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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 퇴치, 미꾸라지가 나선다

하루에 모기 유충 6백마리 넘게 포식

“미꾸라지 용됐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물을 흐려놓는다.”

우리나라 논과 개울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던 정겨운 우리 물고기 미꾸라지. 그런데 왜 우리 조상들은 이처럼 미꾸라지를 천대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봤을까. 추어탕집 수족관에서 솥에 팔팔 끓여질 날만 기다리고 있는 미꾸라지들을 볼 때면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다.

사실 날씬한 몸매의 송사리, 은빛 비늘이 아름다운 피라미, 점잖은 수염이 듬직한 메기에 비한다면 칙칙한 흙색에 나무토막 잘라놓은 것 같은 미끄덩한 몸뚱어리, 게다가 경박해 보이는 몇가닥 수염이 가관인 미꾸라지가 사랑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매년 2백만명 목숨앗는 말라리아
 

말라리아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딸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아프카니스탄인의 모습. 말라리아를 퇴치하는데 미꾸라지가 큰 역할을 할 전망이다.
 

그러던 미꾸라지가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다. 그것도 한반도를 넘어서 전세계적 관심이다. 지난해 12월 3일부터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미열대의학 및 위생학회 회의에서 필자와 공동 연구자인 국립보건원 이원자 연구관의 발표가 참석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미꾸라지를 이용한 말라리아 퇴치법 소개가 발표의 요지다. 이 내용은 영국 BBC 뉴스에서도 소개됐다. 이 회의에서 발표된 1천2백여 건의 논문 중 유일하게 선택이 된 것이다.

도대체 흙탕물속에서 평생을 보내는 미꾸라지가 어떻게 악명높은 말라리아의 천적이 됐다는 말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라리아의 심각성을 잘 모르겠지만, 1백여개 나라에서 매년 최소 3억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그중 1백50만-2백만명이 사망하는 무서운 전염병이다. 최근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의 서식 가능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단세포 원생동물인 말라리아는 크기가 고작 수㎛로 맨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녀석은 모기와 인체를 오가며 자손을 퍼뜨리는 교활한 생존전략을 갖고 있다. 특히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는 말라리아에게 있어 트로이의 목마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완벽한 전략이 흔들리고 있다. 모기 유충의 최대 천적, 미꾸라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모기 성충은 대개 반경 4km까지 날아갈 수 있으나 대부분 1km 이내에서 활동하며 산란 장소 주위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따라서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모기들이 보이면 틀림없이 그 주위에 모기 발생 장소가 있다고 봐야 한다. 가장 효율적인 모기 퇴치법은 성충보다는 유충 단계에서 방제하는 것이다. 성충이 되면 1만배 이상의 넓은 면적으로 확산되므로 효과적인 방제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인류는 모기에 여러 차례 패배한 경험이 있다. 화려했던 고대 그리스나 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나폴레옹의 막강한 군대가 이탈리아에서 패한 원인도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였다. 프랑스는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려다 모기가 옮기는 황열병에 3만명의 근로자가 죽자 공사를 포기했다.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도 황열병에 많은 시민들을 잃고 당시 수도였던 필라델피아를 포기했다.

놀랍게도 여전히 인간이 모기에 패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근의 과학은 생물을 복제하기도 하는데 모기퇴치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개발된 살충제들은 대부분 살충제 저항성을 갖는 더욱 강력한 모기들을 만들 따름이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살충제는 생태계를 파괴하고 일부는 독성이 있어 인간과 야생동물에게 큰 피해를 준다.

이런 가운데 모기의 천적으로 미꾸라지가 각광을 받고 있다. 미꾸라지가 강력한 모기의 천적으로 확인된 것은 1996년 전남 벌교읍 소재 유기농법을 실시하고 있는 논에 대한 생태 조사에서였다. 유기농 논에서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단지 퇴비만을 쓰는데, 의외로 모기 유충들이 거의 발견되지 않은 대신 미꾸라지가 살고 있었다. 반면에 인근의 기존 농법의 논에서는 연간 3-4회의 농약을 사용하는데, 살충제 저항성을 지닌데다가 천적이 죽고 없는 이유로 말라리아 매개모기와 일본뇌염 매개모기가 여름 내내 상당수 발생했다.

실험결과 미꾸라지 한마리는 말라리아 매개모기인 중국얼룩날개모기 유충을 하루에 6백마리 이상, 도시에서 가장 흔한 빨간집모기와 일본뇌염 매개모기인 작은빨간집모기 유충은 1천1백마리까지 포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꾸라지가 강력한 모기 천적으로 밝혀진 이후 1998년부터 전남 여수시 보건소를 필두로 경기도 안산시, 전남 신안군, 경기도 파주시의 보건소에서 미꾸라지를 이용해 큰 효과를 얻었음을 보고했고, 부산시 동래구 보건소에서는 2001년부터 매년 온천천 저습지에 살포해 90% 이상의 방제효과를 올리고 있다.

현재 모기 방제를 위해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모기 천적은 ‘모기 고기’(mosquito fish) 라고 불리는 어류다. 그런데 이 종류는 추위에 약해서 월동하지 못하므로 매년 봄철마다 살포해야 한다. 모기 포식력도 미꾸라지의 1/3 수준이다.

보통 미꾸라지라고 부르는 종류는 우리나라에 모두 8종이 기록돼 있다. 기름종개, 수수미꾸리, 새코미꾸리, 쌀미꾸리, 미꾸리, 미꾸라지, 강종개, 종개다. 이중 모기 유충을 많이 포식하는 종류는 미꾸라지와 미꾸리다. 이 녀석들은 몸길이와 생김새가 매우 비슷하나 원통형인 미꾸리에 비하면 미꾸라지는 옆으로 약간 납작하다. 미각을 담당하는 5쌍의 입수염 중에 입구석에 달린 한 쌍의 길이도 차이가 있다. 미꾸리의 수염은 눈 지름의 2.5배 이하인데 비해 미꾸라지는 4배로 매우 길다.
 

미꾸라지로 불리는 8종의 어류 중 모기 유충을 가장 잘 잡아먹는 미꾸라지와 미꾸리. 미꾸라지의 수염이 좀더 길다.


35˚C 물도 견디는 생명력
 

말라리아에 감염된 혈액. 최신 생물학 기술을 동원해도 말라리아 퇴치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미꾸라지는 세계적으로 한국, 중국, 대만에만 있는데, 말라리아 매개모기와 일본뇌염 매개모기가 주로 발생하는 논, 논도랑, 연못, 늪 등지에 서식하고 있다. 미꾸라지는 타 어종에 비해 생명력이 강하고 수질오염에 매우 강한 어종으로 3급수에서도 살수 있다. 또한 많은 종류의 민물고기가 수온이 32。C 정도가 되면 죽는데 반해 미꾸라지는 35。C의 고온에서도 살 수 있다. 한편 미꾸라지는 염도 0.8%에서도 죽지 않으므로 염도 0.5%가 생존 한계인 모기 유충보다 한수 위다.

미꾸라지는 영하의 겨울철에도 생존할 수 있는데다가 서식처의 물이 마르거나 혹한 또는 혹서의 환경 속에서는 30cm 안팎의 진흙 속으로 파고 들어가 열악한 환경을 견디며 살아 남는다. 특히 이 녀석들은 아가미 호흡뿐 아니라 장 호흡도 하므로 물 속의 산소가 부족하거나 논에 물이 없을 때 입으로 공기를 들이마신 후 장에서 산소를 흡수하고 탄산가스는 항문으로 방귀 뀌듯 배출한다.

이 녀석들은 비가 내릴 때 매우 활발히 헤엄을 치는 까닭에 ‘기상어’(氣象魚) 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두 종류의 식성은 모두 잡식성인데 주로 밤에 먹이를 먹는다. 동물성을 선호해 동물성 플랑크톤이나 모기와 깔따구의 유충을 좋아한다. 특히 몸길이 10cm 정도인 1년생 이하의 치어가 20cm에 다르는 성어보다 포식 활동이 활발하다. 수명은 10년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미꾸라지와 미꾸리는 모두 추어탕에 쓰인다. 쇠고기에 비해 열량은 적으면서 칼슘은 61배, 철분은 2배나 많아 성장기 어린이나 갱년기 골다공증 예방에 좋다. 비타민 A도 7배나 많아서 시력 증강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초강목’에서도 속을 덥게 하고 기를 늘리며 소갈증을 풀어준다고 적고 있다. 이와 같이 미꾸라지는 영양가가 높고 생존력이 높으며 가격도 싸서 동물성 사료의 원료로, 원양어업의 살아있는 미끼로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일석사조’(一石四鳥) 효자 어류라고 하겠다.

온난화 현상과 난개발로 근년에는 전보다 모기 발생이 증가했고, 말라리아와 일본뇌염 환자가 해마다 예외없이 보고되고 있다.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으로 환경 친화적이면서 모기의 강력한 천적인 미꾸라지의 적극적인 활용과 활약이 기대된다. 미꾸라지가 모기유충의 강력한 천적임이 최근 국제학회에 발표된 이후 미꾸라지는 국내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와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여러나라에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말라리아가 극성을 부리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 미꾸라지를 사용한다면 모기퇴치와 더불어 식량공급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미꾸라지의 먹이는 물바닥 진흙 속의 유기물질, 물 속의 이끼와 조류 그리고 모기와 깔따구 유충 등이므로 외래생물 유입에 따른 생태계 교란에 큰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별로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토종 미꾸라지가 말라리아를 비롯한 모기가 매개하는 질병 퇴치에 큰 기여를 할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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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동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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