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199년 지구. 인간이 창조한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계.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인공지능의 생명연장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인간의 뇌에는 인공지능에 의해 만들어진 매트릭스라는 1999년의 가상현실이 입력되고 인간은 평생 이 가상현실 속에서 꿈을 꾸듯 살아간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그려지는 미래 인류의 모습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진짜가 아니고 인간은 인공지능 기계에게 지배당하고 있다는 설정은 1편에 이어 최근 개봉한 2편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설정은 다소 충격적이지만, 영화 매트릭스가 과학에 던져주는 메시지는 다름아닌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의 미래에 대한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의 미래에 대해 여러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현시점에서는 허구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현재 기술 발전의 속도로 볼 때 머지 않은 미래에 충분히 가능한 내용도 있다.
기술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인간과 유사하거나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이 출현할 수 있을까. 현실세계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가상현실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언제쯤에나 현실로 다가올까. 영화 매트릭스가 그려내는 낯선 세계의 가능성을 살펴보자.
기계의 지능 테스트하는 법
먼저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점쳐보자.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인간처럼 사고, 학습, 추론, 지각, 문제해결 등의 지능적인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컴퓨터나 기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지능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인간의 사고과정을 탐구해 프로그램이나 하드웨어로 구현하려고 연구해온 것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는 컴퓨터의 탄생과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됐다.
1936년 영국의 앨런 튜링은 오늘날 사용되는 컴퓨터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튜링 머신’이란 기계를 만들었다. 또한 튜링은 인공지능에 대한 최초의 실제적인 판단기준인 ‘튜링 테스트’를 제시하기도 했다.
튜링 테스트의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즉 사람이 커튼 뒤에 가려진 기계에게 질문하고 이 기계는 사람의 질문에 대답하는데, 그 대답으로 사람인지, 기계인지 구분할 수 없으면 그 기계는 지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컴퓨터는 인공지능 컴퓨터인 셈이다.
튜링 이후 지난 50여년 동안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결과는 눈부시다. 세계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를 이긴 IBM의 ‘딥 블루’, 받아쓰기가 가능한 음성인식 소프트웨어, 스스로 물의 양과 빨래시간을 결정하는 세탁기, 신용카드 사용패턴을 감시하고 잘못된 사용을 감지하는 컴퓨터, 얼굴 지문 홍채 등 인간의 생체특징을 인식하는 장치, 주인에게 재롱을 피우는 로봇강아지, 일어 웹사이트를 한글로 번역해주는 자동번역시스템, 인터넷에서 필요한 정보를 신속하게 찾아주는 지능형 에이전트 시스템 등이 우리 주위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많은 부분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인공시각을 통해 주변의 환경과 인간 움직임을 이해하는 것은 몹시 어려우며, 시끄러운 길거리에서 음성을 인식하는 것도 여전히 어렵다. 기계 번역은 아직도 문맥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다. 인간과 자연어로 대화할 수 있는 기술이나 소설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도 여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보통사람에게 특별한 어려움이 없는 자동차 운전과 같은 일반적인 능력도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상황과 반응 방식을 가진 고도의 지식집약적 능력이기 때문에 이를 컴퓨터로 처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즉 우리가 별로 힘들이지 않고 쉽게 처리하는 동작 하나하나를 인공지능으로 이식하는데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영화에 등장하는 인공지능은 요원한 이야기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인공지능 분야에 새로운 사고와 접근방법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두뇌를 하나의 칩으로
최근에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생물학적 또는 인지과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을 구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연구분야로는 뇌공학, 신경생리학, 인지과학, 생체모방공학 등을 들 수 있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인간 뇌의 물리적 메커니즘을 많이 알면 알수록 인간의 지능에 가까운 인공지능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인공지능 연구는 대부분 인간의 지적 행위를 단편적으로 모방해 주로 소프트웨어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이었다. 즉 튜링 테스트에서처럼 내부에 어떤 과정이 관여하고 있는지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그 결과가 인간의 지능에 맞먹는지만 따졌다. 그러나 이런 방법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는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정보처리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공두뇌를 연구하고 있다.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는 뇌가 스스로 정보를 습득하고 처리하는 원리를 파악함으로써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는 인공두뇌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적으로 시각·청각의 정보처리, 인지, 추론, 행동 등 뇌의 기본 기능을 담당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완성됨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인공지능은 한개의 하드웨어나 칩으로 구현될 전망이다. 하지만 100% 인공지능이 완성되기 전, 뇌의 기능이 부분적으로 구현돼 칩의 형태로 신체나 뇌에 이식될 것이다. 초보적이긴 하지만 최근 이런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1998년 영국 레딩대 사이버네틱스과의 케빈 워릭 교수는 자신의 팔에 전파교신기가 내장된 컴퓨터칩을 이식해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치료 목적이 아닌 이유로 스스로 사이보그가 된 첫번째 인간이 됐다. 당시 그의 몸에 이식된 칩은 연구실 건물 관리 컴퓨터에 신호를 보내 워릭 교수가 연구실 건물로 들어서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전원이 켜지게 했다. 방안에 들어서면 조명이 켜지며 컴퓨터는 “안녕하세요, 워릭 교수님!”하며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의 컴퓨터는 건물 안에서 그의 정확한 위치를 추적할 수 있었다.
또 워릭 교수는 신호를 주고받아 사람의 팔과 똑같이 움직이는 인공로봇팔도 연구하고 있다. 워릭 교수의 팔에는 신경에 연결된 칩이 이식돼 있는데, 근육의 움직임은 생체신호로 바뀌고 이 신호가 칩에 입력되면 전기적 신호로 바뀌어 무선으로 로봇제어기에 전달된다. 최근 실험에 따르면 로봇팔은 사람의 팔과 똑같이 움직였다고 한다.
인간의 뇌를 포함한 신경계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생물의 신경계와 기계를 연결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는 살아있는 신경에 신호를 주거나 신경에서 출력되는 정보를 읽을 수 있는 쌍방향 통신기술을 개발했고, 이를 이용해 살아있는 거머리의 움직임을 컴퓨터로 제어할 수 있음을 보였다. 또한 미국의 MIT와 하버드대의 연구자들은 손상된 망막을 대신할 수 있는 인공망막장치를 개발해 시각 장애인을 대상으로 이식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바퀴벌레의 신경에 전극을 연결해 컴퓨터로 조종하는 실험이 성공한 바 있다. 이처럼 뇌-기계 인터페이스 기술과 소형 정보기기가 결합하면 인공두뇌가 구현될 수 있다.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컴퓨터를 몸에 이식한 상태로 생활할 것이다. 이 소형 컴퓨터는 인간의 신경망에 직접 연결되거나 뇌파를 통해 인간의 생각과 의지에 의해 직접 조종될 것이다.
한편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무술, 헬리콥터 조종기술 등 전문지식을 직접 뇌에 입력하는 것이 가능할까. 뇌에는 정보를 저장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을 칩으로 구현하는 연구가 진행중이다. 이런 기술이 구현되면 각종 정보를 뇌에 직접 입력할 수 있다. 물론 정보를 입력한다 해도 그 정보를 사용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동작을 실행하는데는 어느 정도 트레이닝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출연자들이 나중에 컴퓨터그래픽기술로 처리되는 장면을 찍을 때에도 어느 정도 무술을 익혀야 했듯이.
인공지능 vs 사이보그
언제쯤이면 인공지능이 영화 속에서 상상하는 수준에 도달할까. 대부분의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현재의 발전 속도로 볼 때 40년 정도 후면 인공지능이 지능, 감성, 의식, 몸 기능의 측면에서 인간의 수준과 대등할 것으로 믿고 있다. 일단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과 대등해지면 이미 그 시점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우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인간은 진화에 의해 생존에 필요한 만큼의 능력만 갖지만, 인공지능의 경우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 ‘블레이드 러너’ ‘바이센테니얼맨’ ‘A.I.’ 등에서처럼 지능, 감성, 의식이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닌 날이 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자신보다 뛰어난 인공지능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대처해야 한다. 인간보다 우수한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게 만드는 기술도 필수적일 것이다. 실패하는 경우에는 영화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에서처럼 인간이 인공지능에 의해 지배받는 상황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우수한 개체가 열등한 개체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인공지능 기계의 발전에 맞서기 위해 워릭 교수의 주장처럼 인간은 사이보그로 진화해야 할지도 모른다.
미국 카네기멜론대의 세계적 로봇공학자인 모라벡 교수는 “21세기는 인간보다 우수한 지능을 가진 로봇에 의해 지배되는 후기 생물사회가 될 것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 감각기능, 기계적인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 로봇의 등장은 인류의 복지에 크게 기여하겠지만, 잘못되면 이런 로봇이 오히려 인간에게 해를 끼치고 인류 전체에게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 어떻게 인간에게 도움이 되도록 발전시키고 해악을 끼치지 않게 하는가의 문제는 온전히 인간의 몫이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과학자뿐 아니라 모든 인류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커다란 숙제다.
물론 인간이 자신보다 뛰어난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영화 바이센테니얼맨이나 A.I.를 보면 이와 관련된 현실적 갈등이 나온다. 영화 바이센테니얼맨의 로봇 앤드류(NDR-114의 애칭)는 주인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풀기 위해 2백년 동안 전세계를 방랑하며, 영화 A.I.의 데이빗은 엄마의 사랑을 갈망해 인간 형제와 갈등을 겪다가 엄마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인간적인 실수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로봇이 저지른 실수는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인공지능과 인간이 공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 일인가를 잘 보여준다. 또한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블레이드 러너’에서처럼 인공지능이 자아를 갖고 자기의 존재 의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간과 갈등관계에 놓일 수도 있다.
인터페이스 장치 없어야 가능
가상현실이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현실세계와 구별이 안될 정도가 되려면 미래에는 어떻게 발전해야 할 것인가.
가상현실이란 사용자로 하여금 센서를 통해 현실세계에서처럼 보고, 듣고, 만지는 등의 오감을 느끼도록 해 가상세계에 몰입하게 만들어줌으로써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기술이다. 가상현실을 좀더 실감나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가상세계에 몰입하게 만들어주는 시각, 청각, 촉각 등의 디스플레이기술, 계속 변화하는 영상을 고속 처리할 수 있는 그래픽 렌더링기술, 사용자의 머리와 팔다리의 위치와 방향을 계속 추적할 수 있는 실시간 트래킹기술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런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현재와 같은 방식의 가상현실기술로 몰입감을 느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인터페이스 장치를 이용한 간접경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완전몰입형 가상현실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지금과 전혀 다른 방식의 기술이 필요하다.
뇌공학에 기반을 둔 인공지능기술이 발달하면 가상현실을 직접 뇌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불편한 인터페이스 장치를 착용하지 않고 가상현실시스템을 바로 뇌의 감각기관과 연결함으로써 말 그대로 현실과 구별할 수 없는 완전몰입형 가상현실이 구현되는 것이다. 현재 인공지능과 뇌공학기술의 발전 속도로 볼 때 약 10년 안에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인공망막에 직접 고해상도 시각정보를 디스플레이시킬 수 있다면 HMD(Head Mounted Display)와 같은 장치를 거추장스럽게 장착하지 않고서도 훨씬 선명하고 실감나는 영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가상세계로 들어가려고 머리 뒤쪽에 있는 전극에 광케이블을 연결해 가상현실정보를 직접 입력하는 방식도 가능해질 것이다.
2030년 경에는 뇌의 모든 기능이 완전히 규명되고 뇌공학기술이 더욱 발전해 완전몰입형 가상현실의 질이 극대화될 것이다. 우리의 뇌 안에는 서로 통신하면서 뉴런(신경세포)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인터넷에도 무선으로 접속할 수 있는 칩들이 장착될 것이다. 이를 통해 모든 감각을 통제할 수 있는 완전몰입형 가상현실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영화 매트릭스에는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연결해주는 통로가 등장한다. 현실세계에서 가상세계로 들어가는 경우 광케이블로 뇌에 가상현실정보를 입력하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공중전화기가 사용된다. 여기서 공중전화기는 어떤 의미일까. 실제의 물리적인 연결통로라기보다는 가상현실의 종료를 뜻하는 ‘End of Game’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전화를 받는 순간 가상현실이 종료되고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치 꿈에서 깨어난다고나 할까.