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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범 귀에 경 읽기

수원구치소 심리치료, 그 첫 발을 떼다

“개를 묶어 두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감금의 효과를 묻자 성폭행범 황 모(26)씨는 버럭 화를 냈다. 미쳐 날뛰는 개를 목줄로 묶으면 당장은 조용해지지만 목줄이 풀리는 순간 개는 다시 날뛸 게 뻔하다. 성폭행범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죄짓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감금은 그 어떤 범행 동기의 해결책도 될 수 없다. 가둬두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황씨는 “술만 마시지 않으면 아무 문제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석방된 뒤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수감되는 악순환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다. 음주 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황씨의 재범을 막을 수 없다.

상습적으로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용인 발바리’ 이 모(38)씨가 지난 1월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가 지금까지 20명의 아동을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성폭행 재범 처벌문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자팔찌에서 화학적 거세까지 다양한 대안들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성폭행 재범률에 대한 정확한 통계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인권단체가 제시하는 재범률은 7%인 반면 여성단체나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재범률은 90%를 웃돈다. 통계 대상이 조사기관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사실 아동 성폭행범이나 상습 성폭행범의 재범률은 80%가 넘지만 데이트 강간을 저지른 초범의 경우는 재범률이 10%를 밑돌아 어느 집단을 조사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들쭉날쭉하기 십상이다. 경찰청에서 발표하는 재범률도 성폭행범이 출소한 뒤 절도 등 다른 죄를 짓는 경우를 포함하고 있어 신뢰하기 어렵다.

상황이 이러니 성폭행 재범방지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반복되는 성폭행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구속은 범행을 연기시킬 뿐

1999년 스페인 법원은 8년 동안 150명을 성폭행한 강간범에게 징역 690년을 선고했다. 사실상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킨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상습 성폭행범에게 선고되는 구형은 기껏해야 15년이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영원히 추방할 수 없다면 재범 방지를 위한 치료감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캐나다 교정국은 1980년대 후반부터 성폭행 재범을 막기 위해 약물치료, 가족상담, 집단상담, 인지행동치료 등을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재범률(성폭행만을 다시 저지른 경우)이 25%에서 15%로 떨어졌다. 교정국 연구팀은 2005년에 개정한 ‘성폭행범 치료와 재범’이라는 보고서에서 “인지행동치료가 재범방지에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밝혔다.

폭력적인 성행위 장면을 볼 때 보통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끼지만 성폭행 성향이 짙은 사람들은 성적으로 흥분한다. 이렇게 잘못 형성된 성 관념을 고치는 것이 인지행동치료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혐오조건 형성’이다. 이것은 성폭행범이 폭력적인 장면을 보면서 성충동을 느낄 때 역한 냄새나 전기 자극, 혹은 구토제 같은 외부 자극을 줘 신체의 거부반응을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심리치료다.

개에게 종소리를 들려준 다음 먹이 주기를 반복하면 나중에는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린다는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와 비슷한 원리다.

성폭행 피해자의 입장을 연기해 보는 역할극도 인지행동치료에 많이 쓰인다. 이심전심이 부족한 성폭행범에게 연극은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연극이 끝난 뒤에는 녹화 테이프를 보며 집단토론을 벌이는데 이 과정에서 성폭행범은 가해자의 심리와 그 속에 숨어있는 왜곡된 가치관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잘못도 되돌아보게 된다.
 

수원구치소의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경기대 이수정 교수.

 


재범 방지 핵심은 심리치료

국내에는 성폭행범을 대상으로 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치료감호에 관한 법률도 없다. 법무부 교육교화과 최세림 사무관은 “죄수 사이의 형평성 문제가 있어 성폭행범에게만 특별히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는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전문 인력 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상담자가 민간인이어서 사고위험도 높기 때문에 관련 기관은 좀처럼 심리치료를 시도하지 않는다.

그런데 경기도 수원구치소가 지난 2월 국내 최초로 ‘성폭행 가해자에 대한 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강간 혐의로 수감된 재소자 5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경기대 이수정 교수와 대학원생 3명은 상담자로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다.

이 프로그램은 재범방지를 위한 심리 치료로 매주 1회 2시간씩 모두 10주 동안 집단 상담으로 진행된다. 기자가 방문했던 날은 세 번째 모임이었다.

지난 두 번의 모임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친목도모 시간이었다면, 세 번째 모임부터는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심리치료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주제는 ‘나의 첫 성경험’.

재소자와 상담자가 번갈아가며 자신이 처음으로 성을 접한 순간을 이야기했다. 여자친구와 미팅한 날, 처음 음란 동영상을 본 날,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성폭행을 당했던 것 같은 순간 등 다양한 경험담이 쏟아졌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각자가 범행을 저지른 순간으로 옮겨갔다. 데이트 강간을 한 ‘톰’(심리치료 중에는 가명을 쓴다), 강간 전과가 많은 ‘돼야지’와 ‘클로버’, 그리고 성적인 망상 때문에 2명의 여자를 강간한 ‘김 박사’까지 4명의 범행 유형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친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깍두기’만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고 범행 사실을 부인했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마칠 때쯤 TV가 켜졌다. 어릴 때 성폭행을 당한 여성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을 담은 비디오를 시청하는 것이 이 날의 마지막 순서였다. 이 교수는 프로그램을 마치기 전 재소자들에게 자신의 범행으로 고통당한 피해자들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권했다.

다음 모임에는 재소자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스스로 분석할 예정이다. 수원구치소 공정식 교화프로그램 운영팀장은 “재소자가 피해자의 고통과 자기 행동을 똑바로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표”라고 말했다.
 

성폭행범은 범행 직전에 3가지를 생각한다고 한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거야' '들키지만 않으면 돼' '저 여자도 싫어하지는 않을 거야' 그들은 피해자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다.

 


성폭행은 자기중심적 범죄

심리치료를 시작하기 전 수원구치소는 성폭행범의 성 관념을 조사하기 위해 ‘강간통념 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결과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통념검사에 참여한 10명 중 단 한 명도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고 응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강간 혐의를 부인했다. 오히려 억울하다고 말했다.

심리치료의 핵심은 이처럼 억울해하는 성폭행범에게 죄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공 팀장은 “피해자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죄의식이 없고, 죄의식이 없기 때문에 개선의 여지가 적다”고 말했다.

대학 4년 동안 전액장학금을 받았던 ‘김 박사’는 길에서 마주친 여자를 뒤따라가 범행을 저질렀다. 머릿속을 가득 메운 공상을 주체할 수 없어서였다. ‘이래도 될까?’라며 수십 번을 망설였지만 ‘김 박사’는 순간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했다.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상대도 싫어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무엇보다도 ‘김 박사’는 눈앞의 쾌락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성충동을 억제 못한 게 아니라 억제하지 않았다”며 “성폭행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범죄”라고 토로했다.

성폭행범의 범행 동기를 즉흥적인 성충동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성충동을 경험하지만 모두가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관건은 솟구치는 성충동을 어떻게 제어하느냐다. 배고프다고 음식을 함부로 훔쳐 먹어서는 안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성폭행범은 ‘먹고 싶을 땐 먹는다. 잡히지 않을 만큼 빠르게, 흔적 없이 사라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수정 교수는 “피해자가 입을 상처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성폭행범의 심리가 재범을 야기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화학적 거세 도입에 관한 찬반 설문조사

 


심리치료 돕는 화학적 거세

인지행동치료의 효과를 더욱 강화하는 방법으로 캐나다에서는 성충동을 억제하는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호르몬제를 투입해 고환에서 분비되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줄이는 ‘화학적 거세’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데포 프로베라’와 ‘CPA’(Cyproterone Acetate)라는 호르몬제를 사용한다. 이들은 모두 뇌의 시상하부를 거쳐 뇌하수체에서 만들어지는 테스토스테론 분비자극 호르몬을 차단해 결국에는 혈중 테스토스테론의 수치를 낮춘다.

캐나다 교정국은 “화학적 거세는 장기적으로 만성피로, 우울증, 두통, 간기능 장애 등 다양한 부작용을 일으키지만 단기적으로는 그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고 밝혔다.

화학적 거세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대한비뇨기과개원의협의회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 74명 중 절반이 넘는 57%가 호르몬 조절을 통한 성욕 억제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성욕 억제는 성폭행 재범을 막는 최소한’이라는 이유가 30명으로 가장 많았다.

서울탑비뇨기과 조규선 원장은 “호르몬제는 전립선암을 앓는 환자들에게도 흔히 쓰이는 치료”라며 “성폭행범이 저지른 죄악에 비하면 호르몬제 사용에 따른 부작용을 크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화학적 거세에 반대한 의사들은 전체의 43%인 31명이었다. 하지만 ‘부작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는 응답은 3명에 불과했다. 오히려 ‘성폭행은 단순히 성충동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니다’는 대답이 20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부산대 의대 박남철 교수는 “성폭행범의 잘못된 심리는 가만히 놔둔 채 성욕만 줄인다고 해서 성범죄가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화학적 거세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경기대 이수정 교수는 “성폭행범 처벌이 강화되고 화학적 거세를 실시하면 화성 연쇄 성폭행 살인사건과 같은 강력 범죄가 늘어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성범죄자들의 특성상 법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법망을 피하기 위해 완전범죄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화학적 거세의 선택적 도입에 찬성했다. 그는 “심리치료 초기에는 성폭행범이 성충동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정 기간동안 동의를 구해 호르몬제를 투여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구나 심리치료 효과가 빨리 나타날수록 호르몬제를 오래 투여할 필요가 없어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

최근 제기된 성폭행범 신상공개, 야간통행 금지, 전자팔찌 등은 모두 사후대책에 불과하다. 게다가 법안의 기초가 돼야할 재범률 통계도 부정확해 그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피해를 되돌릴 수 없는 것은 무엇이든 처음부터 막을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수원구치소의 성폭행범 심리치료 프로그램이 겨우 그 첫발을 내디뎠다. 이 프로그램은 아직 혐오조건 형성이나 역할극처럼 구체적이고 개별적이지 못하다. 시범 운영되는 임시 프로그램인데다 죄수들이 형을 선고받기 전에 잠깐 멈무는 구치소에서 이뤄진다는 시간적 한계가 큰 탓이다.

하지만 처음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성적 망상때문에 구치소까지 오게된 모범생 ‘김 박사’는 혼자 되뇌였다고 한다. “이제 뭔가 시작되고 있다”고….
 

화학적 거세를 도입해 형벌이 무거워지면 연쇄 살인 같은 강력 범죄가 증가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사진은 화성 연쇄 성폭행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

2006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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