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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발보다 왼발이 더 길다

발에 대한 진한 보고서

발은 단지 냄새나고 열등한 신체 기관이기만 할까. 26개의 크고 작은 뼈로 구성된 발. 평생 20만~40만km를 이동하고 3억번 가량 굽혔다가 펴도 이상이 없을정도로 튼튼하다. 하지만 발에 대한 관심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지난 10월 28일, 29일 이틀간 전주대에서 열린 '2005 대한인간공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는 학국인의 발에 대한 다양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이를 계기로 지난 수백만년 동안 우리와 함께해 온 발의 모든 것을 알아보자.

지금 양말을 벗고 왼발과 오른발의 길이를 재보자. 보통 짝을 이루는 오른발과 왼발의 길이가 같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최근 연세대 의류과학연구소 최선희 박사가 20대 203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참가자의 48.8%가 “구두를 신었을 때 한쪽만 안 맞는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양발의 길이가 다르다는 명백한 증거인 셈이다.

짝발이 생기는 이유

실제 얼마나 다를까. 2003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세진 박사가 한국인 600명의 발을 측정해 국제인간공학저널(IJIE)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왼발이 오른발보다 평균 0.6mm 더 길다. 겨우 0.6mm 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수치는 평균이기 때문에 1, 2mm 차이는 쉽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차이라면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정도에 해당한다. 심하면 10mm가 다른 사람도 있다. 양발이 짝짝인 신발을 신어야 할 정도인 셈. 물론 서로 다른 치수의 신발을 한짝씩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큰 발에 맞추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왼발이 오른발보다 더 긴 걸까. 박 박사는 “대부분 사람들이 오른발잡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오른발잡이는 왼발로 몸의 균형을 잡고 오른발로 공을 찬다. 이처럼 왼발이 주로 몸무게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오른발보다 길어졌다는 설명이다.

발 길이는 나이와 시대에 따라서도 다르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발은 짧아진다. 60세 이상인 노인의 발은 20, 30대보다 양쪽 다 10mm 가량 짧다. 늙어서 체중이 빠짐에 따라 근육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14년간 한국인의 발은 많게는 9mm, 적게는 4mm가 길어졌다. 2004년 산업자원부 사이즈코리아 사업으로 부경대 경영학과 성덕현 교수팀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2004년 18~24세인 남성의 발은 1980년 249mm에서 9mm가 더 길어졌다. 같은 나이대의 여성은 1980년 229mm에서 234mm로 5mm가 늘어났다. 이같은 현상은 식생활의 변화로 충분한 영양섭취가 가능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엄지발가락의 근육을 잘 발달시키면 추진력이 강해진다. '나이키'가 선보인 엄지발가락 부분만 따로 분리된 신발 '에어 리프트'.


이집트형 오리발이 많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의 벽화나 조각에 등장하는 고대인의 발모양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은 대부분 엄지발가락이 둘째발가락보다 긴 반면, 고대 그리스인은 정반대이다. 여기서 유래해 고대 이집트인처럼 생긴 발은 이집트형, 고대 그리스인 같은 발은 그리스형이라고 한다. 두 발가락이 같으면 스퀘어형이라고 부른다.

2000년 표준과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이집트형이 60%로 가장 많다. 그리스형은 7%, 스퀘어형은 33%이다. 유럽의 스페인 사람은 이집트형 69%, 그리스형 22%, 스퀘어형 9%로 나타난다. 동서대 신발지식공학과 박해수 교수는 “세계적으로 이집트형 발이 가장 많다”며 “이는 유전적 원인 때문이며 그만큼 엄지발가락이 신체에서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엄지발가락이 유난히 짧은 모턴 증후군 환자는 걷기가 힘들다.

반면 엄지발가락의 근육을 잘 발달시키면 추진력이 강해진다. 이를 위해 신발제조업체 ‘나이키’는 케냐 마라톤 선수들을 위해 엄지발가락 부분만 따로 분리된 신발 ‘에어 리프트’를 개발하기도 했다. 일본의 일부 산악지방에서는 이와 비슷하게 엄지만 분리된 신발을 신는다. 균형을 잡고 힘을 쓰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발가락의 길이뿐 아니라 발목의 크기, 발 너비, 복숭아 뼈의 높이 등이 다르다. 발길이가 260mm처럼 동일하다 하더라도 볼이 넓은가, 발등이 높은가 등에 따라 전체 발은 다르게 생겼다. 고려대 산업시스템정보공학과 정의승 교수팀은 한국인 5000여명을 대상으로 3차원 발 형상을 조사해 남자는 사다리형, 역삼각형, 사각형의 3가지 군집, 여자는 여기에 삼각형이 추가된 4가지 군집으로 분류했다.

남자는 사다리형이 가장 많아 전체의 35%를 차지하는데, 발목이 가늘고 발 너비가 보통이며 엄지발가락이 곧고 새끼발가락이 약간 짧아 오리발을 연상시킨다. 역삼각형은 33%로 발목이 가늘고 발 너비가 넓고 새끼발가락이 약간 길어 새발을 닮았다. 사각형은 32%로 거북이발과 비슷하다. 발목이 다소 굵고 낮으면서 발 너비가 좁고 새끼발가락이 약간 짧은 게 특징이다.

여성도 역시 오리발 같은 사다리형이 전체의 30.2%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역삼각형 25.9%, 삼각형 24%, 사각형 20% 순이다. 삼각형은 발목이 굵고 낮으면서 발 너비가 좁으며 엄지발가락이 보통 굽어 있고 새끼발가락이 짧아 다람쥐 발을 닮았다.

정 교수는 “다양한 발의 형태를 알고 분류하는 작업은 한국인에게 편안한 신발을 만드는 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발가락 길이로 구분한 발 형태^엄지발가락과 둘째발가락 길이로 발 형태를 나눈다. 엄지발가락이 둘째발가락보다 길면 이집트형, 같으면 스퀘어형, 짧으면 그리스형이다.


발에 감사하라

발에는 1m² 당 수천 개의 말초신경이 모여 있다. 이는 신체의 어느 부위보다도 조밀한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에 따르면 성감대는 말초신경이 밀집돼 있는 신체부위를 말한다. 성감대를 자극하면 성적 흥분이 일어나니까 발은 본래 에로틱한 신체기관이라 할 수 있는 셈이다. 발은 촉각에 관해선 손가락 끝을 포함한 어떤 신체 부위보다 훨씬 예민하다. 발이 간지럼을 많이 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지극히 평범한 연인들도 발을 섹시한 매력이 있는 신체 부위 가운데 하나로 여긴다. 또 맨발은 성적 매력 수단으로 존재하고 발과 에로티시즘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본다.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칼 멘닝거는 ‘인간의 마음’이란 책에서 여러 나라의 신화와 전설에 발과 성관념을 연결시킨 사례가 많다는 걸 보여줬다. 어떤 곳의 원주민은 성기를 노출시키는 것보다 발을 노출시키는 것을 더 부끄러워하기도 했고 많은 지역의 여성들은 발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걸 수치로 여겼다는 것이다.

미국의 발치료 전문의이자 의학 박사인 윌리엄 로시가 쓴 ‘에로틱한 발’에 따르면 발은 인간 성욕의 진화와 관계 있다고 한다. 인류는 발의 구조가 변하면서 직립보행을 할 수 있었다. 직립보행으로 봉긋한 여성의 가슴, 상체를 떠받치는 엉덩이, S자의 척추선, 가느다란 목선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네 발로 걷던 시절에 감춰져 있던 생식기가 직립보행을 하면서 전면에 드러나 이성에게 강렬한 시각적 자극을 주었고 인간을 일년 내내 성욕이 발동하는 존재로 만들었다고 한다.

발과 신발의 관계도 에로틱하다. 민속학이나 민간전승에서는 발이 남근의 상징이고 이런 발을 담는 신발은 음문의 상징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자료들이 많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오스트리아의 지그문트 프로이트도 이와 같은 입장이었다. 사실 1천년간 중국인들이 그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했던 전족도 구체적 사례 가운데 하나다.

전족 풍습이 시작되기 훨씬 전인 11세기 초부터 중국인들은 조그만 여성의 발을 예찬했다. 그러다가 상상력을 발휘해 엄지를 뺀 나머지 네 발가락을 발바닥 쪽으로 깊숙이 굽어지게 하는 전족을 생각해낸 것이다. 전족 과정이 무사히 진행되면 성인 여성의 발이 어린아이의 발 크기가 된다고 한다. 또 전족을 한 여인은 걷는 법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발바닥이 부드럽고 몽실몽실하게 변한다.

중국의 전족에 비견되는 것이 서양의 하이힐이었다. 하이힐이 여성의 걸음걸이를 섹시하게 바꾼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엉덩이를 흔드는 마릴린 먼로의 유명한 걸음걸이는 하이힐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이힐을 오래 신으면 엄지발가락이 눌려서 안쪽으로 밀려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엄지발가락이 작은 그리스형이 많아지는 이유도 하이힐처럼 앞쪽이 뾰족하거나 둥근 신발 때문으로 풀이된다.
 

발은 인간 성욕의 진화와 관계된다고 한다. 전족 풍습이 시작되기 훨씬 전인 11세기 초부터 중국인들은 조그만 여성의 발을 예찬했다.


맨발이 더 좋을까

캐나다의 생체역학자 스티븐 로빈스는 유명 브랜드의 신발을 신는 달리기 선수들이 값싼 신발을 신는 선수들보다 부상을 더 많이 당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다. 좋은 신발을 신고 달릴 때 발바닥이 편안하면 발에 전달되는 힘이 실제보다 작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수들은 더 높이 뛰어올라 부상 위험이 증가한다는 주장이다. 사실 발에는 20종의 근육이 촘촘히 결합돼 있어 맨발로도 효과적으로 압력을 분산할 수 있다. 성인이 하루 동안 걸을 때 발바닥에 실리는 몸무게를 모두 합하면 무려 1000t에 달한다. 하지만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신발 없이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발 근육의 쿠션 장치 때문이다.

떠오르는 차세대 스트라이커 박주영 선수가 맨발 축구를 통해 뛰어난 볼 감각을 지니게 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초등학교 시절 축구화를 잃어버려 맨발로 게임에 나선 박 선수는 축구화를 신었을 때보다 훨씬 볼 감각이 좋다는 점을 느끼고 이후 틈만 나면 맨발 축구를 즐겼다고 한다.

최근 나이키가 맨발을 흉내낸 신발 ‘나이키 프리’를 개발한 것도 그동안 쓰지 않던 발 근육을 강화하려는 목적이다. 나이키는 미국 육상대표팀 코치가 이끌던 스탠퍼드대 육상팀이 골프연습장에서 맨발 달리기훈련을 하는 걸 보고 착안했다고 한다. 나이키 프리의 밑창에는 32개의 절개선이 나 있어 맨발을 모방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이 신발을 신고 잰 바닥의 압력 분포도 맨발과 비슷하게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발을 귀하게 여기라”며 “자신에게 맞는 편안한 신발을 신으라”고 입을 모은다. 모양만 좋은 패션 신발은 나이 들어 발에 변형을 가져오고 관절에 고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세대 의류과학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0대는 아직도 신발을 살 때 편안함(43.3%)보다 디자인(54.2%)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러 근육이 촘촘히 결합해 있는 발은 그 자체로도 효과적으로 압력을 분산할 수 있다. 사진은 박주영 선수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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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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