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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원주민처럼 시련 이겨낸 꼬마 성운

먹구름 속에서 곧 별과 행성 태어나

 

지구로부터 4백10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꼬마 성운 B68. 지금은 어두운 구름을 머금고 있지만 조만간 반짝이는 별이 태어날 예정이다.지구로부터 4백10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꼬마 성운 B68. 지금은 어두운 구름을 머금고 있지만 조만간 반짝이는 별이 태어날 예정이다.


남아메리카대륙에서 4천3백70km의 길이를 굽이쳐 있는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 칠레에는 우주의 비밀을 캐기 위해 건설된 천문대들이 많다. 특히 한반도보다 더 넓은 북쪽의 아타카마사막에 우뚝 솟아 있는 해발 2천6백45m의 파라날산에 있는 천문대가 유명하다. 이곳은 사막과 고지의 특성을 모두 갖춰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깨끗한 하늘을 뚫고 우주를 관측하기에 더없이 좋다.

파라날 천문대는 유럽 여러나라들이 남반구에 세운 천문대들 가운데 하나로 구경 8.2m짜리 고성능 망원경(VLT) 4대가 우주를 향해 큰 눈을 부릅뜨고 있다. 지난 4월 1일로 4대의 VLT 가운데 첫번째 망원경이 파라날 천문대에 설치된지 꼭 5년이 됐다.

유럽남반구천문대(ESO)는 이날 VLT 탄생 5주년을 기념해 그동안 VLT로 찍었던 천체사진 중 ‘베스트 20’ 을 선정했다. 이 가운데 하나인 검은 천체 B68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우주에 구멍이라도 뚫린 걸까. 사진에서 모래알처럼 깔린 별들 사이에 놓인 시커먼 덩어리가 B68 성운으로 약간 찌그러진 반달 모양을 하고 있다.

망원경 이름 ‘퀘옌’ 은 달 뜻해

B68을 관측했던 망원경 VLT 4대 중 1대에는 칠레 원주민인 마푸치 말로 달을 뜻하는 퀘옌(Kueyen)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나머지 망원경의 이름도 안투(Antu), 멜리팔(Melipal), 예푼(Yepun)으로 각각 해, 남십자성, 금성을 뜻하는 마푸치 말이다.

마푸치족은 칠레 수도인 샌디에이고에서 남쪽으로 5백km 떨어진 지역에 주로 살던 토착민이다. 마푸치족의 초기 역사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고 18세기 유럽의 탐험가들과 박물학자들이 칠레에 들어오면서 연구하고 남긴 것이 그들에 대한 가장 오래된 흔적이다.

마푸치는 자신들의 언어로 ‘땅의 사람들’ 이란 의미다. 마푸치족은 땅을 고도와 환경에 따라 몇 지역으로 구분했다. 주로 안데스산맥과 해안지대 사이에 위치한 ‘계곡의 땅’ 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다. 오늘날 마푸치족은 소수만 남아 자신들의 땅에 대한 권리를 되찾으려고 몸부림치고 있지만, 그들의 삶의 방식은 거의 사라진 상태다.

사실 B68의 정체도 마푸치족처럼 남겨진 우주의 소수민족이다. B68은 본래 가스와 먼지로 이뤄진 거대한 성운에 포함돼 있다가 젊고 덩치 큰 별에서 나온 강한 입자흐름이나 자외선이 거대한 성운을 휩쓸고 지나간 후에 남은 잔해다. B68은 지구에서 4백10광년 떨어져 있는 1조km 크기의 ‘꼬마’ 성운으로 말머리성운 같은 보통 성운보다 훨씬 작다.

B68은 뒤에 있는 많은 별들의 빛을 가려 검게 보이기 때문에 암흑성운이라 불린다. 그래도 단순한 암흑성운이 아니다. 곧 수축해 별이 되려는 상태에 있는 성운이다. 지금은 시커멓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속에서 태양 같은 별이 탄생하고 주변에 지구 같은 행성이 만들어질 것이다.

B68은 외부 시련을 뚫고 찬란한 별을 탄생시키려는 ‘꽃망울’인 셈이다. 어찌 보면 유럽 침략자들로부터 살아남아 그들이 만든 망원경에 자신들의 이름을 붙인 마푸치족과 비슷하다고 할까.

글 : 이충환 cosmos@donga.com

과학동아 2004년 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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