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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눈먼 두뇌

비판기능 줄고 모성애 강해지는 이유

나른한 바람에 코가 간지럽더니 길가 언덕엔 어느새 노란 꽃이 피었습니다. 매운 겨울 바람에 꽁꽁 닫아놓은 마음의 문이 열리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이제 거리엔 봄꽃을 들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나선 들뜬 마음들이 넘쳐나겠지요.

누구든 사랑을 하면 마음이 예뻐진다고 합니다. 주위에서야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고 놀리지만 어쩌겠습니까. 내 눈엔 너무나 멋지고 사랑스러운 그대인 걸요. 더구나 사랑에 빠진 봄처녀는 정도 많아지고 마음 씀씀이도 후해집니다. 그래서 더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왜 사랑을 하면 눈이 머는 것일까요. 과학자들은 최근 뇌 연구를 통해 그 비밀을 찾아냈습니다.

마약과도 같은 사랑

 

‘아르놀피니 부부 초상’ 얀 반 에이크(1434년, 유화)^신혼 부부의 결혼 서약 장면을 그린 것으로 결혼의 의미를 담은 상징들이 많이 들어있다. 샹들리에에 켜진 단 하나의 촛불(신성함), 개(충실함), 벽에 걸린 수정 묵주(순결함), 의자 등받이의 성 마가렛상(출산의 순조로움) 등이 그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연인의 사진을 보여주면 두뇌의 보상중추가 활발히 반응한다고 합니다. 보상중추란 음식이나 물, 또는 금전적 보상이 주어질 때 또는 성적흥분이 일어날 때 활성화되는 영역입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선물을 받고 즐거워할 때 두뇌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비로 촬영하면 마치 불이 켜지듯 보상중추의 활동이 눈이 띄게 활발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보상중추가 활발히 작용하면 반대로 상대에 대한 부정적 판단을 하는데 중요한 두뇌 기능이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비판적 사고는 진화과정에서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발달한 중요한 기능입니다. 동물이나 사람은 상대가 자신에게 해나 될지 득이 될지를 잘 판단할 수 있어야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죠.

그러나 생물에게 생존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으니 바로 종족번식입니다. 일단 상대에 끌리기 시작했다면 결실을 맺기 위해 성격이나 인간성을 평가하는 욕구보다는 서로에게 더욱 애착감을 느끼려는 본능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죠. 이쯤 되면 연인의 웬만한 허물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게 됩니다.

미국 러트거스대의 헬렌 피셔 박사는 사랑을 3단계로 설명합니다. 가장 먼저 일어나는 과정은 성호르몬의 작용으로 이성을 찾는 것이죠. 그 다음부터는 두뇌의 보상중추가 큰 역할을 합니다.

피셔 박사는 지난해 사랑에 빠진 사람을 찾는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온 17명의 자원자들에게 연인의 사진과 그냥 알고 지내는 사람의 사진을 차례로 보여주면서 뇌기능의 변화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사랑에 빠지기 시작하면 보상중추의 기능이 활발해지면서 우선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흔히 사랑은 중독성이라고 하죠. 사랑의 호르몬 도파민은 니코틴이나 마약인 코카인에 의해서도 활성화됩니다. 설문결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깨어있는 시간의 95% 동안 연인을 생각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사랑하는지 확인받기 원한다면 이미 사랑이라는 마약에 중독된 셈입니다.

다음 단계는 상대에 대해 강한 애착을 느끼는 단계로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라는 호르몬이 보상중추에 작용하는 시기입니다.

동물 실험에서 이 두 호르몬은 짝짓기를 할 때 뿐 아니라 새끼를 낳고 젖을 먹일 때도 많이 분비된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이성에 대한 사랑이 깊어져 결실을 맺고 잘 키우기 위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인간에서는 그런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최근 그 연관성에 대한 증거가 처음으로 제시됐습니다. 영국 런던대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안드레아스 바텔스 박사는 20명의 젊은 엄마들에게 아기 사진을 보여줬더니 이성에 대한 사랑에 반응하는 보상중추가 이 경우에도 활성화됨을 확인해 ‘뉴로이미지’ 2월호에 발표했습니다. 모성애와 이성애가 같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죠.

5 대 1의 사랑 방정식

그렇다면 사랑이 깨지는 것은 왜일까요. 과학자들은 눈에 씌어진 콩깍지가 벗겨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미국 워싱턴대의 심리학자인 존 고텀 박사와 수학자인 제임스 머레이 박사는 갓 결혼한 7백쌍을 만나 섹스나 돈과 같이 의견이 다르기 쉬운 주제에 대해 얘기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화 중에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이나 표정과, 반대로 애정이 담긴 말은 얼마나 자주 하는지를 조사했습니다.

고텀 박사 연구팀은 이른바 ‘이혼 방정식’을 만들었습니다. 이 공식의 핵심은 대화 중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의 비율이었는데, 황금비는 5대 1이었다고 합니다. 만약 이보다 부정적인 반응이 늘어나면 결혼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란 뜻이죠.

연구팀은 4년 뒤 이 커플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조사했습니다. 놀랍게도 결혼생활이 지속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계산된 커플 가운데 94%가 이혼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주가를 맞추는 방정식이었다면 당장 갑부가 될만한 정확성이죠.

고텀 박사는 지난 2월 13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의 연례학술대회에서 이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결혼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악의적인 말을 삼가고 상대의 말이 우습다는 식으로 입술을 한쪽으로 치켜올리고 눈을 아래위로 움직이는 행동을 삼가하라”고 충고했습니다. 말하자면 콩깍지가 벗겨져 상대의 허물이 보여도 표현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는 위기에 처한 부부들에게 앞서의 충고를 실행하는 대화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며칠만에 3분의 2 이상이 상황이 호전됐으며, 9주 동안 지속했을 때는 75%가 관계를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사이언스’ 최신호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은 연인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똑같이 느낀다고 합니다. 허물을 눈감아주고 모성애로 보살피며 고통까지 나누는 사랑이 봄날에 가득하길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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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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