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망원경의 성능은 렌즈의 지름, 즉 구경으로 결정된다. 하지만 커다란 망원경만이 천문학을 발전시킨 것은 아니다. 망원경에 보이는 현상의 이면까지 꿰뚫어 보거나 근시였지만 망원경의 성능까지 검증한 사람도 있다.
17세기에 멀리 있는 물체를 가깝게 보여주는 망원경이 발명된 뒤 천문학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눈으로는 하나의 점으로 보이던 행성도 망원경을 통하면 둥그런 원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경험은 또 다른 의문으로 발전했다. 망원경으로 항성을 봐도 둥그런 원으로 보일까? 또 크기를 알 수 있을까?
당시 사람들은 별도 태양처럼 둥글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별의 크기가 태양과 같다면 별의 겉보기 지름을 각으로 나타낸 각지름을 측정해 별까지의 거리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이 사실은 많은 사람의 구미를 당기게 했고 시리우스를 비롯해 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인 1등성의 각지름을 측정하는 시도가 잇달았다. 하지만 망원경으로 별을 확대해 볼 수 있었을 뿐 별빛이 너무 밝아 별 그 자체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17세기 중엽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헤벨리우스는 그때까지 전해오던 육안관측법과 새로 발명된 망원경관측법을 동시에 사용한 유별난 인물이었다. 그는 자택에 천문대를 세우고 관측에 몰두한 끝에 달 지도를 만들어냈다. 맨눈으로 별의 위치를 측정해 1500여개에 이르는 항성의 위치표도 제작했다.
헤벨리우스도 별의 크기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는 우연히 망원경의 구경이 작아질수록 별빛이 퍼지는 정도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은 그는 망원경 앞을 가리는 마스크를 사용해 망원경의 구경을 점차 줄였다. 그러자 반짝거리는 별빛은 거의 사라지고 별이 둥그런 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헤벨리우스는 시리우스의 각지름이 6초라고 발표했다.
헤벨리우스의 발표를 두고 과학자들의 찬반이 엇갈렸다. 그를 지지했던 당시의 유명한 천문학자로는 장 도미니크 카시니와 존 플램스티드가 있었다. 플램스티드는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 별이 거의 사라지려 할 때 지구에서 본 시리우스의 각지름을 측정하려고 했다. 새벽에는 태양빛에 별빛의 반짝임이 상쇄돼 정확한 별의 크기를 관측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가 측정한 시리우스의 각지름은 무려 16초나 됐다.
시리우스의 각지름은 거의 ‘0’
하지만 별의 크기를 잴 수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달이 별을 가리는 현상인 성식(星蝕)에서 별이 순간적으로 가려진다는 사실을 그 증거로 내세웠다. 이것은 별의 실제 각지름이 0에 가까움을 의미했다.
작은 구경의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봤을 때 고배율에서 별이 둥근 원으로 보이는 현상을 초창기 과학자들은 별의 각지름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이 현상은 무려 200년이 지나서야 실제 각지름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음이 밝혀졌다.
회절 현상과 에어리 디스크
1801년 영국의 천문학자 조지 에어리(George Biddell Airy)는 북잉글랜드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편안한 유년 생활을 보낸 조지 에어리는 학창시절 수석을 차지하며 공부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타고난 천재성과 발명 기질을 지닌 그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대부분의 천재들처럼 그 역시 원만한 교우 관계를 가지지 못했다. 또 아버지가 실직하면서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 했다. 그러나 조지 에어리는 과학책을 많이 소장했던 삼촌 덕에 과학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트리니티대 수학과를 거쳐 26살의 나이로 케임브리지대 루카스 수학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1828년 천문대 직원으로 발탁되면서 그는 본격적인 천체 관측을 시작한다. 금성에 대한 논문으로 영국 왕립학회상을 수상한 것도 이 무렵이다. 1835년에는 그리니치천문대의 7대 대장에 취임해 영국을 대표하는 천문학자가 됐다.
광학에 관심이 많던 그는 25세에 난시용 안경을 개발했으며 1834년에는 별의 회절현상에 대한 이론을 발표했다. 에어리에 따르면 별의 모양은 빛의 회절현상 때문에 가운데 밝은 원판이 나타나며 이를 중심으로 동심원 처럼 밝고 어두운 부분이 반복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오래전 헤벨리우스가 주장했던 별의 크기는 실제 별이 아니라 빛의 회절현상으로 나타난 동심원의 일부였던 셈이다.
그는 이 원판을 에어리 디스크라 명명하고 별의 중심에서 첫 번째 어두운 지점이 나타나는 곳까지의 거리를 수식으로 표현했다. 이 반지름이 에어리 디스크 크기로, 천체망원경으로 밝은 별을 보았을 때 볼 수 있는 원판의 크기다.
이 수식은 r (에어리 디스크 반경) = λ (빛의 파장) × f (망원경 초점길이) / D (망원경 구경)로 표현한다. 여기서 알 수 있듯 빛의 파장이 동일하다면 에어리 디스크 반경의 크기는 망원경 구경에 반비례한다. 실제로 별빛은 연속된 스펙트럼이지만 가장 밝은 부분은 빛의 파장이 570nm로 일정하므로 상수로 취급할 수 있다.
결국 에어리 디스크 반경은 망원경 크기에 관한 함수로 망원경 크기가 커질수록 반경은 작아진다. 달리 말하면 망원경 크기가 커질수록 별은 더욱 또렷한 바늘 끝처럼 날카로운 점으로 보인다. 이 이론은 망원경이 커질수록 왜 분해능이 향상되는가 하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규명한 것이다. 그의 이론은 영국의 천문학자 존 레일리로 이어져 망원경으로 얼마나 근접한 이중성을 분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론적 배경이 됐다.
독수리 눈의 소유자 도즈
1799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윌리엄 도즈(William Rutter Dawes)는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났다. 그의 아버지는 수학교사였는데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그 때문에 도즈는 친척집에 맡겨졌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천문학에 흥미를 갖고 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도즈도 어릴 적부터 천문학에 관심을 가졌다.
도즈는 의사가 되려고 했지만 27세가 되던 때 누이동생이 죽은 뒤 공부를 중단한다. 이때부터 그는 교회 일을 도우며 생계를 꾸리면서 천문학에 눈을 돌려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다. 그는 30세가 되던 해 구경 9.5cm의 굴절망원경을 구입했고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플램스티드 성도와 윌리엄 허셜의 이중성 목록을 가지고 천문 관측을 시작했다.
이렇게 아마추어 천문가로 출발한 도즈는 대단한 관측기술을 갖고 있었다. 그는 약 10년 동안 모두 221개의 이중성을 관측하고 그 위치를 정리했는데 이것은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였던 존 허셜이 대형 망원경으로 관측한 것에 비견될 정도로 정확했다.
아마추어 천문학자였던 도즈가 이름을 날리게 된 이유는 탁월한 눈 때문이었다. 그는 독수리 눈을 가진 사나이로 불릴 만큼 예리한 눈을 갖고 있었다. 그 눈의 탁월함은 특히 행성과 이중성 관측에서 빛을 발했다. 하버드 천문대의 윌리엄 본드가 38cm 구경의 굴절망원경으로 발견한 토성의 고리 내부에 원형 고리(C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도즈는 그 절반도 안되는 16cm 굴절망원경으로 발견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더불어 1864년에는 작은 망원경으로 관측해 화성의 지도를 그렸는데 당대 최고의 화성 표면 지도로 인정받았다.
이 때문에 미국의 망원경 제조업자 클라크는 독일의 천문학자 프리드리히 폰 슈트루베가 구분하기 어려운 이중성으로 작성한 목록을 도즈에게 보내 망원경의 성능 검증을 부탁했다. 도즈는 자신이 사용하던 메르츠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없던 이중성도 클라크의 망원경은 충분히 관측할 수 있다고 확인해 줬다. 그 뒤 클라크는 새로운 망원경을 개발할 때마다 도즈의 검증을 받았고 도즈는 클라크에게서 4개의 망원경을 구입해 2800개나 되는 이중성을 관측했다.
그는 자신의 이중성 관측 기록과 다른 사람의 관측 기록을 비교하면서 망원경이 분리해낼 수 있는 이중성의 한계를 표시하는 수식을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 사용하는 망원경 분해능 식이다. 이것은 밝기가 동일한 6등급의 이중성을 기준으로 만든 수식이다. 이 식에 따르면 r(")=11.56/D(cm)로 구경 10cm 망원경은 각지름이 1.156초 떨어진 이중성을 분해할 수 있다.
예리한 눈으로 유명한 도즈였지만 실제 그의 시력은 지독한 근시였다. 그러나 망원경에 눈을 대기만 하면 그 눈은 독수리의 눈으로 변했다. 유명한 천문학자 중 눈이 나빴던 근시 천문학자는 오직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요하네스 케플러로, 그는 시력 때문에 관측보다 계산과 이론으로 명성을 얻었다. 반면 도즈는 근시임에도 망원경을 사용해 독수리 눈으로 불렸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각지름 : 천체의 겉보기지름을 각도로 표현한 것을 말한다. 항성의 각지름은 아무리 커도 0.05초를 넘는 일은 드물며 태양과 달의 각지름은 0.05로 가장 크다.
분해능 : 멀리서 관측할 때 두 개의 별이 하나의 별처럼 보이는 것을 원래대로 두 개의 별로 나눠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분해능이 좋을수록 더 세밀하게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