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과 마찬가지로 스타크래프트2(이하 스타크2)의 배경도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은하의 ‘코프룰루 섹터’다. 게임의 배경은 외계이지만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크)는 사실 인간의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테란은 유전자 조작과 로봇의 위력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테란은 오늘날의 인류처럼 과학을 발전시켜 만든 원자력을 무기로 한편으로는 기생충이나 바이러스와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고 또 한편으로는 영화 ‘터미네이터’에서처럼 인간을 공격하는 로봇에 맞선다.
강력한 원자력 제국 테란
스타크2에서도 테란이 지닌 힘의 근원은 원자력이다. ‘사이언스 베슬’이 사라지면서 더 이상 방사능 공격인 ‘이레이디에이트(Irradiate)’는 사용할 수 없지만, 유령(Ghost)이 여전히 강력한 무기인 핵폭탄을 가지고 있고, 스타크2에서 새롭게 업그레이드되면서 사이언스 베슬의 EMP(Electro-Magnetic Pulse) 능력까지 갖게 됐다. 그 밖에 업그레이드된 해병(Marine)이 쏠 수 있는 ‘U-238 열화우라늄 탄환’, 건설로봇(SCV)의 핵융합 절단기, 전투순양함(Battle Cruiser)의 야마토포 등도 모두 원자력을 이용한다.
EMP는 강력한 전자기파를 발생시키는 EMP탄을 쏘는 무기다. 이것은 사람의 몸에는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않지만 전자 장비는 무력화시킬 수 있다. 스타크에서는 EMP탄을 사용하면 프로토스 유닛의 쉴드(보호 능력치)만 제거되는데, 엄밀히 말하면 아군인 테란과 프로토스의 기계화 유닛들처럼 EMP 방어 처리가 안 된 유닛들도 모두 피해를 입어야 한다. 실제 핵폭탄이 폭발할 때도 열과 복사선에 의한 피해 못지않게 전자기파에 의한 피해가 크다.
이레이디에이트가 반감기가 짧은 텔루르나 이트륨과 같은 방사성 물질을 생체 유닛에게 쏘는 공격이라면, 해병의 새로운 능력인 U-238 열화우라늄 탄환은 핵폭탄이나 핵연료를 제조하기 위해 우라늄을 농축하면 마지막에 남게 되는 열화우라늄(238U)을 총탄으로 사용한다. 재미있게도 실제 열화우라늄탄은 게임에서처럼 탄환의 사정거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운동에너지를 증가시켜 탱크 표면 같은 장갑을 뚫는 관통 효과를 높인다. 전투순양함은 전작의 배틀 크루저의 성능이 강화돼 한 번에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야마토포를 쏜다. 야마토포는 고온의 플라스마를 전자기력으로 가뒀을 때 이것의 핵융합 에너지를 포의 형태로 발사하는 무기로, 핵융합로를 건설한 뒤에 이용할 수 있다.
스타크2에서는 치료 능력을 갖춘 의무관(Medic)이 사라지고, 의무관에 수송 능력이 더해진 의료선(Medivac)이 등장했다. 의료선은 공중 유닛으로 수송을 담당하면서도 동시에 해병 같은 생체 유닛을 치료할 수 있다. 해병의 전투복은 생체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달려 있고, 피부를 통해 자극제(Stimpack)을 투입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자극제는 강력한 합성 아드레날린과 엔돌핀을 신경전달물질과 함께 혼합한 야전용 주사 약물인데, 전투 시 투입하면 해병은 이동속도가 빨라지고 순발력이 증가하면서 전투 능력이 향상된다. 스타크2에서는 벙커 안에서도 해병이 자극제를 사용할 수 있다.
인간을 조종하는 저그 vs 지구의 미생물·기생충
저그는 ‘젤-나가’라는 고도로 발달한 고대 종족이 창조한 생물체다. 저그는 숙주 동물의 살을 파고들어가 숙주와 결합하는 적응능력이 뛰어났다. 초기에는 자그마한 곤충에 불과했던 저그는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숙주와 끊임없이 결합하면서 거대하고 공격력과 방어력이 높은 울트라리스크나 뮤탈리스크로 진화했다. 스타크2에서도 저그가 새롭게 진화한 유닛인 바퀴(Roach)나 맹독충(Baneling)이 등장한다. 바퀴는 웬만한 공격을 받아도 ‘유기 갑피 진화 업그레이드’를 하면 금세 체력이 회복될 정도로 신체 재생 속도가 빠르다. 맹독충은 화학 물질과 부식성 산으로 가득 차 있는 자폭 유닛인데, 이는 저글링이 진화한 결과물이다.
지구에서 발견되는 생물 중에는 저그만큼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들이 많다. 원자로 속이나 무중력 상태인 우주선, 황산이나 끓는 물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세균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렇게 호산성, 호염기성, 호열성, 호압성 같은 독특한 특성을 동시에 가지는 생물이 존재한다면 저그보다도 더 강력한 종족이 탄생할 수도 있다. 실제 전쟁이라면 거대하고 강한 갑피에 둘러싸인 울트라리스크보다는 이러한 미생물 공격이 훨씬 두려울 것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기생벌의 번식 방법을 보면 가끔은 저그보다 더 ‘저그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기생벌이 숙주의 몸에 알을 낳으면 알에서 태어난 새끼는 숙주의 몸을 먹고 자라다가 결국 몸을 뚫고 나오는데, 이는 전작에서 저그 종족의 퀸이 사용하던 ‘스폰 브루들링’ 기술이다. 기생벌은 숙주의 몸에 알을 낳을 때 알이 안전하게 태어날 수 있도록 바이러스도 함께 넣어 숙주 몸의 면역 체계를 혼란시킨다. 이는 해당 지역에 수많은 작은 벌레로 이뤄진 연막을 쳐서 아군 유닛들을 보호하는 디파일러(Defiler)의 ‘다크 스웜(Dark Swarm)’ 기술과 유사하다.
저그의 자랑거리는 뭐니뭐니해도 감염충(Infestor)이나 타락귀(Corruptor) 같은 유닛들이 펼치는 강력한 감염 공격이다. 스타크2에서 새롭게 추가된 감염충은 테란의 해병을 감염시킨다. 감염된 해병(Infested arine)은 일반 해병처럼 총을 쏘는데, 아군이었던 테란 부대를 공격한다. 또 감염충은 진균 감염과 신경 기생충 마법으로 상대방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진균 감염은 해당 범위에 있는 유닛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기술이고, 신경 기생충 마법은 상대방의 유닛을 감염시켜 10초 정도 조종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는 전작에서 디파일러가 하던 일과 유사하다.
타락귀 역시 스타크2에 새롭게 추가된 유닛이다. 목표물을 파괴하는 대신 일정 시간 동안 상대방 진영의 건물 생산을 중지시키거나, 공격 능력을 가진 건물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현실에서는 기생충이 이와 비슷한 행동을 한다. 산양이나 소, 돼지, 토끼 등에 기생해서 사는 ‘창형흡충’은 최종 숙주의 몸에 들어가기 위해 중간 숙주인 개미의 뇌에 침투해 최종 숙주에게 먹히도록 신경을 조종한다. 비슷한 예로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는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포자충이 고양이로 들어가려고 쥐를 조종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스타크2에는 변신수(Changeling)라는 재미있는 유닛이 있다. 변신수는 몸 색깔을 처음 마주친 상대편의 색으로 바꾼 뒤 해병이나 광전사(Zealot) 같은 상대편의 기본 유닛으로 변신해 적진으로 숨어든다. 이런 능력을 자연에서는 ‘의태(擬態)’라고 한다.
시공간 맘대로 주무르는 프로토스 천하무적인가
프로토스는 빛과 물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초과학 문명을 가진 종족이다. 과학기술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시공간을 자유롭게 다루는 프로토스는 원자력을 이용하는 테란에 비해 월등히 앞서 있다.
특히 프로토스는 건물이나 유닛을 감싸는 보호막 기술이 있다. 예를 들어 파수기(Sentry)는 수호방패 기술로 적의 원거리 공격 피해를 감소시키고, 스타크2에 새롭게 추가된 유닛인 불멸자(Immortal)는 강화 보호막 능력으로 적의 공격을 흡수해 버린다. 이런 보호막들은 영화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전향보호막과 유사하다. 전향보호막은 주위의 공간을 휘게 해 공격을 막아낸다. 크게 보면 모든 프로토스의 유닛이나 건물이 가지고 있는 쉴드도 같은 원리로 생각할 수 있다. 암흑 기사(Dark Templar)나 관측선(Observer)의 경우에는 주변의 공간을 휘게 하는 기술로 투명인간처럼 아예 모습을 감추기도 한다.
만약 쉴드가 보호막의 개념이 아닌 갑옷의 개념이라면 어떨까. 공격을 받고도 피해를 입지 않는, 즉 자연적으로 손상이 복구되는 갑옷은 나노 크기 입자들이 스스로 결집하는 나노입자 자기조립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프로토스는 고향인 아이우 행성에서 생산된 건물과 유닛을 워프(Warp)라는 기술을 이용해 전장으로 소환한다. 소환은 관문(Gateway)이라고 불리는 건물에서 이뤄지고 수정탑(Pylon)의 전력이 미치는 건물이면 어디서나 가능하다. 워프는 공간을 축소해 짧은 시간 동안 물체를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일종의 순간이동이다. 시공간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프로토스는 여기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스타크2에서 새롭게 등장한 추적자(Stalker)와 모선(Mothership)도 이와 유사한 능력을 가진다.
추적자는 점멸(Blink) 능력을 이용해 짧은 거리를 순간적으로 이동할 수 있고, 모선은 리콜 능력으로 아군 유닛들을 순간이동시킬 수 있다. 워프가 공간을 휘어서 현재 있는 장소와 이동하려는 장소의 거리를 좁혀 이동하는 방법이라면 영화 ‘스타트렉’에서 등장하는 순간이동은 물질의 양자 정보를 이동하려는 장소에 전송해서 다시 재구성해내는 복제 방식의 이동기술이다. 프로토스에서는 차원 분광기(Warp Prism)가 이런 원리로 작동한다.
두 방법 모두 현재 기술로는 실현 불가능하다. 워프는 시공간을 휘는 데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고, 물질의 양자 정보를 전송하는 방식은 100kg 정도의 물질 정보를 전송하는 데 3억 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1997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 연구팀이 광자의 양자정보를 1m 떨어진 곳에 전송한 뒤, 똑같은 광자를 만들어내는 데 최초로 성공하긴 했지만 인간에게는, 그리고 테란에게는 아직까지 요원한 기술이다.
언젠가는 프로토스가 타임머신도 만들어낼 것이다. 프로토스는 이미 연결체(Nexus)라는 건물에서 시간 증폭 기술을 사용해 유닛이 만들어지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고, 베타 테스트 도중 삭제된 모선의 능력 중에는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시한 폭탄(Time Bomb) 기술도 있었다. 시한 폭탄 기술이 걸리면 적들의 이동 속도가 느려지고 날아오는 총탄들이 멈춘다. 이 기술은 프로토스를 너무 강하게 만드는 탓에 다른 종족과 힘 균형이 맞지 않아 중간에 빠지긴 했지만 말이다. 만약 프로토스가 시간을 마음대로 주무른다면 어떤 종족이 그들을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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