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보다 더위에 훨씬 강해
극단적 환경에 놓였을 때 인체의 반응을 연구하는 영국 옥스퍼드대 생리학과 프란세스 아쉬크로프트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사람의 몸은 오히려 더위에만 잘 견디게 진화했다는 것이다. 대신 추위에 대해서 속수무책이다. 사람은 자연상태인 알몸으로는 20℃만 돼도 밤을 견디기가 어렵다. 더위와 추위 모두에 어느 정도 견디는 대부분의 동물들과 다른 점이다.
아쉬크로프트 교수는 저서 ‘극단에서의 삶’에서 인체 곳곳에 남아 있는 이런 진화의 흔적들을 제시했다. 인간의 피부에는 땀샘이 2백만개 정도 있다. 땀의 배출은 몸을 식히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포유류에서 이 정도의 밀도로 땀샘이 있는 동물은 드물다.
피부에 털이 없는 것도 이런 적응의 결과다. 포유류 중에서 인간만큼 ‘벌거벗은’ 종도 찾기 어렵다. 털이 없는 매끄러운 피부는 땀이 좀더 쉽게 증발할 수 있게 해준다. 대신 자체 보온은 포기했다는 의미다. 사람의 생김새도 그렇다. 몸에 비해서 팔, 다리가 길고 따라서 체중 대비 피부 면적도 넓은 편이다. 그만큼 몸의 열을 잘 내보낼 수 있는 구조다.
피부에 있는 온도 센서도 그런 흔적 중 하나다. 이 센서는 13-35℃ 사이의 온도에 반응해 덥고 추운 정도를 알려주는데, 온도가 낮을수록 뇌로 가는 전기 신호가 증가하기 때문에 ‘냉각 수용체’라고 부른다. 냉각 수용체는 28℃ 부근에서 가장 민감한데, 이는 인류가 평균 온도 28℃ 근처인 곳에서 진화했음을 암시한다. 인류의 화석이 발굴되는 아프리카 중부지역의 연평균 온도와 비슷한 값이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수렵채취인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빠른 동물을 잡으려고 몇시간, 심지어 며칠씩 쫓아다녔다. 먹이를 급습해 잡아먹는 큰고양이과 동물들과는 대조적이다. 털이 난 동물들은 전속력으로 오랫동안 달리기 어렵다. 격렬한 움직임으로 과열된 몸을 주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인류는 한참을 달려도 거뜬하다. 효과적으로 열을 내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추위에 대해서는 손과 머리를 써서 대응한다. 잡은 짐승의 가죽을 벗겨 몸을 가리고 불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웬만한 추위는 거뜬히 견디게 됐다.
관측된 최고 온도는 58℃
그렇다면 인간은 자연에서 어느 온도까지 견딜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지구에는 기온이 45℃가 넘는 곳이 꽤 많고, 심지어 50℃가 넘는 곳도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최고 온도는 1992년 9월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엘 아지지아(El Azizia)라는 곳에서 측정된 것으로 그늘에서 무려 58℃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렇게 주위 온도가 체온을 훨씬 뛰어넘는 곳에서도 여전히 인간은 나름대로 잘 적응하며 살고 있다. 사막의 사람들은 옷으로 온몸을 덮어 작열하는 태양을 막는다. 그런데 이 옷은 마치 천을 둘러쓴 것처럼 헐렁하다. 땀이 쉽게 증발하게 하기 위함이다.
사람이 진짜 견디기 어려운 곳은 따로 있다.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는 40℃가 채 안되더라도 몸이 땀으로 범벅이다. 특히 서인도제도와 자메이카 같은 지역의 여름 날씨는 악명이 높다. 과거 이곳의 식민지를 경영했던 유럽인들에게 이곳에서 여름을 난다는 것은 악몽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습기가 포화 상태인 50℃가 사우나처럼 건조한 상태의 90℃가 보다 훨씬 견디기 어렵다고 한다.
몸을 식히려면 땀이 증발돼야
땀을 증발시키는 것이 열을 식히는데 이렇게 중요할까? 체온 정도의 온도에서 물 1g을 증발시키려면 거의 6백cal(칼로리)의 열량이 필요하다. 1cal는 물 1g의 온도를 1℃ 높이는데 필요한 열량이다.
예를 들어 20℃의 물을 마신 사람이 37℃의 땀을 배출했다고 가정해 보자. 만일 땀이 전혀 증발하지 않고 그냥 흘러내린다면 1g당 17cal의 열이 나갈 뿐이다. 반면 땀이 모두 증발한다면 6백cal 정도를 빼앗아가므로 냉각효과가 30배 이상 크다. 이를 잘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프랑스의 유명한 사이클 경주인 ‘뚜르 드 프랑스’에서 다섯차례나 우승한 에디 메르크스는 험한 지형에서도 6시간 내내 전속력으로 사이클을 탈 수 있다. 그러나 실내에 고정돼 있는 사이클을 타본 결과 한시간만에 녹초가 돼버렸다. 땀을 비오듯이 흘렸지만 페달을 밟는 격렬한 운동으로 근육에서 생긴 열을 내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야외에서의 사이클링은 시속 40㎞의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때문에 강한 맞바람을 안는다. 따라서 땀이 증발한 수증기는 순식간에 바람에 실려 간다. 반면 고정된 사이클에서 페달을 밟을 경우 땀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주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땀이 잘 증발되지 않고 대부분 물방울 상태로 떨어지고 만다. 강변에서 조깅을 할 때보다 러닝 머신에서 달릴 때 훨씬 힘들게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뚜르 드 프랑스 참가자들은 하루에 약 7천kcal, 즉 8끼에 해당하는 음식을 먹는다. 그 중 25%만이 근육에서 운동 에너지로 바뀌고 75%는 열로 바뀐다. 거의 10L의 물을 증발시킬 수 있는 양이다. 선수들은 실제로 매일 이만큼의 땀을 흘려가며 22일 간의 대장정을 치뤄낸다. 과열된 몸을 식히는데 사람이 얼마나 뛰어난 동물인가를 알 수 있다.
더위로 인한 사망은 마실 물 부족 때문
지난 6월초 인도에서 폭서로 1천2백여명이 사망한 것도 더위 자체보다 마실 물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낮에는 별로 활동하지 않는 사막의 주민들도 하루에 4L 정도 물을 마신다. 큰 생수병으로 두병이 조금 넘는 양이다. 낮에 일하는 사람들은 10L 이상 마셔야 한다. 사막에서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면 한시간에 무려 3L의 땀이 증발되기도 한다. 따라서 마실 물이 부족하다면 무조건 그늘을 찾아 쉬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물을 마셔 흘린 땀을 보충하지 않으면 탈수가 진행된다. 몸속의 물 중 3-4%가 줄면 갈증이 심해진다. 마라톤을 완주했을 때 수준인 5-8%를 잃으면 극심한 피로와 현기증을 느낀다. 10%가 넘으면 극심한 갈증으로 정신이 혼미해진다. 15-25%가 되면 십중팔구 목숨을 잃는다.
탈수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운좋게 살아난 사람에 대한 기록이 있다. 1905년 멕시코인 파블로 발렌시아는 아리조나 사막에서 길을 잃었다. 1주일 간 물 한모금 못마시고 사경을 헤매다가 구조됐다. 근육질이었던 그는 구조 당시 팔다리 근육이 미라처럼 말라붙었고 눈과 귀의 기능을 거의 잃었다. 입은 바짝 말라 말하지도 먹지도 못하는 발광 직전의 상태였다. 구조 후 입으로 물을 흘려줘 소생된 그는 하루가 지나서야 말을 하고 3일 후에야 다시 보고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다이어트 때문에 소위 ‘땀복’을 입고 조깅이나 등산을 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 경우 땀을 더 흘리게 되므로 약간의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땀을 증발시켜야만 가능한 정상적인 체온조절에 실패해 자칫 탈수와 고체온증, 즉 열사병에 걸릴 위험도 있다. 미국에서만 매년 2백50명 정도가 열사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인종에 따라 적응력 달라
물만 충분하다면 인체는 웬만한 더위에는 충분히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인종에 따라 더위에 대한 적응력이 꽤 차이가 난다.
‘아프리카 단일 기원설’에 따르면 현생 인류는 약 16만년 전 아프리카에 나타나 그 뒤 전대륙으로 퍼져나갔다. 오늘날 다양한 인종은 열대 사바나 기후인 아프리카를 떠난 인류가 새로운 기후에서 수만년 간 적응한 결과다.
동북아시아로 이주한 인류는 빙하기를 맞아 혹독한 추위에 적응하도록 진화했다. 그 결과 팔다리가 짧아지고 상체가 커졌다. 땀샘의 수도 줄고 땀을 내는 능력도 약한 편이다. 또 지방층도 체온을 지키기 위해 배쪽에 우선 쌓이게 됐다. 아무래도 우리가 흑인보다 더위에 약한 이유다.
우리나라 많은 여성들의 고민거리인 처진 엉덩이도 이런 적응의 결과다. 브라질 삼바축제 장면을 보면 다리가 쭉 빠진 흑인 무희들의 탄력적인 하반신이 시선을 끈다.
아프리카 흑인들의 모습은 현생인류의 초기 모습과 별로 변하지 않았다. 그동안 기후가 별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흑인들의 탄력적인 하반신도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의 더운 기후에 적응한 결과다.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먹거리가 풍부할 때 체지방을 몸에 저장한다. 그런데 지방층은 체열의 발산을 막는다. 따라서 열이 많이 나는 내장이나 근육을 지방층이 덮게 되면 더위에 적응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체열의 발산에 별로 영향을 주지 않는 엉덩이로 지방층이 몰린다. 남아프리카 하텐토츠족은 유난히 튀어나온 엉덩이와 길고 날씬한 다리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팔다리가 길고 히프가 올라간 늘씬하고 탄력적인 몸매를 이상으로 삼는다. 우리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지구 온난화가 계속된다면, 수만년 뒤에는 한국인들도 늘씬한 체형으로 바뀌어 있지 않을까.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체온조절 경로
포유류나 조류 같은 항온동물은 어느 범위 내에서 체온을 유지해야만 살 수 있다. 물론 낙타처럼 주위 온도에 따라 상당한 범위 내에서 체온을 변동시키는 능력이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평균 기온인 37℃에서 아래위로 1℃ 이상만 벗어나도 큰 문제가 생긴다(과학동아 2002년 3월호 ‘인간의 체온은 왜 37℃일까’ 참고). 몸은 네가지 경로를 통해 체내의 열을 방출한다. 복사, 전도, 대류, 그리고 땀의 증발이 그것이다.
복사란 몸에서 복사열, 즉 적외선을 내보내는 현상이다. 30℃가 조금 넘는 사람의 피부에서 복사되는 전자기파는 적외선인 10㎛(마이크로미터, 1㎛=${10}^{-6}$m)의 파장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적외선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따듯한 열기로 그 존재를 알 수 있다. 아늑하고 서늘한 침실에서는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복사열을 느낄 수 있다.
전도는 주위의 사물과 몸이 닿을 때 열이 이동하는 현상이다. 둘 사이의 온도차가 크고 열전도도가 큰 물질일수록 열의 이동이 활발하다. 한겨울에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으면 몇분을 버티기 어려운 것도 시멘트가 열을 계속 뺏기 때문이다.
대류는 기체나 액체에서 부분적인 밀도차로 인해 생기는 흐름이다. 추운 곳에 피부를 노출할 경우, 피부 주위의 공기는 따뜻해지면서 밀도가 낮아져 위로 이동하고 차가운 공기가 그 자리에 들어오는 현상이다. 이렇게 해서 몸은 주위에 열을 뺏기게 된다.
더위나 추위를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 쉬고 있는 몸의 열은 어떻게 발산될까? 가장 큰 부분은 복사열로 약 45%를 차지한다. 대류와 전도는 각각 15% 정도를 차지한다. 나머지 25%는 땀을 통한 증발열이다. 땀을 흘릴 것 같지 않은 날씨에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 하루에 0.8L 정도 땀이 증발한다. 이때 바람이 분다면 대류와 전도, 증발의 비중이 올라간다. 공기의 순환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온도가 내려갈수록 전도와 대류에 의해 많은 열을 뺏기게 된다. 이 경우 몸에서 발생하는 열보다 주위에 뺏기는 열이 많아지므로 보온을 하지 않으면 위험해진다. 겨울에 옷을 여러겹 입는 것도 대류를 막고 옷과 옷 사이에 열전도도가 낮은 공기층을 둠으로써 열의 이동을 막기 위함이다. 북극곰의 경우 두터운 털이 이런 역할을 한다.
반면 땀의 양은 크게 줄고 대신 소변을 통해 과잉의 수분을 배출한다. 증발열로 체열을 뺏기지 않기 위함이다.
그러나 복사, 전도, 대류를 통한 열 방출의 효율은 주위 온도가 올라갈수록 급격히 떨어진다. 특히 주위 온도가 체온보다 높아지면 열이 나가기는 커녕 오히려 체내로 들어온다. 즉 몸이 내보내는 복사열보다 주위에서 몸으로 들어오는 복사열이 더 많아지고, 몸이 닿는 곳이 더 뜨거워 열이 오히려 차가운 몸 쪽으로 흘러 들어온다. 대류의 경우에도 몸 가까이 있는 공기가 오히려 온도가 더 낮아져 아래로 이동하고 뜨거운 공기가 대체하게 된다.
결국 몸의 체온조절은 전적으로 땀을 증발시키는데 의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