. 현장에 DNA(정액)를 남기는 것은 막을지 몰라도 콘돔에 있는 미세증거물을 흘리기 때문이다. 홍성욱 박사는 “예를 들어 알몸인 여자 시신을 발견했을 때, 질 내용물에서 실리콘계 윤활제 성분과 옥수수전분이 나온다면 성폭행이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면서 “피해자가 자신이 당한 피해를 설명하기 힘든 정신지체 여성이나 어린이인 경우에도 이것으로 범죄를 입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콘돔에서 나온 미세증거물은 변별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완벽한 증거물이 되려면 용의자의 몸이나 집에서도 동일한 미세증거물을 확보해야 한다.



이외에도 단추나 음식물, 필기도구, 종이, 케이블타이, 노끈, 소화기분말 등 모든 것이 미세증거물이 될 수 있다. 홍 박사는 “미세증거물은 하찮은 것처럼 보이지만 채취 당시의 위치와 정황을 잘 조합하면 중요한 증거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생각지도 못한 데서 나온 증거물로 무고한 사람이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거나, 범행을 부인하는 용의자를 압박할 수 있다. 증거물을 많이 채취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채취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홍성욱 박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 흘리지 않을 수 없는 ‘먼지 증거물’의 존재를 안다면 누구라도 섣불리 범죄를 저지르지 못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교통사고 피해자가 입고 있었던 옷(➊)에 미세하게 묻어 있는 페인트(➋)를 찾아냈다. 데이터 베이스에서 동일한 스펙트럼을 검색한 결과 신형 포터 차량에 사용하는 페인트임을 알아냈다. 용의자 운동화(➌)에 묻은 페인트(➍)와 현장에서 채취한 페인트(➎). 만약 두 페인트의 스펙트럼이 같다면 용의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유영철 신발에 있던 보조굽(➏, ➐). 2003년 사건현장에 남아 있던 범인 발자국(➑, 원 안)과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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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이미지 출처│동아일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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