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 태양의 대부분이 달에 가려지는 부분일식이 일어난다. 주변이 갑자기 어둑해지고 초승달처럼 가늘어진 태양이 하늘에 빛난다.
이날 서울에서 태양을 보면 최대 약 79%가 가려진다. 이는 1948년의 금환식(태양 가장자리가 금가락지 모양으로 보이는 일식) 이후 가장 많이 가려지는 일식이다. 태양은 남부지방으로 내려갈수록 더 많이 가려진다. 대전에서는 약 82%, 제주까지 내려가면 최대 92% 정도 태양이 가려지는 일식을 볼 수 있다.
개기일식 보려면 중국이나 일본으로
22일 일식은 오전 9시 34분경부터 시작된다(서울 기준). 태양의 오른쪽 귀퉁이를 달이 조금씩 가리기 시작해 오전 10시 48분을 전후로 태양의 79%가 가려지는 식 최대가 된다. 달이 태양 면을 완전히 빠져나가는 12시 6분경이면 일식이 끝난다. 태양과 달이 만나는 전 과정은 2시간 반 동안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사실 부분일식은 개기일식에 비해 박진감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한국에서 조금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 중국 상하이 근방이나 남일본해까지 간다면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도 볼 수 있다. 즉 태평양에서 시작돼 남일본해를 지나고 중국 상하이, 쓰촨(四川)성을 지나 히말라야산맥 아래 부탄, 그리고 인도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개기일식을 볼 수 있다. 이번 개기일식의 특징은 지속 시간. 최대 6분 44초로 매우 길다.
근래 들어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개기일식을 볼 수 있는 기회이고, 시기적으로도 방학이기 때문에 많은 여행객이 중국과 일본 등으로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개기일식을 볼 수 있는 일본 남부의 섬들은 일찌감치 모든 예약이 완료됐다.
개기일식 때 달에 가려진 태양은 까만 원으로 보인다. 까만 원 둘레에 밝게 빛나는 부분이 바로 태양의 대기층인 코로나다. 개기일식이 일어나면 하늘이 캄캄해져 대낮에도 별이 빛나게 된다. 짧은 순간이지만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직접 개기일식을 볼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절대 맨눈으로 보면 안 돼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지역을 인공위성에서 내려다보면 달의 그림자가 지구 위에 드리워져 어둡게 보인다. 새까맣게 보이는 본그림자 지역에서는 개기일식을, 그 주변의 약간 어두운 반그림자 지역에서는 부분일식을 볼 수 있다. 22일 일식 때 한반도가 반그림자 지역에 들어가기 때문에 국내에선 부분일식만 관측된다.
일식은 시간과 장소, 관측자 일정의 3박자가 잘 맞아 떨어져야 관측할 수 있다. 일단 당일의 날씨가 가장 중요한 요소다. 22일이 장마와 맞물리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태양은 매우 밝기 때문에 맨눈으로 보기는 어렵다. 시력이 상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망원경으로 직접 태양을 바라보면 실명할 수 있어 절대로 맨눈으로 관측해서는 안 된다. 검은색 태양관측용 필터를 구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게 어렵다면 검게 현상된 필름이나 CD, DVD처럼 거의 불투명하고 얇은 물건을 통해서 보면 좋다. 빛이 감소돼 태양의 윤곽 정도는 볼 수 있다. 선글라스는 빛을 어느 정도 감소시켜주긴 하지만 태양관측용으로는 역부족이다.
망원경을 사용할 때는 대물렌즈 앞에 태양필터를 꼭 붙여 사용하는 게 좋다. 이때 혹시 작은 틈으로 태양빛이 스며들지 않는지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카메라와 렌즈로 촬영할 때는 빛의 투과율을 400분의 1로 줄여주는 ND400 필터 2장을 겹쳐 쓰거나 100만 분의 1로 줄여주는 ND1000000 필터를 사용하면 된다.
한반도 다음 개기일식 2035년
‘1422년 1월 23일(음력 1422년 기미년 1월 1일). 일식이 있으므로, 임금이 소복(素服)을 입고 인정전의 월대(月臺) 위에 나아가 일식을 구(救)했다. 시신(侍臣)이 시위하기를 의식대로 했다. 백관들도 또한 소복을 입고 조방(朝房)에 모여서 일식을 구하니 해가 다시 빛이 났다. 임금이 섬돌로 내려와서 해를 향해 네 번 절했다. 추보(推步)하면서 1각(刻)을 앞당긴 이유로 술자(術者) 이천봉(李天奉)에게 곤장을 쳤다.’ (조선왕조실록)
우리나라 역사서에는 삼국시대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일식 현상을 기록한 부분이 남아 있다. 예로부터 태양은 임금을 상징하는 천체였기 때문에 조상들은 태양이 빛을 잃는 현상을 흉조로 받아들였다. 일식을 미리 예측해 백성의 동요를 막는 건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조선 세종 때인 1422년에는 일식 시간을 1각(약 14.4분) 틀리게 예보한 관리가 곤장을 맞았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의 역서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나타난 오차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이순지와 정인지, 김담 등의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1444년 독자적인 역법서 ‘칠정산’이 간행됐다.
한반도에서의 개기일식을 조사해 보면 평균 한 세기마다 2.25회 발생하고 있다. 근래에는 해방 직후 혼란기인 1948년 금환식이 있었다. 그 이전에는 조선이 쇠망해 가던 1824년과 1852년에 개기일식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고려 말과 조선 초의 혼란기인 14세기에는 개기일식과 금환식이 5회나 일어났다.
일식은 전 지구적으로 보면 1년에 3~5회 정도 발생하지만 개기일식을 볼 수 있는 지역이 매우 좁다. 대부분 부분일식을 볼 수 있고, 개기일식을 ‘세기적인 사건’으로 여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운 좋게도 한국 주변에서는 이런 ‘세기적 사건’이 몇 차례 더 있을 예정이다. 2010년 아프리카에서 중국에 이르는 금환식을 볼 수 있고, 2012년에는 일본과 중국 남쪽에서도 금환식이 일어난다. 한반도 근처에서 이렇게 흔하게 개기일식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역사적으로 정말 드문 일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작 한반도에서 개기일식이 일어나려면 2035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것도 평양에서나 볼 수 있다. 남한지역에서는 2095년의 금환식이 가장 가까운 개기일식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대부분은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이다. 2035년까지 통일이 돼 북한에서 개기일식을 관측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 일식이 드물어 보이는 이유
태양을 달이 가리는 현상이 일식이다. 이와 비슷하게 태양과 달 사이에 지구가 들어가 지구의 그림자에 달이 들어가는 현상은 월식이라고 부른다. 태양의 지름이 약 139만 2000km로 달보다 약 400배가 크지만 400배 멀리 떨어져 있어 지구에서 보이는 크기는 거의 동일하다.
지구에서 볼 때 달이 지나는 길인 ‘백도’와 태양이 지나는 길인 ‘황도’가 완전히 일치한다면 매달 그믐에는 일식을, 보름에는 월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황도와 백도가 약 5° 9′ 기울어져 있어서 일식과 월식은 흔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달이 평소보다 지구에서 더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으면 달이 보이는 크기가 태양보다 작다. 이때 일식이 일어나면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지 못하고 반지처럼 보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금환식이다. 또 1년 동안 일식은 2~5회, 월식은 3회 일어날 수 있다.
전 지구적으로 보면 일식이 월식보다 자주 일어나지만 실제로 느끼는 빈도는 월식이 더 많다. 월식은 지구에서 밤인 지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반면, 일식은 극히 좁은 지역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권오철 사진가는 2001년 한국인 최초로 NASA의 ‘오늘의 천체사진’에 선정됐으며, 2003년 한국천문연구원과 동아사이언스가 주최한 천체사진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2009 세계 천문의 해’ 공식 프로젝트인 ‘The World at Night’의 한국 멤버로 전국순회 전시회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세 번째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원정관측, 오랜 기다림 끝에 맛보는 짜릿함
실수란 있을 수 없다. 이번에 기회를 놓치면 또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주어진 시간은 기껏해야 약 5분. 달이 태양에 접근하기 시작하면 긴장은 극도에 달한다. 셔터와 컴퓨터 자판을 누르는 손길이 점점 바빠진다. 태양이 완전히 가려지는 순간, 갑자기 눈앞이 정말 말 그대로 캄캄해진다.
원정관측을 다녀온 천문학자들은 일식이 일어나던 순간을 이렇게 기억한다. 짧은 시간 동안 가능한 한 많은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보통 일식 며칠 전에 미리 현장을 찾아 촬영 연습을 반복한다. 갑자기 어두워지면 눈이 보이질 않기 때문에 사진기나 컴퓨터를 작동할 수 없어 미리 커다란 상자를 뒤집어쓴 채 절정의 순간을 기다리기도 한다.
개기일식은 태양과 가장 가까운 코로나(태양 대기의 가장 낮은 부분)를 실제로 관측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천문학자들이 무거운 장비를 둘러메고 비싼 여비를 들여 일식이 일어나는 세계 곳곳으로 원정관측을 떠나는 이유다.
글 임소형 기자 soh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