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 IT, NT. 이제는 우리 귀에도 친숙한 단어들이다. 각각 생명공학, 정보기술, 나노기술의 약자다. 그럼 ‘BINT’는 뭘까. 초코과자 이름과 비슷하다고? 앞의 세 단어를 합치면 정답이 나온다. 세 기술을 융합한 바이오정보나노기술(BINT)이 그것이다.
BINT 연구엔 여러 전공의 유기적 연결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KAIST는 2004년 4월 다양한 학문 분야를 결합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려는 목적으로 학제학부를 신설했다. 바이오시스템학과도 그 중의 하나. BINT의 매력에 빠져 있는 박제균 교수의 나노바이오공학연구실을 찾아갔다.
자석으로 DNA 찾는다
박 교수는 요즘 한껏 고무돼 있다. 최근 연구실에서 나노자성체를 이용해 단백질이나 DNA 등의 생체분자를 나노그램(1ng=10-9g)까지 검출할 수 있는 고감도 바이오센서 기술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나노바이오 분야의 국제 학술지 ‘랩온어칩’(lab on a chip) 6월호에 발표됐다.
분석하려는 생체 분자에 자성을 띤 나노입자를 붙이고 폭 100, 높이 5마이크로미터(μm) 크기의 미세한 채널(channel)에 넣는다. 채널 옆에 자석을 갖다 대면 생체 분자가 끌려오는데, 이 속도는 분자의 수가 많을수록 빨라지므로 속도를 측정하면 분자의 수를 계산할 수 있다.
생체분자는 아주 적은 양으로도 인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검출할 수 있는 센서기술은 차세대 나노바이오기술의 핵심이다. “강한 자석을 쓰면 펨토몰(1fM=10-15M)의 극미량 분자도 검출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 기술을 기반으로 ‘칩 위의 실험실’을 개발할 겁니다.”
‘칩 위의 실험실’이란 손톱만한 칩 하나로 실험실에서 할 수 있는 연구를 대체하도록 만든 장치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NEMS 기술이 필요하다. NEMS란 나노기전시스템(Nano Electro Mechanical Systems)으로 각종 센서와 회로를 나노미터 수준에서 3차원적으로 결합한 시스템이다. 잉크젯 프린터 헤드, 자동차 에어백의 가속도 센서 등에서 쓰는 마이크로기전시스템(MEMS)기술보다 1000배 더 정밀하다. 박 교수는 “우리 연구실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NEMS 기술을 생명공학에 응용한 바이오NEMS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칩 위의 실험실’이 먼 미래의 일은 아니다. 최근 연구실은 손바닥만한 플라스틱 카드 위에서 효소와 기질을 섞어 반응시키는 칩을 개발했다.
나란히 배치된 두 입구의 한 쪽에 효소를 넣고, 다른 한 쪽에 이에 반응하는 기질을 넣으면 미세한 채널을 따라 흐르다 만나며 서로 섞인다. 채널은 나뭇가지 모양으로 뻗어나가 여러 개의 출구로 나뉘기 때문에 각 출구마다 효소와 기질이 섞이는 비율이 달라진다. 따라서 두 물질이 만나 생성된 반응물질을 서로 다른 농도로 얻을 수 있다. 커다란 실험기구를 사용할 필요 없이 칩 하나로 실험을 끝낸다.
“이 칩을 사용하면 효소의 활성을 측정하기 위해 각각의 기질 농도별로 여러 번 실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칩은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시료판(96 well plate)과 같은 크기로 만들어 기존 농도측정기에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죠.”
모든 전공에 열린 연구실
‘칩 위의 실험실’을 위한 연구실의 또 다른 작품은 다단계유전영동(dielectrophoresis)분리 기술이다. 미세한 채널 안에 넣은 사다리꼴 모양의 전극에 교류 전기를 걸고 서로 다른 크기의 미세입자를 넣는다. 입자는 크기에 따라 전기장 내에서 받는 힘이 달라지므로 이를 이용해 입자를 분리한다. 혈액 내의 백혈구, 적혈구 등은 서로 크기가 다르므로 이들을 손쉽게 분리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가로 23mm, 세로 16mm 크기의 작은 칩 안에서 분리가 이뤄지므로 휴대용 건강진단 장치에 넣을 수 있다.
이 기술들을 바탕으로 연구팀은 앞으로 신용카드 크기의 바이오칩을 개발하려고 한다. 박 교수는 “휴대폰으로도 읽을 수 있게 제작하면 누구나 손쉽게 건강 상태를 진단하는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나아가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바이오PDA 등도 곧 상용화가 가능하리라 본다”고 밝혔다.
박 교수팀의 실험실에는 개인 책상이 없다. 대신 학생끼리 모여 공부하고 서로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실험실 옆에 따로 마련돼 있다. 박 교수는 “학제학부의 목표인 융합 연구를 위해 실험실을 늘 열어 놓고 누구나 함께 실험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올해로 3년째를 맞는 연구실엔 생물, 전자, 기계, 화공 등 여러 전공 출신의 학생들이 모여 있다. 박사과정 6명, 석사과정 4명과 학부생 4명이 주말에도 연구에 몰입한다. “빠르게 발전하는 생명공학은 BINT의 중요성을 크게 높일 것”이라는 박 교수는 “앞으로 공학이 나아갈 길은 서로 다른 영역의 학문이 융합된 학제간 연구”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