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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넌 누구냐

눈처럼 흰 털부터 오금 저리는 울음소리까지



전 세계의 야생 호랑이들은 모두 아시아에 살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호랑이가 전래동화에 자주 등장하고, 올림픽 마스코트를 ‘호돌이’로 정할 만큼 호랑이와 친숙하다. 밖에서는 한국을 ‘호랑이의 나라’라고 부를 정도니까.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고양이와 먼 친척이고 육식동물이라는 사실 외에는 호랑이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가까우면서도 먼 그대, 호랑이. 호랑이의 해를 맞아 그동안 몰랐던 호랑이의 요모조모를 뜯어본다.



호랑이라고 다 같은 호랑이일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서울동물원에 있는 호랑이와 삼성에버랜드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는 서로 다른 종류다. 지금까지 알려진 호랑이는 모두 9종류인데, 이들을 아종(subspecies)으로 분류한다. 서울동물원에 있는 호랑이는 시베리아호랑이(아무르호랑이)로 주로 러시아, 만주에 분포한다. 삼성에버랜드 동물원의 호랑이는 인도와 방글라데시에 주로 살고 있는 벵골호랑이다.

나머지 호랑이 아종은 캄보디아, 중국, 라오스, 태국, 베트남 등지에서 발견되는 인도차이나호랑이, 말레이 반도 남쪽에 있는 말레이호랑이, 인도네시아 반도와 수마트라 섬에서만 볼 수 있는 수마트라호랑이, 중국 양쯔강 이남에 사는 남중국호랑이, 발리 섬에 살던 발리호랑이,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 터키 등지에 살던 카스피호랑이,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 살던 자바호랑이가 있다. 이 중 발리호랑이, 카스피호랑이, 자바호랑이는 각각 1940년대, 1950년대, 1980년대에 차례로 멸종됐다.

현재 살아 있는 아종 중 수가 가장 많은 종은 벵골호랑이인데, 3200~4500마리가 살고 있다. 그 다음 수가 많은 종은 1200~1800마리가 남았다고 추정되는 인도차이나호랑이다. 남중국호랑이는 50마리도 채 남지 않은 것으로 추정돼 멸종됐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호랑이의 아종은 크기나 무늬도 제각각이다. 서울동물원에 가면 볼 수 있는 시베리아호랑이는 9개의 아종 중에서 덩치가 가장 크고 줄무늬의 가로 폭이 좁다. 수컷의 평균 몸길이는 190~230cm, 평균 몸무게는 227kg이다. 발리호랑이는 수컷의 평균 몸무게가 90~100kg으로 아종 중에서 몸집이 가장 작다.

1997년 동물형태학자 앤드류 키치너는 아종들의 몸집과 털, 줄무늬 같은 외형적인 특성이 지역적인 차이가 아니라 기후에 따른 영향이라는 주장을 제시했다. 실제로도 추운 지역에 사는 호랑이일수록 덩치가 크고 털이 두꺼운 경향을 보인다.

최근에는 호랑이의 DNA를 연구한 결과도 나오고 있다. 2004년 12월 미국 유전자 다양성 연구소의 뤄슈진 박사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카스피호랑이의 DNA를 분석한 결과 시베리아호랑이의 DNA와 일치한다는 연구 결과를 생물학 저널 ‘플로스 바이올로지(PLoS Biology)’에 발표했다.

또 지난 12월 16일에는 국립생물자원관에서 100년 된 남한호랑이 박제의 DNA를 분석해, 그동안 시베리아호랑이와 같은 아종인 줄로만 알았던 남한호랑이가 남한의 서식 환경에 적응하면서 덩치는 작아지고 줄무늬는 더 짙어져 형질 특성이 달라졌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호랑이의 유전자 연구는 멸종 위기에 처한 호랑이를 복원하거나 계통을 보전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호랑이가 클까, 사자가 클까

동물원의 사파리나 TV에서 호랑이와 사자가 함께 생활하는 장면을 보면 크기가 서로 비슷해 보인다. 실제로는 어떨까. 호랑이는 아종 별로 몸집 차이가 커서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시베리아호랑이만 놓고 보면 호랑이가 더 크다. 사자는 갈기 때문에 좀 더 커 보일 뿐, 평균 몸무게는 호랑이가 230kg, 사자가 210kg이기 때문이다. 기록에는 몸무게가 384kg인 호랑이도 있었다.

몸무게만으로 호랑이가 얼마나 큰지 감이 안 온다면 서울동물원에 있는 실제 호랑이를 예로 들어 보자. 몸무게 187kg인 8살짜리 수컷 시베리아호랑이는 귀와 귀 사이가 30cm, 귀에서부터 코까지 길이도 무려 30cm다. 서 있으면 ‘키’가 사람 허리 높이를 넘는다. 머리부터 바닥까지 높이가 1m나 되기 때문이다.

옆으로 지나가면 왠지 호랑이의 몸이 끝나지 않는 느낌이 든다. 머리부터 꼬리 시작 부분까지의 길이가 160cm이고, 거기에 또 야구방망이만 한 꼬리가 달려 있다. 꼬리는 길이가 88cm이고 둘레가 20cm다. 사육사가 가까이 다가서니 반가운 듯 앞발로 철창에 매달리는데, 발바닥이 사람 얼굴 크기만 한 것 같다.

가로가 12cm, 세로가 16cm란다. 닭 한 마리를 주니 날카롭고 누런 송곳니로 뼈까지 씹어 먹는다. 송곳니 길이는 약 6cm로 성인 여성의 검지 길이와 비슷하다. 평소에는 얌전히 감추고 있지만 먹을 때만큼은 발톱도 세운다. 발톱 길이는 4cm 정도 된다. 호랑이가 고양이과 동물 중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진 데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호랑이보다 더 큰 고양이과 동물이 있다. 수사자와 암호랑이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 ‘라이거(liger)’다. 동물의 몸집은 성장을 촉진하는 유전자와 억제하는 유전자가 상호작용하며 결정된다. 사자의 경우는 성장 억제 유전자가 암사자에게서 유전된다. 그런데 암호랑이에는 이 억제 유전자가 없다. 때문에 라이거는 호랑이보다 몸집이 더 크게 자라 몸무게가 400kg을 넘기도 한다. 아쉽게도 라이거는 번식능력이 없기 때문에 라이거 2세대의 몸 크기 연구는 아직 없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몸집이 큰 놈일수록 강하다. 남아메리카에서는 가장 큰 맹수라는 재규어도 호랑이와 함께 두면 감히 덤비지 못한다. 이런 사실때문에 동물원 사파리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비밀이 숨어 있다. 바로 삼성에버랜드 동물원 사파리에는 몸집이 사자와 비슷한 벵골호랑이만 들어 있다는 사실. 벵골호랑이는 9가지 호랑이 아종 중에서 크기가 중간 정도인 종으로 사자와 적절한 힘의 균형을 이룬다.

황금색 호랑이가 있을까

2010년은 호랑이의 해, 그것도 60년 만에 찾아온 백호의 해다. 백호는 털 색깔이 눈처럼 희기 때문에 색깔이 황갈색인 일반 호랑이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그래서 가끔씩 백호를 호랑이의 또 다른 아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백호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돌연변이다. 털 색깔을 흰색으로 발현시키는 열성 유전자에 의해 벵골호랑이게선 1만 분의 1의 확률로, 시베리아호랑이에게선 10만 분의 1의 확률로 일어난다.

간혹 백호가 ‘백색증(알비노)’이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백색증은 멜라닌 세포가 멜라닌을 합성하지 못해 체내에 색소가 감소하는 증세인데, 이런 경우 혈관이 비쳐 보이기 때문에 눈동자가 분홍빛을 띤다. 하지만 백호는 줄무늬가 거무스름하며 눈은 옅은 파랑색, 코는 분홍색이다.

황금색 호랑이도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30여 마리가 살고 있는데, 1932년 인도 마이소르 파디쉬 지역에서 2마리가 잡힌 이후로 야생 상태에서는 멸종됐고, 남아 있는 것들은 모두 동물원 같은 사육시설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

황금색 호랑이의 정확한 이름은 ‘금빛 얼룩무늬 호랑이(Golden Tabby Tiger)’다. 이 호랑이는 검은색 줄무늬 대신 금빛을 띠는 줄무늬를 가진다. 털 색깔도 일반 호랑이보다 연하고, 특히 다리 부분이 백호처럼 희다. 황금색 호랑이의 털은 일반 호랑이 털보다 훨씬 두껍다.



호랑이 소리를 들으면 왜 오금이 저릴까

“어흥~.” 호랑이 소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리다. 이는 호랑이가 상대에게 단단히 화가 나 적의를 표시하는 소리다. 영화나 책에서 보면 호랑이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어흥’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그런 경우는 실제로 거의 없다.

호랑이들이 많이 내는 소리는 ‘크르르릉’ 하고 낮게 몇 초간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취취’ 작게 재채기하는 소리다. ‘크르르릉’ 소리는 일종의 경고다. 사육사가 먹이를 던져 주려고 앞에 서면 최고 우두머리인 호랑이는 낮게 ‘크르르릉’ 소리를 내며 ‘내 먹이에 손대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다른 호랑이들은 먹이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반대로 ‘취취’ 소리는 상대에게 친근감을 표시할 때 내는 소리다. 사육사가 다가가면 호랑이들은 ‘취취’ 소리를 내며 철창에 털을 비빈다. 이 밖에도 호랑이가 내는 소리는 매우 다양하다. 호랑이는 고양이처럼 가르랑거리기도 한고, 발정기에는 독특한 신음소리를 낸다.

호랑이 울음소리에 대한 연구는 많다. 그중에는 호랑이 울음소리를 들으면 오금이 저린 이유가 호랑이가 내는 저주파 소리 때문이라는 흥미로운 연구도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동물커뮤니케이션연구소의 동물음향학자인 엘리자베스 폰 무겐탈러 박사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육식동물 보호구역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리버뱅크스 동물원에 있는 24마리 호랑이를 대상으로 으르렁거리는 소리, 재채기하는 소리처럼 호랑이가 내는 모든 소리를 녹음해 분석했다. 그 결과 호랑이 소리에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 대역인 20㎐∼2만㎐의 소리와 함께 18㎐ 이하의 초저주파도 있었다.

무겐탈러 박사팀은 호랑이 울음소리에 몸이 들썩이며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받는 이유가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저주파가 근육을 진동시키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팀은 2000년 7월 미국 음향학회에서 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2003년 5월 3일 영국의 과학주간지 ‘뉴사이언티스트’에는 호랑이가 초저주파로 의사소통한다는 내용이 실려 이 같은 연구를 뒷받침했다. 저주파 소리는 고주파 소리보다 멀리 전파된다는 장점이 있다. 고양이과 동물은 커다란 이개(귓바퀴)를 갖고 있어 작고 낮은 주파수의 소리를 잘 감지할 수 있다.

호랑이를 애완용으로 키울 수 있을까

지난 12월 8일에는 독일 함부르크의 한 서커스단에서 묘기를 부리던 호랑이 5마리가 조련사를 공격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사건이 있었다. 캐나다 벤쿠버 주도 오는 4월 1일부터는 호랑이나 사자 같이 몸집이 큰 동물은 정부의 허가 없이 키울 수 없도록 하는 새 법안을 통과시켰다. 2007년 한 여성이 애완용으로 기르던 호랑이에 물려 사망한 사건 때문에 상정된 법안이다. 호랑이를 개인이 사육하는 것을 허용해야 할지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은 아직까지 호랑이를 개인이 키우는 것에 대해 너그러운 편이다. 미국에는 전 세계에 살고 있는 야생 호랑이 수보다 더 많은 1만 2000마리의 애완용 호랑이가 있다. 50개 주 중에서 19개 주에서만 호랑이 개인 소유를 금지하고, 15개 주는 허가를 받아야 소유가 가능하며, 16개 주에서는 아예 규제가 없다.

우리나라는 야생동·식물보호법에 의해 호랑이처럼 국제적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을 수출하거나 수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연구나 보호 목적으로, 적당한 보호 시설을 갖춘 경우에만 사육을 허가하고 있기 때문에 동물원이나 연구시설이 아닌 개인이 호랑이를 사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호랑이가 약효가 있을까

한때 ‘호랑이 약’이라고 해서 호랑이가 그려진 빨간 통에 담긴 고약이 만병통치약으로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 전통 동양 의학에서는 호랑이가 귀중한 약재였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호랑이의 뼈를 이용해 진통제를 만들었고, 베트남에서는 뼈를 류머티즘 약으로 썼다.

인도에서는 호랑이의 지방층이 나병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라오스에서는 발톱을 진정제로 사용했다. 그 밖에도 수염은 치통, 피는 강장제, 꼬리는 피부병, 안구는 경기(驚氣)와 백내장에 약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었고, 수컷 호랑이의 생식기가 정력제로 팔리기도 했다. 실제로 호랑이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가 바로 ‘비아그라’다.

호랑이 약이 정말 약효가 있을까. 중국 화둥사범대 쉥헬린 교수는 동식물불법유통단속단체(TRAFFI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서는 호랑이 뼈가 약 1000년 전부터 약으로 쓰였다”며 “‘본초학’이라는 중국 의서에는 양, 사슴, 개 같은 동물의 뼈로 진통을 다스리고 골다공증을 치료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호랑이 뼈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호랑이 뼈의 성분이 다른 동물 뼈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호랑이를 약으로 만드는 행위가 1000년 동안 지속되면서 1900년 10만 마리였던 야생호랑이 수는 현재 3000~5000마리 정도로 줄었다. 전 세계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을 체결해 호랑이로 약을 만드는 행위 또는 그것을 판매하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또한 호랑이 보호구역을 지정하고 호랑이의 개체군을 연구하며 호랑이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티베트, 베트남 등지에서는 호랑이 밀거래가 근절되지 않았고, 중국에는 호랑이를 좁은 공간에 가두고 사육하는 ‘비인간적인’ 호랑이 농장도 아직 남아 있다. 호랑이의 해를 맞아 ‘호랑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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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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