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상상할 수도 없고 연애는 귀찮아요.”
결혼 적령기인 20~30대 젊은이 가운데 연애에 무관심한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 8월 종영한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KBS 2TV)’의 주인공 조재희(지진희 분)로 대표되는 초식남이다. 연애에 무관심한 여성인 건어물녀도 늘고 있다. 이들은 큐피드의 화살도 비껴가는 신인류일까.
너무나 여성스러운 그
“여자친구를 사귀는 데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20대 후반의 직장인 초난감(가명) 씨는 연애나 결혼 얘기가 나오면 손사래부터 친다. 대
기업에 다니고 외모도 준수한 그지만 도무지 연애에는 관심이 없다. 초 씨는 “결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연애보다는 일에 더 많은 열정을 쏟는다. 하지만 일 중독자는 아니다. 여가시간은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며 취미생활을 하거나 자기능력을 계발하는 데 쓴다.여성 못지않게 깔끔한 성격을 가졌으며 자기애도 강하다. 외모를 가꾸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아 수시로 얼굴에 마스크 팩을 붙이며 피부나 손톱을 관리하기 위해 마사지 숍이나 네일아트 숍도 찾는다.
최근 20~30대를 중심으로 이런 성향의 남성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초식남이다. 2006년 일본의 여성 칼럼니스트 후카사와 마키는 강인함이나 육체적인 힘으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남성들을 육식동물에 비유할 때, 여성성이 두드러진 최근의 젊은 세대들이 마치 풀을 뜯는 초식동물을 닮았다고 해서 초식남이라 이름 붙였다.
사실 패션에 민감하고 외모에 관심이 많은 남성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늘었다. 1994년 영국의 문화비평가 마크 심슨은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기고한 글에서 이런 성향의 남성을 ‘메트로섹슈얼’이라고 불렀다. 영국의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이나 우리나라의 축구선수 안정환이 대표적인 메트로섹슈얼이다. 하지만 초식남은 이성에 무관심하다는 점에서 메트로섹슈얼과 구별된다.
마른 오징어처럼 연애 감정마저 바싹 말라
“연애를 꼭 해야 하나요? 남자친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죠.”
세련되고 지적인 이미지로 회사에서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20대 중반의 회사원 건여울 씨(가명). 그녀는 오늘도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편의점에 들러 캔맥주 2개와 마른 오징어, 과자 몇 개를 사고 집 앞 만화가게에 들러 만화책 몇 권도 빌렸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자는 남자 선배의 데이트 신청도 뿌리친 뒤였다. 집에 돌아온 건 씨는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하이드처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변한다.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걸치고 방바닥을 뒹굴뒹굴 구른다. 방 여기저기에는 빨랫감들이 널려 있고 언제 청소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녀의 가장 큰 행복은 집에서 영화를 보며 캔맥주를 마시는 일. 맥주를 마시며 마른 오징어를 우적우적 씹는 그녀에게 연애감정은 이미 건어물처럼 바싹 말라 버렸다. 사람들은
이런 그녀를 ‘건어물녀’라고 부른다.
연애에 관심이 없는 20~30대 여성인 건어물녀도 늘고 있다. 건어물녀란 용어는 2007년
일본 NTV에서 방영해 큰 인기를 끈 드라마‘호타루의 빛’에서 유래했다. 회사에서 집에 돌아오면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드라마의 여주인공 아메미야 호타루(아야세 하루카 분)에게 회사상사가 붙여준 별명이다.
건어물녀가 집에만 돌아오면 완전히 달라지는 이유는 뭘까. 일부는 여성이 좋아하는 패션 스타일과 관련돼 있다. 지난 8월 조선일보가 케이블방송 ‘비즈니스앤’과 함께 성인 906명(남자 476명, 여자 430명)을 대상으로 선호하는 여성의 패션 스타일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남성들은 딱 붙은 티셔츠나 미니스커트를, 여성들은 헐렁한 티셔츠 같이 편안한 차림을 좋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몸매가 드러나는 티셔츠가 좋다고 응답한 남성은 33%였지만 여성은 20.5%였다. 반면 헐렁한 티셔츠가 좋다고 응답한 여성은 34.7%였지만 남성은 17%에 그쳤다. 많은 여성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집에서 건어물녀처럼 편한 옷차림을 택한다고 예상할 수 있다.
미이즘의 또 다른 이름
초식남과 건어물녀는 왜 연애에 관심이 없을까. ‘양창순대인관계클리닉’의 양창순 원장은 “이들은 나르시시즘(자기애)이 강해 자기중심적인 생활을 하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초식남과 건어물녀는 가족정책으로 출산율이 1~2명 수준으로 크게 떨어진 197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세대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나’를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문화도 확산됐다.
양 원장은 “이성 관계는 주고받음의 균형이 필요하지만 초식남과 건어물녀는 대부분 받기만 원하고 주는 것은 싫어하는 성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가정에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란 만큼 타인을 신경 쓰는 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Contents/200909/TUEetNcYqnmnrpFxqz0u_05520090930.JPG)
그런 면에서 초식남과 건어물녀는 198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미이즘(me-ism)’과 닮았다. 미이즘은 도시에 살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인 ‘여피(yuppie)’가 보인 철저한 자기중심적인 생활에서 비롯된 용어다. 여피들은 당장 눈앞의 힘든 일이나 귀찮은 일은 뒤로 미루고 자신의 쾌락이나 욕망을 추구한다. 초식남과 건어물녀가 즐겨 찾는 홈시어터나 MP3플레이어 같은 전자제품은 모두 미이즘의 결과물이다.
심리학전문가인 부여다사랑병원 최명기 원장은 “초식남과 건어물녀가 증가하는 이유는
기대수명이 늘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생을 더 즐기려는 성향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연애는 암묵적으로 결혼을 의미하고 결혼은 다시 출산과 양육의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최 원장은 “자기애가 강한 사람일수록 결혼을 미루는 경향이 크다”며 “초식남과 건어물녀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연애나 결혼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남성 속의 여성성, 여성 속의 남성성
재밌는 점은 초식남이 다소 여성적인 특성을, 건어물녀는 일부분 남성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양창순 원장은 “유교사회에서 억눌려 있던 남성 속의 여성성인 아니마(anima) 와 여성 속의 남성성인 아니무스(animus) 가 자연스럽게 표출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가부장제 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남성의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남성에게는 강인
함과 씩씩함을, 여성에게는 순종과 부드러움을 강요하며 남성에게서 아니마를, 여성에게
서 아니무스를 억제해왔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며 남녀의 역할은 평등해졌고, 남성다움과 여성스러움을 구별하는 일이 무의미해졌다.
더욱이 현대사회는 권위나 위엄, 육체적인 힘 같은 남성성만 두드러진 사람이 아니라 부
드러움이나 섬세함, 타인과의 의사소통능력 같은 여성성을 함께 갖춘 사람을 요구한다. 양원장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잘 유지해야 성공할 수 있는 환경에서 남성들이 자연스레 자신에게 내재된 여성성을 표출한 결과가 바로 초식남”이라고 설명했다.물론 남성이 여성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욕구가 반영됐을 수도 있다.
영국 세인트앤드류스대 심리학과 탐신 색스턴 박사팀은 여성들이 자신과 닮은 남성에게 가장 호감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를 생태진화 분야 학술지인 ‘행동생태학’ 8월호에 발표했다. 색스턴 박사팀은 남성의 얼굴과 여성이 느끼는 호감도의 상관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일부 얼굴 사진은 남성다움이 두드러지도록 합성했고 일부 사진은 조사에 참가한 여성들의 얼굴과 비슷하게 합성했다.
각각의 얼굴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한 결과, 여성들은 자신과 닮은 남성 얼굴에 가장 끌린다고 답했다. 반면 거칠고 남성성이 두드러진 외모에는 오히려 경계심을 느꼈다. 겉으로는 이성에 무관심한 초식남이지만 외모를 여성스럽게 가꾸는 심리 속에 이성에게 잘 보이려는 본능이 숨어 있을 수 있단 얘기다.
건어물녀에게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라고 여겨졌던 가사에서 벗어나려는 심리가 작용했다. 게다가 우리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여성들에게 여성스러움만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여성이 이런 심리적 제약을 모두 벗어던지고 아니무스를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집이다. 양 원장은 “건강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조화롭게 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황 속에 나타난 자기애와 보상심리
당사자인 젊은 세대들은 연애에 무관심한 이유를 어디서 찾을까. 지난 7월 야후 코리아가
초식남이 늘어나는 이유를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참여자 1935명 중 38.1%인 737명이
‘불황으로 인한 어려운 경제력과 자신감의 위축’이라고 답했다.
그 뒤를 이어 총 27%인 522명이 ‘가족이나 연인에 대한 사랑보다 자기애가 더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답했고, ‘연애 이외에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대체 수단이 다양해졌다’는 답변이 18.6%(360명)를 차지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며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젊은 세대
들은 자신에게 투자하려는 경향이 커졌고, 결국 연애대상 대신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
를 찾고 있다는 뜻이다.
양창순 원장은 “자기애가 강한 젊은 세대들은 상처받는 걸 두려워한다”며“스스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과거에 이성에게 받은 상처나, 경험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받을지모르는 미래의 상처가 두려워 연애를 거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애보다 자신에게 관심을 쏟는 건어물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 하트퍼드셔대 심리학과 카렌 파인 교수는 “경기가 어려우면 여성들은 삶에 대한 불안과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쇼핑을 하는 식으로 자신에게 투자하는 비용을 늘린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파인 교수가 여성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 응답자의 79%가 불만을 해소하거나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쇼핑을 한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60%는 기분이 우울하기만 해도 쇼핑을 할 수 있다고 답했으며, 40%는 경기침체가 충동구매나 과소비를 일
으킨다고 답했다. 파인 교수는“불황일수록여성들은 자신에게 투자하려는 보상심리가 생긴다”며 “이런 소비행위는 불안한 감정을 긍정적으로 다스리는 방법 중 하나”라고 말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대부분은 연애 기피 현상이 홍역처럼 잠시 지나가는 현상으로 크게 걱
정할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연애나 결혼을 잠시 미뤄뒀지만 이성에 대한 욕구가 말라버린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큐피드의 화살에 초식남과 건어물녀 몸속 어딘가 숨어 있던 연애세포들이 다시 분열할 날이 올 거란 얘기다.
결혼 적령기인 20~30대 젊은이 가운데 연애에 무관심한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 8월 종영한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KBS 2TV)’의 주인공 조재희(지진희 분)로 대표되는 초식남이다. 연애에 무관심한 여성인 건어물녀도 늘고 있다. 이들은 큐피드의 화살도 비껴가는 신인류일까.
너무나 여성스러운 그
“여자친구를 사귀는 데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20대 후반의 직장인 초난감(가명) 씨는 연애나 결혼 얘기가 나오면 손사래부터 친다. 대
기업에 다니고 외모도 준수한 그지만 도무지 연애에는 관심이 없다. 초 씨는 “결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연애보다는 일에 더 많은 열정을 쏟는다. 하지만 일 중독자는 아니다. 여가시간은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며 취미생활을 하거나 자기능력을 계발하는 데 쓴다.여성 못지않게 깔끔한 성격을 가졌으며 자기애도 강하다. 외모를 가꾸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아 수시로 얼굴에 마스크 팩을 붙이며 피부나 손톱을 관리하기 위해 마사지 숍이나 네일아트 숍도 찾는다.
최근 20~30대를 중심으로 이런 성향의 남성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초식남이다. 2006년 일본의 여성 칼럼니스트 후카사와 마키는 강인함이나 육체적인 힘으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남성들을 육식동물에 비유할 때, 여성성이 두드러진 최근의 젊은 세대들이 마치 풀을 뜯는 초식동물을 닮았다고 해서 초식남이라 이름 붙였다.
마른 오징어처럼 연애 감정마저 바싹 말라
“연애를 꼭 해야 하나요? 남자친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죠.”
세련되고 지적인 이미지로 회사에서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20대 중반의 회사원 건여울 씨(가명). 그녀는 오늘도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편의점에 들러 캔맥주 2개와 마른 오징어, 과자 몇 개를 사고 집 앞 만화가게에 들러 만화책 몇 권도 빌렸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자는 남자 선배의 데이트 신청도 뿌리친 뒤였다. 집에 돌아온 건 씨는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하이드처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변한다.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걸치고 방바닥을 뒹굴뒹굴 구른다. 방 여기저기에는 빨랫감들이 널려 있고 언제 청소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녀의 가장 큰 행복은 집에서 영화를 보며 캔맥주를 마시는 일. 맥주를 마시며 마른 오징어를 우적우적 씹는 그녀에게 연애감정은 이미 건어물처럼 바싹 말라 버렸다. 사람들은
이런 그녀를 ‘건어물녀’라고 부른다.
연애에 관심이 없는 20~30대 여성인 건어물녀도 늘고 있다. 건어물녀란 용어는 2007년
일본 NTV에서 방영해 큰 인기를 끈 드라마‘호타루의 빛’에서 유래했다. 회사에서 집에 돌아오면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드라마의 여주인공 아메미야 호타루(아야세 하루카 분)에게 회사상사가 붙여준 별명이다.
미이즘의 또 다른 이름
초식남과 건어물녀는 왜 연애에 관심이 없을까. ‘양창순대인관계클리닉’의 양창순 원장은 “이들은 나르시시즘(자기애)이 강해 자기중심적인 생활을 하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초식남과 건어물녀는 가족정책으로 출산율이 1~2명 수준으로 크게 떨어진 197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세대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나’를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문화도 확산됐다.
양 원장은 “이성 관계는 주고받음의 균형이 필요하지만 초식남과 건어물녀는 대부분 받기만 원하고 주는 것은 싫어하는 성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가정에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란 만큼 타인을 신경 쓰는 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초식남과 건어물녀는 198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미이즘(me-ism)’과 닮았다. 미이즘은 도시에 살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인 ‘여피(yuppie)’가 보인 철저한 자기중심적인 생활에서 비롯된 용어다. 여피들은 당장 눈앞의 힘든 일이나 귀찮은 일은 뒤로 미루고 자신의 쾌락이나 욕망을 추구한다. 초식남과 건어물녀가 즐겨 찾는 홈시어터나 MP3플레이어 같은 전자제품은 모두 미이즘의 결과물이다.
심리학전문가인 부여다사랑병원 최명기 원장은 “초식남과 건어물녀가 증가하는 이유는
기대수명이 늘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생을 더 즐기려는 성향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연애는 암묵적으로 결혼을 의미하고 결혼은 다시 출산과 양육의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최 원장은 “자기애가 강한 사람일수록 결혼을 미루는 경향이 크다”며 “초식남과 건어물녀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연애나 결혼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남성 속의 여성성, 여성 속의 남성성
가부장제 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남성의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남성에게는 강인
함과 씩씩함을, 여성에게는 순종과 부드러움을 강요하며 남성에게서 아니마를, 여성에게
서 아니무스를 억제해왔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며 남녀의 역할은 평등해졌고, 남성다움과 여성스러움을 구별하는 일이 무의미해졌다.
더욱이 현대사회는 권위나 위엄, 육체적인 힘 같은 남성성만 두드러진 사람이 아니라 부
드러움이나 섬세함, 타인과의 의사소통능력 같은 여성성을 함께 갖춘 사람을 요구한다. 양원장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잘 유지해야 성공할 수 있는 환경에서 남성들이 자연스레 자신에게 내재된 여성성을 표출한 결과가 바로 초식남”이라고 설명했다.물론 남성이 여성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욕구가 반영됐을 수도 있다.
영국 세인트앤드류스대 심리학과 탐신 색스턴 박사팀은 여성들이 자신과 닮은 남성에게 가장 호감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를 생태진화 분야 학술지인 ‘행동생태학’ 8월호에 발표했다. 색스턴 박사팀은 남성의 얼굴과 여성이 느끼는 호감도의 상관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일부 얼굴 사진은 남성다움이 두드러지도록 합성했고 일부 사진은 조사에 참가한 여성들의 얼굴과 비슷하게 합성했다.
건어물녀에게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라고 여겨졌던 가사에서 벗어나려는 심리가 작용했다. 게다가 우리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여성들에게 여성스러움만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여성이 이런 심리적 제약을 모두 벗어던지고 아니무스를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집이다. 양 원장은 “건강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조화롭게 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황 속에 나타난 자기애와 보상심리
당사자인 젊은 세대들은 연애에 무관심한 이유를 어디서 찾을까. 지난 7월 야후 코리아가
초식남이 늘어나는 이유를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참여자 1935명 중 38.1%인 737명이
‘불황으로 인한 어려운 경제력과 자신감의 위축’이라고 답했다.
그 뒤를 이어 총 27%인 522명이 ‘가족이나 연인에 대한 사랑보다 자기애가 더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답했고, ‘연애 이외에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대체 수단이 다양해졌다’는 답변이 18.6%(360명)를 차지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며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젊은 세대
들은 자신에게 투자하려는 경향이 커졌고, 결국 연애대상 대신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
를 찾고 있다는 뜻이다.
양창순 원장은 “자기애가 강한 젊은 세대들은 상처받는 걸 두려워한다”며“스스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과거에 이성에게 받은 상처나, 경험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받을지모르는 미래의 상처가 두려워 연애를 거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애보다 자신에게 관심을 쏟는 건어물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 하트퍼드셔대 심리학과 카렌 파인 교수는 “경기가 어려우면 여성들은 삶에 대한 불안과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쇼핑을 하는 식으로 자신에게 투자하는 비용을 늘린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파인 교수가 여성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 응답자의 79%가 불만을 해소하거나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쇼핑을 한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60%는 기분이 우울하기만 해도 쇼핑을 할 수 있다고 답했으며, 40%는 경기침체가 충동구매나 과소비를 일
으킨다고 답했다. 파인 교수는“불황일수록여성들은 자신에게 투자하려는 보상심리가 생긴다”며 “이런 소비행위는 불안한 감정을 긍정적으로 다스리는 방법 중 하나”라고 말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대부분은 연애 기피 현상이 홍역처럼 잠시 지나가는 현상으로 크게 걱
정할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연애나 결혼을 잠시 미뤄뒀지만 이성에 대한 욕구가 말라버린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큐피드의 화살에 초식남과 건어물녀 몸속 어딘가 숨어 있던 연애세포들이 다시 분열할 날이 올 거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