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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도 몰랐던 중력 이야기

차원이 다르면 만유인력의 법칙 달라져

발렌타인데이(2월 14일), 키스데이(6월 14일), 포토데이(9월 14일) 등 연인을 위한 이벤트 데이가 넘쳐난다. 과학자를 위한 이벤트 데이는 없을까. 9월 달력을 바라보는 물리학자 개인에게도 특별한 날이 있다. 교과서 속에 등장하는 지구의 중력가속도(9.8m/s²)를 떠올릴 수 있는 9월 8일이다. ‘중력의 날’이라고 할 수 있다.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보고 만유인력(중력)을 생각해냈다는 일화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시인이라면 사과가 떨어지는 원인을 사과가 지구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낭만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뉴턴의 중력 이론은 근대 자연과학의 태동이라고 할 수 있고 20세기에 들어와 아인슈타인과 후대 학자들은 중력을 다른 관점에서 해석했다. 중력의 날을 생각하며 색다른 중력 이야기에 귀기울여보자.

뉴턴의 중력^공을 수평으로 던질 때 빠르게 던질수록 공은 점점 더 멀리 날아간ㄷ. 그러다가 공이 그리는 궤적이 둥근 지구 표면과 나란해지면 공은 지구 주위를 돈다.


뉴턴의 힘, 탈출해봐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은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 사이에 서로 잡아당기는 중력이 작용하며 그 힘의 크기는 두 질량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질량의 곱에 비례한다는 내용이다. 태양이나 지구처럼 질량이 아주 큰 물체가 미치는 힘은 쉽게 느낄 수 있지만 손목시계나 휴대전화처럼 가벼운 물체가 미치는 중력은 피부로 느끼기에 너무 약하다. 지구가 우리를 끌어당기는 중력이 바로 우리 몸무게다.

뉴턴이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사과가 떨어지는 이유가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이유와 정확히 같다는 사실을 간파한 직관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물체를 수평으로 던져보면 알 수 있다. 물체를 천천히 던지면 물체는 곧 땅에 떨어지지만 점점 더 빠르게 던지면 물체는 더 멀리 날아가 떨어진다. 그러다가 물체가 그리는 궤적이 둥근 지구 표면과 나란해지면 물체는 지구 중력에 의해 떨어지더라도 지표면에 닿지 않고 계속 지구 주위를 돌게 된다. 물체가 이렇게 되는 최소 속력을 ‘탈출속력’이라 한다. 지구를 탈출하려면 초속 11.2km의 속력이 필요한데, 이것은 지구의 질량에만 관계하며 물체의 질량에는 무관하다. 즉 가벼운 물체나 무거운 물체나 지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똑같은 속력이 필요하다.

지구보다 무거운 태양의 탈출속력은 초속 618km다. 만일 어떤 별의 탈출속력이 빛의 속도보다도 더 크다면? 그 별의 표면에서 발생한 빛이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어 별은 어둡게 보인다. 이것이 바로 블랙홀이다.
 

휜 공간과 아인슈타인의 휜 시공간


아인슈타인의 휜 시공간서 시간 보정하기

아인슈타인은 중력을 시공간이 휜 효과로 이해했다. 공간이 휘었는지의 여부는 두 물체를 나란히 떨어뜨렸을 때 두 물체의 궤적이 계속 나란한지, 서로 멀어지는지, 아니면 서로 가까워지는지를 측정하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양손에 사과를 하나씩 들고 양팔을 수평으로 들어올린 후 사과를 떨어뜨려보자. 사과가 떨어지는 순간에는 서로 나란히 운동하지만 결국 이 둘은 지구 중심을 향해 움직이므로 두 사과 사이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이는 지구 주위의 시공간이 볼록하게 휘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이 뉴턴의 중력이론과 가장 다른 점은 중력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정지)질량이 아니라 에너지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빛(광자)은 정지 질량이 0이지만 에너지를 가지므로 E=mc²에 의해 m=E/c²이라는 효과 질량을 지닌다. 이 효과 질량은 태양이 만들어내는 중력장과 상호작용을 일으켜 태양 근처를 지나는 빛의 경로를 휘게 한다. 빛이 중력을 받는 셈이다.

즉 에너지가 있으면 시공간이 휘어 중력장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물체는 중력을 받아 곡선 운동을 하게 된다. 물론 휘어있는 시공간에서 움직이는 물체는 가장 짧은 거리를 움직이므로 이 움직임을 일반적인 의미에서 직선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시공간과 중력에 대한 획기적인 관점(일반상대론)은 여러 실험에서 확인돼 왔다. 예를 들어 태양 근처를 지나는 빛의 경로가 구부러진다든지, 수성의 근일점(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이 조금씩 이동하는 현상을 놀랄 만큼 잘 설명한다. 요즘 유행하는 GPS에도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이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일반상대론에 따르면 중력의 세기가 다른 곳에 있는 시계는 초침이 움직이는 비율이 다르다. 예를 들어 지상에 놓인 시계와 인공위성에 탑재된 시계는 서로 다른 비율로 움직인다. 물론 그 차이는 하루에 수십μs(마이크로초, 1μs=100만분의 1초)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기에 빛의 속도를 곱해 거리로 환산해보면 수km의 차이에 해당하므로 이 효과는 GPS 시스템의 정확도에 아주 중요하다. 전쟁 중이라면 자신의 위치가 1km만 다르게 인식돼도 죽고 사는 문제가 뒤바뀔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도 2만km에서 시속 1만4000km로 원운동을 하는 인공위성에 탑재된 시계는 지상의 시계보다 약한 중력을 느끼므로 하루에 45μs 정도 빨리 간다. 물론 움직이는 시계가 천천히 가는 시간지연 효과도 감안해야 한다. 이 효과로 인공위성의 시계는 하루에 7μs 정도 늦어진다. 이 두 효과를 합치면 인공위성의 시계는 하루에 38μs씩 빨리 간다. 따라서 위성의 시계는 매일 이만큼씩 시간을 보정해줘야 지상의 시계와 시간이 맞는다. 이렇게 보정하면 대부분의 상용 GPS는 30m 내외의 오차로 당신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복잡한 기하학(리만의 미분기하학)을 이용해 일반상대론을 만들어냈을 때 훗날 GPS에 자신의 이론이 응용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양성자 2개를 충돌시키는 모의실험. 충돌에서 나온 여러 입자가 다른 색의 궤적으로 나타나 있다.


9 차원 공간 속의 3 차원 막에 산다면?

지난 10년 동안 중력에 대한 입자 물리학자의 관점은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소위 ‘초끈 이론’에 따르면 원래의 시공간은 10차원, 즉 9개의 공간 차원과 하나의 시간 차원으로 돼 있다. 우리가 사는 공간이 9차원 공간 중에서 3차원뿐이고 나머지 6차원은 아주 작게 말려있거나 우리가 사는 공간이 9차원 공간 속의 3차원 막일 것이라고 한다.

공간이 작게 말려있어서 우리가 볼 수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예를 들어 정원에 놓여있는 물 호스를 생각해보자. 호스의 표면은 분명 2차원 실린더이지만 멀리서 보면 호스가 마치 1차원 곡선 같을 것이다. 호스 표면이 2차원이란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호스에 가까이 다가가서 봐야 한다. 만일 성능이 충분히 좋은 망원경이 있으면 호스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호스의 표면이 2차원이란 사실뿐 아니라 호스 표면의 울퉁불퉁한 정도라든지 표면을 기어가는 벌레도 관측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초끈 이론에 등장하는 ‘부가차원’(extra dimension)은 아주 작아서 현재 우리가 하는 실험으로 들여다볼 수 없다. 현재 인류가 가진 최고성능의 현미경은 대략 ${10}^{-18}$m의 크기를 알아볼 수 있는 정도다. 원자 중에서 가장 작은 수소 원자의 크기가 대략 ${10}^{-10}$m이고 원자핵의 크기는 대략${10}^{-15}$m이다. 만일 원자가 축구장 크기라면 그 속의 핵은 축구장에 놓인 작은 탁구공 크기라는 얘기다.

그러면 막 이론이란? 책상 표면을 기어가는 개미를 생각해보자. 우리가 보기에 개미는 3차원 공간에 놓여있는 2차원 표면(책상면)을 기어가는 2차원적인 존재다. 하지만 실제 공간은 3차원이다. 물론 개미 입장에서는 바깥에 새로운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실제 우리가 사는 3차원 공간이 그보다 더 큰 9차원 공간 속의 얇은 막일지 모른다는 점이 지난 10여 년간 물리학자들이 새로 알게 된 가능성이다.

자연계에는 중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그리고 강한 핵력 모두 네가지 힘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막 이론에 따르면 중력을 제외한 다른 세 힘은 막 위에만 존재하는 반면, 중력은 막 바깥에도 작용해 부가차원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흥미롭게도 이런 가정에서 중력은 일부가 부가차원으로 새나가기 때문에 다른 힘보다 훨씬 약하다.
 

다양한 차원에서의 수압(힘)


새나가는 중력을 잡아라!

힘이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 호스에서 일정한 양의 물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물이 퍼져나오는 공간이 1차원, 2차원, 3차원일 때 호스 구멍에서 나오는 물의 세기는 어떻게 될까. 물이 1차원으로 퍼져나올 때 수압은 호스에서 떨어진 거리(r)에 무관할 것이다. 물이 2차원(3차원)으로 퍼질 때는 물이 퍼져나가는 공간이 더 넓으니까 호스에서 떨어진 곳의 수압은 1차원(2차원)의 경우보다 약할 것이다. 따라서 물이 퍼져나가는 공간이 3차원 이상의 고차원이면 수압이 더 약해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정량적으로 기술하면, 물이 퍼져 나가는 공간의 차원이 (3+n)이라면 물의 세기는 1/${r}^{2+n}$에 비례한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공간(3차원, 즉 n=0)에서 물의 세기는 1/r²에 비례한다. 중력이나 전기력이 1/r²에 비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은 각각 질량과 전하에 해당한다.

만일 부가차원이 존재하기 때문에 중력이 다른 힘보다 약한 것이라면 중력이 전기력처럼 1/r²에 비례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부가차원이 있으면 중력은 1/r²보다 빨리 감소해야 하는데, 이는 케플러의 제3법칙 같은 실험적 증거와 맞지 않는다. 케플러의 제3법칙(행성이 태양을 공전하는 주기의 제곱이 공전궤도 긴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한다)은 중력이 1/r²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가차원의 크기가 충분히 작다면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물이 퍼져나가는 새로운 공간을 생각해보자. 이 공간은 2차원인데 한 방향이 두 벽으로 막혀있고 두 벽 사이의 거리는 d라고 가정한다. 호스 구멍에 아주 가까운 곳(A)에서 수압을 잰다면 물이 2차원으로 퍼지니까 물의 세기가 1/r에 비례하는 것으로 측정될 것이다. 반면 호스에서 멀리 떨어진 곳(B)에서는 물이 벽에 막혀 벽과 나란한 방향으로만 흘러가게 되므로 물의 세기가 호스에서의 거리와는 무관하게 일정할 것이다. 이는 부가차원이 있다면 물의 세기가 부가차원의 차원 수뿐 아니라 그 크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예를 중력에 적용해보면 부가차원이 n일 때 중력은 1/${r}^{2+n}$에 비례하지만 거리(r)가 부가차원의 크기(d)보다 충분히 커지면 중력의 크기는 1/r²에 비례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밝혀진 부가차원의 차원 수와 크기는? 다양한 중력 실험에서는 부가차원(n)이 2일 때 부가차원의 크기가 130μm(마이크로미터, 1μm=100만분의 1m)보다 작아야 하며 천체물리 현상에서는 부가차원의 크기가 이보다 더 작아야 한다는 조건이 나왔다. 현재도 부가차원의 크기와 차원 수를 측정하는 중력 실험이 진행되고 있으며 내년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가동될 ‘거대 강입자 가속기’(LHC)에서도 부가차원이 있는 경우 등장하는 새로운 입자들을 직접 만들어서 그 성질을 연구할 예정이다.

만일 3차원 공간 외에 새로운 공간을 발견한다면 이는 지난 세기말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의 발견에 못지않은 코페르니쿠스적인 위대한 발견이 될 것이다.
 

부가차원^한 바향이 두 벽으로 막혀 있는 2차원 공간. 호스 구멍에서 아주 가까운 곳(A)의 수압은 1/r에 비례하는 반면, 호스에서 멀리 떨어진 곳(B)의 수압은 거리와 무관하게 일정하다. 물의 세기가 부가차원의 차원 수와 크기(d)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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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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