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평점 ★★★☆☆ 괴물은 사람의 마음 속에도 산다?
영화 줄거리
미국의 한 시골마을. 영화 포스터를 그리는 화가인 데이비드(토마스 제인 분)는 가족과 함께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태풍이 마을을 덮치고 많은 건물이 파손된다. 데이비드는 부서진 집을 수리하기 위해 읍내의 슈퍼마켓을 찾는다. 이때 짙은 안개가 몰려오고, 갑자기 온몸이 피범벅이 된 한 남자가 슈퍼마켓으로 뛰어 들어와 소리친다.
“안개 속에 괴물이 있다!”
짙은 안개 때문에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사람들은 슈퍼마켓 밖에서 들려오는 괴물의 울음소리를 듣고 공포에 휩싸인다. 급기야 촉수를 뻗는 괴물이 등장해 한 청년의 목숨을 앗아가고, 설상가상으로 길을 찾으러 나간 사람들은 처절한 비명만 남긴 채 희생되는데….
▒ 영화 ‘미스트’는 정체불명의 괴물과 맞닥뜨린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수준높은 심리-서스펜스영화다. ‘에이리언’ ‘괴물’처럼 괴물의 스펙터클한 움직임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이 영화에는 괴물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이 등장한다.
마을이 안개 속에 파묻히고 무시무시한 괴물이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상황. 슈퍼마켓이란 좁은 공간에 갇힌 마을 사람들은 탈출을 주장하는 강경파와 신에게 불경한 죄값을 치러야 한다는 광신도파로 나뉜다. 강경파는 몇 차례 탈출을 감행하는데, 이때마다 괴물의 습격을 받아 처참히 죽고 만다. 이를 계기로 사람들 사이에 광신도파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강경파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외부의적보다 곁에 있는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셈이다.
과거 태풍이나 화산폭발 같은 자연재난과 마주친 원시 인류의 모습도 이렇지 않았을까. 원작소설의 작가 스티븐 킹이 괴물을 안개 속에 숨긴 이유는 그가 보여주려 한 것이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불안과 공포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괴물의 원형은 히드라와 기생충?
영화 초반, 데이비드는 괴물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슈퍼마켓 뒷문을 열어본다. 그러나 열린 문틈을 통해 문어발 같은 촉수를 뻗는 괴물이 침입한다. 괴물은 긴 촉수를 뱀처럼 휘어 상대를 옭아매고 촉수 안쪽에 박힌 날카로운 이빨로 사람을 물어뜯어 깊은 상처를 입힌다. 촉수의 굵기는 사람 몸통만하고 아마존에 사는 거대한 비단뱀과 닮았다. 과연 세상에 그런 기괴한 괴물이 존재할 수 있을까.
사실 비슷한 모양의 괴물은 우리 주위에 널려있다. 다만 어떤 것은 크기가 너무 작아 현미경으로 봐야 할지도 모른다. 긴 촉수를 가진 동물로는 몸길이 1cm 정도의 자포동물인 히드라가 있다. 자포동물은 해파리나 말미잘처럼 몸의 내부가 하나의 빈 구멍으로 된 동물을 뜻한다. 히드라는 원통형 몸의 끝부분에 입이 달려있고, 그 주위로 5~7개의 긴 촉수를 가지고 있다. 촉수는 먹이를 잡아 입에 넣는 역할을 한다. 대개 히드라는 풀잎이나 물속 나뭇가지에 붙어살면서 미생물을 잡아먹는다. 히드라는 그 특이한 생김새 때문에 그리스신화에서 영웅 헤라클레스와 대적하는 괴물로 등장하기도 했다.
긴 촉수 끝에 날카로운 이빨이 달린 괴물로는 구충이나 편충 같은 기생충이 있다. 기생충은 숙주생물의 몸에 머물며 영양분을 빼앗고, 장기에 침범해 질병을 일으킨다. 1945년 기생충감염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생충 알이 발견된 비율은 회충 82.4%, 편충 81.1%, 구충 46.5%로 보고됐다. 하지만 구충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사회 전반의 위생 상태를 개선하면서 2004년 그 비율이 회충 0.03%, 편충 0.02%로 떨어졌다. 현재 구충도 거의 소멸된 상태다.
그러나 기생충은 언제라도 다시 번성할 수 있으므로 예방이 필수다. 회충이나 편충은 오염된 야채를 먹을 때 감염될 수 있어 야채를 잘 씻어 먹어야 한다. 구충은 흙 속에서 맨발로 다니는 사람의 발가락이나 발등의 피부를 통해 감염되므로 야외활동을 할 때 유의해야 한다. 1980년대 이후 회충, 편충, 구충에 감염되는 비율은 줄고 대신 간디스토마증이나 폐디스토마증을 유발하는 디스토마 감염이 늘고 있다. 디스토마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담수에 사는 물고기나 가재, 게를 반드시 익혀 먹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구충제를 1년에 한번 복용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독성 과민반응이 죽음 부른다
곤충이 빛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슈퍼마켓에 갇힌 첫날 밤,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은 유리창 밖으로 밝은 조명등을 비춘다. 곧 불빛을 보고 몰려든 곤충 괴물이 창문에 달라붙고 익룡처럼 생긴 괴물이 몰려와 창문을 부수면서 상황은 악화 된다. 곤충 괴물은 전갈 같은 꼬리로 사람에게 독침을 쏘고, 익룡 괴물은 슈퍼마켓 안을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물어뜯는다. 괴물을 태워 죽이기 위해 마대걸레에 불을 붙여 휘둘러도 보지만 몇몇 사람들이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을 뿐이다. 게다가 독침에 쏘인 여자는 얼굴이 팅팅 부은 채 죽고 만다.
곤충에게 쏘인 사람이 사망하는 가장 큰 원인은 독성 자체보다는 독성에 대한 인체의 과민반응이다. 이를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라고 부르는데, 몸에 들어온 항원, 즉 독성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항체가 거꾸로 자기 몸을 공격하는 과민 반응의 일종이다. 곤충에 물린 뒤 몇 분 안에 얼굴이 붓고 붉게 변하면서 목소리가 허스키해지면 일단 아나필락시스를 의심해야한다.
목소리가 변하는 까닭은 성대 윗부분의 후두가 붓기 때문인데, 최악의 경우 기도가 막혀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 있다. 아나필락시스보다 증상은 가볍지만 곤충에 쏘인 뒤 몸이 가렵거나 피부에 두드러기가 난다면 반드시 의사의 진찰을 받아야 한다. 향후 같은 항원에 노출될 경우 아나필락시스가 생길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아나필락시스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곤충으로는 말벌, 땅벌, 꿀벌이 있고 최근 왕침개미(Pachycondyla chinensis)에 쏘이는 사례도 늘고 있다. 벌에 쏘였을 때 생기는 아나필락시스로 매년 50명 정도가 사망하는 미국의 경우, 야외활동을 할 때 벌독에 대한 알레르기 여부를 미리 확인하고 위급상황에 쓸 수 있는 응급키트를 확보하라고 권고한다.
화상환자에게 필요한 응급약품
영화에서 데이비드와 용기 있는 몇몇 사람들은 화상 환자에게 필요한 약품을 구하기 위해 슈퍼마켓 근처의 약국을 찾아 나선다. 화상으로 벗겨진 피부를 치료하기 위한 실바딘 크림, 감염을 막기 위한 항생제, 통증을 줄여주는 진통제 등 의사가 없는 상황인데도 용케 필요한 약품들을 찾아낸다. 그러나 슈퍼마켓으로 돌아가려는 이들 앞에 갑자기 독거미 괴물이 나타나 거미줄을 쏘아대는데, 피부에 거미줄이 닿자마자 하얀 연기를 내며 타들어 간다. 화상환자를 치료하려다가 오히려 자신들이 화학적 화상을 입은 셈이다.
화상은 열에 의한 피부 손상을 뜻하며 염산이나 암모니아 같은 화학물질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상처의 깊이에 따라 1~3도로 나눌 수 있다. 표피에만 화상을 입어 햇볕에 탔을 때처럼 피부가 붉어지면 1도, 진피까지 화상을 입어 물집이 생기면 2도, 피부 전층이 화상을 입으면 3도로 분류한다.
피부는 체온을 조절하고 장기를 감염으로부터 예방하는데, 화상을 입으면 이런 기능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심각한 화상을 제때 치료하지 못하면 인체는 저체온과 감염의 위험에 노출된다. 인체 표면적에 대한 화상의 넓이로 화상의 정도를 분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 화상’은 화상 부위가 인체 표면적의 5분의 1이라는 의미다.
앞서 언급한 약품 중 실바딘 크림은 항균작용이 있는 피부보호제로 얼굴을 제외한 화상 부위에 바르는 약이다. 신생아에게 황달의 일종인 핵황달을 일으킬 수 있어 임신한 여성이나 2개월 미만의 아기에게 수유하는 여성은 쓰면 안 된다. 화상의 2차 감염을 막는 항생제와 통증을 줄여주는 진통제도 화상 환자에게 필수지만 아스피린 진통제는 혈소판이 응집되는 것을 방해하고 출혈을 일으킬 수 있어 피하는 편이 좋다.
영화에는 전신에 화상을 입은 환자가 등장하는데, 피부가 손실되면 체액 증발량이 상당하므로 수분을 적절히 공급해주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 경우 성인이라면 화상을 입은지 24시간 동안 체중(kg)과 화상 부위의 넓이(%)당 4cc(0.004ℓ)의 링거액이 필요하다. 60kg 환자가 20% 화상을 입었다면 하루 동안 필요한 링거액은 4800cc(4.8ℓ)에 이른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독거미 괴물을 피해 자신의 승용차에 올라타는 데 성공한 데이비드와 생존자들은 최대한 먼 곳으로 달아난다. 하지만 그들이 안개 속에서 목격한 것은 거미줄로 뒤덮인 참혹한 죽음의 현장이었다. 얼마 못 가 차의 휘발유가 떨어지고 이들은 꼼짝달싹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생존자는 모두 다섯명. 권총에는 딱 네발의 총알이 남았다. 안개 속에서 괴물의 움직임을 느끼고 절망에 빠진 데이비드는 결국 탄창에 네 발의 총알을 장전하는데….
영화는 마지막 순간까지 등장인물들을 최악의 상황으로 내몬다. 하지만“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내일이었다”는 말처럼 삶을 스스로 저버리는 일은 어제 죽은 사람에 대한 죄악이 아닐까. 결코 걷힐 것 같지 않던 안개가 사그라지며 과연 데이비드는 어떤 괴물과 마주치게 될지 끝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