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고이 접어 이룰레라] Part1. 접으면 한강도 건넌다

종이처럼 집도 접고, 자동차도 접고

 종이학이나 종이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방법은 없을까. 종이배를 타고 크루즈 여행을 떠날 수는 없을까. 아직까지 종이로 접은 물건을 타고 하늘을 날았던 사람은 없지만, 종이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데 성공한 사람들은 있다! 지난해 11월 영국에서 한 아티스트가 커다란 종이배를 접어 타고 템스 강을 건넜다. 그는 편안한 자세로 종이배에 앉아, 구경나온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거나 책을 읽으면서 즐겼다. 커다란 종이 한 장이 배로 다시 태어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6분. 종이접기라는 마법이 상상을 실현시킨 순간이었다. 국내에도 종이배를 타고 한강을 건넌 사람들이 있다. 한 기업이 ‘세상을 바꾸는 건 행동’이라는 도전적인 주제로 종이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려고 시도하는 광고를 내보냈다. 그 기업은 대학 발명동아리들이 스스로 제작한 종이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경진대회도 열었다. 종이배뿐이 아니다. 우리 생활 속 곳곳에는 종이접기가 숨어 있다. 식탁 위의 냅킨이나 각종 상자, 마음대로 모양을 바꿀 수 있는 가방, 캠핑 장비 등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에는 접고 펴는 물건들이 가득하다. 과학자들은 종이접기를 활용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다. 로켓에 들어가지 않는 거대한 망원경과 태양전지판은 종이 접듯 접는다. 전류를 흘리면 배나 비행기로 저절로 접히는 종이를 개발해 트랜스포머 로봇을 꿈꾸기도 한다. 세상 곳곳에 숨어 있는 기발한 종이접기들의 활약을 보며 미래에는 어떤 꿈을 곱게 접어 실현시킬 수 있을지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보자.



 
 




 
 


 
 


2010년 11월 2일, 즐거운 노래가 들리는 이곳은 영국 런던에 있는 템스 강의 캐너리 워프다. 성인 10명이 방 한 칸만 한 종이를 강둑에 펼쳤다. 한쪽 변을 이불처럼 질질 끌어와 종이를 반으로 접은 다음, 다시 그 반으로 접었다가 폈다. 접혔던 선에 맞춰 양쪽 귀퉁이를 삼각 꼴로 접었다….



사람들 모두 종이가 구겨질까봐 조심조심 다루면서 접힌 부분을 발로 꼭꼭 밟았다. 종이를 접기 시작한 지 어느덧 7분, 다섯 명이 매달린 끝에 자루접기(모서리 같이 접혀 있던 부분을 자루처럼 벌리면서 접는 방법)가 겨우 끝나자 거대한 종이배 한 척이 탄생했다. 이 작업을 지휘한 독일의 설치예술가 프랑크 뵐터는 종이배가 더 이상 접히지 않도록 안에 철로 만든 뼈대를 넣어 고정시켰다.



길이 9m, 너비 2.2m, 높이 2.5m. 웬만한 자동차보다도 큰 이 배를 강물에 띄웠다. 사람들은 뵐터를 들어 올려 배 안에 넣었다. 뵐터는 템스 강에서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예술축제 ‘드리프트10’을 위해 종이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저어라, 저어라, 너의 배를~.” 사람들의 노랫소리에 맞춰 종이배의 선장 뵐터는 강물 위에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냈다. 바람에 물결이 출렁인 탓일까, 배가 잠시 구겨지는 듯 보였다. 뵐터는 크림에서 허우적대는 개미처럼 가까스로 배의 각을 잡았다. 안정된 자세를 잡고 나니 종이배는 물위를 떠다니는 나뭇잎처럼 여유롭게 보였다. 뵐터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신문을 읽기도 했다. 그는 이 배를 타고 어디로든 여행가고 싶다는 소망에 ‘세상 끝으로’라는 이름을 지었다.



뵐터는 “물이 새지 않는 우유팩 종이에 알루미늄을 섞고 플라스틱 재질로 코팅해 특수종이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종이는 일반 종이보다 탄탄해 쉽게 찢어지거나 물에 젖지 않고, 접기가 수월하다. 얼마나 정교하게 접었느냐에 따라 물에 떠 있는 시간도 달라진다. 이날 ‘세상 끝으로’는 몇 시간을 떠 있었지만, 뵐터가 2008년 핀란드에서 띄웠던 종이배는 5분 만에 가라앉아 버렸다.



많은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 추억이 어려 있는 장난감이 상상을 뛰어넘었다. 고작 개미나 인형 정도를 태울 수 있었던 종이배가 어떻게 성인 남성을 태우고 강을 건널 수 있었을까. 바로 종이접기에 잠재된 능력 덕분이다.

 
 
 
[뵐터가 공개한 퍼포먼스 영상 속 장면들. 성인 10명이 함께 종이배를 접어 물에 띄우면 뵐터가 타고 강을 건넜다. 이 영상을 보면 행복한 꿈나라에 갔다 온 것처럼 즐거워진다.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종이접기는 바로 상자! 우리 생활에는 알게 모르게 접고 펴는 물건들이 가득하다.]







종이접기는 종이 한 장만을 이용하되, 절대 오리거나 풀칠을 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다. 화려한 모양을 내거나 기능을 만들 때도 가위 집을 내거나 종이끼리 잇는 부분을 붙이는 정도다. 그만큼 정교하고 섬세한 손작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2000년대 초반, 일본 디자이너 유미 카츠라가 만든 종이 드레스.
종이접기를 100% 활용했다

종이를 쉽게 접으려면 섬유의 결이 어떻게 나 있는지 보아야 한다. 종이를 구성하는 섬유는 일정한 방향(섬유 배향 방향)으로 짜여 있다. 섬유 배향 방향을 따라 종이를 접으면 쉽게 접히지만, 그 방향과 수직으로 접으려면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



종이는 접으면 접을수록 점점 단단해진다. 얇았던 종이가 겹쳐져 두께가 기하급수적으로 두꺼워지면서 휨강도(휘거나 구부리려는 외부 압력에 견디는 힘)가 크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이는 접을수록 점점 접기가 어려워지는 반면, 튼튼하고 안정해진다. 처음부터 두껍게 제조된 종이는 쉽게 접히지 않는다. 이때에는 가위 날의 반대쪽이나 볼펜 등으로 접으려는 부분을 한번 그어주면 된다. 강한 압력으로 누른 부분의 섬유가 파괴돼 섬유 사이에 빈 공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종잇장 한 장이 장난감을 넘어 튼튼한 유람선으로 탄생한 데에는 마법 같은 과학이 숨어 있었던 셈이다.



종이접기가 새로운 친환경 운송수단으로 각광받는 날이 올까. 윤혜정 서울대 환경재료과학과 교수는 “종이접기가 특별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종이가 유연해서 접기가 쉽고, 접힌 구조를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는데다 의외로 단단하기 때문”이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종이처럼 유연하면서도 단단하고, 접힌 모양을 유지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한다면 운송수단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종이접기로 주차난 해결



우리 주변에서는 종이뿐 아니라 천, 나무, 금속 등을 접어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종이접기는 장식이다. 천장에 다는 모빌부터 고급 레스토랑의 식탁에 놓인 냅킨(왕관이나 백조 모양), 창문을 가리는 커튼, 옷 가게에 가지런히 정리된 옷들, 공중 화장실에 곱게 주름 잡힌 휴지까지 종이접기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콜롬비아의 마우리시오 포사다를 비롯한 몇몇 해외 디자이너들은 종이를 접어 드레스를 제작하기도 한다.



종이접기는 큰 부피를 작게 줄일 수 있다. 물론 다시 펴면 원래 크기로 되돌아온다. 거대한 물건은 작게 만들어 손에 들고 다니거나,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물건은 축소해놨다가 필요할 때만 늘이면 된다. 6면이 서로 수직으로 만나도록 접어서 완성하는 상자, 3차원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입체적으로 튀어나오는 아동용 책, 작은 소품처럼 접히는 커다란 장바구니 등이다.



최소로 가볍고 편하게, 최대한 많이 짊어져야 하는 캠프의 세계에서는 종이접기가 단연 최고다. 접는 자전거,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 태양열 조리기 같은 기구, 그리고 텐트까지 마치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처럼 가구와 집이 뚝딱 생긴다.



2008년 국내 한 전자업체에서는 입력기를 차곡차곡 접어 손바닥만 한 크기로 휴대할 수 있는 와이브로 모바일 단말기를 출시하기도 했다. 얼핏 PDA처럼 보이지만 윈도 XP를 운영체제로 사용하는 엄연한 컴퓨터(초소형 모바일 PC)다. 반으로 접혀 있는 이 기기를 열면 폴더 형식으로 접힌 두 개의 자판이 펼쳐진다.



스위스 차량 개발 업체 린스피드가 개발한 ‘프레스토’는 단 몇 초 만에 2인승 자동차가 4인승으로 죽 늘어난다. 이 차의 비밀은 트렁크에 접혀 들어가는 뒷좌석이다.



자동차 자체를 접는 방법은 없을까. 영국 디자이너 대니얼 베일리는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와 푸조 908에 영감을 받아 전기와 수소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 ‘BRB 에볼루션’을 설계했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멋들어졌을 뿐 아니라, 앞바퀴를 들어 올려 차체 중간 부분을 접을 수 있다. 접은 상태에서는 차가 뒷바퀴 두 개로만 서게 된다. 차 뒷부분을 손잡이 삼아 끌거나 밀면 원하는 곳까지 옮길 수 있다.



실제로 만든 접는 자동차도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의 프랑코 바이라니는 구부렸다 펴면서 근력을 향상시키는 운동기구와 닮은, 접었다 펼 수 있는 자동차 ‘빗카’를 만들었다. 이 차는 필요에 따라 얇게 접을 수 있고, 차끼리 서로 포갤 수 있다. 바이라니는 “적은 공간에 꽤 많이 주차할 수 있다”면서 “쇼핑센터에서 카트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종이접기를 활용하면 신축성이 생기기도 한다. 접었다 펼 수 있는 휴대용 물통이나 잡아당기면 뱀처럼 길어지는 호스 등이다. 프랑스나 스웨덴 같은 유럽 국가나 미국, 일본 시내에서 볼 수 있는 굴절버스는 버스 중간에 주름 모양의 조인트가 있다. 일명 ‘아코디언버스’라 불리는 이 버스는 일반 버스 두 대를 연결한 것이다. 승객을 2배 이상(140명) 태워 교통체증을 줄이기 위해 개발했다. 유연한 주름이 있어 곡선도로를 휘어져 달릴 때에도 뒷차가 튕겨나가지 않는다. 버스의 앞뒤뿐 아니라 중간에도 출입구가 있어 승객이 오르내리기 쉽다는 장점도 있다.
 
 






















 
 
 책상과 의자 나타나는 ‘트랜스포머’ 가방



잠자코 있던 라디오와 자동차가 벌떡 일어나 스스로 접히기 시작한다. 종이처럼 유연하게 움직여 어느 부위는 꾸깃꾸깃 접히고 어느 부위는 펴지면서 로봇으로 변신한다.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봤던 장면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현실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그와 비슷한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미국 테라퓨지아가 개발한 자동차, ‘트랜지션’은 로봇 대신 비행기가 되는 쪽을 선택했다. 접혀 있던 날개를 양 옆으로 뻗어 비행기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30초. 일반 비행기처럼 넓게 펼쳐진 길을 달리다가 양력을 얻으면 하늘로 붕 떠오른다. 다시 땅으로 내려와 날개를 접으면 일반 자동차처럼 달릴 수 있다. 자동차에서 비행기, 비행기에서 자동차로 마음껏 변하며 땅과 하늘을 모두 누비는 것이다. 트랜지션은 이미 2009년 3월에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시속 약 180km로 하늘을 날 수 있으며, 한 번에 제주도에서 평양까지 날아갈 수 있다(650km).



지갑만 한 크기로 작아지거나, 기분에 따라 디자인을 바꿀 수 있는 가방도 있다. 프랑스 브랜드인 롱샴은 가지런히 접어 단추를 채우면 영락없는 지갑처럼 보이지만 단추를 풀면 큰 가방으로 변하는 제품(르 플리아주)으로 유명하다. 나일론으로 만들어 얇고 가벼운데다 쉽게 접힌다. 브레라는 디자인을 바꿀 수 있는 가방을 제작했다. 평소에는 넓적하지만 주둥이와 바닥면의 모서리 네 쪽을 접어 단추를 채우면 뭉툭한 디자인으로 변신한다.



모양이 변하는 수준을 넘어 가구로 역할이 바뀌는 가방도 있다. 미국 디자이너 닉과 보우 트린시아 형제가 만든 오픈에어는 노트북을 넣고 다닐 수 있는 가방이다. 긴 줄이 달려 있어 어깨에 걸거나 X자로 메기 좋다. 이 가방을 펼치면 노트북이나 책을 얹을 수 있는 나무 책상과 등받이 의자가 나타난다. 책상의 양 끝에는 날개가 접혀 있는데, 이것을 펼치면 마우스를 놓거나 팔을 편하게 기대는 보조책상이 된다.



이외에도 종이접기는 조끼와 가방으로 변신하는 점퍼(워모), 배낭으로 변하는 재킷, 둘둘 말아 접어 지퍼를 채우면 반바지가 되는 긴 바지처럼 패션에서도 활용된다. 장난감과 예술을 넘어 더 편리하고 즐거운 생활을 위해 끝없이 도전하고 있다. 앞으로 점점 더 종이접기를 활용해 다양한 기능과 휴대성, 세련된 디자인을 겸비한 제품이 나올 것이다. 템스 강에서 거대한 종이배를 접던 사람들이 불렀던 노랫말처럼, 인생은 그저 꿈꾸는 과정일 뿐이고 종이접기는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마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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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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