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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터울 커플, 허긴스와 마거릿

태양이 맺어준 사랑

비록 우리나라에서 볼수는 없지만 3월29일 개기일식이 일어난다. 이 개기일식은 중국서부에서 시작해 카스피해, 터키, 이집트, 리비아를 거쳐 대서양 건너편에 이르기까지 넓은지역에 걸쳐 일어나는 만큼 세계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 것이다.

개기일식 동안에는 평소에 감춰져 있던 태양의 또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태양의 외부대기로 알려져 있는 코로나다.

코로나는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확실한 문헌 기록은 없다. 다만 고대 로마시대의 철학자 플루타르코스가 ‘개기일식 중에 태양의 가장자리에서 화려한 반짝임을 볼 수 있다’고 기록한 정도다.

코로나 연구를 시작했던 최초의 과학자는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였다. 그는 태양과 달의 궤도를 연구하면서 일식 중에 코로나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또 코로나는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항상 존재하지만 개기일식 때만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연구는 케플러 이후 더 활발해졌다. 영국의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는 개기일식을 연구하면서 코로나의 중심이 달의 중심과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그는 코로나란 달의 대기가 태양에 의해 빛나서 생기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 뒤 100여년 간 코로나가 태양의 대기인지 달의 것인지에 대해 수많은 천문학자들의 논란이 계속됐다.

영국 은행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베일리는 당시 신대륙이었던 미국에 가보고 나서 탐험가가 되고 싶어 했다. 그는 탐험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함을 알고 젊은 시절 돈 모으기에 열중했다. 그러나 정작 돈을 모았을 때 그는 너무 늙어 있었다.

베일리는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는 모은 돈으로 런던천문협회의 창립을 보조하며 비서일을 맡았다. 50세 무렵인 1825년 그는 뒤늦게 천문학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왼쪽에서 가장 밝은 부분이 바로 '베일리비즈'. 개기일식 직전이나 직후 달의 가장자리 굴곡에 따라 태양이 구슬을 이은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말한다.


태양 주위의 보석 베일리비즈

1836년 영국 북부에서 일어났던 일식에서 베일리는 태양이 가는 활 모양처럼 됐을 때 주변에 보석 같은 작은 구슬들이 연결돼 영롱히 빛나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베일리비즈’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이 사실을 보고하자 많은 사람들이 태양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다음 개기일식이었던 1842년, 당시 유럽의 유명 천문학자들 대다수가 일식을 관측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이 일식은 유럽의 중부와 남부에서 볼 수 있었으므로 많은 의문점을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됐다.

1842년 일식은 태양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왔다. 베일리가 언급했던 ‘비즈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달 주위에서 코로나가 화려한 모습으로 빛났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코로나가 대단히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음이 알려졌고, 점점 더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됐다. 이 일식에서는 태양 가장자리에 보이는 불꽃 모양 가스인 홍염도 관측됐다. 당시 사람들의 놀라움은 대단했다.

그 뒤로 이어진 태양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윌리엄 허긴스. 182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는 13세 때 천연두에 걸려 학교를 중퇴하고 가정교사 밑에서 공부했다. 허긴스는 과학을 좋아했다. 특히 생물학과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허긴스가 천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8세 때 15파운드를 주고 산 소형 천체망원경 덕분이었다.
 

윌리엄 허긴스


인생의 반려자, 천문학 동반자

그는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은 뒤에도 천문학의 꿈을 버리지 못해 30세가 넘어서자 개인천문대를 세우고 관측을 시작했다. 그야말로 아마추어 천문가로서 관측에 나선 것이다. 나름대로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1875년 허긴스는 천문학을 좋아하는 아가씨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당시 그의 나이는 51세, 아내인 마거릿은 27세였다.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들 사이엔 참으로 흥미로운 사랑의 다리가 있었다.

마거릿은 꿈 많은 10대였을 때 과학에 대단한 흥미를 갖고 있었다. 어느 날 용돈을 절약해서 산 천문 잡지에서 ‘분광기 만들기’란 기사를 읽은 그녀는 기사를 따라 직접 분광기를 만들어봤다. 자신이 만든 분광기를 망원경에 부착해 태양의 스펙트럼과 프라운호퍼선을 보게 된 마거릿은 엄청난 흥분을 느꼈다.

그녀는 그 기사를 쓴 필자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비록 답장이 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 필자가 훌륭한 천문학자여서 자신처럼 가난한 처녀에게 편지를 보낼 틈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 천문학자에 대한 열망이 마음속에서 점점 커져 갔다.

진실로 바라면 이뤄지는 법. 마침내 마거릿은 그 기사를 쓴 사람, 허긴스를 우연히 만나게 됐다. 곧바로 두 사람 사이에선 사랑이 불타올랐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일생동안 상대방의 반려자이자 천문학을 연구하는 동반자의 길을 걷게 됐다.

허긴스가 공헌한 분야는 빛을 이용한 분광 측정이다. 당시 독일의 물리학자 키르히호프는 태양 스펙트럼을 관측하다가 프라운호퍼선을 관측하면 태양 대기의 화학 성분을 알아낼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을 접한 허긴스는 키르히호프의 방법을 항성에 적용하면 항성의 성분 또한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광 측정을 천문 분야에 적용할 생각을 해낸 것은 놀랍게도 오직 그 뿐이었다. 그가 아마추어 관측자였기 때문에 새로운 발상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허긴스는 스스로 분광기를 만들어 천체망원경에 부착하고 관측을 시작했다. 그 결과 밝은 항성들이 태양과 구조는 같지만 조성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증명했다. 또 이 방법을 이용해 성운은 성단과 다르며 성운에서만 독특한 휘선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도플러효과가 발견된 뒤 이를 접목시켜 시리우스가 실제로 움직이는 속도를 직접 계산해내기도 했다.

허긴스는 태양관측에도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는 베일리가 관측한 코로나에 특히 관심을 가졌다.

1882년 개기일식 때 독일 출신 물리학자인 슈스터가 코로나 사진 촬영에 성공하자, 허긴스는 대낮에도 태양의 코로나를 찍을 수 없을까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코로나가 보라색으로 보이기 때문에 보라색 필터를 사용하면 낮에도 코로나를 찍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코로나그래프의 원리^프랑스 천문학자 리오가 최초로 고안한 코로나그래프의 개략도, 빛이 들어오면 먼저 대물렌즈에 의해 코로나의 상이 만들어진다. 원판 모양의 차폐막은 태양을 가리는 달 역할을 해 인공적으로 개기일식 효과를 낸다. 가장자리에서 회절이 생기지 않도록 방지하는 특수한 접안렌즈를 지나면 초점면에 코로나 상이 맺힌다.


천체분광학 창시자의 대실수

허긴스는 4개월 동안 여러 장치를 만들고 준비해 어느 초가을날 마침내 20여장의 사진을 촬영했다. 그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사진에 찍힌 태양 주변의 광채가 코로나임을 주장했다.

당시 유럽에서 사진 천문학자로 유명했던 애브니에가 그의 사진을 면밀히 조사했다. 애브니에는 허긴스의 사진에 나타난 미세구조 등이 코로나와 동일하다고 판단해 그 사진이 틀림없는 코로나라고 인정해줬다. 이로 인해 허긴스가 코로나 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1883년 허긴스는 새로운 사진을 얻었다. 이를 개기일식 때 찍은 다른 사진들과 비교해봤다. 이 사진에서는 태양 주변부는 코로나가 맞지만 태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경우 코로나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정됐다. 좀더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 왕립협회 주관으로 새로운 관측 계획이 세워졌고, 많은 천문학자들이 대낮에 코로나 사진을 찍으려고 시도했다.

1885년 미국의 천문학자 피커링이 부분일식 중에 코로나를 찍으려고 노력을 기울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태양 주변에 있는 지구 대기 산란광이 코로나보다 무려 300배나 밝아서 코로나를 찍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허긴스의 사진이 잘못됐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뒤 허긴스는 몇 차례에 걸쳐 낮에 코로나를 찍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기적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성공할 수 없었다. 결국 허긴스가 과거에 찍은 코로나는 코로나가 아니라 태양 주변에서 빛나는 햇무리였다고 현재 추측되고 있다.

코로나를 대낮에 찍는 일은 1931년, 천체망원경 코로나그래프를 사용하면서부터 비로소 가능해졌다. 허긴스의 성공은 초창기의 무지로 인한 오류이긴 했지만, 그는 낮에 코로나를 찍으려고 누구보다 심혈을 기울였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과학이 발전해온 것이다.

어쨌든 허긴스는 천체분광학의 실질적인 창시자로서 천체물리학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 그는 왕립협회장, 왕립천문학회장을 맡기도 하였으며 빅토리아여왕으로부터 ‘아내의 도움을 받아 천체물리학이라는 새로운 과학을 수립했다’고 표창을 받았다.
 

달이 태양을 가리는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과정을 연속적으로 촬영한 모습. 태양이 완전히 가려졌을 때(가운데) 주변이 밝게 빛나는 부분이 코로나다. 20만℃나 되는 고온으로 알려져 있다.


프라운호퍼선 : 연속스펙트럼을 가진 빛을 원소에 통과시키면 특정 파장의 빛만 흡수돼 검은 선이 나타난다. 태양에서 나오는 빛도 태양 표면이나 지구 대기층에 흡수돼 검은 선이 나타나는데, 이를 프라운호퍼선이라고 한다.

도플러효과 : 파동이 발생하는 곳(파원)과 다른 위치에 있는 관측자에게 파동과 파원의 주파수가 다르게 보이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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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조상호 천체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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