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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가 효과 없는 이유

처벌에 관한 과학적 진실

새 학년이 되면 교실 안에서는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진다. 학생들은 어떤 교사가 소위 '만만'한지, 어떤 교사를 조심해야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한다. 학교에 떠도는 소문이나 선배의 조언, 혹은경험을 통해 만만한 교사와 무서운 교사를 구분한다. 만만한 교사의 수업 시간에는 눈치껏 떠들거나 잠을 자기도 하지만, 무서운 교사 앞에서는 딱히 맷집을 시험해 보고 싶지 않은 한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 않는다.



교사도 눈치를 본다. 만만한 교사로 찍혔다가는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아 일 년 내내 고생하기 십상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학년 초에 기선 제압을 하는 교사도 있다. 잘못을 저지른 학생 한 명을 반 아이들 앞에서 소위 ‘시범 케이스’로 체벌을 가하는 것이다. 친구가 호되게 당하는 모습을 본 학생들은 최소한 그 교사 앞에서는 얌전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풍경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의 수많은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겨 온 풍경이기도 하다. 체벌을 ‘사랑의 매’라 하며 유용한 교육 방법으로 여기는 문화도 이런 모습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체벌이 정말 학생을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은 찾아보기 힘들다. 체벌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주로 학생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거나 교사의 권위를 세워야 학생을 통제할 수 있다는 주장이 대립한다. 심지어 요즘에는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편을 갈라 싸우기도 한다. 김성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인권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인권으로 접근해서는 체벌 논쟁을 해결할 수 없다”며 “과학적으로 검증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체벌에는 교육 효과가 있을까. 20세기 중반에 활동한 대표적인 미국의 행동주의 심리학자 벌허스스키너는 가르치는 대상이 어떤 행동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강화’를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화는 어떤 행동에 대한 대가로 좋아하는 자극을 주거나(정적 강화) 싫어하는 자극을 없애(부적 강화) 원하는 행동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반대로 ‘처벌’은 어떤 행동에 대한 대가로 좋아하는 자극을 빼앗거나 싫어하는 자극을 줘 행동을 억제하는 방법을 말한다. 체벌은 싫어하는 자극을 주는 일이므로 처벌에 속한다.



스키너의 이론은 교육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학습자의 행동을 바꾸는 데는 처벌보다 ‘정적 강화’가 훨씬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교육에 도움이 되는 다섯 가지 원칙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대 심리학에서도 처벌에는 교육 효과가 없다는 이론이 정설이다. 처벌은 오용되거나 남용되기 쉽고, 처벌을 받는 사람이 모방할 수 있다. 특히 처벌 중에서도 가장 강한 혐오 자극인 체벌은 잘못된 행동을 일시적으로 억제할 뿐 바람직한 행동이나 태도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 장근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체벌은 공포를 이용해 학생을 통제하는 것”이라며 “이런 방법을 교육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체벌은 공포와 불안감 일으켜



그렇다면 교사가 체벌을 효과적인 교육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체벌이 공포와 불안감을 일으켜 학생들의 행동을 즉시 바꾸기 때문이다. 새학년 초에 반 학생 앞에서 본보기로 떠든 학생을 체벌하는 교사의 예를 들어 보자. 이후 그 교사의 수업 시간에는 학생들이 떠들지 않는다. 이것을 체벌의 효과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강화에 해당한다. 학생들은 본보기 체벌을 통해 떠들면 체벌을 당한다는 규칙을 익혔다. 따라서 떠들지 않음으로써 체벌을 당하지 않는 보상을 얻는다. 즉 싫어하는 자극(체벌)을 없애 줌으로써 특정 행동(떠들지 않음)을 유도하는 ‘부적 강화’로 처벌과는 다르다. 김성일 교수는 “부적 강화의 효과를 얻는 것은 체벌을 당한 학생이 아니라 체벌을 당하지 않은 나머지 반 학생들”이라며 “체벌이 잘못을 저지른학생의 행동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체벌이 비뚤어진 학생을 바르게 지도할 수 있다고 믿는 교사의 심리가 ‘미신적 강화’라고 지적했다. 교사가 학생을 지도할 때는 체벌뿐만 아니라 관심 표현, 훈계, 설득 등 다양한 방법을 이용한다. 그 중에서 체벌이 가장 인상에 두드러지게 남는다. 따라서 학생의 행동이 바뀌었을 때 그 이유를 체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잘못된 귀인’이라고 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체벌이 학생의 행동을 바꾸는 데 효과가 있다는 개인적인 신념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런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적인 법칙으로 확장할 수는 없다. 만약 체벌이 효과가 있다면 체벌을 당한 대다수 학생의 행동이 바뀌어야 하지만, 실제로 그런 학생은 소수에 불과하다.









체벌이 나쁜 행동의 빈도를 줄이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그것은 동물 실험처럼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에서만 가능하다. 인간 사회에서는 체벌의 부작용으로 도피와 회피 행동이 나타난다. 학생들은 체벌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과 같은 요령을 배운다. 체벌의 기준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게 아니라

교사에 따라 체벌의 유무나 정도가 들쭉날쭉하기 때문에학생도 교사의 성격에 맞춰 행동한다. 바람직한 행동을 배운다기보다는 학교에서 살아남는 요령을 익히는 셈이다. 개인마다 고통을 느끼는 강도도 다르기 때문에 명확한 체벌 기준을 정하는 일도 사실상 어렵다.









체벌은 부작용도 매우 크다. 2002년 미국 콜롬비아대의 엘리자베스 게르쇼프 박사는 1940년부터 62년 동안 이뤄진 체벌에 관한 연구 88개를 분석한 논문을 미국 심리학자가 발행하는 ‘심리학 회보’에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게르쇼프 박사는 부모의 체벌을 받고 자란 아이의 행동 특성에 대해 설명했다. 논문에 따르면 체벌은긍정적인 면에서 효과가 거의 없는 반면 부정적인 효과는 많다.







체벌은 아이가 부모의 말에 즉시 따르게 한다는 점에서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효과는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는다. 체벌이 사라지면 행동도 원래대로 돌아온다. 체벌은 아이를 억압해 행동을 조작했을 뿐 내면의 도덕성을 키워 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바람직한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 단순한 체벌은 도덕성을 키워주기보다는 ‘걸리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심어 줄 가능성이 크다.



부모와 아이 사이의 관계도 체벌에 의해 나빠질 수 있다. 체벌로 인한 공포와 고통은 부모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심한 경우 부모 자식 사이의 유대 관계를 끊어 버린다. 정신 건강을 해칠 가능성도 높다. 체벌은 나이, 성별, 경제 수준과 무관하게 사춘기의 우울증을 일으킬 수 있다. 자신감을 잃어버리거나 무력감을 느끼게도 한다.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은 아동은 성인이 된 뒤 우울증이나 알코올중독, 자살충동 증상을 겪기 쉽다.



게르쇼프 박사는 또 다른 부작용으로 체벌을 당한 아동은 아동학대의 피해자가 될 수도,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들었다. 연구에 따르면 아동학대를 범한 부모의 3분의 2는 자녀에게 올바르게 행동하는 방법이나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 체벌을 시작했다. 반대로 체벌을 받으며 자란 아동은 폭력에 둔감해지고 공격성이커지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 자녀나 배우자를 폭행할 가능성이 높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체벌을 당하며 자란 아동은 자존감과 동기의식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특히 체벌을 이용해 행동을 강요받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쉽다.



바람직한 행동의 가치를 깨닫게 해야



체벌이 교육 효과는 없는 반면 부작용이 많은데도 교육 현장에서 널리 쓰이는 이유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체벌을 통해 부적 강화 효과를 얻을 수는 있지만, 그 경우 굳이 부작용이 많은 체벌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벌점, 정학과 같은 다른 제도로도 마찬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벌점 제도도 체벌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가장 좋은 방법은 관심이나 칭찬처럼 학생이 원하는 보상을 제공해 강화 효과를 얻는 것이다.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 학생은 보상으로 행동을 조절하기 쉽다. 그러나 중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교사가 주는 보상은 매력이 없어진다. 이렇게 되면 교사는 강화를 통해 행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체벌로 잠시 억압하게 된다. 하지만 청소년기는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쉽고 성인의 위선에 예민한 시기라 교사의 억압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격렬하게 반항하며, 심한 경우 극단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김 교수와 장 위원은 교사가 학생이 원하는 보상을  제공하지 못하고 체벌을 이용하는 이유로 학교 시스템을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사 한 명이 담당하는 학생 수가 수십 명에 이르기 때문에 각 개인에게 적합한 보상을 찾아 바람직한 행동을 강화하기 어렵다. 어쩔 수 없이 학생이 나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처벌을 이용하는데, 이때 만약 공평하게 정해진 규칙이 있다면 학생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교사가 스스로 판단해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규칙보다는 공포를 이용해 통제하는 경우가 많다. 체벌을 금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런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설령 보상을 통한 적절한 강화가 이뤄진다고 해도 학생이 바람직한 행동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보상이 사라지면 행동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교사는 학생에게 보상 이상의 가치를 느끼게 해 줘야 한다. 수학 점수를 잘 받으면 상을 받기 때문에 수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면, 더 나아가 수학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어야 상이 없어진 뒤에도 계속 수학 공부를 한다.



이처럼 학생이 스스로 가치를 인식할 수 있을 때 교육 효과는 더욱 높아진다. 그래서 권위적이고 수직적인질서가 깨진 오늘날의 현실에 맞는 교육적 가치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학생과 교사가 모두 인정하는 가치를 찾을 수 있다면 체벌에 의존하지 않고도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청소년 인권단체, 문화연대 등 30여 개의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준비모임’에 참여한 조영선 서울 경인고 교사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가르치는 방법에 대한 논란에 앞서 꼭 가르쳐야 할 교육적 가치에 대해 교사와 학생이 함께 의논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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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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