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만들어진 만화영화‘우주소년 아톰’(철완 아톰, Mighty Atom)은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초등학생 사이에서 인기를 끌던 로봇‘아톰’의 이름이 바로 원자(atom)다! 일상생활에서도 친숙한 아톰(원자)과 분자라는 이름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자.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우리는 어떻게 지구상에 태어났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무엇으로 이뤄져 있을까. 인류 탄생 이후 끊임없이 고민한 질문이다. 예를 들면 탈레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고대 철학자들은 이같은 질문에 나름대로 이론을 발표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가운데 데모크리토스(Democritos)는 스승인 레우키포스와 함께 기원전 400년경‘원자설’을 주장했다.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을 망치로 쪼개보자. 돌을 반으로 쪼개면 똑같은 성질을 갖는 두개의 돌덩이로 나뉜다. 더 작게 쪼개도 모양만 작아질 뿐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돌이 금이 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아! 돌을 부수고 또 부숴도 돌은 돌이구나! 그리고 계속 돌을 쪼갠다면 언젠가는 더 이상 쪼갤 수 없을 때가 오지 않을까.’그 상태의 돌을‘더 이상 쪼갤 수 없는’상태라고 하자. 그리스어로‘더 이상 쪼갤 수 없는’이라는 뜻의 말이‘아토모스’(atomos)이기 때문에 데모크리토스는 근본물질을 아토모스라고 불렀다.
데모크리토스에 따르면 아토모스는 영원하며 파괴되지 않는다. 데모크리토스는 재미있는 생각을 했는데, 물질의 성질은 아토모스의 크기와 모양 같은 기하학적인 차이 때문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까만색 돌은 정육면체 모양의 아토모스로 이뤄져 있고, 회색 돌은 공 모양의 아토모스로 이뤄져 있다는 식의 생각이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설은 사실 철학적 가설이다. 이 가설은 2000년이 훨씬 지난 뒤 과학적 가설로 다시 부활했다. 원자설을 다시 부활시킨 화학자가 영국의 존 돌턴(John Dalton)이다.
18세기에는 물질을 이루는 기본 성분으로‘원소’(element)라는 개념만 있었다. 원소는 기본‘성분’이다. 초창기 화학의 연구대상은 주로 광물(또는 무기물)이었다.
사실 광물에 대한 연구는 유리의 발명, 구리와 구리합금의 발견, 철의 발견처럼 과학 역사 초기부터 시작됐다. 여러 금속이 들어있는 돌에서 금속을 분리하고 정제해 금, 은, 구리를 발견했다. 그 당시 돌덩어리에서 금, 은이 녹아나오는 것은 아주 신기한 현상이었을 것이다. 금, 은, 철은 다른 것과 섞여있지 않는 순수한 상태였기 때문에 물질(예를 들면 광물)을 이루는 기본 성분으
로 분류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원소는 물질을 이루는 기본‘종류’다. 과일을 예로 들어보자. 과일가게에는 사과, 배, 포도등이쌓여있다.“ 과일에는뭐가있지?”라고 물어보면 사과, 배 등을 얘기할 것이다. 사과, 배 등이 과일의‘구성 성분’(또는 종류)이다.
원자는 물질의 궁극적인‘입자’또는 물질의 가장 작은‘알갱이’다. 원소가 물질의 종류를 나타내는 정성적인 표현이라면, 원자는‘입자’로 정량화할 수 있는 표현이다. 과일가게에서“야! 망고다!”라고 할 때‘망고’는 다른 과일과 구별하는 표현으로‘원소’이고,“ 엄마, 망고 2개만 사줘”라고 할 때‘망고’는 각각의 망고 덩어리를 말하는 것으로‘원자’다.
과일 한 무더기를 보고 다른 과일과 구별해 표현할 때는‘원소’이고, 사과, 배, 망고처럼 각각의‘입자’를 얘기할 때는‘원자’다. 금은‘원소로서 물질의 구성성분’이라고 할 때 금덩어리가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 금은 순수하며 다른 것과 섞여있지 않다는 사실만 뜻한다.
과일 하나를 자세히 보면 씨, 과즙 등으로 이뤄져 있다. 즉 과일의 공통적인 기본구조가 있다. 물질의 기본구조는 무엇일까. 물질을 분리, 정제하고 성질에 대한 연구가 발전하면서 물질은‘공통적으로’무엇으로 이뤄져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다시 생겼다. 아마도 예전의 화학자들은 궁극적인 입자에 대한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돌턴은 2000년 전의 아토모스 개념을 바탕으로 1803년 원자론을 발표하고, 이를 체계화해 1808년‘화학철학의 새로운 체계’(A New System of Chemical Philosophy)라는 책을 출판했다. 책에는 5가지 원자론이 적혀있다.
첫째, 물질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원자’(atom)로 이뤄져 있다. 둘째, 어떤 원소를 구성하는 모든 원자는
질량과 성질이 같다. 셋째, 서로 다른 원소는 다른 종류의 원자로 이뤄져 있으며, 특히 질량이 다르다. 넷째, 화학반응에서 원자는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 다섯째, 화합물은 서로 다른 원소에 의해 만들어지며 이 때 각 원소의 원자는 간단한 정수비로 결합한다.
5가지 원자론은 과일로 말을 바꿔볼 수 있다. 첫째, 과일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독립적인‘덩어리’로 이뤄져 있다. 둘째, 어떤 과일(예를 들면 사과)의 모든 덩어리는 모양과 맛이 같다. 셋째, 서로 다른 과일은 다른 종류의 덩어리로 이뤄져 있으며, 특히 맛이 다르다. 넷째, 사과나무에서는 배가 나지 않는다. 다섯째, 선물용 과일상자에는 사과, 배, 메론 등이 간단한 정수비로 들어있다.
배수비례냐, 기체반응이냐
5번째 규칙은 돌턴의 역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바로‘배수비례의 법칙’이다. 돌턴은 질소(N)와 산소(O)에서 서로 다른 세 종류의 기체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돌턴이 이들 기체의 질소 1g당 산소의 질량을 재봤더니 1:2:4가 됨을 발견했다. 또한 탄소(C)와 산소를 포함한 다른 두 기체에서는 탄소 1g당 산소의 비가 1:2임을 확인했다. 돌턴은 이같은 실험 결과를 토대로 그 기체들이 각각 $NO$, $N{O}_{2}$, $N{O}_{4}$와 $CO$, $C{O}_{2}$와 같은 비율로 구성돼 있다고 생각했다(기체 질량을 몰랐기 때문에 $CO$, $C{O}_{2}$는 ${C}_{2}O$, $CO$일 수도 있다. 이때에도 탄소 1g당 산소의 비가 1:2이다).
현대 화학 지식으로 봤을 때 돌턴의 연구 결과 중에서 아쉬운 점은 돌턴은 자신이 제안한 원자에 너무 집착했다는 사실이다. 돌턴이‘화학철학의 새로운 체계’를 출판한 1808년에 프랑스의 화학자 게이뤼삭(Gay-Lussac)은 기체들이 반응할 때 반응 전후의 기체가 차지하는 부피가 돌턴의 배수비례의 법칙과 비슷하게 간단한 정수비 관계에 있다는‘기체반응의 법칙’을 발표했다. 예를 들면 수소와 질소가 반응해 암모니아를 만들 때 수소:질소:암모니아 = 3:1:2이고, 수소와 염소가 반응해 염화수소를 만들 때 수소:염소:염화수소=1:1:2이다. 게이뤼삭의 연구 결과는 압력과 온도가같을 때 같은 기체의 부피에는 같은 수의‘원자’가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돌턴 입장에서 보면 수소 기체는 원자(H)로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염소도 염소 원자(Cl)로 존재한다. 수소기체 1L와 염소 기체 1L가 반응해 염화수소가 만들어질 경우 돌턴은 H와 Cl이 합쳐진 형태의 염화수소에 염화수소‘복합원자’라는 말을 사용했다. 돌턴에 따르면 반응은 H+Cl→HCl로 진행한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돌턴의 반응식에서 수소 원자 1L와 염소 원자 1L가 반응하면 염화수소 복합원자 1L가 생성돼야 한다. 그런데 게이뤼삭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염화수소 2L가 만들어진다. 염화수소 2L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소 원자와 염소 원자가 2개로 쪼개져야 한다. 원자론의 가설에 맞지 않는 일이 생기는 셈이다.
사실 돌턴도 자신의 원자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연구 결과를 1803년에 발표했다. 즉 산소 1L가 수증기 1L보다 무겁다는 사실이다. 수증기(물)는 산소와 수소가 결합된‘복합원자’다. 만약 물질이 원자로만 이뤄져 있다면 산소 기체는 O이기 때문에 산소에 수소(H)가 첨가된 수증기가 더 무거워야 한다. 하지만 실험 결과는 정반대였다.
원자론의 모순 설명한 분자설
돌턴의 원자론과 모순되는 실험 결과들은 3년 뒤인 1811년 이탈리아의 아메데오 아보가드로(Amedeo Avogadro)가 설명했다. 아보가드로는 기체는 원자 자체가 아닌 몇 개의 원자를 갖고 있는 입자로 구성돼 있다고 제안하고 이를‘분자’(molecule)라고 불렀다(사실 분자라는 말은 이전에 게이뤼삭이나 다른 과학자들이 사용한 용어였다). 수소 기체와 염소 기체는 원자 2개로 이뤄진 2원자분자라고 가정함으로써 마침내 돌턴과 게이뤼삭 연구의 모순을 해결했다. 아보가드로는${H}_{2}+{Cl}_{2}→2HCl$라는 식을 제시했다.
수소 분자 1개가 염소 분자 1개와 반응해 염화수소 분자 2개를 만든다. 또한 산소 원자 2개로 이뤄진 산소 기체(${O}_{2}$)는 수증기(${H}_{2}O$)보다 무거울 것이다. 돌턴은 과일에 사과, 배처럼 하나의 독립된 덩어리로 존재하는 과일도 있지만 바나나, 포도처럼 여러 덩어리가 뭉쳐 하나의 과일로 존재하는 종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