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G, 합성착색료, 합성보존료를 쓰지 않는 ‘3無첨가’ 원칙을 계속 지켜오고 있습니다.”
지난 1988년 연구소가 설립된 이래 20년째 안전한 먹을거리를 개발하는데 노력하고 있는 풀무원기술연구소를 찾았다. 기자를 맞이한 김태석 박사는 연구소와 나란히 있는 풀무원식품안전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다.
“초기에는 합성첨가제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저희가 유일하게 무첨가 원칙을 고수하는 업체였죠. 그런데 지금은 식품업계의 트렌드가 이쪽으로 이동한 것 같습니다.”
풀무원이 무첨가 원칙을 세운 배경 가운데 하나는 합성첨가물에 대한 유해성 논란이 끊이지 않기 때문. MSG는 ‘중국식당증후군’을 비롯해 신경계를 교란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있고 착색료나 보존료는 아동과잉행동장애를 유발하거나 아토피 같은 알레르기 반응, 심지어 암을 일으키는데 관여한다는 보고가 있다.
식품 개발은 보수적이어야
“물론 MSG가 아무런 해가 없다는 연구결과도 많습니다. 다만 저희는 우리가 먹는 식품에 이렇게 논란이 되는 원료를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초기에는 풀무원에 식품원료를 공급하는 업체가 천연원료에 MSG를 슬쩍 집어넣어 풍미를 좋게 한 시료를 제출하기도 했다. MSG는 아미노산인 글루타민산의 염인데 원재료에 자연적으로 있는 글루타민산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좋은 질문입니다. 예를 들어 멸치추출액일 경우 원래 멸치에 들어 있는 아미노산 조성 비율을 기준으로 추출액의 아미노산 함량과 비교합니다. 추출액에서 글루타민산 함량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오면 MSG를 추가로 넣은 것이죠.”
이렇게 적발된 업체와는 두 번 다시 거래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연구소 분석실에 들어서자 액체 크로마토그래피 같은 분석장비가 꽉 차있다. 모니터의 그래프를 바라보고 있는 한 연구원은 “현재 우리가 받고 있는 원료에서 합성보존료가 있는지 여부를 액체 크로마토그래피로 분석하고 있다”며 “풀무원 제품에 들어가는 모든 원료는 이런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석실을 지나 식품을 개발하는 조미가공식품연구팀 실험실로 들어섰다. 실험대 위 선반에는 수많은 식품원료들이 올려져 있다. 실험실 내부는 다양한 식재료 냄새가 은은히 배어있고 한켠에는 실제로 조리해 맛을 볼 수 있는 주방도 마련돼 있다.
“처음에는 어떻게 맛을 내야할지 몰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는 노하우가 생겨 다양한 가공식품을 만들어내고 있지요.” 라면회사에 8년간 다니다가 1993년 풀무원으로 자리를 옮긴 손상수 팀장은 MSG없이 맛을 내는 노하우를 슬쩍 들려줬다. 소위 ‘감칠맛’을 내는 향미 증진제는 아미노산 계열인 MSG말고도 핵산 계열인 IMP와 GMP가 있다. 이들을 함께 쓰면 음식의 풍미가 훨씬 좋아진다. 손 팀장은 “MSG 대신 다시마, 쇠고기, 멸치, 버섯 같은 천연 재료를 추출한 액에 효소를 발효시켜 얻는 IMP나 GMP를 섞어 맛을 낸다”고 설명했다. 한 연구원이 냉장고에서 시커먼 액체가 담긴 통을 여럿 갖고 왔다. “한번 맡아 보고 어떤 추출물인지 맞춰보시죠.”
냄새를 맡아 보니 미역 비린내가 난다. “다시마 추출물인가…?”
“맞습니다.”
다음으로 맡은 멸치 추출물도 어느 정도 연상이 됐다. ‘그런데 이건 뭐지?’ 세 번째 시료는 간장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후후. 콩나물 추출액입니다. 너무 농축돼서 잘 모르겠지만 물에 조금 타면 콩나물국 냄새가 나죠.”
“신기한데요.” 이처럼 원재료에서 얻은 농축액을 기본으로 해 양념을 만들면 MSG를 첨가했을 때보다 더 많이 넣어야하므로 원가가 높아진다. 그럼에도 맛은 오히려 부족한 경우가 많다.
“감칠맛을 높이자고 천연물 추출액을 무작정 넣을 수는 없습니다. 자체 향취가 강해져 맛의 조화가 깨지니까요.” 결국 순수하게 감칠맛만 높여주는 MSG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셈이다.
건너편 실험대에서는 우현화 책임연구원이 발사믹 드레싱을 만들고 있다. 물과 기름을 섞는 유화제를 쓰지 않아 발사믹 식초가 주성분인 물 층과 올리브 오일이 주성분인 기름 층이 나뉘어 있다. “드레싱을 하기 전에 흔들어줘 일시적으로 물과 기름이 섞이게 한 뒤 채소에 뿌려줍니다.”
착색료도 식품원료에서 얻는데 녹색은 시금치 분말이나 클로넬라 분말에서, 노란색은 치자황색소에서, 보라색은 자색고구마 분말에서 얻는다. 역시 타르계 합성색소보다는 색의 강도나 안정성이 훨씬 떨어진다. 손 팀장은 “천연 색소는 시간이 지나면서 탈색이 되거나 시커멓게 변하는 경우가 많다”며 “천연색소를 쓴 어묵의 색이 너무 인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곤혹스러운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
손 팀장은 ‘진짜 같은 가짜와 가짜 같은 진짜’인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껍질을 벗기고 갈아 만든 고급 메밀 면은 색이 옅은데 소비자들은 메밀 함량이 적은 게 아닌가 하며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는 것. 메밀 함량이 낮지만 색소를 넣어 색을 짙게 만든 메밀 면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런 해프닝이 벌어진다고.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요리할 시간이 부족한 가정을 위해 만드는 레토르트 식품의 경우 합성보존료를 넣지 않기 때문에 제한이 많다. 무균화공정으로 생산해 오염될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냉장유통을 함에도 불구하고 유통기한이 2달 정도로 짧게 책정돼 있어 생산과 배송 스케줄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김태석 센터장은 “미국의 경우 매장의 냉장 기준이 4.7℃이하인데 우리나라는 10℃이하”라며 “지금보다 온도를 5℃만 낮춰도 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험실을 나오니 이번엔 관능평가실이다. 주부 모니터 요원 15명이 독서실처럼 양 옆에 칸막이를 친 평가 테이블에 앉아 연구원이 가져다준 두부된장찌게의 맛을 평가하고 있다. “이 분들은 미각 테스트를 통과한, 균형 잡힌 미각을 가진 주부들입니다. 이 분들의 평가가 제품 개발 방향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요.” 김 센터장의 설명을 들으며 진지하게 맛을 평가하고 있는 모니터 요원들을 둘러봤다.
“요즘 MSG를 쓰는 주부들이 있나요? 저희들은 맛만 봐도 MSG를 썼는지 알아요.” 모니터에 참가한 주부 천숙경 씨는 “맛은 들이기 나름”이라며 “첨가제가 없는 식품에 익숙해지면 첨가제가 들어있는 식품을 기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연구소를 둘러보면서 문득‘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음식의 맛과 냄새, 겉모습에 민감한 건 이런 감각 자극이 음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달콤한 맛은 탄수화물이, 감칠맛은 단백질이 풍부하다는 정보이고 향긋한 과일향은 과육이 먹기 좋게 익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시퍼런 감을 보면 따먹으려고 나무에 올라가지 않고 익을 때까지 기다린다.
식품첨가물은 인류가 생존할 수 있게 한 이런 시스템의 약점을 이용한 게 아닐까.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우리는 더 보기 좋고 맛도 풍부하고 향기로운 식품에 본능적으로 끌리기 마련이다. 과거 식품회사 세일즈맨이었다가 회사를 나와 식품업계의 이면을 고발한 일본의 아베 쓰카사가 2005년 펴낸 자신의 책 제목을 ‘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이라고 지은 이유를 알 만하다.
식품매장, 친환경과 무첨가가 대세
요즘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식품매장에 가보면 친환경 제품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일반 제품보다 2배 정도 하는 가격에 구매를 망설이다가도 ‘내 아이한테는 좋은 걸 먹여야지!’라고 다짐하면서 손을 내밀곤 한다. 친환경 제품 브랜드인 ‘올가’의 이지윤 대리는 “안전하고 건강에 좋은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매출액이 매년 20~30%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꼭 친환경 매장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규모 이상의 식품회사 제품들에서 MSG나 보존료를 넣지 않았다는 표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히려 수입산 제품들의 첨가제 목록이 더 긴 경우가 많다. 어느 나라보다도 까다로운 한국 주부들의 기준이 식품산업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가는 원동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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