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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한여름 보양식의 제왕 뱀장어

[일러스트] 정윤미


무더위가 시작되는 7월.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러내리고, 체력이 떨어져 몸이 축축 늘어지는 계절이다. 뭐니 뭐니 해도 한여름 보양식의 제왕은 뱀장어다. 뱀장어는 영양이 풍부한데다 소화가 잘돼 노약자나 어린이의 건강식으로 좋으며, 땀을 많이 흘려 몸이 허할 때 원기를 회복하는 데 특별한 효험이 있다. ‘동의보감’에도 장어가 허한 오장육부를 보하고, 원기를 회복시키는 음식이라는 기록이 실려 있다.

그러나 장어를 몸에 좋은 음식으로만 소개하기에는 그 맛이 너무 뛰어나다. 간장이나 고추장 양념을 발라 구워 먹는 장어구이를 떠올리면 입안에 절로 침이 고이고, 구수하고 진한 국물 맛을 자랑하는 장어탕이나 뼈째 튀겨 먹는 장어뼈튀김도 다시없을 별미다.

 


뱀을 닮은 물고기

 

뱀장어( Anguilla japonica)는 뱀장어목 뱀장어과에 속하는 민물고기다. 뱀장어는 뱀을 닮은 긴 물고기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정약전도 ‘현산어보’에서 뱀장어를 뱀에 비유한 바 있다. 실제로 뱀장어는 가늘고 긴 몸에 배지느러미가 없고 등지느러미, 뒷지느러미, 꼬리지느러미가 완전히 붙어 있어 물고기보다는 뱀에 가까운 생김새를 하고 있다. 아가미를 갖고 있지만 피부호흡이 가능해 물밖에 나와서도 금방 죽지 않고, 긴 몸을 물결치듯 움직이며 자유롭게 기어다니는 모습 또한 뱀과 비슷하다.

뱀이 가늘고 긴 몸으로 구석진 곳을 파고드는 습성이 있듯 뱀장어도 늘 어딘가에 몸을 숨기는 것을 좋아한다. 낮에는 진흙 속이나 바위틈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활발히 헤엄쳐 다니는데, 커다란 입으로 물속의 지렁이나 갯지렁이, 새우, 게, 조개, 작은 물고기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개펄 속 생활을 즐기는 탓에 눈이 작고 시력도 떨어지지만 후각이 매우 예민하게 발달해 먹이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뱀장어는 미꾸라지와 더불어 몸이 미끄러운 물고기로 유명하다. 피부에 있는 점액선에서 미끄러운 점액을 분비하므로 맨손으로 잡으려 했다가는 몸을 뒤틀어대며 손가락 사이를 쭉쭉 빠져나가는 통에 한바탕 곤욕을 치르게 된다. 하지만 뱀장어가 미끌미끌한것은 사람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뱀장어의 점액은 마찰력을 줄여서 상처를 입지 않고 펄이나 돌틈, 자갈밭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게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또한 점액 성분 속에는 항생물질이 섞여 있어 지저분한 환경에서 세균이 번식하는 것을 막아주는데, 이를 이용해 약품 개발을 시도하는 학자들도 있다. 민간요법에서 뱀장어가 갖가지 세균성 질병을 치료하는 약재로 쓰이는 이유를 알 만하다.

 



알을 낳지 않는다?

옛사람들은 뱀장어가 알을 낳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누구도 뱀장어 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알을 낳지 않는데 어떻게 번식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그 결과 온갖 종류의 황당한 이론이 탄생했다.

“뱀장어는 수컷만 있고, 암컷이 없다. 그림자가 가물치에 드리워지면 뱀장어의 새끼가 모두 가물치의 지느러미에 붙어서 태어난다.”

‘조벽공잡록’이라는 중국 문헌에 적혀 있는 내용이다. 정약전은 ‘현산어보’에서 뱀이 변해 뱀장어가 됐다는 민간 속설을 기록한 바 있다.

서양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렁이가 변해 뱀장어가 된다고 믿었으며, 플리니우스는 뱀장어가 어미 물고기의 피부 조각에서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18세기에는 말의 꼬리털에서 뱀장어가 태어난다는 생각이 성행했고, 19세기 후반까지도유럽에서는 소형 딱정벌레가 뱀장어의 진짜 부모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었다.



수천km 떨어진 깊은 바다에서 산란

 

한 생물이 변해 다른 생물이 되는 것을 화생(化生)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종에 대한 확고한 개념이 확립돼 있지 않았기에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생물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다. 곰이 변해 사람이 되고, 뱀과 닮은 가물치가 뱀으로 변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곤 했다. 발생 과정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뱀장어를 옛사람들이 화생의 범주에서 설명했던 이유다.

뱀장어의 산란습성은 20세기에 들어서야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1922년 덴마크의 동물학자 요하네스 슈미트는 대서양 인근 뱀장어가 버뮤다 섬 부근 수심 2000m 이상의 깊은 바다에서 산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일본 도쿄대 해양연구소는 한국산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산 뱀장어의 산란장이 마리아나 열도와 필리핀 사이의 서북 태평양 깊은 바다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고 현재 후속 연구가 진행 중이다.

뱀장어는 민물에서 5~12년간 생활하다가 번식 가능한 나이가 되면 수천km나 떨어진 바다를 향해 기나긴 산란 여행을 떠난다. 이때의 뱀장어는 소화기관이 퇴화해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천신만고 끝에 산란장에 도착한 암컷 뱀장어는 바다 속에서 성적으로 급히 성숙해 산란을 마친 뒤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한다. 수컷 또한 정액을 뿌려 수정을 마친 뒤 죽는다.

옛사람들이 뱀장어의 알이나 산란장면을 볼 수 없었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아득히 먼 바다에서 성숙과 산란이 이뤄지니 관찰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가로막힌 순례길 깊은 바다 속에서 부화한 뱀장어는 어미와 전혀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다. 뱀장어의 유생은 무색투명한 모습인데 대나뭇잎처럼 납작하게 생겼다고 해서 댓닢 뱀장어라고 부른다. 이는 깊은 바다에서 해류를 따라 어미의 고향까지 쉽게 이동하기 위해 진화한 모양이다.

오랜 여행 끝에 강 하구에 도착한 댓닢뱀장어는 손가락 길이의 실뱀장어로 탈바꿈한다. 이곳에서 한동안 민물에 적응한 다음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 어두운 밤을 틈타 힘차게 강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한다. 새로운 세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뱀장어의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다른 수많은 생물에게도 그렇듯 인간의 간섭이 자연스러운 생활사를 망가뜨려 놓았기 때문이다. 뱀장어 양식은 치어를 잡아 기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실뱀장어가 몰려오는 시기가 되면 어선들이 하나둘 강어귀로 모여들어 최후의 한 마리까지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촘촘한 그물을 늘어뜨린다. 그물에 잡힌 실뱀장어는 물고기를 가둬 기르는 시설인 축양장으로 옮겨지고 장어집으로 팔려나갈 때까지 좁은 수조 안에서 사료를 먹으며 살아간다.

다행히 어부의 그물을 피했다 하더라도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는다. 거대한 방조제가 강 입구를 가로막고, 보와 댐이 물길을 동강내고 있기 때문이다. 뱀장어들이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는 자연 하천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셈이다. 인류가 존재하기도 전부터 오랫동안 반복돼 온 뱀장어들의 순례를 막을 권리가 과연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장어는 없다?!

흔히 뱀장어를 줄여 장어라고 부르곤 한다. 장어 먹으러 가자는 사람은 있어도 뱀장어 먹으러 가자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가 있다. 장어라고 불리는 물고기가 한두 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어, 뱀장어, 붕장어, 갯장어, 먹장어, 꼼장어…. 이들을 어려움 없이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준전문가라 할 만하다.

우선 장어라는 물고기는 없다. 장어는 여러 물고기를 일컫는 일반명일 뿐 공식적인 명칭이 아니기 때문이다. 뱀장어는 흔히 민물장어라고 불리는 종이다. 눈이 비교적 작고 등은 짙은 갈색에 배는 은백색이며, 몸 양옆이 황금빛을 띠고 있다.

 


아나고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잘 알려진 붕장어(Conger myriaster)는 눈이 크고 옆줄을 따라 흰 점이 한 줄로 달려 있어 뱀장어와 쉽게 구별된다. 뱀장어가 민물과 바다를 왕래하며 살아가는 것과 달리 붕장어는 일생을 바다에서 보내므로 바닷장어라고도 불린다.

갯장어(Muraenesox cinereus)도 바닷장어의 일종이지만 몸빛깔이 짙고, 옆줄 위에 흰 점이 없으며, 주둥이가 길다는 점 등으로 붕장어와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갯장어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길쭉한 주둥이에 박혀 있는 무시무시한 이빨이다.

갯장어라는 이름도 개와 같은 이빨을 가진 장어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성질이 포악해서 조금만 방심해도 사람을 깨물려고 달려든다. 포장마차에서 많이 파는 ‘꼼장어’(표준어는 곰장어)는 먹장어(Eptatretus burgeri)라는 공식 이름을 갖고 있다.


먹장어는 어류가 아니라 턱뼈가 없는 하등 척추동물인 ‘원구류’다. 입 주변에 네 쌍의 수염이 있고, 눈은 퇴화해 흔적만 남았으며, 몸 옆면을 따라 여섯 개의 아가미구멍이 늘어서 있는 겉모습도 전형적인 장어류와는 거리가 멀다.

 


이태원 교사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세포생물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우리나라 전통 문헌에 나타난 과학 관련 내용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조선후기 학자 정약전의 어류학서 ‘자산어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기행문식으로 정리한 ‘현산어보를 찾아서1~5’(청어람미디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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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태원 서울세화고 생물 교사 기자
  • 일러스트

    정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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