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 생기면 잘 분해되지 않고 몸속에 쌓이는 독성물질 다이옥신.
북극곰의 간에서도 발견되고 산모의 초유에서도 적지 않은 양이 나온다는데….
지난해에는 1년 내내 다이옥신이란 물질이 국내외 언론에 오르내렸다. 3월 이탈리아산 물소젖 모차렐라 치즈에서 다이옥신이 허용치 이상으로 검출됐다는 외신보도가 시작이었다. 우리 정부는 이 치즈의 수입과 판매를 긴급히 중지시켰다. 7월에는 국내에 수입된 칠레산 돼지고기 일부에서 다이옥신이 과다 검출돼 검역이 중단됐다. 12월에는 다이옥신에 오염된 아일랜드산 돼지고기가 한국을 비롯한 25개국에 수출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전 세계가 다이옥신 파동에 휩싸였다. 우리 정부는 국내에 유통 중인 아일랜드산 돼지고기를 전량 회수했다.
다이옥신에 과다 노출되면 피부 질환뿐 아니라 불임, 기형아 출산, 암 유발 등의 독성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인간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산업 활동에서 생성되는 독성물질! 다이옥신에 대한 오해를 풀며 그 진실을 파헤쳐보자. 대기, 토양, 생태계, 식품 등 주변 환경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접근해 피할 수 없는 환경호르몬이자 발암물질! 다이옥신에 대한 대처법도 강구해보자.
1 다이옥신은 하나가 아니다
다이옥신은 한 물질이 아니라 200개가 넘는 비슷한 화합물의 통칭이다. 탄소 6개가 정육각형으로 결합한 벤젠 고리가 2개 있고 그 사이에 산소가 다리를 놓은 형태가 기본구조인데, 여기에 염소 몇 개가 벤젠 고리의 어디에 붙느냐에 따라 종류가 구분된다. 이때 벤젠 고리 사이를 산소 2개로 연결한 것이 폴리염화디벤조다이옥신류(PCDDs, 75종)이고, 산소 하나로 연결한 것은 폴리염화디벤조퓨란류(PCDFs, 135종)다.
사실 독성도 제각각이다. 다이옥신 중에는 염소가 2,3,7,8번 위치에 결합한 2,3,7,8-TCDD처럼 독성이 강한 ‘독종’이 있는가 하면, 독성이 전혀 없거나 2,3,7,8-TCDD의 수만 분의 1밖에 안 되는 ‘허당’도 있다. 특히 2,3,7,8-TCDD는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가장 강한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식품오염물질과 오금순 연구관은 “이들 210종의 다이옥신 가운데 독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17종을 선별하고 검출해 다이옥신의 농도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3,7,8-TCDD의 독성을 1로 두고 나머지 16종의 독성을 이와 비교해 각각의 독성등가계수(TEF)를 정한 뒤, 다이옥신 농도는 17종의 검출농도에 각각의 독성등가계수를 곱해 합한 값인 독성등가량(TEQ)으로 나타낸다. 최근에는 이들 17종 외에 폴리염화비페닐류(PCBs, 209종) 가운데 구조가 다이옥신과 비슷한 12종을 포함시켜 총 29종을 다이옥신류라 부른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다이옥신은 수영장 다섯 곳을 채울 물에 고작 한 컵 정도만 부은 농도로도 인간을 죽게 할 수 있다. WHO는 다이옥신의 1일섭취한계량(TDI)을 하루에 체중 1kg당 1~4pg-TEQ씩 평생 섭취해도 괜찮은 양으로 정하고 있다. 1pg(피코그램)은 1조 분의 1g이다. 현재 식약청에서는 극미량의 다이옥신을 검출하려고 6억 원짜리 고분해능질량분석기를 동원하고 있다. 물질 1g 중 1pg이라면 50m×30m 올림픽수영장(깊이 2m) 20개의 물에 물방울 하나를 떨어뜨린 정도에 해당한다.

2 북극과 남극은 청정지역?
다이옥신은 염소를 포함한 화합물이 불완전하게 연소할 때 만들어진다. 폐플라스틱, 바닥재 같은 폐기물이나 쓰레기를 소각하는 과정, 제초제용이나 살충제용 염화페놀 관련물질을 만드는 공정에서 나오고 자동차배기가스나 담배연기에 포함돼 있다. 놀랍게도 다이옥신은 산업시설이 없는 청정지역인 남북극에서도 발견된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서울센터 환경대사체연구팀 서정주 박사는 “북극곰, 고래, 알래스카 원주민 몸속에서도 다이옥신이 검출된다”고 말했다.
2002년 일본 요코하마대, 미국 미시간주립대, 이탈리아 시에나대 공동연구진이 국제저널 ‘환경오염’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북극곰의 간, 남극 아델리펭귄과 도둑갈매기의 알에서 다량의 다이옥신이 발견됐다. 즉 PCDD류와 PCDF류 다이옥신은 북극곰 간에서 지방 1g당 평균 26pg이, 아델리펭귄 알에서 지방 1g당 평균 23pg이, 도둑갈매기 알에서는 지방 1g당 평균 181pg이 각각 검출됐다.
다이옥신은 화학적으로 안정해 한 번 생기면 잘 분해되지 않고 바람이나 물에 실려 먼 거리를 이동할 뿐 아니라 먹이사슬을 따라 상위 포식자에게 더 많이 축적된다. 즉 물→플랑크톤→물고기→곰(펭귄, 갈매기, 사람) 순서로 오염량이 늘어난다. 서 박사는 “공업지역에서 만들어진 다이옥신이 물 분자에 달라붙어 바닷물로 전파되다가 먹이사슬을 거쳐 북극곰에서 검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다이옥신은 잔류성유기오염물질(POPs)로 분류됐고, 2001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국제적으로 협력해 관리하기로 한 협약에 포함됐다.
3 모유에서도 나온다?

사람도 북극곰처럼 먹이사슬에서 최상위를 차지하기 때문에 다이옥신 오염을 피할 수 없다. 인체에 축적되는 다이옥신 가운데 90% 이상은 음식물을 먹을 때 들어오고 1~3%는 숨을 쉴 때 유입된다. 다이옥신은 지용성 물질이라 물보다 기름에 더 잘 녹는다. 지방함량이 높은 식품일수록 다이옥신이 더 많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또 몸속에서도 다이옥신은 지방조직에 축적된다.
식약청에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식품에서 다이옥신의 양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은 체중 1kg당 1일 평균 0.41pg-TEQ의 다이옥신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기간에 일본인이 체중 1kg당 평균 1.19pg-TEQ의 다이옥신에 노출돼 있는 것에 비해 낮은 수치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정한 1일섭취한계량(TDI)인 ‘체중 1kg당 4pg-TEQ’의 10% 수준이다. TDI가 ‘4pg-TEQ/kg 체중’이라는 사실은 55kg의 성인이 하루에 220pg-TEQ씩 다이옥신을 평생 섭취해도 안전하다는 뜻이다.
식품군별로도 다이옥신 오염수준은 다르다. 식약청이 2007년 전국 5개 도시에서 유통 중인 육류, 어패류, 알류, 곡류 총 15개 식품에서 다이옥신을 조사한 결과 다이옥신 농도는 어패류(평균 0.187pg-TEQ/g)가 가장 높고 알류(노른자 평균 0.142), 육류(평균 0.034), 곡류(평균 0.001) 순으로 높았다. 이들 식품에서 검출된 다이옥신은 TDI에 훨씬 못 미치지만, 모유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2007년 식약청 국립독성과학원이 우리나라 산모의 모유에서 다이옥신 양을 조사한 결과 다이옥신 농도가 지방 1g당 4.67pg-TEQ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는 일본(22.03pg-TEQ/g 지방), 벨기에(16.92), 독일(12.5), 러시아(9.36), 미국(7.18)보다 낮은 수준이다. 또 서울 지역 산모의 초유 중 다이옥신 농도는 지방 1g당 8.27pg-TEQ(2002년)에서 5.87pg-TEQ(2007년)로 줄었다. 모유의 다이옥신 농도는 출산 후 시일이 지날수록 감소하고 아기를 처음 낳은 산모보다 아기를 낳은 경험이 있는 산모에서 적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모유를 먹이지 말아야 할까. 국립독성과학원 내분비장애평가과 관계자는 “최근 국제 환경보건학회지(EHP)에서 모유에 존재하는 다이옥신 같은 환경오염물질의 해보다 모유의 장점이 크다고 강조했다”며 “WHO에서도 생후 2년까지 모유를 먹이는 걸 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모유에는 유아의 면역과 성장 발달에 필요한 물질이 많이 포함돼 있다.

4 성조숙증 일으킨다?
다이옥신의 독성은 1949년 미국의 염소살균제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난 뒤 근로자들에게 피부질환이 나타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사람은 다이옥신 하면 1965년부터 시작된 베트남전에 쓰인 고엽제(제초제)를 떠올린다. 여기에 든 다이옥신 탓에 참전군인들이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2004년에는 우크라이나의 정치인 빅토르 유시첸코를 다이옥신으로 독살하려는 음모가 드러났는데, 유시첸코는 다행히 죽음을 모면하고 대통령이 됐지만 다이옥신에 중독돼 얼굴이 곰보처럼 패고 푸른 반점이 남았다.
다이옥신은 피부 질환 이외에 학습 장애, 면역기능 저하, 당 조절 능력 저하, 고환 크기 감소와 정자 수 감소, 불임, 기형아 출산, 암 유발 등의 독성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국립독성과학원 내분비장애평가과 관계자는 “다이옥신은 세포 안으로 들어가 세포질 안에 있는 방향족탄화수소수용체(AhR)와 결합해 매우 복잡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 수용체와 결합한 다이옥신은 핵 안으로 들어가 시토크롬 P450 1A1과 같은 대사효소를 만들어 독성물질을 활성화시키거나, 에스트로겐 같은 스테로이드호르몬의 대사를 촉진해 성호르몬의 불균형을 일으켜 정자 수를 감소시키거나 성장을 저해하며, 세포 분화와 증식을 교란해 암을 유발하기도 한다.
최근 국내에서는 다이옥신 때문에 평균보다 일찍 가슴이 발달하거나 초경을 시작하는 ‘성조숙증’이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립독성과학원 내분비장애평가과 관계자는 “태아기 때 고농도의 다이옥신에 노출된 여자 아이가 가슴 발육이 오히려 약간 늦어졌다는 연구결과도 있다”며 “이 문제는 전문가들의 검토가 더 필요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5 생선내장, 돼지비계, 닭껍질


소비자 대부분은 식품에 들어 있는 다이옥신을 접한다. 2007년 식약청에서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같은 식육 속 다이옥신 농도 기준을 설정하고 지난해 1월부터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서 이 기준을 적용해 수입식육을 검역하고 있는 이유다. 다이옥신 농도 기준은 1g의 지방당 각각 쇠고기가 4pg-TEQ, 돼지고기가 2pg-TEQ, 닭고기가 3pg-TEQ다.
물론 다이옥신의 섭취를 줄이는 게 상책이다. 전문가들은 고기를 먹을 때 생선 내장이나 아가미, 돼지비계, 쇠기름, 닭껍질처럼 지방이 많은 부분을 피하라고 권한다. 다이옥신 오염도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식약청 오금순 연구관은 “아일랜드 돼지고기는 오염된 사료 때문에 다이옥신이 다량 검출된 것”이라며 “오염되지 않은 사료로 키운 가축은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편식하지 않고 음식을 골고루 먹으면 다이옥신에 오염된 특정음식만 먹을 때 생기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금연도 중요하다. 일본의 측정자료에 따르면 담배 1갑을 피울 때 1L의 연기에서 다이옥신이 1.81pg-TEQ만큼 나온다. 담배 1갑을 피우면 쓰레기 소각로 근처에서 하루 종일 숨 쉴 때 마시는 다이옥신보다 많은 양을 들이마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