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LED조명의 백색광은 RGB를 조합한 게 아닙니다. 형광등처럼 인광물질을 이용해 청색LED의 파장을 길게 바꾼 것이죠.”
빨간색(R), 녹색(G), 청색(B)의 빛이 합쳐져 흰빛을 내는 LED디스플레이처럼 다양한 색을 낼 필요가 없는 일반 LED조명은 가장 경제적인 청색LED를 이용한다는 플루미나 연구개발실 이창호 부장의 설명이다. 플루미나는 LED조명을 개발해 생산하는 업체다. 서울 성수동 삼환디지털벤처타워에 있는 플루미나 본사 사무실에는 현재 개발하고 있거나 출시된 다양한 형태의 LED조명이 빛을 발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고가이지만 앞으로 가격이 떨어지면 본격적으로 기존 조명을 대체할 것입니다. 머지않아 백열등은 물론 형광등도 무대에서 내려오겠죠.”
최근 에너지절감과 친환경이 맞물리면서 LED조명이 ‘조명’받고 있다. 이미 우리 생활 속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는 LED조명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LED조명 핵심기술은 ‘빛’이 아니라 ‘열’
“LED조명의 가장 큰 장점은 친환경적이고 한번 설치하면 사실상 반(半)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는 점입니다.”
효율이 워낙 나빠 유럽에서는 이미 생산이 중단됐고 다른 나라들에서도 수년 안에 비슷한 조치가 예상되는 백열등은 논외로 치더라도, 최근 효율과 수명이 많이 개선된 형광등도 LED조명 앞에서는 단점이 두드러진다. 무엇보다도 형광등은 수은을 쓴다는 단점이 있다. 형광등은 수은 증기가 채워진 관에 전기를 흘려줄 때 생기는 자외선이 관 표면에 발라진 인광물질을 통과하며 파장이 길어져 백색광을 낸다. 따라서 수명이 다한 형광등을 제대로 수거하지 못하면 수은이 유출될 수 있다.
“LED, 즉 발광다이오드는 빛을 내는 반도체입니다. 따라서 고체에서 빛이 나오니까 수은이 필요 없죠. 게다가 수명이 길어 5만 시간을 보증합니다. 이는 조명을 설치하기 어려운 곳일수록 빛을 발하는 장점이죠.”
가로등을 예로 들면 기존 메탈할라이드등의 경우 수명이 6000시간에 불과해 보통 1~2년마다 바꿔줘야 하는데, 그때마다 사람을 가로등 높이까지 올려주는 특수차량을 불러야 한다. 최근 가로등을 LED조명으로 바꾸는 지방자치단체가 늘고 있는 이유다. 초기 비용은 더 들지만 관리비가 거의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LED조명을 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열을 제어하는 게 관건이에요.”
3500만 달러(약 400억 원) 투자 건으로 이 회사를 찾은 영국 투자자들과 상담을 하다가 짬을 내 기자를 찾은 이정현 사장은 LED조명기술의 핵심은 ‘빛’이 아니라 ‘열’이라는 뜻밖의 말을 했다. 컴퓨터 반도체가 지나친 집적화로 인한 열을 감당하지 못하는 데서 한계를 맞은 것처럼 LED소자 역시 열을 심하게 받으면 효율이 떨어지고 수명도 짧아진다는 것. 따라서 어떻게 냉각 시스템을 설계하느냐가 좀 더 효율적이고 오래가는 LED조명을 만드는 데 관건이라고 말했다.
“작동 중 온도를 10% 낮출 수 있으면 성능이 30% 올라가고 수명이 2배가 됩니다. 저희는 나노유체역학을 이용해 구리보다 100배나 효율적인 방열판을 만들었습니다.”
이 회사가 개발한 방열판은 구리재질이면서도 속은 나노 수준의 미세한 동공으로 이뤄져 있다. 나노 동공 속에 있는 액체가 열을 받으면 기화하고 응축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급속히 열을 배출한다는 것. 영국의 투자자들이 3500만 달러라는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한 데도 다른 회사와 차별되는 냉각 시스템 기술이 큰 몫을 했다.
최근 미국의 이터널레즈(Eternaleds)는 수냉식으로 LED소자의 열을 식히는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하이드라룩스-4(HydraLux-4)’라는 이름의 LED전구로, 전구 안에 물이 차 있다. 기존 백열등 소켓과 동일한 규격의 디자인으로 4W짜리가 25W 백열등의 밝기를 내는데, 하루 8시간 사용할 경우 연간 전기료는 1.75 달러(약 2000원)에 불과하다. 앞으로 LED조명의 냉각시스템을 둘러싼 치열한 기술개발 경쟁이 예상된다.
전구, 관, 판 어떤 형태도 OK
LED조명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조명기기의 형태에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LED소자를 적절히 배치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의 백열등 소켓이나 형광등 안정기에 바로 꽂아 쓸 수 있는 제품들이 나와 있다. LED만이 가능한 조명 형태도 등장했다. 바로 평판조명이다. 벽에 걸린 거울 정도 두께의 판에서 은은히 빛이 나오는 LED평판조명은 실내 어디에 둬도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때로는 현대 추상화 같은 인테리어 효과도 준다.
그런데 평판조명에 균일하게 LED소자를 깔더라도 가까이에서 보면 밝은 부분(LED소자 자리)과 다소 어두운 부분(LED소자 사이)이 있을 법도 한데, 어떻게 넓은 판에서 균일한 밝기로 빛이 나오는 걸까.
“LED소자는 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깔려 있는 게 아니라 평판조명의 테두리 부분에 있습니다. 즉 테두리에서 가운데로 빛을 내는데, 도광판이란 장치를 써서 균일한 빛을 만들어내지요.”
LED평판조명 전문업체인 테크자인의 이효준 기획개발팀장의 설명이다. 도광판은 테두리, 즉 1차원에서 오는 빛을 판 ,즉 2차원에서 나오는 빛으로 바꿔주는 부품인데, 굴절률이 높은 투명 플라스틱 재질에 일정한 간격의 패턴으로 특수 잉크가 발라져 있다. LED평판조명의 단면을 보면 뒤에 반사지가 있고 앞에 도광판이 있다. 테두리에서 나온 빛 가운데 도광판의 플라스틱 면에 닿으면 전반사가 일어나고 패턴에 닿을 경우 난반사가 일어나 일부가 평판 밖으로 빠져 나간다. 이렇게 내부에서 빛의 반사가 여러 차례 일어나면서 난반사로 빛을 내보내 결국 균일한 밝기로 보인다.
이 팀장은 “패턴이 일정한 도광판을 쓰는데, 이 경우 가운데 밝기가 테두리 부분의 85% 수준”이라며 “광고용 조명패널처럼 중심이 강조돼야 할 경우는 도광판에 가운데로 갈수록 원이 커지는 패턴을 만든다”고 말했다. 이 경우 중심쪽이 10% 정도 더 밝다. 미묘한 차이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우리 눈은 무의식중에 좀 더 밝은 가운데 부분에 주목하게 된다고.
오징어도 유혹하고 식물공장도 비추고
어업과 농업 같은 1차 산업에도 LED조명이 본격 진출하고 있다. 인공위성에서도 보인다는 동해안 오징어잡이배의 집어등 빛 역시 LED조명으로 바뀌고 있다. 깜깜한 밤 불빛으로 오징어를 끌어들이는 오징어잡이는 옛날 횃불에서 시작해 지금은 대부분 메탈할라이드등을 쓰고 있다. 그런데 메탈할라이드등은 수명이 상대적으로 짧고 효율도 높지 않기 때문에 비용이 만만치 않다. 또 빛이 사방으로 퍼져 광공해를 일으킨다. 보통 배 한 척이 1년 동안 작업할 때 조명에 들어가는 기름값이 3000만 원 정도다. 따라서 LED조명으로 바꿀 경우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고 빛의 폭을 조절하기 쉬워 광공해도 최소화할 수 있다. 게다가 LED의 경우 바닷 속으로 더 깊이 투과하는 파란계열의 빛을 쉽게 만들 수 있다.
RGB광원을 이용해 빛의 색깔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LED조명이 ‘빛을 발할’ 또 다른 분야로 식물공장이 떠오르고 있다. 식물공장은 실내에서 인공조명을 비춰 식물을 재배해 생산하는 설비로 최근 선진국에서 본격적으로 상업생산이 이뤄지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에도 50여 곳이 넘는 식물공장이 있다. 식물공장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는 친환경 농작물을 얻을 수 있다는 점. 철저한 출입관리로 해충이나 병균의 침투를 막을 수 있어 농약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는 형광등이 태양을 대신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LED조명이 대체할 전망이다.
“식물의 엽록소가 빛을 가장 많이 흡수하는 파장대가 청색과 적색입니다. 따라서 청색LED와 적색LED의 빛의 세기를 적절히 조절하면 최적의 에너지 효율을 찾을 수 있지요.”
LED조명업체인 화우테크놀러지는 서울여대 원예조경학과 이종석 교수팀과 LED조명으로 채소를 재배하는 실험을 통해 최적의 조명 조합비를 찾아냈다. 즉 청색광과 적색광의 비율을 3 : 1로 했을 때 식물 생장이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이 회사는 현재 100m2 규모의 LED조명 식물공장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데, 4월쯤 시범생산이 이뤄질 거라고 밝혔다.
폭 99m 초대형 캔버스 장식
1977년 준공된 이래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을 상징한 대우빌딩이 1년여의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지난해 11월 서울스퀘어빌딩으로 탈바꿈했다. 그동안 거대한 장막에 가려 궁금증을더해왔는데, 막상 막을 거둬보니 예전 적갈색 빌딩과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어둠이 찾아오면 폭 99m, 높이 78m로 세계에서 가장 큰 ‘미디어 캔버스’가 순간 모습을 드러낸다.
“이 건물은 우리나라 경제개발의 상징이기 때문에 함부로 외형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밤에는 건물 전면이 거대한 캔버스로 변신하죠.”
서울스퀘어빌딩의 미디어캔버스를 기획, 제작한 갤럭시아포토닉스의 양흥규 LED사업부 전략기획팀장은 정면 벽에 설치돼 있는 3만 9336개의 LED소자가 빛을 밝히면서 거대한 영상이 펼쳐진다고 설명했다. LED소자 하나에는 RGB광원이 하나씩 들어 있어 각각의 빛 세기를 조절하면 원하는 색의 빛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지난해 11월 17일 있었던 점등식에는 영국 출신 팝아티스트인 줄리안 오피의 작품 ‘걷는 사람들(Walking People)’이 모습을 드러내 바라보는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초록색 배경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작가는 “그들은 개개인이지만 서로 연결돼 있다”며 “이 작품은 이곳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현상의 반영”이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사실 3만 9000여 개의 LED소자 역시 서로 떨어져 있지만 빛을 냄으로써 서로 연결돼 있다. 각 소자는 간격이 가로 51.5cm(유리창이 있을 경우 97cm), 세로 30cm인 격자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가까이에서 보면 둘 사이의 거리가 멀어 별개의 점광원으로 보인다. 그러나 130m쯤 떨어진 서울역 광장에서 보면 이들이 내뿜은 빛들이 간격을 메우며 마치 건물 벽면 전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은 효과가 난다. 양 팀장은 “현재 한강 다리의 조명도 대부분 LED소자”라며 “LED조명을 이용해 도시의 미관을 밝히는 작업이 앞으로 전 세계 도시에서 펼쳐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든 빛은 LED로 통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